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01
0300 세끼(1)
동물 학대 논란이 끝나니, 나는 다시금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몇몇 용감무쌍한 캣맘들이 포기하지 않고 선동을 하려 했으나, 변호사들의 능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동물을 학대한다는 증거가 없이 말로만 떠드는 것은, 나만 건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물원의 법무팀과, 압둘의 법무팀이 힘을 합쳐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유포 등으로 막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압둘은 넘치는 재력으로 국내 유수의 법무법인들을 수족처럼 다루었다. 거대 기업 간의 다툼에서나 움직일 변호사들이 단순히 인터넷에서 댓글 하나 달았다는 것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더 이상 내가 동물들을 학대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못했다.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고스란히 막대한 손실…… 아니, 어쩌면 남은 인생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소파에 드러눕기였다.
뭔가 이렇게 말을 하니, 백수가 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소은아, 아빠 힘들었어.”
“잉, 압빠 힘내야 되는데!”
“근데 아빠가 또 일해야 해. 은수가 좋아하는 화단도 가꿔야 하고, 동물들이 잘 지내는지도 확인해야 되거든.”
“내가 해줄게!”
바로, 내가 매일매일 하던 일들을 소은이가 대신하겠다며 선언했기 때문이다.
“매일?”
“아니? 오늘만!”
물론, 오늘 밖에 안 해주는 특별 서비스였지만.
아무튼, 그렇게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하겠다며 당차게 소리친 소은이는 은수를 데리고 나간 상태였다.
아무래도 화단을 보는 것에는 소은이보다도 은수가 더 제격이었으니 말이다. 슬쩍, 거실 유리창으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은수를 자그마한 의자에 앉혀둔 소은이가 은수의 손짓에 맞춰서 화단을 가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모컨으로 문을 살짝 열리도록 만드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쩌!”
“이거? 이거 뽑아?”
“웅!”
소은이는 은수에게 하나하나 확인까지 받아 가며 화단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 초능력의 영향으로 잡초가 자라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한 방향으로 자라나는 줄기 같은 것들은 정리를 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워낙 잘 자라다 보니, 매일매일 정리를 해주지 않으면 곧장 화단이 엉망이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은수의 컨펌을 받아 가며 화단을 정리한 소은이는 이내 벌떡 일어나더니, ‘다해따!’하고 소리쳤다. 만세까지 크게 한 소은이는 은수를 왜건에 태웠다. 은수를 데리고 동물들을 확인하러 갈 생각인지, 왜건의 손잡이를 청호의 몸줄에 묶고 있었다.
“출발!”
“추빠!”
사이좋게 주먹을 하늘 높게 치켜든 아이들은 그대로 도도도도- 달려나갔다. 물론, 실제로 달리는 것은 청호뿐이었다. 소은이도 잠시 고민하다가 왜건에 냅다 올라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청호는 조금도 무겁지 않다는 듯, 아이들을 태우고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근처에 있던 노트북을 가져왔다. 소은이가 어떻게 하려나 궁금해서 그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가기 귀찮은 것은 덤이었고 말이다.
“음음, 잘하고 있네.”
동물원에 있는 카메라 중 일부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을 덮었다. 평소의 내가 하는 것처럼 소은이가 동물들에게 다가가 어디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불편했던 건 없는지 물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프다고 하는 듯한 녀석에게는 간식을 내어주고, 졸리다고 하는 녀석들은 토닥토닥 두드리며 잠을 재워주기까지 하고 있었다.
정말 나를 대신해서 꼼꼼하게 둘러보는 소은이의 모습 덕에, 나는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사실 소은이는 일을 한다기보다는, 늘 하던 것처럼 노는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소은이 덕에 뜻하지 않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된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뮤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내 채널을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온갖 영상들을 섭렵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역시 시간을 보내기에는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멍하니 있다간 하루가 그대로 삭제되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오늘의 인생 꿀팁! 칼을 쓰면 택배 상자를 쉽게 개봉할 수 있습…….”
“어른폰 신규 모델이 유출되었습니다. 프로 라인의 카메라가 8개로 늘어났으며…….”
“유명 연예인 A 씨가 길을 가다 돈을 주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누리꾼들은 해당 연예인도 사람이라고…….”
“은하수에서 폴더블 휴대폰과 롤러블 휴대폰을 결합한 일명 롤더블 휴대폰을 공개해…….”
“오늘은 한국에 찾아온 외국인들이 경악하는 한국의 대단한 점을 알아보…….”
“어제오늘내일 유업에서 떠먹는 요구르트 새로운 용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용기는 뚜껑을 개봉하면 모든 내용물이 뚜껑에 달라붙도록 만든 것으로,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 ”
뮤튜브에는 정말 온갖 내용의 영상들이 난무했다. 그런 것을 다 보지 않더라도, 10초만 보더라도 시간이 휙휙 지나갈 정도였다.
그러던 도중,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십여 년 만에 돌아온 유기농 자급자족 생활 하루세끼, 오늘부터 촬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꽤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에 추억이 떠올랐다. 가끔 저녁에 누나와 맥주 한잔하면서 보던 프로그램이 다시 부활했다고 하니, 괜히 관심이 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출연진이나 제작진에 관한 내용들을 검색했다. 심지어, 과거에 방영됐던 시리즈는 이랬지- 하면서 과거 영상까지 찾아보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을 냅다 영상을 보던 도중, 문이 열리며 누나가 들어왔다.
“수환아, 뭐 하고 있어?”
“뮤튜브 보고 있었지. 누나 그거 알아? 하루세끼, 다시 한다더라고.”
“응? 어떻게 알았어?”
“뮤튜브에 다 나와 있던데?”
나는 휴대폰을 누나에게 보여주었다. 하루세끼라는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한다는 내용이 큼직하게 박힌 화면이었다.
“그럼 그것도 알아?”
“뭘?”
내 물음에 누나가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이거!”
누나는 내게 종이 한 장을 슥- 내밀었다.
그리고, 종이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나는 누나가 왜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지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하루세끼 게스트 섭외 요청?”
“응! 이번에 네가 크게 화제였잖아. 좋은 일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화제는 화제니까.”
“한 마디로 화제의 중심에 있던 나를 섭외해서 시청률을 끌어올리겠다?”
“직접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속 뜻은 그렇다고도 볼 수 있을 거야.”
누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좋게 끝난 것도 아니고, 잘 마무리된 화제였으니 방송국에서도 나를 섭외하려는 생각을 하기엔 충분하다고 여겨졌다.
물론, 동물 학대 논란이 터지기 이전에도 섭외 요청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내 뮤튜브 채널의 영상을 찍는 것만으로도 귀찮아서 응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초능력 개화 직후나, 동물원을 막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야 홍보 목적으로 몇 번 나가긴 했지만 그 이후로는 응하지 않았었다.
“또 거절할 거지?”
“아무래도? 솔직히 멀리까지 가서 방송 찍고 오긴 좀 귀찮잖아.”
“근데, 이번에는 출연하는 게 좋을 거 같아. 배수북 씨가 그러던데, 이참에 여러 경로로 모습을 보이면서 대중들한테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더라.”
“수북이가?”
“응. 네 구독자가 엄청 많다고는 하지만, 사실 뮤튜브에 올라가는 영상 대부분은 동물들에 관한 내용이잖아. 너라는 사람 자체가 메인인 방송은 구독자 수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TV에 출연하는 걸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거지.”
누나도 배수북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은근슬쩍 출연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라며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섭외 요청에 응하는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누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잠시 고민한 결과.
“섬에서 필요하실 것 같은 물품들은 이곳에서 구매하셔서 가시면 됩니다.”
나는 하루세끼가 촬영되고 있는 섬으로 들어가기 직전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 시간은 언제든지 괜찮다고 했더니, 합류가 가능한 가장 빠른 시간에 나를 불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섬에는 따로 슈퍼 같은 것이 없으니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하라는 제작진의 말에, 항구 앞에 있던 소규모 마트를 누비기 시작했다. 한 대의 카메라와 세 명의 제작진들을 달고서 말이다.
“저……. 신수 님? 죄송하지만, 고기는 그 정도로 많이 들고 가시면 안 될 거 같은데요…….”
가장 먼저 찾았던 정육 코너에서 소고기를 가득 챙기니, 제작진들 중 한 명이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자급자족이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으니, 많은 양의 물품은 그 정체성을 해할 수 있어 걱정된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제작진의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정육 코너 구석에 보이는 창문을 가리켰다.
“제가 먹을 게 아니라, 저 녀석들이 먹을 거예요.”
창문에는 유부와 아라가 사이좋게 낑겨 앉아, 내가 쥐고 있는 고기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몇 마리의 동물들도 있었지만, 식품도 파는 마트에 동물들을 데리고 들어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바깥에서 기다리게 한 상태였다. 그나마 날 수 있는 두 녀석이 창문 앞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아, 그럼 전부 동물들 먹이인가요?”
“네. 동물들이 워낙 많이 먹는 편이라, 이걸로도 부족할 수 있어요. 얘들아! 이거랑, 이거 중에 어떤 거!”
나는 적당히 제작진에게 대답해 주고서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한 덩이씩을 들고 소리쳤다.
그러자, 창문에 낑겨 앉아 있던 두 녀석의 고개가 한 쪽으로 쏠렸다. 마치 내가 쥐고 있는 두 덩이의 고기들 중에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고르는 느낌이었다.
“역시 비싼 게 맛있긴 하지.”
나는 몇 배나 가격 차이가 나는 소고기를 고르는 두 녀석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수십 팩의 소고기를 싹 쓸었다. 어마어마한 능력을 자랑하는 녀석들답게, 식성도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고기를 싹쓸이 한 나는, 다음으로 과자들을 몇 개 사기 시작했다.
“어……. 과자 말고는 안 사시나요?”
“네. 뭐 기본적인 생필품은 다 있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보통 출연자분들은 요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좀 사시는 편이에요. PPL 들어오는 과자들이 좀 있어서요.”
“그래요? 그럼 저는 이걸로 끝.”
나는 집었던 과자들을 제자리에 놓고서, 동물들에게 먹이로 줄 소고기가 그득한 장바구니만을 달랑달랑 흔들며 계산대로 향했다.
“진짜 이렇게만 구매하실 건가요?”
“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 저희가 제공하는 부분은 정말 딱 최소한이라서 말이죠. 향신료나 기본적인 채소류 정도는 있지만, 그 외에는 없거든요. 다 자급자족하셔야 합니다. 낚시나, 섬의 숲에서 채집하시거나요.”
걱정이 한가득이라는 듯한 제작진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정도면 충분하네요.”
자급자족? 그건 내게 일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