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90
0289 아아아아악!
“수환아.”
“엉.”
점심을 먹고, 거실에 앉아 소은이와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으니 누나가 나를 불렀다.
분홍색 아이스크림 수저를 입에 물고 왜 부르냐는 듯이 바라보니, 누나가 우물쭈물 말을 망설였다.
“왜 그래?”
“하나만 부탁해도 돼?”
“무슨 부탁이길래 그렇게 망설여?”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렇게 망설이나 싶었다. 들어주기 힘든 부탁인가- 싶었지만, 이어지는 누나의 말은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저녁에 해물찜 먹으러 가면 안 돼?”
“왜 안 되겠어?”
“너 해삼 싫어하잖아.”
“해물찜에 해삼만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니, 누나가 살짝 안도한 듯한 모습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울산까지 가서 먹어야 해……. 내 친구가 가게를 열었는데, 울산이라서…….”
“그래서 망설였구만?”
“응. 운전하면 피곤하잖아.”
저녁을 먹기 위해서 울산까지 왕복을 해야 하는 것 때문에 망설였던 것 같았다. 울산까지 왕복하는데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저녁 시간이라면 퇴근 시간에 겹쳐서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었다. 직접 운전하지 않는 누나가 망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대답했다. 십수 억을 호가하는 차량답게, 아주 쾌적한 운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막히는 도로에서도 깜빡이만 잘 사용하면 끼어들기가 참 편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안도하는 듯한 누나의 모습에, 아이스크림을 열심히 먹고 있는 소은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소은아, 소은이는 어때? 저녁에 해물찜 먹으러 갈까?”
“웅, 조아! 나 새우 많이 먹을 거야!”
“그래. 그럼 저녁에 해물찜 먹으러 가자.”
곧바로 아이스크림에 분홍색 스푼을 푹! 꽂는 소은이의 볼을 살짝 콕 찔렀다.
“근데, ?遲甄?못 데려가는 거 알지?”
“?!”
내 말에 ?遲? 금언 상태인 소은이의 스피커 역할을 하던 앵무새가 화들짝 놀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반 식당에 새를 데려가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소은이는 괜찮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나 이제 말할 수 이써!”
다름이 아니라, 소은이의 목 상태가 완전히 좋아졌기 때문이다. ?遲結“?스피커 역할을 맡기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목이 좋아졌음에도 일부러 ?遲見?데리고 다녔던 것이었다.
꿀벌들이 은수목에서 채취한 수액을 이용해 만든 꿀로폴리스의 효과가 좋았던 건지, 아니면 소은이의 회복력이 좋았던 건지는 몰라도 며칠 만에 목이 깔끔하게 나은 상태였다.
“咫─?”
“?遲甄?나중에 같이 노는 거야.”
“??”
?遲甄?소은이가 부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니, 언제 놀랐냐는 듯이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동안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곧장 울산으로 향했다. 누나의 친구가 개업했다는 해물찜 가게를 향해서 말이다.
퇴근 시간이 겹치기 직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정아!”
“꺅, 하은아!”
가게에 도착하니, 누나가 친구와 포옹을 하고 방방 뛰며 수다를 떨었다. 어떻게 지냈니, 온다고 말을 하지 등등. 온갖 이야기들이 나왔다.
소은이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이 누구에게서 온 것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밖에서 이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자.”
가게 입구에서 약 5분 정도 수다를 떨던 누나와 누나의 친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소은이는 엄마를 참 많이 닮았어.”
“웅? 왜에?”
“그런 게 있어.”
“뭔데에! 알려줘!”
“엄마랑 똑같이 생겼잖아.”
“웅, 맞아!”
소은이도 자기가 엄마와 똑 닮은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은이가 정말 누나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따로 떨어진 룸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룸을 차지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난 이후,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다시금 차에 올라탔다. 식사 외에도 누나가 친구와 수다를 떤다고 3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렸다 보니, 주변은 이미 새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늦었네, 얼른 가자. 은수도 많이 졸린가 보네.”
카시트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은수의 모습에 나는 빠르게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린 상태의 도로를 빠르게 달리며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삐비비비비비비빅-!
심상치 않은 경고음과 동시에, 차가 갑자기 멈추었다. 뿌드드득- 하고 브레이크가 망가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끼기기긱- 하고 타이어가 지면을 강하게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당연히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쏠리며, 강한 급제동의 여파를 온몸으로 겪게 되었다.
“꺄아악!”
옆에서 들려오는 누나의 비명소리에 더불어.
“으하아아아앙!”
“아아아아앙!”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듯한 두 아이의 울음이 들려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순간 파악이 되지 않았으나, 금세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고라니’의 모습이 내 눈에 똑똑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씨……!”
멀뚱멀뚱, 자동차 전조등과 비상등 불빛에 반짝이는 고라니 놈의 얼빠진 얼굴이 보였다. 순간 욕이 나올 뻔했으나, 아이들이 있는 관계로 차마 내뱉진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여전히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는 고라니 녀석에게 다가가, 냅다 녀석의 머리통에 꿀밤을 날렸다.
“구아아아아아악!”
“임마! 차 앞으로 뛰어들면 어떡해!”
“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끄러워!”
괴성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토해내는 녀석에게 꿀밤을 한 번 더 날려준 다음, 차에 타고 있던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우웅…….”
“흐극!”
그래도 조금 컸다는 건지 소은이는 금세 울음을 멈추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고, 은수는 엄마의 품에 안겨서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어휴…….”
아이들이 다친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차량의 안전 기능 덕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여전히 멀뚱멀뚱 서있는 고라니 녀석이 괘씸하게 느껴졌다.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가니, 녀석이 다시금 구아아악- 하고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시끄러워!”
다시 한번 꿀밤을 날리니, 그제야 조용해지는 녀석이었다.
나는 조용해진 고라니 녀석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왜 차 앞으로 뛰어든 거야?”
“피할 수 없다면…….”
“피할 수 없다면?”
“최후의 한방이라도 치고 죽는 걸로!”
“허이구.”
마치 동귀어진을 노렸다는 듯한 고라니의 말에 황당함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녀석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고라니에게 자동차는 커다랗고 빠르게 달리는, 자신보다 더 강한 ‘포식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포식자가 강한 빛을 쏘며 다가오니, 초식동물답게 겁이 많은 고라니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몸이 굳게 된 고라니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되어 있었다.
하나는 회피였고, 다른 하나는 조금 전 고라니 녀석이 말한 것처럼 최후의 저항을 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 두 방법 모두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회피하는 것은 본능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가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당장 앞에서 차가 달려오는데, 그 차를 향해 돌진하는 꼴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습성 탓에 사람들이 고라니 유도탄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이자 조금 전의 고라니가 보여주었던 최후의 저항도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사실상 회피하는 것과 동일하게, 차량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포식자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온다면 도망치는 것은 오히려 등을 보이는 것이고, 그것이 더 위험해지는 상황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강한 저항을 하며 자신을 사냥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대상이 차량이라서 문제였지.
아무튼, 그러한 본능 때문에 사람들이 고라니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휴.”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조금 전 꿀밤을 날렸던 곳을 슥슥 문질러주었다. 고라니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으니 말이다. 서식지의 파괴로 점점 인간들과 영역이 겹치기 시작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고라니 녀석의 머리통을 콰악! 붙잡았다.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 했다.
“자, 앞으로 똑똑히 기억해둬. 갑자기 저런 게 다가오면 달려들지 마. 뒤로 피하거나,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럼 저게 알아서 피해 갈 거니까. 알았어?”
“으아아악.”
“……대답한 거 맞냐.”
고라니 녀석에게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녀석은 마치 초능력이 안 통하는 것처럼 비명 같은 소리만 내고 있었다.
의심쩍은 눈빛으로 녀석을 노려 보니, 그제야 녀석의 입이 열렸다.
“그러다가 잡아먹히면 어떡하냐아아아아악?”
“안 잡아먹는다고. 저렇게 생긴 것들은, 그냥 지나갈 뿐이야. 너희가 노리고 있다가 달려드는 게 아니라면, 저 자동차라고 하는 건 너희를 그냥 피해서 갈 거야.”
“진짜아아아아악?”
“그래. 지금도 그렇잖아. 네가 갑자기 튀어나왔어도, 앞에서 멈췄다고. 널 공격하지 않고.”
“구아아악.”
내 말에 고라니 녀석이 신기하다는 듯이, 내 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시금 내게로 시선을 돌려,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내 친구들은 다 잡아먹혔다아아아아악.”
“그, 그건…….”
녀석의 말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잡아먹혔다고 말하는 것은 곧, 로드킬 당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녀석의 콧잔등을 가볍게 톡,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
“걔들은 너처럼, 자동차가 자기들을 잡아먹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래. 도망치려다가 오히려 자동차에 부딪혀서 안타깝게도 크게 다치거나 죽게 됐던 거지. 살짝 뒤로 피하거나,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피해 갈 거야.”
고라니 녀석은 알겠다는 듯이 아악- 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아니, 진짜 들어도 들어도 적응 안 되는 소리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에게 한 가지를 더 당부했다.
“저런 자동차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네 자식들이나 친구들한테 꼭 알려주도록 해.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한테도.”
“알겠다아아아악!”
“그럼 이제 가봐. 이렇게 생긴 길에도 웬만하면 나오지 말고, 꼭 나와야 한다면 자동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잘 보고 움직여. 차가 있으면 건너지 말고. 자동차는 너희를 일부러 쫓아가지 않으니까.”
“이해했다아아아아악!”
녀석은 이해했다며 꽥꽥 소리를 내지르고서 호다닥 떠나갔다.
“어휴…….”
그냥 평범한 야생동물 한 마리를 상대했을 뿐인데, 귀가 아픈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고라니 녀석을 다시 되돌려 보낸 나는 다시금 차에 올라탔다.
어느새 누나의 품에서 진정하고, 색색거리며 잠에 빠진 은수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은수는 많이 놀랐었지?”
“좀 놀라긴 했었나 봐. 그래도 네가 고라니랑 이야기하는 거 보고 있다가 금세 잠들었어.”
“다행이네.”
입을 살짝 벌리고 자는 은수의 빵빵한 볼을 살짝 쓸어주고,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 있는 소은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압빠, 쟤가 우리 붕붕이 앞으로 들어와서 멈춘 거야?”
“응. 갑자기 튀어나와서, 똑똑한 붕붕이가 알아서 멈춰준 거야. 깜짝 놀랐지?”
“웅! 엄청 놀랐어!”
놀랐음을 어필하듯, 소은이는 두 눈을 크게 치켜뜨며 외쳤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라니라는 동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으아악- 하고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동차를 천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뛰어들었다는 것까지 설명해주었다.
“그러면 위험한데!”
“그렇지. 그래서 아빠가 다시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려줬어.”
“와! 압빠 짱이야!”
소은이의 최대 칭찬이자 감탄인 쌍따봉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에 괜히 어깨가 으쓱여졌다. 갑작스러운 급정거에 나도 놀랐었는데, 그것이 단숨에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럼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나는 다시금 카시트에 자리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차를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고라니의 습격에 당황하긴 했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