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4
0023 용호, 아니 묘효상박
“헤억…… 헉……! 뒤지, 흐악 겠다……!”
나는 가쁜 숨을 미친듯이 몰아쉬며, 바닥에 널부러졌다.
내가 이러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우리집에 있는, 네 마리의 개들 중에서 산책에 미쳐 있는 세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골든리트리버 마루, 비숑 술빵이, 웰시코기 짜몽이.
이 세 녀석들을 이끌고 나갔다 온 산책은 산책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질주로 달리려는 녀석들에게 끌려가는 무언가였다.
뭉치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차마 목줄을 풀어주지 않았더니, 이 놈들은 나를 끌고 다니기로 마음 먹었다는 듯이 질질 끌고 다녔다.
덕분에 계절상으로는 분명 봄이지만, 봄이 아니라 여름 같은 날씨 탓에 해가 지면서 시원한 시간에 산책을 나갔음에도 온 몸이 땀 범벅일 정도였다. 일어나면 내 모양으로 땀 자국이 남지 않을까 싶었다.
“주인님! 한 번 더어어!”
그런데 바닥에 널부러져 있으니, 산책을 나갔던 세 마리 중에서 가장 활발한 짜몽이가 한 번 더 가자며 요구했다.
“……하겠냐고.”
당장 숨 넘어갈 것 같은데 또 산책? 절대 못하지.
그건 산책이 아니라 목숨을 건 레이스라고.
짜몽이를 밀어내니, 녀석은 조금 아쉬워하는 듯하다가 마당을 미친듯이 뛰놀기 시작했다. 슬그머니 눈치를 보던 마루와 술빵이 역시 그런 짜몽이와 뒤엉켜 뛰놀았다.
‘건물이 빨리 완공 돼야 할 건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약간 미안함이 들었다. 미친듯이 뛰놀고 싶어하는 녀석에게는 우리집 마당이 조금 작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차를 주차한다면 3~4대도 넉넉하게 주차할 수 있을 공간이지만, 지랄견마냥 뛰어다니는 저 녀석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공간이었다.
카페 건물로 짓고 있는 곳은 동물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두었기에, 그곳만 완공된다면 녀석이 뛰놀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다.
‘그럼 산책도 수월해지겠지. 거기서 체력을 다 뺀 다음에 하는 산책은 말 그대로 산책일 거야.’
동물 복지니 뭐니 하기 전에,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건물이 빨리 완공돼야 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산책 도중 사망. 과도한 산책, 이대로 괜찮은가-‘ 라는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아니면, ‘개 보다 빠른 사람! 비결은 과도한 산책?’ 이라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 되던가.
“수고했어.”
내가 세 마리의 개들을 이끌고 산책…… 아니, 무언가를 하고 온 것을 확인한 누나는 시원한 얼음물을 건넸다.
생명수 그 자체나 다름 없는 얼음물에 눈이 돌아간 나는, 튕겨져 오르듯 일어나 얼음물을 입에 털어넣었다.
으저적, 으적.
얼음이고 뭐고, 일단 다 씹어 삼켰다.
물과 얼음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냉기가 뱃속을 시작으로 온 몸에 퍼지니, 그제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어휴, 땀 좀 봐. 먼저 씻을 거지?”
“응. 일단 좀 씻어야 뭘 하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땀으로 젖은 옷이 쩍쩍 달라붙는 감각은 찝찝하기 그지 없었다.
팔을 들어올려도, 허리를 비틀어도 옷이 몸에 휘감기는 그 느낌은 좋아할 수 없었다.
“……………내가 최고죠?”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태가 한 마디 거들었다. 물을 마시기 전 까지의 나처럼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로.
“……그건 아니지 짜샤. 넌 좀 움직여야 해.”
아무리 다른 세 녀석이 활발을 넘어 지랄에 가깝다고는 해도, 너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도 문제야.
나는 세 녀석에게 나태의 나태유전자를 좀 주고, 세 녀석이 가진 활발 유전자를 덜어 나태에게 주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 싶었다.
세 녀석은 평균보다 조금 더 활발한 정도지만, 나태 이 녀석은 종족의 평균치를 확 끌어올릴 수준이었다.
개체별로 나태함 지수를 그래프로 나타낸다면 이 녀석 하나 때문에 y축의 한계값이 달라지지 않을까?
“……………움직이기 귀찮은데요오.”
이제는 말의 끝을 딱 끝맺는 것도 귀찮은 건지, 나태는 말꼬리를 흘렸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씻기 위해서 욕실로 다가갔다.
그렇지만, 씻기 위해 욕실의 손잡이를 붙잡기는 했지만 욕실의 문을 열지는 못했다.
바로, 마당에서 들려오는 고양이의 외침 때문이었다.
“이 빌어먹을 새대가리가! 오냐, 오늘 기필코 죽여주마!”
누나나 영지는 고양이들의 울음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지만, 개체별로 목소리가 다르게 들리는 내게는 그 소리가 남캣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다급히 마당으로 달려갔다. 도중에 나를 부르려는 듯한 누나의 모습도 보였기에, 나는 찝찝함도 느끼지 못하고 마당으로 달렸다.
마당으로 내달린 나는 전투를 준비하는 듯한 남캣과, 어젯밤 만났던 부엉이를 볼 수 있었다.
“멈춰!”
당장이라도 남캣과 부엉이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질 상황이었기에, 나는 약속된 정지 명령어를 내뱉었다.
장비를 정지합니다- 라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드는 동시에, 남캣과 부엉이의 몸이 덜컥 굳었다.
덕분에 남캣은 몸을 굳힌 채로 바닥에 널부러졌고, 부엉이는 날아오르던 자세 그대로 마당으로 떨어져내렸다. 그 모습은 마치 종이비행기가 바람을 타고 바닥으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휴…….”
옆에서 안도하는 듯한 누나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성큼성큼 달려가 남캣과 부엉이를 붙잡았다.
“누가 싸우래. 이 자식들아.”
“저 새대가리 탓이다.”
“저 괴물 고양이 탓이오.”
멈추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몸이 멈추긴 했지만, 주둥이가 멈춘 것은 아니었다. 내 말에, 두 녀석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상대 탓을 했다.
와, 너희 팀게임 잘하겠다. ……아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도대체 왜 싸운 거야? 부엉이 너 이자식. 내가 어제 닭가슴살도 줬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쳐? 남캣, 너도 내가 아침에 말해줬잖아. 싸울 필요 없다고.”
내 말에 두 녀석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변명아닌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저 새대가리가 기분 더럽게 야리잖아.”
“그대와의 약조를 지키기 위해 공격하지 않으려 했으나, 괴물 같은 고양이 놈이 먼저 도발했소.”
두 녀석은 동시에 변명을 하더니, 서로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아니, 남캣은 그렇다 쳐도, 부엉이 너는 어떻게 으르렁거리는 거냐.
“하…….”
내가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당장이라도 서로 치고받으며 싸울 두 녀석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녀석은 근본적으로 친해질 수 없는 녀석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전자 레벨에서 혐오하는 듯한 두 녀석이었으니, 말로 타이른다고 될 녀석들이 아니었다.
이 때 해결방법은 단 하나였다.
싸우게 놔두되, 다치는 일은 없게 해야하는 것이었다. 싸우지 않게 할 수는 없으니 차라리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래, 싸워라 싸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녀석은 발톱을 세우며 서로에게 적대감을 피워냈다. 하지만 내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대신! 너희가 싸우던 도중에 너희든, 싸움에 휘말린 다른 녀석이든. 절대 다치는 녀석이 나오면 안 돼. 그랬다간 둘 다 가만 안 둘 거야.”
두 녀석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 말에 살짝 겁을 먹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두 녀석이 절대 서로를 다칠 정도로 싸우지 못하게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싸우다가 다치잖아? 그러면, 남캣 너는 앞으로 절대 츄르를 주지 않을 거야. 사료도 맛 없는 걸로 바꿔버릴 거고. 부엉이 너는…….”
함께 해온 시간이 있는 만큼, 남캣의 약점은 확실했다. 그런데, 만난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는 부엉이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녀석이 두려워하지 않을 내용으로 겁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잠시 녀석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아, 그래. 너는 머리 위에 그 뾰족한 깃털을 뽑아버릴 거야. 그거 뽑으면 네가 부엉인지 올빼민지 구분도 못 할 걸? 그리고, 너한테 먹이를 주는 일도 없을 거야. 이 주변에 먹을 거 별로 없지? 쫄쫄 굶을 걸?”
내 말에 두 녀석 모두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많이 죽였다.
“츄르를 위해서라면……. 이깟 새대가리를 다치게 하지 않는 것 쯤이야…….”
“저 괴물 녀석은 마음에 들지 않소만, 그대와의 약조가 있으니 내 반드시 지킬 것이오. 그러니 내 소중한 깃털만큼은 놔두시오!”
먹을 것에 환장한 남캣과, 제 머리 위의 뾰족한 깃털에 대한 애착이 강한 듯한 부엉이는 절대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나는 두 녀석의 맹세를 들으며 두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 손에서 벗어나는 것과 동시에 두 녀석이 서로를 향해 격돌했다.
“이 새대가리가!”
“웃기지 마라 괴물 녀석!”
두 녀석들은 파바바박, 소리를 내며 말 그대로 격돌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금 전 나와 한 약속을 잊지는 않았는지, 서로를 향해 큰 피해가 생길 공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서로 멈칫거리며 동작이 굼떠지기도 했다.
“저거, 괜찮은 거야?”
“어. 잘 보면 조금씩 멈추고 있지? 서로 다치게 하지 말라고 해서 그런 거야. 다칠 것 같으니까 자기들끼리 자제하는 거지.”
“……저게 자제하는 거야?”
“쟤들은 뭐랄까……. 형제나 남매같은 거야. 서로를 혐오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차마 다칠 정도로 공격하지는 못한다고 할까?”
내 말에 누나는 여전히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촌을 제외하면 외동딸인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마찬가지로 외동인 나도 잘 이해는 못하지만.
아무튼, 그렇게 누나의 걱정을 지워준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고양이와 부엉이의 전투? 이건 못 참지.
나는 곧바로 두 녀석의 전투를 카메라에 담았다.
하늘에서 내리 꽂히며 단단한 발톱을 말아쥐어 발차기를 내지르는 부엉이의 공격에, 남캣은 고양이 특유의 가벼운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해냈다.
공격을 피해낸 남캣은 그대로 부엉이에게 냥냥펀치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1초에 몇 번이나 주먹이 움직였으나, 허공에서 몸을 펄럭인 부엉이의 날개에 모두 막혔다.
“아쉽군. 그 당돌한 입을 틀어막을 생각이었다만.”
“흥, 너 같은 새대가리가 내 입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두 녀석은 격투기를 시작하기 전에 트래시 토크를 하듯, 서로를 도발했다.
그리고, 한 번씩 트래시 토크를 주고 받은 녀석들은 다시금 맞붙었다.
이번의 선공은 남캣이었다. 스프링마냥 몸을 압축했다 튀어나간 녀석은, 그대로 부엉이를 향해 몸을 들이받았다.
하지만 날개를 가진 날짐승답게, 부엉이는 힘차게 날아오르며 남캣의 몸통박치기를 피해냈다. 하지만 남캣이 노리는 것이 그것이었다.
부엉이가 날아오르자, 남캣은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몸을 뒤집더니, 뒷발을 이용해 부엉이를 걷어 차버렸다.
“크윽!”
“별 것도 아니네.”
부엉이는 남캣의 뒷발차기에 얻어맞으며 바닥을 나뒹굴었고, 남캣은 가소롭다는 듯이 부엉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서로를 다치게 하지 말라는 내 말을 잊지 않았기에, 부엉이는 다시금 날아올라 남캣을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한 번씩 공격을 주고 받으며 치고받고 싸운 두 녀석의 싸움은 삼 분 가량이 흘렀을 때 결판났다.
“앞으로 깝치지 마라?”
“큭……. 분하도다. 내 기필코, 이 설욕을 백 배 천 배 갚으리라!”
“흥,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해보라고.”
바닥에 널부러진 부엉이를 짓밟고 있던 남캣은, 부엉이에게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이 도도하게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남캣과 나머지 7마리의 동물들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7마리 동물들이 순식간에 남캣에게 얻어맞아 널부러졌던 것이, 장난 같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루야. 너 보다 작은 녀석을 무서워 한다고 한 거, 미안해.’
생태계 정상에 군림하는 부엉이를 찍어누른 남캣의 모습은,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 같았다. 마루가 무서워 하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