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05
0204 진화의 섬(5)
“히잉. 나두 데려간다 해쓰면서!”
나는 내 바지춤을 잡고 있는 소은이를 곤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또다시 섬에 들어가 식생을 확인하려 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말이다.
“아빠가 확인해야 할 게 더 있어서 그래. 저번에도 말했지? 아빠가 해야 할 게 있는데 그걸 다 하고 데리고 간다고 했잖아. 그것만 확인하면 소은이 데리고 섬에 갈게. 진짜야, 약속.”
“우웅…….”
소은이는 아쉬워하면서도, 저번에 섬에서 약속할 때 할 일이 끝나면 데리고 간다는 것을 떠올린 듯했다.
마지못해 수긍한 소은이는 내가 내민 새끼손가락에, 자기 새끼손가락을 걸어 위아래로 흔들었다.
“다 하면 꼭 나두 데리구 가야대!”
“그래. 소은이가 얼마든지 거기서 놀 수 있게 해줄게.”
“히히.”
지금 당장 가지 못하는 것은 아쉬워도, 다음에 함께 갔을 때 놀 수 있다는 것 때문인지 소은이는 다시금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압빠! 다녀오세요!”
그리고, 소은이는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해 주었다.
해맑게 웃는 미소 뒤로, 얼른 해야 할 것들을 다 끝내고 자신도 같이 가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 다 드러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또다시 섬으로, 내가 진화의 섬이라는 이름을 붙인 그곳으로 향했다.
○ ◑ ● ◐ ○ ◑ ● ◐ ○
“어우, 드디어 보이네.”
요트를 타고 섬으로 향하던 나는 저 멀리서 보이는 섬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름이 아니라, 몇 번을 와도 속을 울렁거리게 하는 뱃멀미가 적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드루이드 초능력이면 뱃멀미 정도는 가볍게 이겨내게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나는 고개를 내젓고서, 어느덧 선착장에 착 달라붙는 요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점점 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하게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집에 돌아왔을 때 느끼는 느낌과 비슷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영역에 접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것으로, 섬에 내 초능력의 영향이 서리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없더라도 이 섬에 약간이지만 초능력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내가 있을 때와 비교하자면 천지차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초능력의 영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약간이지만 남아 있는 것은 분명했다.
어쨌거나,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에 다이어리에 기록을 해둔 나는 어느새 섬의 선착장에 근접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자동으로 선착장에 접안한 요트에, 나는 곧바로 짐을 챙겨 하선했다. 섬 주변으로는 파도도 거의 없이 잔잔한 바다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둥둥 떠 있는 느낌 때문에 뱃멀미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끄으으으으!”
어쨌거나, 그렇게 요트에서 폴짝 뛰어내린 나는 짐들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켰다. 단단한 땅바닥이 두 발바닥으로 느껴지니 이 울렁거리는 속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듯했다.
“어우, 빨리 헬리콥터가 도착해야 할 건데.”
속이 진정되니, 곧장 얼마 전에 주문했던 헬리콥터가 생각났다. 왕복으로 뱃멀미를 겪다 보니 나도 모르게 주문해버린 헬리콥터였다.
다행스럽게도 경호원들 중에 헬리콥터도 운전할 수 있는 이들이 여럿 있다 보니 운용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헬리콥터에 대한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짐들을 들고 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별장에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 도둑인가?”
별장의 문이 열려 있는 것에, 나는 가볍게 긴장했다.
이 섬이 내 소유라고는 하지만, 따로 섬 전체에 진입을 차단하는 벽을 세워두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도둑이 들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짐들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고, 그 사이에서 기다란 막대를 꺼내들었다. 옷장에 옷걸이를 걸어두는 봉이 부러져서, 그것을 새로 가져온 것이었는데 지금은 훌륭한 대화 수단이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지금이라도 일단 덩치 녀석을 부를까?”
잠깐 덩치를 부를까 고민도 했지만 나는 애써 용기를 내며 막대를 강하게 쥐고 집으로 들어갔다.
“이거 누르면 물 나온다고!”
“안 나오잖아!”
“누르라고 멍청아!”
“오! 나온다!”
내부로 들어가니, 집안에 누군가가 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막대를 쥐고 달려간 나는 곧바로 소리치며 막대를 당장 휘두를 수 있는 모션을 취했다.
하지만 이내 허탈함을 느끼며, 쥐고 있던 막대를 바닥에 대충 내려놓았다.
스텐 재질의 막대가 탱그랑- 소리가 나며 바닥에 떨어졌다.
“너희들 여긴 또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나는 주방 쪽에서 정수기를 상대하고 있는 갈매기들을 바라보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저번엔 다섯 마리더니, 이번에는 일곱 마리였다.
“인간이 문 여는 거 잘 보고 따라 해서 들어왔지.”
“여기가 참 좋더라고.”
“저기 구석에 둥지도 지어놨다니까? 여기가 살기 딱 좋네. 역시 인간들이야.”
“여기에서 먹을 수 있는 물이 참 맛있어서 눌러 앉으려고.”
시끄럽게 떠들듯이 말하는 갈매기들의 말에 고개를 내젓던 나는, 가장 먼저 부리를 연 갈매기의 이야기를 상기했다.
“내가 문 여는 걸 보고 따라 했다고?”
“거기, 입구 왼쪽에 있는 벽 틈. 거기에서 작은 걸 꺼내서 입구에 갖다 댔잖아? 그대로 따라 하니까 열리던데? 입구는 툭 튀어나온 걸 누르니까 열렸고.”
“…….”
나는 태평하게 말하는 갈매기의 말에 황당함을 느꼈다.
갈매기의 말대로라면, 녀석들은 내가 숨겨둔 도어락의 카드키를 찾아내어 문을 열고 손잡이까지 눌러 열어버린 것이었다.
문이 열려 있던 이유는 그렇게 열긴 했지만 닫는 것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 건강해지고, 더 커지고, 더 강해지라고 염원하긴 했지만, 내 거주지를 침범할 정도로 똑똑해지라고 한 적은 없는데.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만한 것은, 입구 부근의 영상을 저장 해주는 CCTV가 있다는 것이었다. 갈매기들이 문을 여는 영상이 만들어낼 조회수에 저절로 흐뭇함이 들었다.
하지만 그 흐뭇함과는 별개로, 나는 이 별장에서 아무리 외로워도 갈매기들과 동거할 생각이 없었다. 별장의 지붕 위에 둥지를 트는 것 정도야 말릴 생각이 없지만, 내부까지 허락해 줄 생각은 없었다.
“나가!”
“끼루욱!”
나는 일곱 마리의 갈매기들을 모두 내쫓았다. 녀석들 중 일부가 소파의 팔걸이에 지어둔 둥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내쫓긴 갈매기들은 아쉬워하긴 했지만, 크게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지붕으로 올라가 다시금 둥지를 틀었다.
“어휴.”
나중에 또 침입할 것 같은 느낌에, 나는 도둑갈매기들의 재침입을 막기 위해서 도어락을 열 때 카드가 아니라 비밀번호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왠지 비밀번호도 따라 할 것 같아서, 가리고 누를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갈매기들을 내쫓은 나는 짐을 풀고 곧장 밖으로 향했다.
어느덧 일과나 마찬가지가 된 섬 순방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이어리를 꺼내들고 섬을 돌며, 이전과 달라진 것들을 기록했다.
산딸기, 열매가 그득그득하게 열림. 멧돼지가 파먹은 흔적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열매가 있음.
버섯, 이게 버섯인지 몽둥이인지 모르겠음.
더덕, 칡인 줄 알았는데 더덕이었음. 소은이 다리만 한 수준.
사과나무,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크게 자라서 열매를 만들기 위한 꽃을 피우는 중.
네펜데스, 새를 잡아먹은 듯함.
넝쿨, 나무와 나무 사이를 엮어서 벽을 만들어냄. 자르려고 했지만 실패. 심지어 가시까지 생겨나는 중.
식물들의 변화는 조금 얌전한 편이었다. 더 커지고, 더 많아지고, 더 질겨지는 정도였다. 간간이 철에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식물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 정도의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동물들이었다.
내가 단순하게 생각한 것들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멧돼지, 지하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는 구황작물 등을 아주 손쉽게 발견해냄. 게다가 단순히 힘으로 끊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이빨로 잘근잘근 씹으며 잘라내고 있음.
사슴, 뿔에 걸리며 걸리적거리는 넝쿨들을 이제는 타고 다님. 갯벌에서도 빠지지 않고 빠르게 달려나가는 모습마저 확인.
덩치, 굴 내부에 마른 풀들을 모아 잠자리를 만들고, 몇몇 나무들을 뽑아와서 입구를 가림. 부수거나 자른 것이 아니라 뿌리째 뽑아냄.
고라니, 섬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울음소리가 커졌으며, 여러 나무의 열매 같은 것들을 나무에 직접 올라가서 섭취함.
그 외에도 다람쥐나 여러 새들이 있는데, 대부분이 평범한 동종의 동물들과 큰 차이를 보임.
나는 다이어리에 글씨를 휘갈기고서, 다이어리를 탁- 덮었다.
“확실히 내 초능력이, 동물들을 진화 시키는 쪽이 맞는 것 같다니까.”
평범했던 동물들을 더 이상 평범하지 않도록 진화 시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섬을 빠져나왔다.
원래는 하루나 이틀 동안 있으면서 확인할 생각이었지만, 더 이상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소은이가 오고 싶어서 방방 뛰는데, 데려와야지.
나는 소은이를 데리고 다시 돌아오기로 하며 섬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금 섬으로 돌아온 내 곁에는 우리 가족들이 있었다. 누나와 소은이, 은수가 섬에 첫 발을 내디뎠다.
“압빠! 여기가 그 섬이야?”
“응. 소은이가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섬이야.”
“우와아아아!”
“소은아 뛰면 안 돼!”
섬에 첫 발을 내디딘 소은이는 좋다고 방방 뛰어댔고, 은수를 품에 안은 누나가 그런 소은이를 진정시킨다고 고생했다.
그런데, 선착장에서 그렇게 시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한 동물이 선착장으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섬에 올 때마다 탈것으로 삼았던 녀석인 사슴이었다.
“옆에는 누구예요?”
내게 다가온, 어느덧 웬만한 말보다도 더 커다란 크기를 자랑하고 있는 사슴 녀석이 내 가족에게 호기심을 나타냈다.
이 섬에서 인간이라고는 나를 제외하면 한 번도 보지 못했었으니, 호기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내 가족. 저번에 말해줬지? 저기 손을 흔드는 아이가 내 딸.”
“아, 그렇군요! 반가워요!”
사슴 녀석은 곧장 소은이에게 다가가더니, 다른 동물들처럼 소은이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은이 역시, 그런 사슴이 좋다는 듯이 사슴의 턱 부근을 슥슥 쓰다듬었다.
그런데 소은이가 사슴을 바라보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더니, 녀석의 코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코가 빨개! 그러니까 얘는 루돌프야!”
소은이의 외침에 사슴 녀석의 코를 바라보니, 숲에서 뭘 먹었는지 코가 조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참 아이다운 작명 센스라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는 소은이를 사슴……. 아니, 이제는 루돌프인 녀석의 등허리에 앉혀주었다.
“꼬!”
“가자는 건가요? 좋아요!”
소은이를 태운 루돌프 녀석은 소은이가 옆구리를 가볍게 차며 소리치니, 곧바로 달려나갔다.
“수환아, 저거 괜찮은 거야?”
“괜찮아. 매번 올 때마다 신세 진 녀석이거든. 아마 별장에 먼저 가 있을 거야.”
나는 놀란 듯한 누나를 진정시키며, 곧바로 별장으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