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02
0301 세끼(2)
“일단, 필요하신 건 다 구매하셨다고 하셨으니 섬으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작진의 안내를 받아 항구 구석으로 향하니, 자그마한 배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배 위에는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딱 봐도 촬영팀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그마한 액션캠부터, 큼직한 카메라까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곧장 향하니, 꽤 유명한 PD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번 미팅 이후로는 처음이죠?”
“그렇네요. 잘 지내셨어요?”
“저야 무탈하죠. 뭐……. 저 안쪽에는 무탈하지 못한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요.”
피식 웃음 짓는 피디의 모습에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아니, 어떻게 지내길래 무탈하지 못한 분들이라는 거야?
그런 의문을 가득 담아 바라보니,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은 피디가 섬의 상황을 알려주었다.
“닭도 알을 낳지 않았고, 낚시도 실패하고, 통발은 텅발, 숲에서는 먹을 수 있는 것 찾지도 못하고 힘만 뺐다죠. 결국 하루 종일 과자만 먹다, 저녁에는 양파로 튀김을 만들어 먹고 끝냈네요.”
아하?-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제법 사악하게 보였다.
심지어, 나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나도 고생 좀 하지 않겠냐- 라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들었습니다만, 따로 식재료를 구매하진 않으셨다고요? 동물들 먹이용으로 쓸 소고기를 제외하고요.”
“그랬죠.”
“이미 수환 씨가 그렇게 정하셨으니, 해당 소고기는 사람들 입에 들어갈 수 없는 거 아시죠? 먹을 게 없다고 동물들이 먹을 밥을 노리시면 안 되는 겁니다.”
절대 사람들 입에 소고기가 들어가게 놔두지 않겠다는 듯한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는 섬에 들어가서 아주 풍족하게 지낼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으니, 피디가 내 뒤에 있던 동물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평범하게 일상을 찍는 영상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동물들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피디가 동물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모두 수환 씨의 동물들이죠?”
“네, 그렇……. 넌 누구야.”
피디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려다, 못 보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구왁?”
웬 갈매기 하나가 동물들 사이에서 고개를 꺾고 있는 것이었다.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갈매기를 날려 보낸 나는, 곧바로 동물들을 소개했다. 나를 섭외할 정도면 동물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방송에 내보낼 때 쓸 수도 있으니 소개를 해주는 것이었다.
“여기 부엉이는 유라시안 수리부엉이로, 이름은 유부예요.”
내 말에, 자신이 소개되고 있음을 인지한 유부가 한쪽 날개를 활짝 펼쳐 보였다. 주변 제작진이 오오- 하는 감탄을 들으며, 그 곁에 있던 아라를 소개했다.
“이쪽은 아라. 검독수리이고, 야생 개체였는데 우연히 만나게 돼서 같이 살고 있는 중이에요.”
아라는 제 곁에 있던 유부를 보았던 건지, 유부가 한 것처럼 날개를 펼쳤다.
“오오……. 독수리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그런데 우연히 만나셨다는 건 어떻게 만난 건가요?”
“친구들이랑 간 여행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있는데 만났죠.”
가볍게 아라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하니, 아라가 피르릇- 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당시의 기억이 조금 부끄러운 듯했다. 내 품으로 오려다가, 남캣 녀석에게 한 대 얻어맞고 추락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제작진들은 그저 아라가 내 쓰다듬을 받으며 좋아하는 것으로 밖에 보지 않는 듯했다.
나는 적당히 몇 번 더 쓰다듬어 준 뒤, 다른 녀석들도 소개했다.
“이쪽 골든리트리버는 마루에요. 달리는 걸 엄청 좋아하는 녀……야! 어디가!”
달리는 걸 좋아한다는 소개를 하니, 증명하겠다는 것처럼 냅다 달려나가는 마루였다. 황당해 하고 있으니, 가볍게 뛰고 온 녀석이 헥헥거리며 다시 돌아왔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으며, 마지막 동물을 소개했다.
“얘는 갈라파고스에서 데려온 갈라파고스펭귄인 페엥이에요. 펭귄이긴 한데, 얘는 추위를 좀 타는 편이에요. 겨울에는 적당히 미지근한 물에 있는 걸 제일 좋아하죠.”
페엥은 유부와 아라가 그러했던 것처럼 날개를 들려고 했으나, 실제로 보이는 모습은 날개를 배 옆에서 파닥파닥 흔드는 모습에 가까웠다.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는 제작진들의 반응을 뒤로하고, 마루와 페엥을 배 위로 올려보냈다. 유부와 아라는 자기들이 알아서 퍼덕이며 배의 지붕에 올라간 상태였다.
그렇게 배에 오르니, 다른 짐들을 챙긴 제작진들도 배에 올랐다. 출발하겠다는 신호와 함께, 곧장 배가 움직였다. 미리 출항신고 등을 해둔 상태라 배는 거침없이 나아갔다.
“쥔님! 쥔님! 저거!”
한동안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배의 갑판에 앉아, 바람을 즐기고 있으니 마루가 멍멍 짖으며 나를 불렀다.
왜 그러나 싶어 바라보니, 바다에서 파박파박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이 보였다.
“잡으러 가도 돼요?!”
“되겠냐…….”
“네!”
“안 되거든? 내려가면 어떻게 올라올 건데?”
“힝.”
나는 혹시 몰라서 마루의 몸줄에 있는 고리를 배와 연결했다. 이 녀석, 자기가 물 위를 뛸 수 있으니까 냅다 달리면 되는 건 줄 알고 있었다.
고개를 내저은 나는 시무룩한 마루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피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다른 출연진분들은 제가 온다는 걸 알고 있나요?”
“아뇨, 아직 모르는 상태에요. 그래도 몇몇 후보군이 있어서, 서로 누가 온다 이야기만 하고 있죠.”
“그럼 힌트나 한 번 줄까요? 겸사겸사 선물도 주고요.”
“힌트? 선물?”
피디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곧바로 배의 지붕에서 깃털을 고르던 아라를 불렀다.
“아라야, 저거 한 마리만 좀 잡아다 줄 수 있을까?”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아요.”
내 부탁에 아라가 커다란 날개를 부드럽게 펄럭이더니 아주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고기들이 파닥파닥 뛰어오르고 있는 곳으로 다가간 아라는 순식간에 커다란 물고기 하나를 낚아챘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물고기를 잡아온 녀석은 내 앞에 물고기를 탁 내려놓았다.
“어……?”
아라가 반쯤 패대기치듯 내려놓은 탓에 기절하여 축- 늘어져 있는 숭어를 본 피디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피디를 바라보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저쪽에 있는 저 섬이죠? 촬영하는 곳이.”
“네? 네. 저 섬에서 앞으로 2박 3일 동안 지내시게 될 거예요.”
피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라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예측했다는 듯, 녀석이 다가와 물고기를 잡아챘다.
“저쪽 섬에, 지금처럼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많은 집이 있을 거야. 그 집 지붕에 떨어트려주고 올래?”
아라는 알겠다며 울음소리를 짧게 토해내고서 힘차게 날아올랐다. 날아오른 순간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으나, 힘차게 날갯짓을 몇 번 하니 금세 먼 곳까지 이동했다.
그렇게 아라를 보내고 잠시 기다리니, 아라가 다시금 날개를 펄럭이며 돌아왔다. 갈 때와는 달리, 녀석의 발에는 물고기가 잡혀 있지 않았다.
“고마워. 이거 먹고, 잠깐 쉬고 있어.”
배에 타기 전에 들렀던 마트에서 구매한 소고기를 큼직하게 떼어내, 아라에게 던져주었다. 찹찹 맛있게 뜯어 먹는 아라의 등을 가볍게 쓸어주고, 무전을 주고받는 피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그 힌트와 선물이군요?”
“그렇죠.”
어디선가 날아온 검독수리가 물고기를 주고 갈 확률이 얼마나 될까. 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나를 떠올릴 수도 있었으니 힌트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선물이라는 것은, 하루 종일 과자나 튀김 정도만 먹었다길래 물고기를 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신기하다는 듯, 내가 준 고기를 찹찹 먹고 있는 아라를 향해 카메라들이 집중됐다.
그렇게 아라가 잠시 집중 조명을 받는 사이에도 열심히 움직인 배는 금세 촬영지인 섬에 도착했고, 나는 동물들을 데리고 배에서 내렸다.
“저쪽에 있는 집이 촬영지입니다.”
촬영이 시작되면 큰 개입은 하지 않을 테니, 열심히 해보라는 피디의 말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거 굽는 게 나을까?”
“아익, 굽긴 뭘 구워요? 사람이 몇인데. 매운탕으로 해. 매운탕. 숭어 매운탕이 그렇게 맛있다더라.”
“매운탕? 좋지이! 해준아, 고춧가루 가져와! 아니다, 불부터 피워!”
“예, 선배님!”
집으로 다가가니, 아라를 통해서 준 물고기인 숭어로 매운탕을 할 생각인지 분주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궁이에 불을 때기 위한 불쏘시개인 신문지를 구기는 소리나, 여러 음식 재료들을 손질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TV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는 것에 묘한 기대감을 느끼며 집으로 들어갔다.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들어가니, 널찍한 마당에서 불을 피운다고 난리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어?”
“어? 어?”
그리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며, 처음 보는 이들과의 어색함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덕분에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말을 하지 못한 상태로 잠깐의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나도, 그들도 어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어색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헥헥헥헥! 좋은 냄새!”
“짜몽이! ……가 아니네?”
어디선가 호다닥 튀어나온 웰시코기 한 마리가, 나와 마루 사이를 열심히 뛰어다녔기 때문이다. 마루는 그런 웰시코기의 모습에 집에 있을 짜몽이를 떠올렸으나, 이내 짜몽이가 아님을 눈치챘다.
“여름아 안돼!”
그런데 열심히 뛰어다니던, 여름이라 불린 웰시코기는 안돼- 라는 외침에 우뚝 멈췄다.
“힝.”
그리고, 털레털레 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배우에게로 다가갔다.
그 모습에 피식 웃고 있으니, 조금 어색함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안녕하세요. 드루이드로 더 잘 알려진 신수환입니다. 2박 3일 동안 신세 좀 지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니, 어색하게 서있던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던 일들을 멈추고 내게 다가와,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서로 초면이다 보니 인사 외에는 크게 나눌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 사람은 달랐다. 여름이라 불린 웰시코기의 주인인 바다였다.
“반가워요. 진바다에요.”
나이가 조금 있음에도 여전히 다부진 몸의 주인공이 다가와 손을 슥- 내밀었다. 가볍게 손을 맞잡고 흔들어 주니, 바다 씨가 씩-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 수환 씨가 알려준 꿀팁 덕에 아주 좋은 경험을 했었어요.”
“네? 꿀팁이요?”
“네.”
해맑은 웃음을 지은 바다 씨가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밤늦게 스케줄을 마치고 잠깐 쉬는 와중에 수환 씨의 방송을 봤거든요. 그때 참 좋은 꿀팁을 알려주셨죠. 산책 가자는 꿀팁을요. 덕분에 여름이가 지칠 때까지 산책을 했죠.”
바다 씨의 말에,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게임에서 시청자들 탓에 진 것도 억울한데, 놀림까지 받아서 열받은 김에 내질렀던 범위 공격이 떠오른 것이었다. 방송을 보는 이들에게 반려견을 불러오게 유도하고, 그 상태에서 산책을 갈 때까지 짖어대라고 말했었다.
“어……? 어, 어……? 그, 그게…….”
지금 상황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