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06
0205 진화의 섬(6)
“여기, 생각보다 좋아 보이네.”
별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누나가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평가를 내렸다.
섬 전체가, 일종의 휴양지라고 여겨도 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섬 주변에 온통 갯벌이다 보니, 바닷물이 투명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몇 커다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는 수준은 되었다.
그리고 섬에 가득한 온갖 종류의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에서 풍겨오는 싱그러운 풀내음은 기분을 절로 상쾌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나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는 휴양지에서 들었던 그 소리와 엇비슷했다.
“아부부브우!”
“은수도 좋아?”
“무느아!”
은수도 이 풍경이 좋은지, 누나의 품에 안긴 채로 팔다리를 휘적휘적 흔들었다.
“자, 일단 얼른 가자. 소은이가 현관 비밀번호는 모르니까.”
비밀번호를 누르며 다니는 것이 귀찮아서 카드를 숨겨놓고 다녔는데, 갈매기들 때문에 더 이상 숨겨두지 않았기 때문에 소은이가 문을 열 방법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갈매기 녀석들이 도어락 비밀번호를 엿보고 문을 따버렸다면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테니, 소은이가 먼저 별장에 가 있더라도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부!”
하지만 은수가 별장으로 빠르게 가려는 내 발목을 잡았다. 물리적으로 잡았다는 것이 아니라, 몸을 버둥거리며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
“은수야 왜 그래?”
걸터앉을 수 있도록 커다란 받침이 달린 포대기에 앉아 있던 은수가 몸을 어디론가 쭉- 내미는 모습에, 나와 누나가 한껏 의아함을 나타냈다.
소은이와 비교를 한다면 엄청나게 얌전한 은수가 이렇게 버둥거리는 것에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수야, 저기 가고 싶어?”
“꾸!”
“저기는 조금 있다가 가면 안 될까?”
“으후으으!”
“끙…….”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평소에 고집을 부리지 않는 은수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면 어지간해서는 마음을 돌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은수가 원하는 대로, 은수가 가리키는 곳을 잠시 경유하기로 했다. 조금 돌아가게 되는 것이긴 했지만, 그렇게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었다.
먼저 별장에 가있을 소은이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소은이는 우리가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불안해할 아이가 아님을 알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아니, 걱정하기보다는 먼저 섬을 탐험하겠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예상이 충분히 가능한 소은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은수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총 세 개의 나무 사이를 이어주고 있는 넝쿨이 있었다. 그 넝쿨은 마치 자그마한 해먹처럼, 세 나무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이거 보고 온 거야?”
“아브! 무아!”
은수의 눈치를 보니, 그 해먹 같은 넝쿨이 무척 탐이 나는 듯했다.
“우리 애들은 왜 다들 자기 초능력 따라가는 걸까?”
“……그러게.”
나는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동물을 무척 좋아하는 소은이, 식물을 무척 좋아하는 은수. 둘 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들 초능력에 따라 선호하는 것이 달랐다.
특히, 식성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아기 때부터 입안에서 요령 좋게 식물들을 걸러냈던 소은이에 비하자면, 은수는 식물들도 아주 잘 먹고 있었다. 특히, 은수는 소은이가 뱉어내기 바쁘던 브로콜리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었다.
양념도 되지 않은 걸 살짝 데쳐주기만 하면 자그마한 손으로 붙잡고 오물오물 귀엽게 뜯어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튼, 은수가 그렇게 고집을 부린 이유가 이 넝쿨 때문임을 알게 된 나는 누나의 품에 있던 은수를 들어 올렸다.
옆구리를 잡고 허공으로 들어 올리니, 은수가 넝쿨을 향해 기어가듯 팔다리를 허공에서 휘적였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해먹같이 생긴 넝쿨에 은수를 내려주었다.
“히!”
넝쿨이 마음에 든 듯, 은수가 넝쿨을 꼬옥 부여잡으며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거 아니야?”
“괜찮아. 여기 있는 넝쿨들이면, 웬만한 멧돼지가 들이 받아도 멀쩡하니까.”
은수가 넝쿨에 밀착하는 것을 곁에서 바라보던 누나가 걱정스레 물었다. 하지만 정말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실제로, 이 섬에 있는 넝쿨들은 날붙이를 비롯해서 날카로운 것으로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면 끊어지거나 뜯어질 염려가 없었다.
멧돼지의 힘도 버티는 넝쿨인데, 가볍디가벼운 은수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수를 넝쿨 위에 올려놓고 별장에 갈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은수를 안아들었다.
“은수야, 이만 가자.”
“우…….”
넝쿨에서 떼어내려 하니, 은수가 넝쿨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했다.
“지금은 가고, 나중에 또 오자.”
내 초능력이 아기에게도 어느 정도 통역의 효과를 갖는 만큼, 은수는 내 말에 약간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은수는 이내 꽉 움켜쥐고 있던 넝쿨을 놓고서 내 옷깃을 붙잡았다.
“가자. 소은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은수를 안아든 나는, 누나가 넘겨주는 포대기를 대충 걸치고서 별장으로 향했다.
“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조금씩 별장에 가까이 다가간 우리는 멀리서부터 소은이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신날까?”
평소보다도 더 높은 톤의 웃음소리가 길게 이어지는 것에, 나와 누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웃음이 황당함으로 바뀌는 것은 금방이었다.
타다다다다다닥!
“……수환아. 내 눈이 이상한 거 아니지? 응?”
“……응. 나도 저거 보여. 소은이가 사슴 타고 드리프트하고 있는 거 말이야.”
소은이가 평소보다 높은 톤의 웃음소리를 터트리는 이유는 하나였다.
루돌프라는 이름을 얻게 된 사슴 녀석을 타고 있는 소은이가, 녀석의 목덜미 털을 잡고서 드리프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디를 깔아둔 바닥이라 조금 미끄러웠던 건지, 루돌프의 발굽이 미끄러지며 앞으로 뛰고 있음에도 옆으로 미끄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드리프트를 하며 별장을 몇 바퀴나 돌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바닥에 찍혀 있는 수많은 발자국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소은아! 이제 그만!”
“웅!”
내 외침에, 소은이가 루돌프 녀석의 목덜미를 탁탁 두드렸다.
그러자 미친 듯이 달리며 미끄러운 곳을 달려나가던 녀석의 움직임이 멈췄다.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다 보니, 관성으로 인해 녀석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녀석이 우리 앞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짜잔!”
주르륵 미끄러져, 나와 누나 앞으로 다가온 루돌프의 위에서 소은이가 폴짝 뛰어내렸다.
허공에서 한 바퀴를 빙글 돌며 바닥에 착지한 소은이는 체조 선수들이 피날레를 장식하듯,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소은아! 위험하게 뭐 하는 거야!”
“히히!”
소은이는 엄마가 화들짝 놀라서 다친 곳이 없나 확인하는 와중에도 씩씩하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가족들을 이끌고 별장 내부로 들어갔다.
“압빠, 놀러가두 대?”
“짐 정리하고, 아빠랑 같이 가자. 아빠가 구경시켜 줄게.”
“웅!”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은이는 자신의 옷가지가 들어 있는 자그마한 가방을 들고 냅다 뛰었다.
“소은아! 거기 말고 여기!”
“웅!”
조금 전 루돌프가 드리프트를 하듯, 소은이가 거실 바닥을 힘차게 박차며 방향을 바꾸었다.
1분, 1초라도 빨리 섬을 구경하고 싶다는 듯한 소은이의 모습에, 나와 누나는 덩달아 바빠졌다. 그래도 꼼꼼히 식재료와 생필품 등을 채워 넣으니, 드디어 사람 사는 곳처럼 바뀌었다.
“압빠! 빨리!”
하지만 별장이 어떻게 정리됐는지 관심 없는 소은이는, 내 손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지금 당장 섬 구경을 시켜주지 않는다면 바닥에 드러누울 기세인 소은이의 모습에, 나는 백기를 들고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도 갈래?”
“처음 온 거니까, 나도 가지 뭐. 은수도 가고 싶지이?”
“마아!”
소은이의 손을 가볍게 맞잡은 나는 누나와 은수를 포함한, 우리 가족을 데리고 섬 구경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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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먹을 수 있는 작물 위주로 심어둔 곳이야. 저기 보면 고구마랑 감자 있지? 그 옆에는 당근이고, 그 뒤쪽으로는 무. 소은아, 아무거나 하나 뽑아볼래?”
내 말에 소은이가 도도도도- 달려나가, 가장 가까이 있던 당근 하나를 뽑아들었다.
“우아! 내 팔보다 커!”
당근을 뽑아든 소은이는 그것을 보더니, 놀란 모습을 보였다.
좋아하며 잘 먹는 건 아니지만, 동물들에게 주면서 평범한 당근의 크기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근이라는 것이 결코 자신의 팔보다 더 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엄청 크지? 아빠가 초능력을 써서 열심히 키운 거야. 그래서 큰 거야.”
“우웅. 그러쿠나!”
하지만 역시 식물보다는 동물을 좋아하는 소은이답게, 소은이는 금세 당근에 대해 흥미를 잃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자신이 뽑아낸 당근을 다시금 땅속으로 쏙- 밀어 넣었다.
“딴 거 보여조!”
“그래, 소은이는 동물들 보고 싶지?”
“웅웅웅!”
머리카락이 크게 펄럭일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이의 모습에, 나는 소은이를 위한 맞춤 투어를 해주기로 했다. 물론, 조금 전 뽑은 당근에 시선을 빼앗긴 은수를 위해 당근을 씻어 건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근을 품에 안고 좋아하는 은수의 모습에 피식 웃고서, 나는 곧바로 움직였다.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녀석들은 섬을 열심히 뛰어다니는 편이라 찾으러 돌아다녀야 했지만, 한 녀석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 녀석에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동물원에 곰돌이 알지?”
“웅!”
“그 곰돌이랑 비슷한 친구인데, 덩치라는 이름이 있어. 곰돌이보다 엄청 더 크거든.”
“빨리 가자!”
동물원에 있는 곰돌이보다 더 커다란 크기를 가진 동물이 있다는 말에, 소은이가 다시금 나를 재촉했다.
그런 소은이를 데리고 잠시 걷다 보니, 연못의 근처에 있는 절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뿌리째로 뽑혀서 큰 구멍을 가로막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저기가 덩치의 집이야. 소은이가 가서 노크해 볼래?”
“똑똑똑똑똑! 소은이입니다!”
내 말에 달려나간 소은이는 커다란 나무를 문처럼 생각한 건지, 나무를 탕탕 두드렸다.
그리고, 소은이의 노크에 내부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커다란 나무가 스르륵- 밀려나더니, 그 나무가 가리던 구멍에서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지게차가 통나무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덩치나 힘이 딱 지게차 같은 느낌이었다.
“인간이다. 오랜만이다. 다른 인간도 있다. 꼬마도 반갑다!”
“그래, 안녕. 거기 있는 아이는 내 딸. 이쪽은 내 부인이랑 아들.”
인사 한 번 해줘- 하고 덧붙이니, 덩치 녀석이 두 발을 딛고 일어나 앞발을 슥슥 흔들었다.
“우아아아!”
소은이는 덩치의 모습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덩치에게 들러붙었다. 아니, 마치 등산이라도 하듯이 녀석의 몸을 타고 올라가, 커다란 머리통 위에 업혔다.
“소은아. 덩치랑은 나중에 놀고, 다른 곳도 한 번 구경하러 가야지.”
덩치의 머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이던 소은이었지만, 다른 곳도 둘러보자는 내 말에 호다닥 달려왔다.
달려온 소은이를 데리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각종 수생생물들이 그득한 연못이었다.
“여기, 오구리랑 비버가 엄청 조아하게따!”
“응, 분명 그럴 거야.”
연못을 보면서도 다른 동물들을 떠올리는 것이 역시 소은이 답다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섬 투어를 이어갔다.
이동하던 도중에 멧돼지나 고라니를 만나며 즐겁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갯벌에 수많은 생물들이 가득한 것을 보며 신기해하기도 한 것이었다.
“여기 엄청 조아!”
볼에 연지곤지를 찍은 듯, 뻘을 묻히고 있는 소은이는 섬 투어가 무척 만족스러웠는지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었다.
저러다 집에 가기 싫어하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소은이처럼, 은수 역시 이 섬이 무척 좋은 듯했다.
“바아으마바!”
은수는 널찍한 넝쿨의 해먹 위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커다란 당근을 꼬옥 끌어안고 있었다.
그래, 너희가 만족하면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