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87
0286 정글구역(2)
“자연구역에서 정확히 어느 위치죠?”
“일단, 사장님께 위치 정보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아, 네.”
잠시 기다리니, 휴대폰의 GPS를 이용한 건지 메신저로 위치가 전송되었다.
소은이를 찾을 때도 이 기능을 쓸 걸-하고 뒤늦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황한 상태였으니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며 해당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위치가 조금 전, 소은이가 넝쿨에 휘감겨 있던 위치와 거의 유사했다.
“으이그.”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뽈록- 부푼 배를 통통 두드리던 소은이의 볼을 콕 찔렀다.
“우웅?”
소은이는 왜 그러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소은이를 질책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은이가 누군가를 골탕 먹일 생각으로 한 일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런 걸로 혼을 내봐야, 무언가를 할 때마다 허락을 받으려 하는 수동적인 아이가 될 뿐이었다. 지금처럼 문제가 생긴다면 부모인 내가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었다.
“아빠는 잠깐 나갔다가 올 테니까, 엄마랑 은수랑 놀고 있어.”
“아라써!”
“아뿌, 빠빠!”
자리에서 일어나니, 소은이와 은수가 손을 붕붕 흔들었다.
“어디 가?”
그리고, 은수가 짜장으로 색칠한 실리콘 턱받이를 주방에 던져놓고 오던 누나가 집을 나서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방금 소은이가 묶여 있던 거기에, 관람객이 묶였다네.”
“……다녀와.”
“응.”
소은이와 청호가 사이좋게 묶여 있던 그 모습을 떠올린 건지, 누나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 누나에게 가볍게 호응해 주고서, 재빨리 달려나갔다. 마침 근처에서 알짱거리던 왕눈이 녀석을 잡아타고 움직였다. 엔초도 있긴 하지만, 녀석은 솔직히 자연구역 같은 곳에서는 조금 느린 편이었다.
“아까 갔던 곳으로 가자.”
“그게 어디?”
“……그래, 저쪽으로 가자.”
여전히 답이 없어 보이는 10초짜리 기억력에 한탄하며 왕눈이를 이끌고 움직였다.
무척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왕눈이에 타고 움직이니, 금세 소은이가 넝쿨에 감겨 있던 장소 주변에 도착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이 힘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더 당겨봐!”
“뭔 놈의 넝쿨이 이렇게 질겨?”
“고덕활. 뭐해? 자르라니까?”
“선배님. 커터칼이 다 깨졌는데요……?”
“아니 뭔…….”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도착하니, 20대 청년 한 명이 소은이와 비슷한 자세로 넝쿨에 엉켜 있었다.
그 주변으로는 우리 직원들과 묶인 사람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심히 넝쿨을 풀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도 보였다.
“엇, 사장님!”
가까이 다가가니, CS 팀의 막내인 고덕활이 나를 발견했다.
왕눈이에게서 가볍게 뛰어내린 나는 곧장 가까이 다가갔다.
“덕활아. 커터칼 말고, 의료팀한테 가서 메스 하나 받아와. 그건 커터칼로 못 잘라.”
“넵!”
호다닥 뛰어가기 시작하는 모습에, 곁에 있던 왕눈이를 타고 가라 외치며 녀석을 보냈다.
“……뛰어갔다 오겠습니다!”
비록, 고덕활의 가까이 다가간 왕눈이 녀석이 뭘 해야 하는지 잊고 그냥 냅다 앞으로만 달려나갔지만.
아무튼, 그렇게 고덕활에게 메스를 가져오라고 지시한 나는 넝쿨에 묶여 있는 손님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받으니, 자신의 모습이 조금 부끄러웠던 건지 손님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관리를 했어야 하는데, 관리하는 게 조금 늦었네요.”
“아, 아뇨……! 괜찮아요! 여기 뭔가 좀 들어오면 안 될 거 같긴 했는데, 산딸기가 맛있게 보여가지고 들어온 건 저니까요.”
요상한 자세로 넝쿨에 묶여 있는 손님은 겨우 손만 움직이는 건지, 손바닥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괜찮다고 어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닐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멀리서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헥, 흐억! 사, 흐억! 사, 장님……쿨럭! 범인은 넝쿨…….”
“……산재라도 해줘?”
쓸데없는 장난을 치며 바닥에 널브러져, 메스를 내미는 고덕활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책임자급 직원들뿐만 아니라, 갓 들어온 말단 신입 직원들과도 자주 어울리며 대화를 하다 보니 이런 장난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메스를 쥐게 된 나는 곧바로 넝쿨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 소은이를 휘감고 있던 넝쿨을 칼과 가위로 자를 때 여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평범한 칼이나 가위로는 힘만 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절대 다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움직이지만 마세요.”
“네, 네, 넵!”
반짝이는 빛마저 날카로운 느낌이 드는 메스의 모습에 손님이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한 듯한 그 모습에 걱정하지 않도록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메스를 슥슥 움직였다.
어찌나 질긴 건지 메스도 잘 들지 않는 느낌이었지만, 커터칼이나 가위 같은 것들과 비교하면 명검이 따로 없었다. 뾰족한 끝부분을 살짝 찔러 넣으며 껍질을 갈라낸 다음, 그어내리면 그나마 잘리고 있었다.
“와, 살겠다…….”
넝쿨 일부를 잘라내며 엉킨 부분을 조금씩 풀어내니, 손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떻게 보면 허물을 탈피하는 뱀처럼, 몸을 휘감은 넝쿨을 벗어내린 손님이 무척 편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곁에 있던 친구들이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와, 어떻게 인간이 넝쿨에 휘감겨서 움직이질 못 할 수가 있지?”
“충격, 인간 실격.”
“나였음 30초 안에 탈출했다. 누가 쪽팔리게 사람을 부르고 있어. 너 때문에 신수 님까지 오셨잖아.”
“아니……. 내가 뭐 묶이고 싶어서 묶였냐?”
한껏 즐겁다는 듯이 놀려대는 세 사람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한 명의 조합은 꽤나 절친한 친구 사이 같았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넝쿨에 묶여 있던 손님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여기, 대단한 건 아니지만……. 저희의 관리 부실로 일어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만약 나중에 몸이 불편하다고 하시면, 언제든지 저희 동물원으로 연락 주세요.”
“정말 괜찮은데…….”
괜찮다는 듯이 손사래치는 손님에게 억지로 보상을 쥐여주었다. 말한 것처럼 대단한 건 아니었다. 여전히 포동이들이 소매 요정으로 활약하며 뿌리고 다니는 굿즈 교환권이었다.
제일 비싼 것도 교환할 수 있는 1등급 교환권부터 간단한 소품 정도를 교환할 수 있는 5등급 교환권까지 다양했는데, 가장 좋은 1등급의 교환권을 인원수에 맞춰서 준 것이었다.
조금 전 놀림당한 것을 복수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었다. 놀림당한 걸 복수하는 것에는 역시 옹졸하고 치사한 방법이 최고였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내가 쥐여준 것을 확인한 손님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친구들과 떠나갔다.
“아이고! 제가 귀한 분을 알아뵙지 못하고 망언을 지껄였사옵니다!”
“선생님! 여기 흙먼지가 있습니다! 제가 털어드리겠습니다!”
“장완아, 아니. 장완 님. 소인이 컬렉션을 모으고 있습니다만, 마지막 하나가 오직 교환권으로만 구매할 수 있다고 합니다.”
금빛의 교환권을 흔들며, 친구들이 하는 아부를 즐기는 손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금세 자연구역의 많은 나무들에 가려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넝쿨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아니, 얘는 도대체 영양제를 얼마나 준 거야.”
넝쿨 주변에는 소은이가 영양제를 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고덕활이 슬쩍 다가왔다.
“사장님. 그런데, 이 넝쿨은 못 보던 거 같은데…… 뭔가요? 혹시 외래 유입종?! 당장 누가 심었는지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잘라낸 넝쿨을 손에 쥔 고덕활은 넝쿨을 보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동물원에 누군가가 몰래 위험한 종의 식물을 심어 놓고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특히, 곳곳에 안전을 위해 설치해둔 CCTV를 돌려서 누가 심었는지 확인하자고 외쳤다.
“……됐어.”
“예? 아니, 그래도 이런 걸 자연구역에 풀어 놓다니, 당장 잡아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됐다고.”
“그렇지만…….”
“내가 심은 거니까, 됐다고.”
“아, 으, 앗.”
고덕활이 눈알을 데구루룩 굴리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가 떠올랐다.
의욕은 앞서지만 뭔가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의욕은 앞서는데, 생각할 건 많다 보니 자연스레 눈치가 떨어졌었다. 딱 지금의 고덕활처럼.
“여기 있는 넝쿨들은 내가 섬에서 가져온 거야.”
“섬……이라면, 그 전설의……!”
“전설은 무슨, 그냥 평범한 섬이지.”
소은이가 영양제를 듬뿍 줘버린 넝쿨들은 내가 진화의 섬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집을 아름답게 장식하듯 뒤덮고 있던 넝쿨들이었는데, 그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어서 가져왔던 것이었다. 비록 당장 집을 꾸미기엔 양도 부족하기에 자연구역에 퍼트려놓은 것이었다. 겸사겸사 은수목에도 적당히 걸쳐놓았고 말이다.
진화의 섬에서 은수가 넝쿨을 워낙 좋아했었기에, 은수목에도 걸쳐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구역에 퍼트려놓고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서 잊고 살았는데, 소은이가 영양제를 아주 듬뿍 뿌리며 은수가 영향을 발휘하니 순식간에 자라난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진화의 섬의 고유종이 되었다고 해도 좋을 넝쿨이, 자연구역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자라던 도중에 소은이와 은수의 합작으로 인해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걸 어떻게 정리하긴 해야겠네. 아니면 이게 완전히 어디 정글처럼 다 뒤덮겠다.”
나는 곧장 넝쿨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놔두었다간, 소은이나 방금 전의 손님처럼 넝쿨에 휘감기는 이들이 속출할 것이 뻔했다.
“으악! 어, 어? 어? 이게 어?”
“……하아.”
넝쿨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허우적대다, 그대로 넝쿨에 몸이 휘감긴 고덕활처럼 말이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이렇게 순식간에 휘감기는 건지.
이해하기 힘든 광경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열심히 넝쿨들을 정리해나갔다.
바닥에 널브러진, 고덕활처럼 걸려 넘어지기 쉬운 넝쿨들은 다 잘라내거나 주변 나무에 휘감는 것으로 처리했다.
머리 위에서 내려와 사람을 놀라게 만들거나, 상체를 휘감을 수 있는 것들은 나무와 나무를 연결하듯 가지들에 걸쳐 놓았다.
조금 힘든 과정이었지만, 의욕이 가득한 고덕활을 알차게 부려먹은 덕에 지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직원들도 불러내어 작업을 한 덕에 나름대로 수월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장님. 이거 완전 정글인데요?”
다만,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는 정글이 따로 없었다.
수많은 나무들은 넝쿨에 휘감겨 있었고, 심지어 몇몇 나무들은 넝쿨로 인해 연결된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어디 강우량이 매우 높은 열대우림에서 넝쿨이 자라난 듯한 모습이었다. 그나마 사람들에게 걸리적거리지 않을 정도로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사람들이 넝쿨에 묶이지만 않으면 됐지.”
자연구역 전체가 넝쿨로 뒤덮이게 된 것은 아니었다. 넝쿨이 차지한 공간은 자연구역에서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일부에 너무 많이 퍼진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근데 무슨 넝쿨이 사람을 그렇게 잘 붙잡는 거예요? 사장님이 특별한 비법으로 키우신 건가요?”
“……몰라.”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종의 한계를 뛰어넘는 진화를 염원하며 초능력을 사용한 진화의 섬에서 가져와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의도적으로 사람을 붙잡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사장님! 제가 감히 제안 하나를 올려도 될까요?”
“제안? 뭐……. 해봐.”
“동물원 담벼락이랑, 자연구역의 철조망을 이걸로 장식하는 게 어떨까요? 가끔 철조망을 넘어서 들어오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콱! 잡아서, 무단 침입을 할 생각도 못 하게 하는 거죠.”
“그럼 넝쿨에 묶인 사람들을 계속 구하러 다녀야 할 건데? 사람도 써야 할 거고.”
“앵무새들을 배치하는 거죠. 어차피 앵무새들도 이쪽으로 자주 오잖아요? 사람이 묶이면 발견해서 알리도록 하면 되죠.”
“오……. 나쁘진 않네. 그럼, 앞으로 넝쿨에 묶이는 손님들 대응은 네가 하는 걸로.”
“엑.”
“CS 팀이 어디서 고객 응대를 빼먹으려고?”
내 생각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고덕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좋은 아이디어와, 담당자까지 얻게 된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니, 식물용 영양제를 아이들의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옮기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거실에서 그 모습을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는 은수의 모습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