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18
0317 여름 캠핑(4)
내게 빼앗긴 도토리를 되찾기 위해 폴짝폴짝 뛰는 하늘이를 잡아,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제야 진정한 녀석은 주머니에서 얼굴만 뽈록 내밀었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준 다음, 기절해 있는 뱀을 바라보았다.
나는 기절해 있는 뱀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동물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드루이드라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열심히 공부는 했었다. 그렇기에 녀석이 어떤 뱀인지 파악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혈목이네.”
하늘이에게 도토리로 뚝배기가 깨……진 게 아니라, 기절해버린 뱀의 정체는 바로 유혈목이였다. 사람들이 흔히들 꽃뱀이라고도 부르는 그 뱀이었다. 화려한 무늬가 마치 꽃 같았기 때문에 꽃뱀이라고도 불리는 것이었다.
지금 기절한 녀석도 제법 무늬가 화려했다. 나는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 유혈목이의 머리에 살짝 상처가 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닦아 주려고 하다가 급히 손을 멈추었다.
“아, 맞다. 얘 독사였지.”
그리고, 그 모습에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흔히들 꽃뱀, 유혈목이가 독이 없는 뱀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어엿한 독사였다. 그것도, 한 번 물리면 죽거나 몸의 혈액 전체를 투석해야 하는 맹독을 가진 독사였다. 비록, 그 독이라는 게 턱 안쪽으로 깊게 있어, 인간들이 물리는 경우는 없다고 무방할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 외에도 머리 뒤쪽으로 두꺼비나 벌 같은 것들을 잡아먹으며 얻은 독을 따로 모아두고 보호용으로 사용하는데, 지금 뱀의 머리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그 독이었다.
하늘이에게 도토리로 얻어맞다가, 그 부분의 독이 흘러나오는 상태였다. 하늘이에게 압수한 도토리 중 하나를 보니, 도토리 끝 뾰족한 부분에 약간 정체 모를 액체가 묻어 있었다.
“야, 너 진짜 큰일 났을 수도 있겠다.”
나는 정말 하늘이가 독에 당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에, 주머니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는 하늘이를 쓰다듬었다.
단순히 물리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도토리를 까서 먹었다가 중독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었다.
나는 독이 묻은 도토리를 내다 버리고, 손수건을 꺼내 뱀의 머리에서 흐르는 독을 깨끗하게 닦아냈다. 물론, 그렇게 독을 닦아낸 손수건이나 도토리는 물에 깨끗하게 헹궈냈다. 그래도 나중에 다시 쓰지 않고 버릴 생각으로, 뒷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뱀을 깨끗하게 만든 나는 녀석을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들고 텐트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아무래도 다른 동물도 아닌, 하늘이에게 얻어맞아서 기절한 상태였으니 데려가서 상태를 자세히 볼 생각이었다. 문제가 있으면 동물원에서 수의사들에게 진료를 받도록 할 예정이었다. 누렁이를 비롯한 뱀들도 있었기에, 뱀의 진료도 무리 없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뱀을 들고 텐트로 향하고 있으니, 근처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던 소은이가 호다닥 달려왔다.
“압빠! 어디, 오옹? 하늘이 여기 있었네!”
내게 다가와, 어디 가냐고 물으려던 소은이는 내 주머니에서부터 날아오르는 하늘이의 모습에 정신이 팔렸다.
소은이는 그렇게 날아오른 하늘이를 제 머리에 얹으며, 내 손에 들린 뱀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뱀! 압빠, 얘 누렁이 친구야?”
“음……. 누렁이 친구는 아니야. 여기 살던 야생 뱀이지.”
“근데 왜 이러고 있어?”
소은이의 물음에 나는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아무래도 자기의 동물 친구가 잡아먹힐 뻔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소은이가 좋은 반응을 보일 거라곤 예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마냥 숨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소은이도 동물들의 먹이사슬 같은 것에 대해 이해하고는 있었으니,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있는 뱀이 배가 고팠는지, 하늘이를 잡아먹으려고 했어. 그래서 하늘이는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도토리로 방어한 거야.”
“하느라, 다친 거 아니지?”
내 말에 소은이는 머리 위에 있던 하늘이를 들어 올려, 어디 다친 곳이 있는 건 아닌가-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하지만 뱀을 도토리로 두드려 패서 기절시킨 하늘이가 다친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히히, 다행이다.”
소은이는 하늘이를 다시금 제 머리에 올리더니, 기절해 있는 뱀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소은이는 뱀에게 무어라 말을 하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소은이도 야생의 먹이사슬 같은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압빠, 그럼 얘한테 누렁이 간식 하나 주자! 하늘이 또 잡아먹으려고 하면 안 되니까!”
“그럴까?”
“웅웅웅!”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이가 나와 함께 텐트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근처에서 그 소리를 들었는지 누나와 은수 역시 텐트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아무래도 차가운 물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 아이들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압빠, 나 배고파!”
게다가 소은이는 열심히 물놀이를 한 덕분인지, 배고프다며 먹을 것을 찾기 시작했다. 분명, 뱀에게 줄 간식을 먼저 줄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자기가 먹을 간식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먼저 나왔다. 나는 동물들에게 줄 용도의 간식이 들어 있는 상자 옆에 있는, 우리 가족이 먹을 간식 상자에서 빵 하나를 꺼내 소은이에게 주었다.
빵을 와구와구 먹는 소은이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여전히 기절해 있는 뱀을 쿠션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딱히 동물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녀석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 술을 마셔, 운전을 해서 동물 병원에 갈 수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뱀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일어났다.
“여긴……?”
“정신이 들어?”
“히야아아악!”
겁이 많아서 사람을 봐도 도망치는 유혈목이답게,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더니 도망치려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여전히 어지러웠는지 도망치지 못했지만 말이다.
“다, 당신은 누군가요? 왜 인간인데 말이 통하는 거죠?”
그래도 금세 정신을 가다듬은 녀석은 내가 자신을 해칠 의도가 없음을 파악하고, 말이 통한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녀석의 머리를 가볍게 쓸어주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늘이에게 도토리로 얻어맞고 기절까지 했었고 내가 데려왔으며, 조만간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해 줄 예정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었다.
그러면서 누렁이가 좋아하는 뱀용 간식 중에서 자그마한 것들을 내어주니, 녀석은 좋다며 덥석 받아먹었다. 녀석의 배를 채워주었으니, 녀석이 하늘이를 또 노릴 일은 없을 것이었다. 배가 고프더라도 뚝배기를 깨버리는 하늘이를 잡아먹으려고 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뱀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적당히 담요 같은 것을 덮어준 다음, 텐트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누나가 벌써부터 저녁을 먹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계를 보니 그렇게 이른 것은 아니었다. 물놀이를 꽤 오래 했기 때문에 이미 시간이 제법 지난 상태였다.
“나의 혼을 실은 지옥불이다끽!”
그리고, 원숭이가 두 개의 토치를 양손에 잡고 숯불을 피워내고 있었다. 내가 뱀을 본다고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 원숭이가 불을 피우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야, 너 꼬리 끝에 탄다.”
“끼이이이익!”
불타는 꼬리에 화들짝 놀란 녀석이 내게 토치를 넘기고 계곡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나는, 빠르게 숯에 불을 붙이고서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삼겹살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숯불에 빠르게 익어갔다.
“히히, 맛있겠다!”
기름이 줄줄 빠져나오는 것처럼, 소은이의 입에서 침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구워낸 삼겹살은 소은이가 침을 흘린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쌈을 싸서 먹어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맛있고, 밥과 함께 먹어도 무척 맛있었다.
“곰돌아, 너도 하나 먹어라.”
“고마워유!”
“그래, 덩어리 너도 먹고.”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맛있는 것들을 동물들이라고 해서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간을 하지 않고 구워낸 다음, 귀찮더라도 소스를 찍어 먹고 있었으니 말이다.
“은수야, 상추만 먹지 말고 고기도 먹을래?”
“시러!”
비록, 은수가 삼겹살보다 상추를 많이 먹는 일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모두가 만족스러운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마무리로 라면까지 끓여 먹으니 이보다도 더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니 어느덧 해가 다 지고, 주변에 어둠이 내리 깔렸다. 준비하고, 불을 피우고, 즐겁게 먹고, 라면까지 먹으며 마무리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흐른 것이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아이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미 은수는 잠에 빠져들어, 누나의 품에서 색색거리는 숨만 내뱉고 있었다. 상추에 졸음을 유발하는 성분이 있다더니, 그게 효과를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아아. 나 졸려어어. 잘래애애.”
즐거운 놀이로 빠진 체력과 뽈록 부풀 정도로 가득 찬 배,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에 고개를 꾸벅꾸벅 까딱이며 졸던 소은이는 결국 잠을 자겠다며 텐트로 들어갔다.
결국 아이들이 모두 잠에 든 우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캔맥주를 까서 마시고서,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던 숯과 장작의 불이 모두 사그라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리는 내일 하자.”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우리도 무척 졸음이 쏟아졌다. 먹고 난 것을 정리할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잠에 빠지며 정신이 몽롱해지는 그때.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며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갑작스러운 그 상황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나는 텐트 안으로 들어온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마리의 족제비였는데, 우리가 먹고 나서 정리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나는 냄새에 이끌려온 녀석 같았다.
“……죄송합니다. 저 여기서 나갈게요.”
그리고, 녀석이 한껏 당황하며 도망치려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텐트에 몇 번 얼굴을 박으며 허우적대던 녀석은 기어코 텐트의 아랫부분을 비집고 도망쳤다.
하지만 그 행동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텐트 안에는 우리 네 가족 말고도 다른 동물들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 다 잘 시간에 휴대폰을 쥐고 게임에 열중하느라 얼굴만 허연 빛을 쬐고 있는 원숭이, 입구 부근에서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자고 있는 곰 두 마리, 마치 텐트의 폴대라도 되는 것처럼 텐트를 휘감고 있는 누렁이. 그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맞을꼬야?”
게다가, 화장실을 갈 때를 위해서 켜둔 무드등 아래에서 위협적으로 도토리를 들어 올리고 있는 하늘이의 모습도 있었으니 도망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또 도토리를 가져온 거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다시금 잠을 청했다.
그리고, 무탈하게 아침을 맞이한 우리는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한 뒤, 빠르게 짐들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물론, 도중에 덩어리 녀석을 원래 살던 곳에 돌려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소은이가 무척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대로 데려갈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야생동물이라면 오히려 편했겠지만, 그렇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유혈목이 한 마리를 데려가고 있었기에 소은이도 나름대로 만족하는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