Druid RAW novel - Chapter 204
0203 진화의 섬(4)
소파가 있음에도, 나는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이 섬 전체에 내 초능력이 강하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말이다.
티비를 보면서도, 메시지가 도착한 휴대폰을 보면서도, 냉동 치킨을 데우면서도, 그 치킨과 맥주를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되뇐 것이었다.
그 결과라고 해야 할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지치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초능력은 아무런 대가 없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초능력자의 체력을 기반으로 하여 사용되는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사용할 때라면 숨 쉬는 정도의 체력 소모가 있었다지만, 전력을 다 해서 사용하는 것은 마라톤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내 초능력에 내가 효과를 받으며, 마루를 데리고 잠깐의 산책이 가능할 정도의 체력을 보유한 나도 오래 버티지 못할 정도였다.
“흐아…….”
마시던 맥주를 탁, 내려놓은 나는 몰려오는 피로에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잠시 그렇게 널브러져 있던 나는 남아 있는 치킨과 맥주를 치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우는 건 내일 치우고 잠이나 자야지.”
몰려오는 피로를 버티지 못한 나는 그대로 침실로 들어가, 보드라운 침구가 깔려 있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 ◑ ● ◐ ○ ◑ ● ◐ ○
“이거 맛있네!”
“야야야, 이거 먹으니까 땅이 갑자기 나한테 다가온다?”
“그건 땅이 다가오는 게 아니라, 네가 땅으로 고꾸라지는 거야.”
“이게 바로 인간들이 먹는 먹이인가!”
“다음에 또 먹고 싶은데?”
잠에 빠져있던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피로한데다 맥주까지 먹고 잤기 때문인지, 정신을 차리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아오……. 이거 무슨 소리야.”
잠시 동안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곧장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제 내가 먹다 남긴 것들을 먹고 있는 갈매기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섯 마리의 갈매기들이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내가 먹다 남긴 것들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희들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나 혼자 있는 섬이라 방범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해도, 도어락이 자동으로 잠기는 것이었는데 갈매기들이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딱히 창문을 열어 놓았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기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기로 들어왔지.”
하지만 그 의문은 금세 해결되었다. 다섯 마리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개를 한곳을 향해 뻗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개들이 가리키는 곳에는 활짝 열려 있는 거실 유리 문이 있었다.
‘아니, 저거 분명 닫고 잤는데?’
내가 너무 피곤해서 먹던 것도 치우지 않고 잤다고는 하지만, 그 유리 문은 저녁을 먹기도 전에 닫아두었던 것이었다.
“너희 저거 어떻게 열었어?”
“부리로 여기저기 누르면서 돌리니까 열리던데?”
내 물음에 갈매기들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도대체 어떻게 부리로 여기저기 누르면서 돌려야 닫힌 문이 열리는 건가 싶었다.
“어떻게 했는지 다시 해봐.”
“끼루욱!”
나는 곧바로 갈매기들을 붙잡아, 밖으로 내보냈다. 이후 문까지 터억- 닫고 나니 갈매기들이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녀석들은 이내, 내게 말했던 그대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다섯 마리가 동시에 유리 문의 틈 사이로 길쭉한 부리를 착! 꽂아 넣더니, 고개를 현란하게 움직여댔다.
“……이게 왜 열려.”
그리고, 녀석들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고개의 움직임에 맞춰 유리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묵직한 무게를 자랑하는 유리 문이라, 나도 약간의 힘을 주어야 움직이기 시작하는 문인데 그것이 다섯 마리 갈매기들에게 뚫리고 있었다.
“이렇게 열고 들어왔지!”
현란한 움직임으로 문을 열어젖힌 갈매기들은 다시금 거실에 발을 내디디며, 부리를 높게 치켜들었다.
그 모습에 황당함을 느끼며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녀석들이 다시금 치킨과 맥주에 부리를 꽂았다.
내가 먹다 남긴 것들이 녀석들의 부리에 갈기갈기 찢기며 녀석들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으어, 땅이 날 때리잖아! 살려줘!”
“땅이 널 때리는 게 아니라, 네가 땅을 때리고 있는 거야. 멍청아.”
맥주를 혼자 찹찹찹 마셔버린 갈매기가 바닥을 나뒹굴었고, 그 주변에 다른 갈매기들이 그 갈매기를 콕콕 쪼아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황당함을 느낄 정신마저 가출하는 것을 느끼며, 녀석들을 내쫓았다.
“들어오지 마!”
아쉬워하며 다시금 유리 문을 열려고 하는 갈매기들에게, 잠금장치라는 절망을 내려주었다.
낑낑거리다가 포기하고 돌아가는 갈매기들을 바라본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바닥에 떨어진 갈매기 깃털과 전날 밤의 흔적들을 치웠다.
“어우, 아침부터 무슨 난리야.”
적당히 청소를 하고 소파에 걸터앉은 나는 아침부터 피곤함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은 돌아가는 날이었기에,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움직였다.
“음……. 걸어서 둘러볼 자신이 없네.”
돌아가기 전에 섬을 한 번 더 둘러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침부터 바닥을 드러내는 체력 덕분에, 제대로 된 길 하나 없는 섬을 돌아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더라도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닥에 주저앉아서 휴식을 취할 것이 분명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음을 느끼며 큼큼-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사슴아!”
목을 가다듬은 나는 곧바로 사슴 녀석을 호출했다.
섬 전체에 울릴 정도는 아니지만, 예민한 사슴이라면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소리친 것이었다.
“가요오오오!”
그리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어디선가 사슴 녀석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사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 버섯 먹었다고 커진 건가……?”
그런데 모습을 드러낸 사슴 녀석이 어제와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정확히는 어제보다 조금 더 커진 듯한 느낌이었다. 뿔이 더 두꺼워지고 전체적인 면적이 넓어졌으며, 덩치 자체도 어제보다 조금이지만 더 커진 것 같았다.
‘설마……. 완전히 리타이어 될 때까지 초능력을 쓰면 하루 만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가?’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커져 있는, 어떻게 보면 착각 같기도 하지만 분명히 어제와는 다른 사슴의 모습을 보며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 만에 덩치가 커지는 것은 내 초능력의 영향 같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뭐, 일단 다른 것도 확인해 보면 알겠지.”
하지만 나는 하나만 봐서는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사슴의 등허리 위로 폴짝 뛰어 올라탔다.
“오늘도 한 바퀴 부탁할게.”
“맡겨 주세요!”
내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사슴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의 등허리 위에서 섬을 돌아보니, 사슴 녀석이 커진 것이 내 초능력의 영향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져갔다.
“……이 녀석이 왜 여기 있어.”
시작은 어제 갯벌에서 보았던 짱뚱어였다.
한 마리의 짱뚱어가 갯벌이 아닌,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숲속에서 지느러미로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양서류로 착각할 정도로 습기만 있으면 육상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어류이긴 하지만, 이렇게 숲길에서 볼 수 있는 녀석은 아니었다.
“으랴!”
그리고, 그렇게 숲길을 폴짝이며 뛰어다니는 짱뚱어는 갑자기 나뭇잎과 가지들을 박살 내며 날아오는 한 마리의 새에게 잡아먹혔다.
“아니, 나무 아래에 있는 건 또 어떻게 찾아낸 거야?”
분명 위를 바라보아도,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가득했는데 새가 짱뚱어를 잡아챈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짱뚱어를 한 번에 삼킨 새가 떠나갔기 때문에 의아함을 해소할 수는 없었다.
나는 머리 위에 떨어져내린 이파리 하나를 대충 치워내고서, 사슴 녀석을 타고 섬을 계속해서 둘러보았다.
그리고, 섬을 둘러보며 나는 계속해서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불과 하루. 아니, 저녁과 새벽이 지났을 뿐인데 섬에서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어제 내가 길을 내기 위해 뚫어놨던 넝쿨이나 수풀 같은 것들이 원상복구되어 있었고, 밀웜을 넣어주었던 자그마한 네펜데스는 쥐도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라나 있었다.
심지어, 덩치 녀석은 어제보다 더 단단해진 듯한 근육과 발톱을 이용해, 자신만의 거주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자그마하게 있던 절벽을 직접 파내며 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집! 내가 만든다!”
“……그래, 열심히 해. 무너져서 파묻히지는 말고.”
“걱정 마라! 할 수 있다!”
자신만만하게 크러렁- 웃어대는 덩치를 뒤로하고 섬을 계속해서 둘러보았다.
어제 분명히 사슴이 뜯어 먹었음에도 다시금 손가락만 하게 자라나 있는 버섯의 모습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갯벌만 확인하고 돌아가자.”
“알겠어요!”
버섯을 또다시 탐내는 사슴의 뿔을 잡아 강제로 시선을 돌리며 갯벌로 향했다.
시간이 잘 맞지 않았기에 반쯤 물이 차오른 상태였는데, 그래도 갯벌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저거 뭐냐?”
그렇기 때문에,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갯벌에 널브러져 있는 한 마리의 갈매기를 말이다.
원래 이 섬에서 살던 녀석이 아니라 멀리서 날아온 것 같은 한 마리의 갈매기가, 갯벌에서 나뒹굴며 온몸에 뻘을 묻히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며 유심히 바라보니, 녀석이 몇 마리의 게들에게 붙잡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서 소인국에 찾아간 걸리버가 묶여 있는 것처럼, 갈매기가 한입에 먹던 게들에게 붙잡혀 있는 것이었다.
“아, 도망쳤네.”
그래도 갈매기는 어찌어찌 그 게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다. 꽁지깃을 붙잡은 게 한 마리가 허공으로 따라가긴 했지만 중간에 떨어져내렸다.
그렇게 게들에게서 탈출한 갈매기는 뒤도 돌아보기 싫다는 듯, 허겁지겁 다른 섬을 향해 날아갔다.
“……하면 안 될 짓을 하는 건가?”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내 초능력의 한계를 보고자 하는 것이, 왠지 해서는 안 될 짓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개를 내저으며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도망치는 것은 아니었다.
○ ◑ ● ◐ ○ ◑ ● ◐ ○
“잘 다녀왔어?”
“……어.”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나를 반겨주는 누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괜히 무척 반가웠다.
“압빠! 다음에 나두 데려가야 해!”
“아브브브!”
그리고, 반겨주는 두 아이들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수환아, 섬에서 확인하려던 건 잘 됐어? 어땠어?”
“섬……?”
소은이와 은수를 안아들고 심신에 쌓인 피로를 녹이고 있으니, 누나가 질문을 건넸다.
그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에. 정말,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만약 전쟁이나 외계인 침공이나 좀비가 발생하는 일이 생기면 애들 데리고 그 섬으로 가면 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이 반응하는 누나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내 얼굴을 붙잡는 은수에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