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297
0296 너도 쓸모가 있구나?(3)
“짜란다, 짜란다. 고라니 짜란다.”
은수가 파닥거리는 것에 맞춰, 고라니들을 응원해 주었다.
그런 응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응원이라고 할만한 것에, 고라니들이 더더욱 열성적으로 가시박을 해치워나갔다.
“어어, 그건 먹지 마.”
물론, 고라니들이 미선나무 잎까지 먹으려 했기에, 적당히 녀석들을 제지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선나무를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왔는데, 고라니들에게 미선나무가 싹 털리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되니 말이다.
그래도 이파리 몇 개가 고라니 한 마리의 주둥이에 물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퉤에잇! 이건 맛 없다아아아악!”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고라니들의 입맛에는 미선나무 보다는 가시박이 잘 맞았는지 가시박만 열심히 씹어 돌렸다.
덕분에 미선나무 자생지를 덮고 있던 가시박들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여전히 주변 일대에는 가시박 천지라고 해도 될 정도지만, 미선나무를 뒤덮은 가시박들은 대부분 사라졌다고 할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미선나무를 뒤덮고 있던 가시박들이 싹 사라진 모습에, 나를 초청했던 이들이 무척 환한 모습을 보였다.
지역에서 축제까지 여는 곳인 만큼, 망할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기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적당히 감사 인사를 받아 주고선, 여전히 주변의 가시박을 뜯어 먹고 있는 고라니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뭐냐아아아아아아아악!”
“앞으로 이런 게 보이는 대로, 보이는 족족 그냥 다 뜯어 먹어줄 수 있을까?”
“알겠다아아아아악!”
가시박을 보이는 족족 다 뜯어 먹으라고 하니, 고라니들은 어려울 것 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래, 고맙네. 아, 맞아. 저렇게 생긴 나무는 뜯어 먹으면 안 된다? 그리고, 여기 주변에서 사람들이랑 만나게 되어도 괜히 공격하거나 하지는 마. 웬만해서는 사람들도 너희를 공격하진 않을 거니까.”
“알았다아아아아아악!”
고라니들은 내 말에 가시박 이파리를 질겅질겅 씹어대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은수가 녀석들에게 손을 쭈욱- 내뻗었다. 만지고 싶어서 그러나 싶어, 은수를 녀석들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가게 들었다.
“짜카다!”
은수는 고라니의 머리에 자그마한 손을 통통 두드리며 녀석들을 칭찬해 주었다.
지금까지 은수가 유일하게 싫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가시박을 처리해 주는 고라니는, 은수에게만큼은 유해조수가 아니라 착하디착한 동물이었다.
“우리 은수, 고라니 칭찬해준 거야?”
“짜캐!”
빵빵한 볼임에도 보조개가 콕 박히는 웃음을 지어 보인 은수는 고라니를 열심히 칭찬했다.
물론, 한무나 루돌프, 사올라들 역시 칭찬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은수 기준으로는 가시박을 먹어 치우는 동물들은 착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미선나무 자생지를 뒤덮은 가시박을 정리하는 것과, 만에 하나라도 또다시 가시박이 넘쳐나게 된다면 고라니들에게 맡길 수 있도록 정리를 끝마친 나는 도아정에게 다가갔다.
“보신 것처럼 일단 당장, 가시박은 정리가 끝났어요. 뭐, 뿌리가 남아서 다시 올라올 수는 있는데, 그때는 저 고라니들이 정리해 줄 거예요.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진 않을 거니까, 사람들이 먼저 고라니를 공격하지는 못하게 하세요. 가끔 유해조수라고 고라니를 패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주의하셔야 할 거예요.”
다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시골에서는 유해조수인 고라니라고 싸움을 거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유해조수든 뭐든 일단 멸종위기종인 만큼, 건드렸을 때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했다.
“그럼, 이참에 미선나무 고라니 축제 같은 걸로 축제 이름을 바꾸는 방향도 검토해 봐야겠네요!”
내가 다녀간 곳에서 동물들로 관광지가 형성되는 경우가 몇 번 있었기 때문인지, 도아정은 벌써부터 고라니 축제를 열 생각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괜히 갈라파고스에서의 일이 떠오른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양 쓰레기로부터 해양생물들을 구해주고 선물을 받는 체험을 하겠다고 칼을 든 채 길게 줄이 늘어서 있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하실 거라면 고라니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중요할 거예요. 쟤들, 저래봬도 야생동물인지라 기생충 같은 게 문제 되긴 하거든요.”
나 역시, 고라니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들을 만지면 꼭 손을 씻거나 소독 티슈로 닦는 편이었다. 당연히 조금 전 고라니를 칭찬해 준 은수의 손 역시 깨끗하게 닦은 상태였다.
“방역을…….”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아정이 방역이니 뭐니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있다간 고라니를 소독하겠다고 약품을 뿌려댈 것 같아, 재빨리 고라니들을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 너희를 씻길 수도 있는데, 그때는 적당히 협조해 줘. 너희들도 깨끗해지면 좋으니까.”
“뭐가 좋은 거냐아아아악!”
“가끔 이유 없이 아플 때 있지? 그런 게 보통 질병에 걸렸거나, 기생충 같은 거 때문일 확률이 높아. 꾸준히 깨끗하게 씻는다면 그런 일이 잘 생기지 않을 거야.”
“그럼 좋다아아아아악!”
고라니는 아픈 것이 줄어들면 좋다며 소리를 내질렀다.
나는 여전히 방역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듯한 도아정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방역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나 따로 인력을 구해서 고라니들을 씻기는 거로 하세요. 홍보하는 거 같긴 하지만, 저희 동물원 제휴 업체에서 사슴과 동물들한테도 쓸 수 있는 샴푸도 판매하고 있으니까 그걸 쓰시면 되고요.”
“그럼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괜히 고라니의 기생충을 박멸하겠답시고 방역을 하는 일을 미리 방지한 나는, 도아정을 바라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일단 가시박 관련해서는 다 끝났으니, 미리 이야기했던 걸 좀 가져가고 싶은데요.”
“아, 미선나무 네 그루 말씀이시죠? 이쪽에서 원하시는 걸로 선택하시면, 저희가 따로 전문 업체를 통해서 보내드리도록 할게요.”
심어져 있는 나무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업체를 이용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가가 필요할 때는 전문가의 손을 빌리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은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은수야, 여기서 나무 네 그루를 가져갈 거야. 어떤 거로 가져갈까? 은수가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식물에 관해서는 본능적으로 뛰어난 감을 발휘하는 은수였기에, 나는 은수를 데리고 미선나무 자생지를 거닐기 시작했다.
“이고!”
“이걸로 할까?”
“조아!”
미선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으니, 은수가 한 그루를 선택했다. 가지를 꼬옥 붙잡고 놓지 않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은수가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것을 보며, 그 나무에 눈에 띄는 표식을 그려 넣었다. 나중에 업체에서 이 표식을 보고 나무를 파내어, 내게 보내줄 것이었다.
“그럼 다음 나무는 뭐로 할까?”
표식을 하고 나니 은수가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놓았다. 그렇게 미선나무 자생지를 한 바퀴 돌며, 총 네 그루의 미선나무를 고를 수 있었다.
어떤 조건으로 고른 건지는 몰라도, 은수가 고른 미선나무는 하나같이 이파리가 싱싱하고 깨끗하게 보였다.
“표시해둔 네 그루로 보내주세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꼼꼼하게 확인해서 보내도록 할 테니까요!”
나는 일을 다 끝마치고, 은근슬쩍 팬이었다며 사진을 요청하는 도아정과 사진을 찍어주고서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어린 은수를 데리고 외박을 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오늘 안에 집에 가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나무우! 나무!”
“응, 나무는 며칠 있다가 올 거야. 나무가 무거우니까, 아빠가 들 수가 없어서 나중에 갖다 달라고 했어.”
물론, 나무를 놔두고 간다는 것에 칭얼거리는 은수를 달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은수는 지금 당장 나무들과 같이 집에 갈 줄 알았던 것 같았다.
당장 같이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연구역에 옮겨 심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진정한 은수의 볼을 콕- 찔렀다.
“나중에 커서 마트를 가게 되면 장난감 코너가 아니라 신선식품 코너에서 돌아다니는 거 아닐까 몰라.”
왠지는 몰라도, 은수가 마트 신선식품 코너를 가장 좋아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소은이가 마트에 가면 반려동물 용품이 있는 코너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처럼 말이다.
장난감 코너에서 드러눕는 아이들처럼 신선식품 코너에서 당근 묶음을 사달라며 드러눕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다.
“아니면 아예 원예용품 코너에서 드러눕는 건 아니겠지?”
꽃가위나 호미 같은 것들을 사달라고 떼쓰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장난감 코너에서 드러눕는 게 낫겠는데.”
잠시 생각하니, 장난감 코너에 드러눕는 것이 몇 배는 더 나을 것 같았다.
“우웅?”
“아냐, 아냐.”
왜 그러냐는 듯이 큰 눈망울을 깜빡이는 은수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은수 데리고 원예용품 근처는 안 가면 되겠지.
나는 은수를 데리고 마트를 가더라도, 원예용품 코너는 꼭 지나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어느덧 차가 부산에 접어들었을 때, 휴대폰으로 기사 하나를 접할 수 있었다.
[괴산군, 내년부터 미선나무 고라니 축제 열기로 결정!] [대한민국에만 자생한다는 미선나무 축제를 여는 괴산군은 드루이드의 방문을 기념해, 내년부터는 미선나무 고라니 축제를 열기로 했다. 현재 야생동물인 고라니들의 청결을 위해 목욕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아니, 벌써?”
공무원이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을 정도로, 벌써부터 미선나무 축제가 미선나무 고라니 축제로 바뀌었다.
심지어, 미선나무 앞에서 고라니들을 목욕시키고 있는 도아정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기사의 중앙에 떡하니 박혀 있었다.
그 사진에 나온 고라니들은 새하얀 거품에 둘러싸여, 흡사 한 마리의 양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내가 알려주었던 그 샴푸를 구해서 고라니들을 목욕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고라니가 축제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네.”
미선나무와 공동 주인공이긴 해도, 고라니가 주인공인 축제가 열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참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내년에 열릴 축제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는 했다.
“지입!”
하지만 그 생각도 금세 사라졌다. 어느새 차량이 동물원 내부까지 진입해, 은수가 집에 온 것을 알아차리고 방방 뛰었기 때문이다.
“그래, 얼른 집에 들어가서 엄마랑 누나 보러 가자.”
“어엄마! 눈나!”
귀엽게 덩실거리는 은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며칠 정도 흘렀을 때, 은수가 골랐던 미선나무가 동물원에 도착했다.
“나무우!”
자기가 골랐던 미선나무가 도착했다는 것에, 은수가 방방 뛰며 나무를 심는 곳에 가자며 보챘다.
그렇게 미선나무가 자연구역에 심어지는 모습을 바라본 은수는, 나무가 심어진 흙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잘 자라라- 하고 말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