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15
0214 두 마리에서 네 마리로(2)
“끼우오우으응-! 끄르르으응!”
코뿔소 우리로 다가가니, 멀리서부터 코뿔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 소리 같기도 하고 피리 소리 같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울음소리와 맹수들의 성대가 떨리듯 그르릉 거리는 소리 역시 함께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섞여 있는 고통이 느껴졌기에, 나는 조금 더 다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열심히 따라오는 소은이가 같이 가자고 외쳤지만, 더욱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소은이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어느새 뛰고 있었다.
목적지는 코뿔소 우리였다. 평소와 다르게 주변 일대를 완벽하게 차단해, 바깥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둔 상태였다. 코뿔소들의 안정을 위해 해둔 조치였다.
어쨌든 그렇게 내부가 가려진 코뿔소 우리로 다가가니, 입구에 데이비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데이비드! 코뿔소 상태는요!”
“수의사가 진통이 시작됐다고 해요. 곧 출산이 시작될 거라고도 하고요.”
곧 시작된다는 소리에, 나는 데이비드가 열어주는 문으로 쏙- 들어갔다. 뒤이어 데이비드 역시 나를 따라 달려왔다.
코뿔소 우리 내부로 들어가니, 한 마리의 코뿔소가 끙끙거리고 있었으며 다른 한 마리는 출산이 시작된 코뿔소의 곁에서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어.”
진통을 느끼는 듯한 코뿔소에게 다가간 나는 곧장 녀석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진통에 몸을 꿈틀거리며 불안해하던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서 안정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거친 숨이 조금씩 안정되었고, 근처에 있는 나무를 부술 듯이 뿔을 들이밀던 것을 멈추었다.
“압빠! 헥, 헤엑! 코뿔소!”
그리고 코뿔소가 안정을 되찾자, 소은이가 타이밍 좋게 나타났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불안해하는 코뿔소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불안해했을 수도 있는데, 타이밍 좋게 안정을 되찾았을 때 찾아온 것이었다.
게다가 소은이와, 그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누나의 모습까지 확인한 코뿔소는 더더욱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통증으로 인해 끄르릉 거리는 소리를 흘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불안함에 초조해하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통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 코뿔소 마니 아파해!”
“아픈 건 맞지만, 그래도 행복할 거야. 엄마가 그랬어. 소은이랑 은수 태어날 때도 엄청 아팠지만, 소은이랑 은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픈 것보다 더 행복했거든.”
아파하는 코뿔소를 걱정하던 소은이는 누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힘내야대! 내가 응원해주께!”
“인간이랑 코뿔소랑 같을지는 몰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아픈 건 느껴지지도 않을 거야. 행복하거든. 그러니까, 너도 힘을 내야 해.”
소은이와 누나는 출산을 앞둔 코뿔소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녀석을 쓰다듬었다. 게다가 누나는 덕담 같은 말도 아끼지 않았다.
나처럼 동물과 대화가 통하는 누나는 아니었지만,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코뿔소는 그 감정을 느끼는 듯, 누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화이팅! 화이팅! 우리 코뿔소 힘내라!”
그리고, 소은이는 그 옆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열심히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나 역시 누나의 곁에서 코뿔소에게 힘내라는 의미를 가득 담아,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끄르르르릉!”
우리 가족의 응원에 힘입은 건지, 코뿔소는 돌연 강하게 울음소리를 토해내더니 온몸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으면서도 덜덜 떨 정도로 힘을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행동은 오랜 기간 동안 제 뱃속에 품어왔던 새끼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기 위함이었다.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코뿔소가 힘을 주자, 그 주변에 있던 수의사들 중 일부가 크게 소리쳤다.
새끼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폴짝폴짝 뛰며 응원하던 소은이는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놀란 모습을 보였다. 반투명한 막 같은 것에 감싸여 있는 새끼 코뿔소가 어미에게서 조금씩 나오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누나가 열심히 설명해 준 것이 있기 때문인지, 더 열심히 폴짝폴짝 뛰어댔다.
“화이팅! 우리 코뿔소 힘내라앗!”
소은이의 응원에 맞춰 코뿔소 역시 힘을 내었다. 끄트머리만 살짝 보이던 수준에서, 어느덧 새끼의 몸통 절반이 나온 것이었다.
“잠깐 숨 고르고, 한 번에. 할 수 있지?”
나는 그 모습을 보고서, 끙끙거리는 코뿔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말을 듣고 따라 하듯, 잠시 몸에 힘을 풀던 코뿔소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다시금 힘을 주었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코뿔소가 힘을 주는 것과 동시에 새끼가 온전하게 세상 밖으로 빠져나왔다.
“수고했어.”
힘이 조금 빠진 듯, 지쳐 보이는 코뿔소를 격려했다. 하지만 내 말은 녀석에게 닿지 못한 듯했다.
곧장 몸을 돌린 녀석은 갓 태어난 제 새끼를 돌보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는 제 새끼를 부드럽게 핥듯이 쓰다듬어주고,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애기 코뿔소 일어나따!”
그런 어미의 정성에 감동이라도 한 건지, 갓 태어난 새끼 코뿔소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제 어미에게 다가갔다. 본능에 따라 곧장 젖을 빠는 듯한 모습이었다.
새끼 코뿔소가 어미의 젖을 빠는 동안, 데이비드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코뿔소도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나 보네요?”
“맞습니다만……. 드루이드의 영향을 받은 건지 다른 개체보단 걷는 게 빠른 편이네요.”
아무리 못해도 몇 분 정도는 있어야 걸어 다닌다는 말에, 나는 또 내 초능력이 한 건 해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성공적으로 번식에 성공했네요.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모체도 새끼도 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입니다.”
안도했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데이비드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데이비드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누나와 소은이가 새끼 코뿔소에게 다가갔다.
“안녕! 나는 신소은이야! 내가 맨날 맨날 노라주께!”
어미의 젖을 열심히 빨고 있는 새끼에게 다가간 소은이는, 자그마하긴 해도 코뿔소는 코뿔소라는 것을 알리듯 갑옷을 입은 듯한 외형의 새끼 코뿔소를 슥슥 쓰다듬었다.
“소은아, 밥 먹을 때는 건들면 안 돼.”
“웅! 마니 머거! 빨리 커서 나랑 가치 놀자!”
누나의 말에, 새끼를 쓰다듬는 것을 멈춘 소은이가 행복한 표정으로 새끼 코뿔소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나는 그런 새끼 코뿔소를 잠시 바라보다가, 어미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수고했다며 쓰다듬던 누나는, 조금 지쳐 보이는 어미 코뿔소에게 먹을 것들을 내어주었다.
힘을 많이 쓰며 지친 코뿔소는 누나가 내어주는 것들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사장님! 이쪽도 시작했습니다!”
새로 태어난 새끼 코뿔소와, 그 코뿔소를 낳은 어미 코뿔소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우리 동물원 소속의 수의사가 크게 소리쳤다.
새끼를 배고 있던 코뿔소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남아 있던 한 마리 코뿔소는 걱정하고 말고 할 시간도 주지 않고서 출산을 끝내버렸다. 다른 한 마리가 출산하는 모습과, 주변에서 내가 이야기해 주는 것들을 잘 듣고 고스란히 따라 했던 것이었다.
시작됐다는 외침에 녀석에게 다가가는 그 사이에 새끼가 쑥- 나와버릴 정도였다.
“……수, 수고했어.”
격려할 시간도 없이 출산을 끝낸 코뿔소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수고한 것은 수고한 것이었으니, 녀석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코뿔소를 쓰다듬는 사이 정신을 차린 수의사들이 코뿔소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어미 개체들에게 하혈이 있는, 출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이후 어미들의 보살핌 속에서 젖을 먹고 있는 새끼들의 검진 역시 시작되었다.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모성으로 처음에는 수의사들이 새끼에게 접근하지 못했지만, 내가 새끼들의 건강을 확인할 뿐이라는 말을 해주니 슬그머니 비켜주었다.
우리 동물원 소속 수의사와, 외부에서 들어온 코뿔소 전문 수의사들이 합심하여 새끼 코뿔소들을 확인했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지, 혹여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는지부터 시작해서 유전자 검사를 위한 검체 체취까지 하는 것이었다.
수의사들이 새끼 코뿔소의 꼬리를 들어 올려 항문까지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윽고 수의사들이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치며 환호했다.
“와아아아!”
갑작스러운 환호에 어리둥절해 하고 있으니, 언제 갔던 건지 수의사들 틈바구니에서 환호하던 데이비드가 내게 다가왔다.
“코뿔소들이 모두 건강하다고 해요. 모체, 새끼 할 것 없이 건강하고, 새끼들도 문제 될 것 하나 없다고 하네요!”
정말 다행이라는 듯이 말하는 데이비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됐네요.”
“네, 정말 잘 됐어요. 북부흰코뿔소의 복원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 거예요!”
데이비드는 자신이 죽기 전에는 반드시 북부흰코뿔소의 완전한 복원을 성공시키겠다며 호언장담했다. 물론, 내 눈치를 보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껏 호언장담했는데 안 해준다고 하면 어떡하나- 하고 눈치 보는 모습이 웃음을 나오게 만들었다.
“걱정 마요. 도와줄 거니까.”
“고마워요!”
내 손을 덥석 붙잡는 것으로도 모자라 허리를 90도로 숙여 보인 데이비드는 다시금 코뿔소들에게로 호다닥 달려갔다.
데이비드는 소은이와 함께 새끼 코뿔소 옆에서 폴짝폴짝 뛰어댔다. 그렇게 뛰어대는 둘을 따라 하겠다고 버둥거리던 새끼 코뿔소가 넘어지고 나서야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새끼 코뿔소들에게 다가갔다. 내 초능력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강하게 효과를 받을 수 있으니, 잠시 동안이라도 코뿔소들 곁에 있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코뿔소들을 케어하고 있는 사이, 새롭게 태어난 코뿔소들에 대한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우리 동물원의 홍보팀이 열심히 움직여준 덕분이기도 했다.
[세상에 단 두 마리 밖에 없던 북부흰코뿔소, 네 마리 되다!] [드루이드, 멸종 직전의 동물들 복원 성공.]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북부흰코뿔소를 볼 수 있는 동물원, 국내에 있다!] [세계자연보호연맹. 종 보존에 큰 기여를 해준 드루이드에게 감사 인사 전해.]수많은 기사들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 동물원에 대한 홍보 역시 끼어 있었다.
그 홍보 때문인지, 아니면 세계에서 마지막 두 마리에서 네 마리가 된 북부흰코뿔소를 보겠다고 찾아오는 것인지는 몰라도 동물원 방문객들의 수가 유의미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나는 방문객들에게 신경 쓰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북부흰코뿔소의 복원에 성공하자마자, 여러 국가나 기관에서 멸종 위기종의 보호를 요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멸종을 앞둔 동물들의 번식을 위해 동물원에 동물들을 맡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반신반의하기 때문에 맡기지 않았지만, 북부흰코뿔소가 성공적으로 출산했으니 가능성이 입증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당장 우리 동물원에 들어오기로 약속이 되어버린 멸종 위기종만 3종이었다.
네팔의 레서판다. 귀여움의 대명사이긴 하지만 멸종 위기 등급의 위기 종으로, 1년 중 딱 하루만 가임기라는 특이한 체질 때문에 번식이 쉽지 않은 동물이었다.
그다음은 북아프리카의 긴칼뿔오릭스라는 동물이 들어오기로 예약이 되었다. 야생에서의 완전한 멸종으로, 동물원 등지에서 보호되던 개체들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동물원 입주가 예정된 동물은 흔히 아는 얼룩말이었다. 정확히는 그레비얼룩말이라는 종으로, 흔히 동물원에서 볼 수 있는 그랜트얼룩말과는 다른 종이었다. 배 부분에는 얼룩무늬가 없는 것이 특징인 얼룩말이었다.
당연히 새로운 동물들이 들어온다는 것에 소은이는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특히, 탈 수 있는 동물들을 더더욱 좋아하는 탓에, 얼룩말이 들어온다는 것에 환호하고 있을 정도였다.
“나도 있어요!”
곁에서 뽀니가 자기도 있다며 열심히 어필을 했지만, 아쉽게도 이미 뽀니의 라이벌들이 제법 많았기에 당장 먹혀들지 않았다.
시무룩해 하는 뽀니였지만, 곧이어 뽀니를 더더욱 위협하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왔다.
바로, 베트남이나 라오스에서 발견된다고 하는 ‘사올라’라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시아의 유니콘이라고 불릴 정도로, 야생에서 발견된 개체가 열 마리 정도 밖에 안 될 정도로 희귀한 동물이었다.
뽀니에게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해당 동물은 포획된 개체가 전혀 없었다. 잡았다 하면 폐사되는 동물이라 포획되지 못한 것인데, 라오스에서 해당 개체의 포획과 번식 등을 부탁해오는 상황이었다.
“라오스라……. 제법 유명한 휴양지 아닌가? 내년이면 소은이도 초등학교 들어갈 거고, 그러면 여행 갈 시기가 고정되잖아. 이참에 한 번 다녀오는 것도 좋겠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 가족이 라오스로 출국하기 위해 열심히 짐을 싸고 있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