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88
0287 수다의 여파
오늘따라 아침부터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는……게 아니라, 소은이의 말이 유난히 많았다.
“압빠압빠압빠압빠압빠압빠!”
“응, 그래. 아빠 여기 있어.”
“후히힝, 오늘 진짜 재미있을 거야!”
다름이 아니라, 오늘은 소은이의 절친한 친구들 몇 명이 찾아와서 하룻밤 자고 가기 때문이었다.
유치원에서 낮잠 시간을 가져 본 적은 있지만, 친구들과 집에서 다 같이 모여서 자는 것은 처음이니 무척 기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낮에는 은수도 데리고 동물원이랑 아쿠아리움 돌아다니다가, 이모네 카페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오, 또오…… 뭐 할까?”
“글쎄?”
어찌나 기대하는 건지, 아침부터 뭘 할지 열심히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소은아, 그건 나중에 하고 밥 먹어야지?”
“웅웅.”
그것도, 좋아하는 밥까지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말이다.
“신소은.”
물론, 눈썹을 까딱이며 혼낼 준비를 하는 누나 앞에선 소용없었지만 말이다.
평소처럼 와구와구라는 의성어가 딱 어울릴 모습으로 아침을 해치운 소은이는 곧바로 자기 방으로 뛰어갔다.
나와 누나에겐 조금 아쉬운 일이지만, 매일매일 우리 부부의 침실에서 다 같이 자는 소은이라도 자기 방은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소은이가 입는 옷부터 시작해서, 공부할 때 쓸 책상이 있었다. 그 외에는 인형이나 장난감 같은 것들이 늘어져 있는 방이었다. 아무래도 친구들이 온다고 하니, 일단 방을 정리할 생각인 것 같았다.
“친구들 온다고 아주 기대하고 있나 보네.”
“그러게. 나 어릴 땐 친구들이 와도 저렇게 까진 안 했는데.”
누나는 자기를 똑 닮았으면서도 이런 부분은 왜 다른 건가- 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 있으니, 소은이가 짐을 한가득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뛰어? 나도 뛸래!”
언제 온 건지 모를 마루 녀석이 곁에 붙어서 같이 뛰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열심히 뛰어다니며 제 방을 정리한 소은이는 뿌듯하다는 듯한 모습으로 제 방을 바라보았다.
“치운……거겠지?”
“아마도?”
우리가 보기엔 딱히 바뀐 게 없어 보였지만, 소은이가 만족하면 됐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히히, 친구들 오면 이거도 할 거야!”
그리고, 자신의 방 상태에 만족한 소은이는 우리에게 장난감 상자를 보여주었다. 여러 보드게임들이 있는 상자였는데, 우리 가족끼리 한 번씩 하던 것들이었다.
소은이는 그것을 친구들과 하게 되는 것이 무척 기대된다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말이 더 많아졌다.
“누가 제일 먼저 올까? 지연이일까? 아니면 유희? 음, 혜영이가 먼저 올 수도 있겠다!”
“소은이는 누가 제일 먼저 왔으면 좋겠어? 지연이?”
“웅! 지연이가 젤루 친하니까!”
소은이는 어서 누구라도 한 명 왔으면 좋겠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떤 동물과 뭘 하면서 놀고, 어떤 걸 간식으로 먹을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우리 딸이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네……?”
“그러게…….”
나와 누나는 정말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소은이의 모습에 조금 피곤해졌다. 처음 30분 정도는 들어줄 만 했지만, 그게 한 시간이 되고 두 시간이 되어 가니 우리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 재잘거림이 끝을 맞이했다. 다름이 아니라, 소은이가 무척 기다리던 친구의 등장 덕분이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활기차고 막 뛰어다니는 느낌인 소은이와 다르게, 소은이의 절친인 지연이는 무척 얌전하고 차분한 아이였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나타난 지연이는 내게 꾸벅- 숙이며 인사를 했다.
물론, 곧장 소은이에게 붙잡혀서 방방 뛰게 됐지만. 그래도 같이 뛰는 걸 보면 싫은 건 아닌듯했다.
“아이고, 소은이 아버님.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이가 너무 떼를 쓴 건 아닌지…….”
“아뇨아뇨, 괜찮습니다. 소은이도 친구랑 하룻밤 자면서 노는 게 기대된다고 아침부터 방방 뛰었거든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지연이는 걱정 마시고, 편하게 다녀오세요. 모처럼 오셨으니, 동물원 구경이라도 하고 가시는 건 어떠세요?”
모처럼 왔으니 둘이서 오붓하게 데이트라도 하고 가라며 자유이용권을 쥐여주었다. 아이와 함께 동물원을 구경하는 것과는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지연이의 부모님은 정말 고맙다며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그리고, 지연이와 손을 잡고 있던 소은이는 우리에게 했던 수다를 지연이와 하기 시작했다.
서로 할 이야기가 어찌나 많았던 건지 재잘재잘, 수다가 끊임없었다. 나름대로 한 수다한다고 하는 누나도 고개를 내저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소은이의 수다력이 100% 발휘된 것이 아니었다.
소은이의 수다가 100%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두 명의 친구들이 더 도착했을 때였다.
네 명의 초1 여학생들이 손을 잡고 방방 뛰며 빙글빙글 도는 것은 무척 귀여웠는데, 그 아이들이 하는 수다는 조금 귀엽지 않았다.
학교에서 일, 친구들과 있었던 일, 집에서 있었던 일, 길 가다 보았던 것, 분식집이 어땠고, 장난감이 어땠고, 인형이 어땠고, 비가 와서 뭐가 안 좋았고. 정말 온갖 이야기들이 다 나오고 있었다.
“어떻게 인형 눈깔 하나로 이십 분을 떠들 수 있는 걸까?”
“그러게…….”
한껏 떠들다가 이제는 동물원 투어를 하겠다며 뛰어나간 아이들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다.
“퓨우.”
“은수도 소은이가 말이 많았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리고, 우리는 소은이가 나가는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은수를 보고서 웃음을 터트렸다. 소은이가 제 동생을 자랑할 거라며 은수를 안고서 한참을 떠들었기 때문이다.
“은수 힘들었어?”
“우.”
원래라면 활기차게 아장아장 걸어 다닐 시간이었음에도, 은수는 피곤하다는 듯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은수를 침대에 눕혀 놓고 재우기 시작했다. 토닥토닥, 가슴팍을 가볍게 두드려 주니 은수가 금세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져들었다.
“잘 자네.”
“애들 수다 때문에 피곤하긴 했나 봐.”
“나도 피곤하던데, 은수가 오죽하겠어?”
소은이가 작정하고 하는 수다는 제법 파괴력이 강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체력을 가진 아이들답게, 수다는 끝이 날 줄 몰랐다.
동물원에서도, 아쿠아리움에서도, 자연구역에서도 열심히 수다를 떨어댄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저녁을 먹기 위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소은이는 그런 수다의 중심에서 정말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제 수다는 그만. 밥 다 먹고, 방에 가서 이야기해야지?”
“네에!”
식탁 앞에서까지 열심히 수다를 떨던 아이들은 결국 한 소리를 듣고서야 수다를 멈추었다. 다만, 수다를 떨기 위해 먹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지만 말이다.
“진짜 저렇게 수다 떠는 게 좋을까?”
흡입하듯 저녁을 먹어 치우고, 방으로 호다닥 올라가는 네 명의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그런 수다는 다음 날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늦은 밤까지 열심히 떠들다가 지쳐 잠든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른 아이들을 깨워가며 수다를 떠는 것이었다.
정말 징 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수다를 떠는 아이들은 저녁이 되어서 부모님들이 데리러 올 때까지,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수준으로 수다를 떠는 것이 문제가 없을 리 없었다.
“햐뺘. 묘긔 희샤해!”
“목이 이상하다고?”
거진 36시간 동안, 잠자는 8시간 정도를 빼면 내리 수다를 떨었던 소은이는 결국 목소리가 나가버렸다.
아무리 내 초능력으로 인해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란 아이라고 해도, 그 정도의 수다를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이야 번갈아가면서 수다를 떨었지만, 소은이는 모든 수다의 중심에서 쉬지 않고 떠들었기에 목이 상한 것이었다.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휙휙 나오며, 말을 할 때마다 목이 따끔한 건지 인상도 찌푸리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소은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얼마 만에 오는 거지? 병문안이 아니라, 진료를 받으려고 오는 거 말이야.”
“글쎄? 정말 오랜만인 건 확실해.”
내 초능력 덕분에 잔병치레를 전혀 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아주 가끔, 소은이가 과식을 하거나 모종의 이유로 급체한 경우에나 병원을 찾을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아파서 병원을 찾는 것이 무척 오랜만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병원을 찾은 우리는 곧바로 진료를 받았다.
“어디가 아픈 건가요?”
“아이가 친구들이랑 논다고 수다를 너무 많이 떨어서 그런가,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쇳소리 같은 소리에, 말하면 따끔한 건지 인상도 찌푸리고요.”
“그럼 일단 한 번 보도록 할게요. 아- 해볼까? 소리도 내보자. 아, 우.”
이비인후과의 진료 의자에 앉은 소은이는 의사 선생님이 요구하는 대로 입을 벌리고 아- 우- 소리를 냈다.
소리를 내며 따끔한 데다, 그 상태에서 내시경 카메라가 들어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은이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혔다가 사라졌다.
“전체적으로 건강 상태는 좋습니다만, 성대 쪽이 많은 무리를 했는지 염증이 생겼네요. 성대결절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염증이 있습니다. 이 부분, 붉은 게 보이시죠?”
카메라로 찍은 부분을 보여주며 말하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조금 위험한 주의사항 같은 것들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앞으로 못 해도 사흘 정도, 넉넉하게 일주일 정도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아직 성장기의 아이다 보니, 각별히 관리해 주시는 게 좋아요. 커서도 목소리가 쇳소리같이 나오거나, 심해지는 경우에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힉!”
수다를 그렇게 좋아하던 소은이답게, 최악의 경우에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니 무척 놀란 모습을 보였다.
소은이는 절대 말을 하지 않겠다는 건지, 두 손으로 제 입을 찰싹 가렸다.
상태가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귀여운 그 모습에 피식 웃고 있으니 의사 선생님이 처방전을 내어주었다.
“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빨리 나을 수 있단다?”
빨간색 시럽 한 스푼을 내미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이가 시럽을 날름 받아먹었다.
딱히 맛은 없었는지 베- 하고 혀를 내밀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는 그 모습에 다시금 웃으며, 약을 타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은이가 말을 못 하니까 집이 조용하네?”
“그러게나 말이야.”
집으로 돌아와서 잠시 소파에 앉아 있으니, 집이 세상 조용했다. TV까지 꺼놓은 상태인데, 소은이가 말을 하지 않으니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던 도중,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찾던 누나가 내게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수환아, 프로폴리스가 목에 좋다는데?”
“그래? 잠깐만, 근데 그거 가공해서 먹어야 하지 않던가…….”
나는 곧바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알콜로 성분을 추출해 내고 어떻게 하고, 등등. 제법 과정이 필요한 듯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 과정들을 생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프로폴리스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꿀벌이니, 단단하게 굳기 전에 꿀과 희석하면 될 것 같았다. 실제로 꿀과 프로폴리스를 희석하는 연구도 상당량 진행되어 있었다.
항생, 항염 등등. 천연 성분인데도 효과가 있다고 하는 프로폴리스였으니,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벌집으로 향했다.
벌집 부근을 가볍게 통통 두드리니, 몇 마리 벌들이 기어 나왔다.
“안녕? 너희 여왕 좀 불러줄래? 아니, 소은이 말고. 너희 벌집 안에 있는 여왕벌.”
여왕을 부르라 했더니, 우리 집으로 들어가서 소은이를 부르려는 꿀벌들을 말렸다. 아니, 소은이는 너네 여왕 아니라고.
어쨌거나, 여왕벌을 불러낸 나는 곧바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은이의 목이 좋지 않은데, 프로폴리스라는 것이 목에 무척 좋다고 하니 얻고 싶다는 말이었다.
‘여왕! 위험! 동원령!’
그리고, 여왕벌이 갑자기 동원령을 내렸다.
붕붕붕붕붕붕-!
어마어마한,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수천 마리의 벌들이 날아올랐다.
“어, 어?”
그 모습에 당황하고 있으니, 수천 마리의 벌들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건가- 싶어 재빨리 따라가니, 녀석들이 은수목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그렇게 은수목으로 이동한 녀석들은, 은수목에 조금씩 흐르고 있는 수액을 채취했다.
프로폴리스가 나무 등의 수액을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다 보니, 이 주변 일대에서 가장 좋은 나무라고 할 수 있는 은수목으로 향한 것이었다.
수천 마리의 벌들이 일제히 수액을 채취하니, 금세 은수목의 겉면에 조금씩 흘러나오던 수액들이 사라졌다.
공생을 대표한다고 해도 될 벌 답게, 딱히 상처를 만들어서 수액을 채취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양이 제법 많았다.
“와…….”
제법 많은 양의 수액을 채취해 온 꿀벌들은 곧바로 프로폴리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바로 섭취할 수 있도록 자체적으로 꿀을 섞어서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꿀로폴리스……라고 해야 할 것 같은 것은 곧바로 따로 준비된 통에 꿀벌들이 담아주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한 방울도 되지 않는 양이 옮겨졌지만, 꿀벌들이 쉬지 않고 옮기니 금세 통 하나를 가득 채우게 되었다.
나는 꿀로폴리스를 가지고 소은이에게 돌아갔고, 작은 티스푼으로 듬뿍 떠서 소은이에게 먹여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한 입 먹은 소은이는 팔다리를 파다닥 움직이더니, 종이를 가져와서 무언가 휘갈겼다.
[달달한데 맛없어!]소은이는 느낌표까지 달아서, 맛을 평가했다.
그 모습에 근처에 있는 유리창을 바라보니, 소은이의 반응을 기대하던 몇몇 꿀벌들이 충격을 받아 바닥으로 추락하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