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5
0024 식객에서 가족으로
“크으……. 원통하도다!”
속으로 마루에게 미안해하던 나는, 날개로 바닥을 치며 원통해하는 부엉이를 보고서 정신을 차렸다.
“야, 괜찮냐?”
“몸은 괜찮소만, 괴물 같다고 하더라도 고양이에게 패배한 내 자존심은 괜찮지 않소…….”
부엉이는 내 물음에, 몸은 괜찮다며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다시금 내려앉았다.
저게 부엉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녀석은 날개로 땅을 딛은 채 좌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엉이의 자존심이 상했든 말든, 별로 다친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부엉이는 천연기념물이다. 남캣 때문에 다쳤다가는 내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가 나름대로 안도하고 있던 사이, 부엉이 녀석이 내게 쪼르르 다가오더니 폭탄을 던졌다.
“내, 이렇게 고양이 놈에게 패배한 채로 돌아갈 수는 없소. 그 괴물 같은 놈에게 설욕을 하기 전 까지는 이곳에 있고 싶소.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살길래, 괴물 같은 실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소이다!”
여기에 아예 눌러살겠다. 라는 내용의 폭탄을 내던진 부엉이는, 그대로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옥상의 한 자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니, 여기서 살 거면 나랑 협상을 하든 뭘 하든 해야지. 무슨 통보를 하고 있어?
하지만 그게 싫은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어차피 먹이도 주기로 했는데, 같이 지내는 것 정도야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아. 문제 될 건 있네.’
천연기념물인 부엉이는, 아무나 마음대로 키우고 싶다고 키울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일단 먼저 씻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씻으면서 가볍게 머리를 굴려보니 방법이 하나 있었다. 아니, 방법을 알고 있을 사람을 하나 알고 있었다.
“보자……. 코끼리 아재 번호가…….”
상쾌하게 씻고나서, 사각 트렁크 하나만 탁 걸친 나는 휴대폰 연락처를 뒤졌다.
그리고, 금세 찾고자 하는 사람의 번호를 찾을 수 있었다.
[고길휘 사육사 아저씨]코끼리…… 아니, 고길휘 사육사 아저씨는 정밀 검증을 할 때 만났던 교미무새. 아니, 코끼리의 담당 사육사였다.
내 번호를 꼭! 받아야 겠다며 애원하던 그 아저씨였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이제는 나름대로 친해진 상태이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망설이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좀 늦긴 했어도, 이 아저씨는 100% 받을 게 분명했다.
“오! 동생, 무슨 일이야!”
뚜르르르- 하는, 기본 컬러링이 몇 번 들리기도 전에 전화가 연결 됐다. 연락을 주고 받을 때 한 번씩 교무새 녀석의 이야기를 통역해준 덕분에 내 전화는 칼 같이 받는 아저씨였다.
“아저씨. 하나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요.”
“내 와이프 쓰리싸이즈 빼고 다 알려줄게. 뭐가 궁금해?”
“와이프도 없는 양반이 무슨 와이프…….”
“얌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저씨는 솔로를 무시하지 말라며 역정을 냈다.
“아무튼, 제가 지금 갑자기 부엉이를 키워야 할 상황에 처했거든요? 근데, 부엉이가 아무나 막 키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천연기념물이라서 안 되는 걸로 아는데……. 이거, 방법 없어요?”
“부엉이? 잠깐만, 사진 좀 찍어서 보내봐.”
“잠시만요……. 보냈어요.”
나는 아저씨의 요구대로 부엉이 녀석의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자길 찍는 것임을 아는지, 녀석은 은근히 렌즈를 응시하며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진짜 부엉이네. 그것도, 유라시안 수리부엉이. 히야, 너 이런 애들은 어디서 데려오는 거야? 나 전방에서 복무할 때도 한 번 밖에 못 본 놈인데, 너는 부산에서 보네.”
“몰라요. 이 놈이 저희 집에 날아왔거든요.”
“너희 집에서 키우던 개나 고양이들은 괜찮냐? 수리부엉이라서 소형견이나 고양이들도 충분히 잡아먹는 녀석인데.”
“아, 그건 괜찮아요. 자세한 건 나중에 제 뮤튜브 참고하시면 될 거예요.”
“캬! 이 와중에도 영업을 하네? 징하다, 징해.”
아저씨는 내 말에 감탄하며 박수까지 쳐댔다. 그래도 알려줄 생각은 없다. 조회수 1이라도 더 빨아야지.
“궁금하니까 뮤튜브 영상 올리면 알려주고, 일단 그 녀석을 네가 키울 수 있게 도와주면 되는 거지?”
“아저씨가 직접 해주시게요? 그럼 저야 좋죠.”
“네 덕분에 교무새……. 아 씨, 너 때문에 교무새라는 말이 입에 붙었잖아. 아무튼, 녀석을 도와준 게 있으니까 나도 갚아야지.”
아저씨는 자기만 믿으라며 큰 소리를 치더니 전화를 끊었다.
역시 사람을 돕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아저씨가 보낸 장문의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먹이로는 피를 빼지 않은 생고기를 주는 게 좋다는 것으로 시작해서 여러 정보들이 담긴 문자였다.
‘어휴, 지 멋대로 눌러앉은 놈이 먹이는 또 까다롭네.’
부엉이에게 주기 위해 또 따로 먹이를 사야 하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예전이라면 고기 가격 때문에 부담이었겠지만, 지금의 내게는 부엉이 하나 먹여 살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앞으로 녀석이 만들어낼 영상들이 있으니, 자기 밥은 자기가 챙기는 꼴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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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이게 얼마만이야.”
“네? 전화 했잖아요?”
“전화하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 같냐? 하여간 요즘 애들은.”
코끼리…… 아니, 고길휘 아저씨는 나를 보며 반갑게 맞이했다. 조금 꼰대처럼 투덜거리긴 했어도.
아무튼, 아저씨가 이렇게 집까지 찾아온 것은, 며칠 전에 부탁했던 그 일이 마무리 지어졌기 때문이다.
바로, 수리부엉이의 사육 허가 관련한 문제 말이다.
“처리는 잘 됐어요?”
“내가 누구냐. 지금은 폐업했다지만 우리 동물원의 사육사중에 짬킹이란 말이지. 이딴 건 일도 아니란 말씀.”
아저씨는 내 말에 씩- 웃더니, 들고 온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내어 팔랑팔랑 흔들어보였다.
“오오! 역시 코끼리 아저씨!”
“억, 얌마! 너까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진짜 이름 바꿔야 하나?”
길휘 아저씨는 코끼리라 불리는 것을 그닥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고길휘라는 이름을 빠르게 읽다보면 코끼리라는 이유로, 어느 동물원에서 근무하든 코끼리 담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혐오하는 수준은 아니었기에, 아저씨는 입술을 비죽이며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내부에는 A4 사이즈의 서류들이 몇 장 있었는데, 대부분이 수리부엉이의 사육에 관한 서류였다.
“역시 네 초능력 덕분인가, 아주 쉽게 허가해주더라? 역시 남자는 능력인가…….”
나도 초능력 갖고 싶다- 라고 중얼거린 아저씨는 곧바로 마당에서 아저씨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는 동물들에게로 다가갔다.
사람만 보면 좋아 죽는 짜몽이를 시작으로, 주로 개들이 아저씨에게 몰려들었다.
고양이들은 대부분 도도한 모습을 보이나, 사람을 좋아하는 짜몽이는 다른 개들과 어울려 아저씨의 곁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와, 씨……. 수환아. 너네 동물 카페 영업한다고 그랬지? 나 맨날 와도 되냐?”
아저씨는 동물들에게 둘러싸인 것이 그리도 기쁜지, 해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객이면 얼마든지 환영이죠.”
“에라이.”
아저씨는 어이 없다는 듯한 모습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크게 신경쓰고 있던 것은 아닌지, 다시금 동물들을 데리고 놀기 시작했다.
내가 가르친 애교 덕분인지, 아저씨는 즐겁게 웃음을 지으며 동물들과 놀아주었다.
“이런 애들 있으면 진짜 안 올 수가 없겠다, 야.”
“제가 괜히 동물 카페를 하겠다고 한 게 아니죠.”
나는 마루를 불러들여,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녀석은 그게 그리 좋은지, 꼬리를 붕붕 흔들며 온 몸을 부딪혀 왔다.
그리고, 그렇게 마루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야행성답게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즈음 깨어난 부엉이 녀석이 다가왔다.
부엉이 특유의 무소음 비행이라고 해야할지, 날갯짓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날아온 녀석은 내 주변 바닥에 안착했다.
한 번 어깨에 앉혀보려 했다가, 어깨에 구멍이 뚫릴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이후로는 어깨 위에 올라타지 못하게 한 상태였다.
“캬……. 진짜 수리부엉이네.”
이 녀석을 사진이 아니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아저씨는 무척 호기심이 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만져도 돼? 쪼거나 할퀴려나?”
“괜찮아요. 밥을 줄테니까 동물들이나 사람을 공격하지 말라고 해뒀으니까.”
“그래?”
아저씨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곧바로 부엉이를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몸을 쓸 일이 많은 사육사라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였기에, 약간 묵직한 느낌이 드는 부엉이도 아주 가볍게 들어올렸다.
“보자, 깃털은 깨끗하네. 부리도 단단하고 발톱도……. 와, 날카로운 거 봐라. 옷 찢기겠다.”
사육사인지, 수의사인지……. 아저씨는 부엉이의 여기저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무, 무슨 짓이오! 으헉! 거길 왜 들추는 거요! 부엉이 살려!”
부엉이가 질색을 했지만, 부엉이 녀석의 상태를 체크해주고 있는 것임을 아는 나는 아저씨를 제지하지 않았다.
“흑흑, 더럽혀졌소…….”
아저씨의 손에서 탈출한 부엉이 녀석은, 남캣에게 패배했을 때 처럼 바닥에 날개를 딛고서 좌절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아저씨는 상태가 매우 괜찮다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앞으로 저 녀석 잘 관리해. 그리고, 먹이를 준다고 해도 너무 고기만 주지는 말고. 간간히 살아 있는 것도 사냥하게 해서 본능을 완전히 잃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할 거야.”
그렇게 내게 여러 도움을 준 아저씨는 동물들과 가볍게 작별 인사를 하고서는 그대로 떠나갔다. 남의 신혼집에 저녁까지 얻어 먹을 정도로 철면피는 아니라나?
아무튼, 아저씨의 도움 덕분에 천연기념물인 부엉이 녀석도 우리집에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같이 살 거니까, 잘 부탁할게. 사고치지 말고.”
“걱정 마시오. 내, 그대와 함께 살면서 그대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터이니. 내 목적은 오로지 하나요. 그 괴물 같은 놈을 이기는 것이지.”
녀석은 자기만 믿으라며 날개로 제 가슴을 퉁퉁 쳤다. 초능력 덕분인지, 동물들의 행동이 마치 인간들의 행동처럼 보였기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녀석의 머리를 간질였다.
“그래. 잘 부탁한다. 유부야.”
“……유부? 뭔가 구수- 할 것 같은 그건 뭐요?”
“뭐긴. 네 이름이지.”
“유부라……. 뭐, 좋소. 그 괴물 같은 녀석에게도 이름이라는 것이 있던데, 내게도 그러한 것이 생겼으니 녀석을 한 발자국 더 따라잡은 것 아니겠소.”
유부라는 이름이 나름 마음에 들긴 하는지, 녀석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날아올랐다.
보나마나, 집 어딘가에서 한가롭고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을 남캣을 찾아가는 거겠지. 자기도 이름을 받았으니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갔다고 한 걸로 봐서는 또 맞붙지 않을까 싶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사촌인데도 자매가 그렇게 닮았지? 유라시안 수리부엉이라고 유부라니……. 영지가 누나를 닮은 건가, 누나가 영지를 닮은 건가…….’
부엉이에게 유부라는 이름이 지어진 이유를 떠올린 나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곧 이어 고양이와 부엉이가 격돌하는 소리가 울려퍼졌으나, 방음이 잘 된 침실에서는 그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