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89
0288 눈치 만렙
소은이가 금언, 말을 하지 않게 되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소은이가 태블릿 PC 하나를 계속 들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의사소통을 위한 물건이었다.
[엄마 나 배고파!]태블릿을 투다다닥 두드려서 글자를 적어낸 소은이는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식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은이는 그것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타이핑을 하는 시간이면 말을 몇 마디는 더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 있을 때는 들고 한다고 한 손으로 타이핑을 하니 느려져, 더더욱 답답해하고 있었다.
가슴을 콩콩 두드리면서 답답함을 토로할 정도로 말이다. 솔직히, 그 모습이 귀여워서 계속 말을 시키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소은이는 아주 착실히 묵언수행을 이어갔다. 수다 떠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답게, 말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절대 사양이라는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다 나았다고 알려주기 전까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생각이 분명했다.
“밥 먹었으니까, 약 먹자.”
[맛없는데!]“약 먹어야지 빨리 낫지.”
빨리 낫는다는 소리 하나면, 소은이는 쓰디쓴 약도 아주 거침없이 삼켰다.
약을 삼키고서는 소파에 드러누워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말이다. 팡팡 소리가 나도록 소파를 두드린 소은이는 혀를 죽- 내밀고 맛없음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소은이에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맛없는 것 하나가 더 기다리고 있었다.
“꿀로폴리스 먹자.”
[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잉!]“꿀벌들이 소은이를 위해서 만든 건데? 얼른 나아서 같이 놀아달라고.”
[그래도 맛없는데!]“이번에는 조금 더 맛있게 했다고 하니까, 먹어 보자.”
꿀벌들은 소은이가 처음으로 꿀로폴리스를 먹고, 달달하지만 맛없다고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곧바로 소은이를 위한 특제 꿀로폴리스를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맛을 개선해서 말이다.
알고 보니 이 녀석들이 소은이를 여왕 취급하는 것처럼, 여왕벌이 될 유충에게 먹이는 로열젤리를 이용해서 꿀로폴리스를 만든 것이었다.
로열젤리는 식물에서 나는 꿀이 아니라, 꿀벌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마치 젖소가 우유를 만들듯이 꿀벌이 유충을 위한 젖을 만들어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평범한 꿀이 아니다 보니 꿀과는 맛이 많이 달랐다. 로열젤리는 시큼하기도 하고, 매콤한 맛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 그 맛을 역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로열젤리가 섞인 꿀로폴리스다 보니, 소은이가 달달하지만 맛없다고 표현한 것이었다. 꿀이 섞이지 않은 건 아닌데, 로열젤리도 많이 섞여 있었으니 소은이 입맛에 맞을 수가 없었다.
꿀벌들은 소은이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로열젤리를 과감하게 배제하고, 다른 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달한 꿀을 듬뿍 담아 꿀로폴리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가 살짝 맛을 보았을 때도 무척 달달하고 맛이 좋았다.
물론, 그냥 꿀만 먹는 거에 비하면 덜하긴 하지만, 맛이 없다는 평이 나올 수가 없을 정도는 되었다.
“자, 한번 먹어 봐.”
꿀로폴리스를 듬뿍 떠서 내미니, 소은이가 미심쩍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입을 열었다. 일단 맛은 둘째 치고, 한 시라도 빨리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맛있어!]그리고, 이번에는 소은이가 꿀벌들이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맛있다며 엉덩이를 덩싱덩실 흔들며, 해맑은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그럼 이거 만들어 준 꿀벌들한테도 인사해 주자.”
소은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니, 벌써 몇 마리 꿀벌들이 기대하는 듯한 시선으로 소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은이는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보니,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온몸으로 맛있었음을 표현해 주었다. 해맑은 미소와, 덩실대는 엉덩이, 두 손의 엄지를 척- 내미는 쌍따봉으로 말이다.
‘여왕, 만족! 기쁨! 축제의 날!’
꿀벌들은 그런 소은이의 모습에 만족하며 소은이처럼 몸을 흔들어댔다. 배 부분이 움찔움찔 들썩이고, 더듬이가 연신 까딱이고 있었다.
이후, 그 녀석에게서 전파된 행복이 다른 꿀벌들에게도 감염되었다. 수천 마리를 넘어 수만 마리 이상의 꿀벌들이 기쁘다는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허공을 수놓는 벌들의 모습에 담벼락 너머에서 신기하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기쁜 건지, 대다수의 꿀벌들이 집 밖으로 나와 하늘 높이 날아오를 정도였다.
수십만 마리는 되어 보이는 벌들이 동물원 전체로 파도치듯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시금 하나둘씩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을 찾아서 떠났기 때문이다. 유충을 돌보는 벌들은 유충을 돌보러, 집을 수리하는 벌들은 집을 수리하러, 꽃가루를 모아오는 벌들은 꽃가루를 모으기 위해 움직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앞에서 콩콩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벌들을 바라본다고, 소은이가 가지고 있던 태블릿 PC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 소은이가 자기 가슴을 콩콩 두드리는 소리였다.
“아빠 불렀어? 미안해.”
답답함을 느끼던 소은이가 입술을 꾹 다물고서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어디서 놀 건데?”
대화가 조금 귀찮긴 했다. 한 마디를 하고 나면, 기존에 썼던 내용을 지운 다음 새롭게 말할 것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대화하는 것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소은이가 열심히 태블릿을 두드린 다음 보여주었다.
[동물원에서 놀 거야!]“그래, 다녀와. 대신 너무 많이 놀면 안 된다? 많이 놀아도 목에 안 좋으니까 일찍 와.”
소은이는 이번에는 태블릿 대신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긍정을 표현했다. ‘응’이라고 한 글자 적는 것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게 빨랐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동물원에서 동물들과 놀기 위해 뛰어나갔던 소은이가 금세 돌아왔다.
소은이의 손짓 발짓에 표정을 보며 소은이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의지를 느끼는 몇몇 동물들과 다르게, 대부분의 동물들은 말을 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놀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동물들이 알아 먹지 못하니 답답한 것이었다. 게다가, 동물들에겐 태블릿 PC도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한국어를 알아듣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글로 써진 글자 따위, 동물들이 알 리가 없었다.
답답함에 집으로 돌아온 소은이는 가슴을 콩콩 두드리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태블릿 PC를 이용해서.
[말이 안 통하니까 놀 수가 없어!]“그랬어?”
소은이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답답했음을 토로했다.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소은이는 소파로 다이빙하듯 점프해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곁에 있던 리모컨들 주워들고 TV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으!”
그런데, TV를 보던 소은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다급하게 뛰어나가는 모습에 소은이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앵무관?”
열심히 뛰는 소은이를 따라가니, 소은이의 목적지를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앵무새들의 보금자리이자, 사시사철 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들려오는 앵무관이었다.
그 앵무관으로 들어간 소은이는 타닷! 하고 발소리를 내며 입구에 멈춰 섰다.
입구에 멈춰 선 소은이는 허리춤에 손을 척- 얹더니, 그대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주변 일대를 스캔하듯 한 바퀴 둘러본 소은이는 곧바로 관람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안녕! 안녕! 안녕!”
소은이를 보며 기쁘다는 듯이 앵무새들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인 소은이는 손을 휘휘 흔들어주며 인사할 뿐이었다.
“나 알 이따! 바라!”
자신이 낳고 포란하고 있는 알을 자랑하듯 보여주는 앵무새를 지나.
“Yo, 내 이름은 앵무앵. 거꾸로 해도 앵무앵!”
랩……인지 뭔지 모를 것을 하는 앵무새도 지나고.
“옛날 옛날에, 앵길동이라는 의적이 살았어요!”
새끼 앵무새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앵무새까지 지나쳤다.
그렇게 한동안 앵무새들을 하나씩 하나씩 바라보며 지나가던 소은이는 앵무관을 절반 정도 돌았을 때 우뚝- 멈춰 섰다.
그런 소은이의 앞에는 뉴기니아 앵무새 한 마리가 횃대에 앉아 있었다. 초록색 빛깔이 꽤나 아름답고, 말을 잘 하기로 유명한 앵무새였다.
그리고, 소은이와 뉴기니아 앵무새가 시선을 교환하더니 반응을 보였다.
“???”
앵무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소은이는 그 앞에서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손을 허리춤에 얹어서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마치 둘이 하나가 된 것처럼 웃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소은이와 웃음을 터트리던 앵무새 녀석은 포로록- 날아올라, 소은이의 손 위에 안착했다.
“소은아, 걔는 왜?”
나는 갑자기 앵무새를 들고 있는 소은이를 바라보며 의아함을 가득 담아 물었다. 갑자기 앵무관에 오더니, 앵무새를 들고 있는 이유가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소은이의 대답이 무척 신기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은이의 대답은 아니었다.
“??? 얘가 나 대신 말할 거야!”
소은이의 손 위에 앉아 있는 앵무새 녀석이 말을 한 것이었다.
어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라, 신기하기 그지없는 그 모습에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한 거야?
나는 잠시 동안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입술만 달싹였다. 하지만 결국 나오는 질문은 하나였다.
“어떻게 한 거야?”
“??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얘가 다 눈치채!”
소은이와 앵무새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진짜 어떻게 한 거야?
나는 소은이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소은이가……. 아니, 앵무새가 설명해 주는 걸 듣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씩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얘, 그냥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 아냐?’
분명 텔레파시 같은 게 아니라면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물이 초능력을 보유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연구된 것이 많지 않았기에,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게다가 텔레파시라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
‘아니면 눈치 보는 쪽 초능력을 최상급 수준으로 가진 건가? 그냥 눈빛만 봐도 하려는 말을 다 알아듣는 수준의…….’
텔레파시가 아니라면 그런 것 밖에 답이 없어 보였다. 앵무새 녀석도 소은이가 말을 할 때면 눈을 한번씩 바라보는 걸 보면, 진짜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어리둥절하든 말든, 소은이는 대화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졌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무척 해맑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압빠! 나 놀다 올게!”
조금 전, 대화 수단의 부재로 놀지 못했던 소은이는 다시금 동물들과 놀기 위해 뛰어나갔다.
그 모습에 나는 곧장 소은이를 따라갔고, 앵무새를 훌륭한 대화 수단으로 삼아 동물들과 뛰노는 소은이를 바라볼 수 있었다.
“??? 뿌우뿌우 물대포!”
“……진짜 해?”
“? 내 말은 곧 공주님의 말이야!”
의심쩍어 하던 동물들도 이내 하나둘씩, 앵무새 녀석이 소은이의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대화를 손쉽게 하기 시작했다.
물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 앵무 대장은 당장 머리를 박……?”
은근슬쩍 제 욕망을 채우려던 녀석이, 소은이의 손에 붙잡히며 찐한 아이컨택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한번을 제외하면, 녀석은 아주 착실히 소은이의 스피커 역할을 해주었다.
덕분에, 소은이는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