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14
0213 두 마리에서 네 마리로(1)
“준비 다 됐지?”
“으음……. 다 한 거 같기는 한데…….”
내 물음에 누나가 고민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오랜만의 해외여행을 앞두고 짐을 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챙기지 않은 게 있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잊고 있던 것이 하나씩 튀어나온 탓이었다. 지금도 앗- 충전기! 하면서 안방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누나와 달리, 소은이는 해맑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준비 다해써!”
“……소은이는 검사 한 번 하자.”
나는 당당하게 대답하는 소은이의 모습에, 소은이가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이 꼭 움켜쥐고 있는 캐리어를 가져왔다.
순간, 캐리어를 놓을 수 없다는 듯이 소은이가 저항하긴 했지만, 금세 캐리어를 가져올 수 있었다.
지익- 소리를 내며 캐리어의 지퍼를 여니, 털뭉치들이 보였다.
소은이가 잠깐이지만 저항한 이유가 있었다. 어쩐지, 캐리어가 혼자서 움직이는 것 같더라니.
“……나와.”
“들켜버렸샤!”
캐리어 안에 들어 있던 일기토부터 오기토까지, 토끼즈 녀석들을 빼냈다.
그러고 나니 캐리어에는 토끼즈의 사료와, 소은이가 좋아하는 과자 한 봉지만 남아 있었다.
“소은이도 짐 다시 챙겨. 가서 입고 싶은 옷 같은 걸 챙겨야지, 동물들을 챙기면 안 돼.”
“힝.”
동물들을 챙기면 안 된다는 말에 소은이가 무척 아쉬워했다.
“동물들을 다 데려갈 수는 없어도, 몇 마리는 데려갈 거야. 그러니까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은이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딸’이라고 적힌 가족 티셔츠부터 토끼즈가 당근에 파묻혀 있는 그림이 그려진 굿즈 티셔츠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옷들을 챙긴 것이었다.
“소은아, 거기는 더운 나라라서 두꺼운 건 안 챙겨도 돼. 공항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 입을 거만 하나 챙겨둬.”
“웅!”
힘차게 대답하는 소은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분주히 준비하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떠올렸다.
○ ◑ ● ◐ ○ ◑ ● ◐ ○
은수의 첫돌이 지나고, 두어 달 가량이 지나며 나뭇잎들이 떨어지는 가을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렇게 떨어져내린 낙엽들이 바싹 마르기 시작할 때 동물원이 무척 분주해졌다.
다름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단 두 마리. 오직 우리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북부흰코뿔소의 출산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 남아 있는 것이라곤 단 두 마리 밖에 되지 않는 북부흰코뿔소의 출산이라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완전한 멸종이 되느냐, 아니면 복원의 신호탄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북부흰코뿔소 두 마리가 자리하고 있는 우리에는 평소의 배 이상 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 상태였다.
24시간 대기하며 언제 출산이 시작되어도 대응할 수 있는 십수 명의 코뿔소 전문 수의사들, 이 코뿔소들이 우리 동물원에 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노레스큐의 관계자들, 그 외에도 출산에 도움을 줄 수 있거나 지식이 있는 이들이나 기자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오! 드루이드! 잘 왔어요. 안 그래도 찾으러 가려 했어요.”
코뿔소 우리 주변에서 라이노레스큐 소속의 데이비드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니, 마침 나를 찾으려 했다며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코뿔소의 출산이 이틀 후에 있을 거라고 수의사들이 예상하고 있어요.”
“이틀요?”
“그래요. 정말 기대되고, 걱정돼요.”
코뿔소들의 출산이 무척 기대되면서도,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가득한 데이비드였다. 마지막 남은 두 마리인 것도 문제였지만, 두 마리 모두 나이가 조금 있다 보니, 노산에 대한 걱정이 있는 듯했다.
“괜찮을 거예요.”
나는 코뿔소들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느긋하게 걸어 다니고, 바닥에 나고 있는 잡초를 질겅질겅 씹어대는 코뿔소들의 모습을 보면 출산이 임박한 녀석들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건강하다는 소리였다.
데이비드 역시 그런 모습을 보며 걱정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코뿔소들의 출산이 끝날 때까지 근처에서 떠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니 더더욱 걱정을 덜어내는 모습을 보였다.
내 초능력의 영향이라면 코뿔소들이 출산을 하며 문제가 생길 확률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건강한 새끼들이 태어나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걱정을 덜어내고, 기대를 한껏 품은 데이비드가 코뿔소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데이비드와 함께 코뿔소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누군가가 도도도- 달려왔다.
경쾌한 발소리를 내며 내게 달려올 사람은 아직까지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삑삑 소리를 내며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은수는 아니었으니, 소은이 밖에 없었다.
“압빠!”
달려와 덥석 안겨드는 소은이를 안아주니, 해맑은 미소를 지은 소은이가 코뿔소 우리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 것이었다.
“저기 있는 사람들은 누구야? 데빗 아저씨 친구?”
“음……. 데이비드 친구도 있고, 코뿔소들을 위해서 찾아온 수의사 선생님들도 있지.”
“코뿔소 아파? 아프면 안 대!”
아프면 내가 호 해줄 거야! 하고 외친 소은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코뿔소들이 아픈 건 아니야. 엄마가 병원에 갔던 거 기억나지? 은수 태어날 때.”
“웅! 그럼 코뿔소도 애기 낳는 거야? 그래서 수의사 선생님들 있어?”
“우리 소은이 똑똑한데? 코뿔소들도 아기를 낳을 때가 돼서 그런 거야. 코뿔소들은 엄마랑 다르게 병원에 갈 수가 없어서, 수의사 선생님들이 여기로 온 거야.”
“그럼 새끼 코뿔소는 언제 태어나?”
“아마 이틀 정도 있어야 할 거야.”
내 말에 소은이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이틀 있으면 볼 수 이써?!”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거야.”
“와! 새 친구!”
소은이는 확률이고 뭐고, 일단 이틀 후에 새로운 동물 친구가 생긴다는 소식에 행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국, 새 친구가 생긴다는 것을 참지 못한 소은이가 코뿔소 우리에 난입했다.
외국에서 모셔온 코뿔소 전문 수의사들은 그 모습을 보며 순간 경악했다.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코뿔소 우리에 난입하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출산을 앞두면, 다른 코뿔소에 의해 새끼들이 죽거나 다칠까 봐 무리에서 단독으로 이탈할 정도로 민감한 동물이 코뿔소였다.
그런 코뿔소가 있는 곳으로 난입했으니, 소은이에 대해 잘 모르는 몇몇 수의사들이 긴장하고 있었다. 코뿔소들이 난폭한 행동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걱정은 조금 거칠게 말해서, 하등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애기 낳으면 내가 자주 노라주께!”
코뿔소 우리에 난입한 소은이는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코뿔소들에게 다가가 부풀어 있는 배를 슥슥 쓰다듬었다.
출산이 임박한 배를 쓰다듬고 있음에도 코뿔소들은 화를 내기는커녕, 소은이에게 코를 들이밀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외국 출신의 수의사들이 놀라는 모습에, 소은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다른 이들이 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해주었다. 드루이드의 딸이다, 동물들이 좋아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수의사들이 신기해하던 그때 소은이를 찾으러 온 건지, 언제 온 건지 모를 누나가 입을 열었다. 소은이와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던 건지, 다가온 누나는 코뿔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이틀 후가 코뿔소 출산이야?”
“어? 언제 왔어?”
“소은이가 코뿔소 우리에 들어가기 직전에. 아무튼, 코뿔소들 출산일이 이틀 후야?”
“응. 이틀 후로 예상하고 있어.”
“준비 잘 해야겠네.”
소은이와 은수를 낳아본 경험자라고 할 수 있는 누나가 코뿔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틀 후면 주말이잖아. 소은이 유치원에 가지 않을 건데…… 보게 할 거야?”
“출산하는 거? 글쎄.”
누나의 물음에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출산이라는 것이 새로운 생명을 태어나게 만드는 숭고한 행위였지만, 그만큼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소은이에게 보여줘도 될지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잠시 동안 진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다음에야 결론을 내렸다.
바로, 소은이가 결정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직접 보게 된다면 생명의 존귀함을 잘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으면서도 아직 어린 소은이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결정을 내리고 소은이에게 물어보니, 소은이는 자신이 직접 보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동물이 태어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떻게 보면 꽤나 무서운 장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직접 보는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어쨌거나, 소은이가 출산 장면을 직접 보기로 결정한 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코뿔소의 출산에 많은 준비들을 하기 시작했다.
곧 태어날 새끼들의 건강을 검진할 각종 의료 장비부터, 태어날 새끼의 유전자 검사를 할 때 필요한 장비 같은 것들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새끼들이 지낼 공간을 마련하는 등의 준비 역시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준비들이 모두 끝나고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났을 때, 데이비드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바로, 코뿔소들 중 한 마리의 출산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출산 과정에서 위험해질 수 있으니, 걸어 다니는 풍요와 건강의 토템을 불러낸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나갈 준비를 하며,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곤히 자고 있는 은수는 청호를 비롯한 몇몇 동물들에게 맡기고, 누나와 소은이를 데리고 코뿔소 우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