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26
0325 토끼즈(2)
소은이가 모든 것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토끼즈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았다.
아무리 건강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토끼즈가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진화의 섬에 보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샤?”
“건강해진다면 얼마든지.”
“그러면 가고 싶은 거샤.”
토끼즈는 잠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내 제안을 받았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 익숙하고 즐거운 녀석들이었지만, 녀석들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연구역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었고 말이다.
“히잉. 꼭 건강해져서 다시 나랑 동물원에서 놀아야대.”
“걱정 말라는 거샤.”
“우리는 애기랑 평생 같이 있을 거샤.”
“애기의 애기랑도 같이 놀아줄 거샤!”
“웅웅, 나랑 천년만년같이 있는 거야! 꼭! 꼬옥!”
소은이는 토끼즈를 한꺼번에 끌어안으며, 녀석들의 부드러운 털에 눈물을 닦았다.
“그럼 이번 주말에 바로 섬으로 갈까?”
“……웅. 대신, 그때까지 나랑 같이 있을 거야!”
소은이는 토끼즈가 떠날 때까지 같이 있겠다며, 토끼즈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이나 자기 물건을 꺼낼 때 빼고는 찾지 않는 자기 방으로 향했다.
“섬에 갈 때까지 나랑 같이 있어!”
토끼즈와의 이별이 무척 아쉬운 소은이는 결국, 잠까지 토끼즈와 함께 자기로 결정했다.
친구들과의 모임을 가진 뒤, 늦게 돌아온 누나는 그러한 사실들을 전해 듣고 여러 반응을 보였다. 토끼즈의 수명이 한계를 맞이해가고 있다는 소리에 안타까워했으며, 그런 토끼즈와 시간을 보내겠다며 자기 방으로 가버린 소은이를 기특하게 보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게 됐으니까 토끼즈도 여기 있는 동안에는 스트레스 하나도 안 받겠네.”
“그렇지. 동물들한텐 소은이가 스트레스 해소제나 다름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놀자고 하면 귀찮아해도, 소은이가 놀자고 하면 어떤 동물이든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특히 소은이가 클수록 그러한 경향이 더 강해진 상황이었다.
아무튼, 소은이는 그렇게 자기의 방에서 토끼즈와 잠을 자고, 하루 종일 집에서 토끼즈와 놀았다. 토끼즈가 섬에 가더라도 후회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는 듯한 모습이었다.
집안에서 도도도도- 달리기를 하기도 하고, 화단에서 배추를 뽑아내어 토끼즈와 은수에게 먹여주기도 했다. 그 와중에 본인은 절대 먹지 않았다. 좀 먹었으면 싶지만.
아무튼, 소은이가 토끼즈와 후회 없을 시간을 보내니 어느덧 섬으로 가는 당일이 되었다.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쉬운지, 소은이가 평소보다 조금 더 시무룩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토끼즈는 그런 소은이 곁에서 열심히 소은이를 핥아주고 있었다.
“힝. 꼭 건강해져서 나랑 놀아야 하는 거야.”
“가치! 노라!”
“웅웅, 은수도 같이!”
“꼭 그렇게 할 거샤.”
뒷좌석에 앉은 소은이와 은수는 토끼즈에게 파묻혀 있었다.
은수도 어쩌다 보니 토끼즈와 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토끼즈와의 이별을 무척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은수도 토끼즈와 붙어 있던 시간이 짧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동물원에서 섬으로 들어가기 위한 항구까지 이동하는 몇 시간 동안,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토끼즈와 열심히 놀았다.
중간중간 화장실을 가기 위해 두 번 휴게소를 들리는 것을 제외하고 쉼 없이 움직여, 항구에 도착했다. 특별히 돈을 주고 관리하고 있는 내 요트가 여전히 깔끔한 모습으로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자, 배에 타자.”
“꼬!”
“소은아! 배에 탈 때는 뛰면 안 돼!”
누나는 바닷물이 출렁이는 요트 위로 올라갈 때, 혹여라도 빠질까 걱정하며 은수를 안은 채로 소은이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덕분에 다섯 마리 토끼즈의 선상 탑승은 내 몫이 되었다.
그렇게 짐과 토끼들을 모두 배 위로 올린 나는, 곧바로 배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어차피 자동으로 목적지까지 항해해 주는 기능이 잘 달려 있었기에, 신경 쓸 것은 없었다.
잠시 동안의 항해 이후, 섬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긴 우리 영역이다! 계속 접근하면 똥을 뿌……아?”
그런데 섬을 향해 접근하고 있으니, 여러 마리의 갈매기들이 배로 날아들었다. 자세히 보니, 섬에 자리를 잡았던 그 갈매기들이었다.
내가 섬으로 접근하는 낚시꾼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했더니, 이런 식으로 공격하기도 한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공격이라고 하긴 애매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를 알아본 갈매기들은 똥을 싸지르려던 것을 멈췄다. 조금 뒤늦게 확인하는 바람에 멈추지 못할 수준까지 와버린 한 녀석은 바다로 꽁무니를 돌렸다. 무척 다행이었다.
“갈매기 안녕!”
안쪽 선실에서 토끼즈와 놀고 있던 소은이가 갈매기들의 끼룩끼룩 소리를 듣고 얼굴을 뽈록 내밀었다.
“끼루우욱!”
그 모습에 갈매기들이 자지러지며, 소은이에게 다가가 예쁨 받기 위해 들러붙었다. 소은이에겐 익숙한 일이었기에, 아주 능숙하게 녀석들을 쓰다듬어 주고선 다시금 선실로 쏙 들어갔다. 지금 중요한 것은 토끼즈였으니 말이다.
갈매기들이 조금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래도 소은이의 손길을 받았기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얘들아, 저쪽에 배 온다.”
“감히 우리 영역을!”
어딘가에서 천천히 접근하는 듯한 배를 발견하고 가리키니, 갈매기들이 후루룩 날아갔다. 그리고, 이내 배를 돌릴 때까지 똥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배의 갑판 같은 곳에 싸지르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싸는 것이었다. 배에 싸질러봐야 사람들이 방향을 돌리지 않을 것임을 이미 학습한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어느새 당도한 섬의 선착장에 배를 고정했다.
“도착했어! 나와!”
배를 고정하고 외치니, 토끼즈와 아이들이, 다음으로는 멀미를 한 건지 늘어져 있던 누나가 어기적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차례차례 부축해 선착장에 내려 주었다. 소은이는 은수를 안아들고 토끼즈와 함께 벌써부터 뛰어가고 있었다. 무척 자주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종종 찾아오긴 했기에, 아이들도 이곳 지리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리 큰 섬도 아니었고.
“속이 안 좋아…….”
“많이 심해?”
“아니, 그런 건 아냐. 아까 휴게소에서 먹었던 게 체했나 봐.”
내 초능력 덕분에 건강이 무척 좋아졌다지만, 뱃멀미나 소화불량까지 없애주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뱃멀미가 조금 있다 보니, 지금 속이 그렇게 편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보통은 헬기를 타고 다니는데, 이번에는 토끼즈도 데리고 짐까지 많이 들고 가다 보니 차와 배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헬기를 타고 다닐 것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누나와 함께 느릿느릿하게 걸으며, 아이들이 먼저 가 있을 별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점점 별장에 가까워지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꺄하하항!”
“누운나!”
별장 근처에 가니, 아이들이 무척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질기다 못해 잘리지도 않는 수준의 넝쿨을 이용해서 이전에 놀이 기구 같은 것들을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다. 그네부터 지역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른 트램펄린, 나무를 올라탈 수 있도록 정글짐처럼 사다리를 만들어둔 상태였다.
넝쿨과 부드러운 천막을 이용해 만들어둔 트램펄린 위에서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당연히 토끼즈도 즐겁게 폴짝폴짝 뛰는 중이었다.
“엄마랑 아빠는 안에 정리하고 있을 테니까, 조심히 놀고 있어.”
“웅!”
힘차게 대답하는 소은이의 모습에 나와 누나는 곧바로 별장을 정리하러 들어갔다. 토끼즈가 있으니, 적어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산짐승이라고 해봐야 소은이의 동물 친구들이었으니 애초에 걱정할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가져온 짐을 풀고, 음식은 냉장고로 옮기며 열심히 움직이고 나니 속이 좀 괜찮아졌다. 누나도 마찬가지였는지, 땀 한 방울을 닦아내며 상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들은 뭐 하고 있을까?”
“글쎄. 일단 토끼즈가 지낼 곳을 찾으러 다니고 있을걸?”
“애들한테 갈래? 아니면 쉴까?”
“모처럼 왔으니까 애들 찾으러 가면서 동물들한테도 인사하지 뭐.”
나는 누나와 함께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산책하듯 걷기 시작했다. 적당히 돌다 보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토끼즈 수명이 다 되어 간다니까 엄청 아쉽네. 덕분에 소은이 키우는 데 도움 많이 받았는데.”
“그렇지. 울어도 토끼즈 한 마리만 안겨주면 뚝 그치고 그랬잖아.”
“맞아. 오히려 토끼즈가 없다고 울기도 했었지.”
나와 누나는 토끼즈와 함께했던 육아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움과 착잡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여러 추억들을 떠올리며 산책을 하던 우리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수풀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쿠헝- 쿠헝- 하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왔다.
“멧돼진가?”
이 섬에서 그런 소리를 낼 녀석이라곤 멧돼지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수풀이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데, 수풀이 사락- 갈라지며, 일기토가 짠-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응? 일기토, 너였어?”
“놀라지 마샤!”
모습을 드러낸 일기토 녀석은 놀라지 말라더니, 갑자기 쑤욱 솟아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녀석이 타고 있던 무언가가 몸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렇지만 일으켰다는 말보다는 솟아올랐다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 같았다.
“……너 멧돼지야?”
“오랜만이군!”
나름대로 덩치가 크다- 정도에 속하던 멧돼지 녀석은 이게 멧돼지인가 황소인가 싶을 정도로 덩치가 커져 있었다. 섬에서 어찌나 잘 먹고 잘 자랐는지, 기네스북에 올려도 될 정도로 덩치가 커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멧돼지의 등 위에는 일기토부터 오기토까지 다섯 마리 토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중이었다.
“히히.”
“아뿌!”
물론, 소은이와 은수도 같이 앉아 있었다. 조금 전에는 몸을 숙이고 수풀에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얘, 저번에 본 그 멧돼지 맞니? 어떻게 해야 이렇게 커지는 거야……?”
내 곁에서 화들짝 놀랐던 누나가 황소만 한 멧돼지를 보며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다.
“때지, 많이 커써!”
“때지? 소은이가 이름 지어준 거야?”
“아니! 은수가 지어써!”
“어……. 그렇구나.”
은수라면 때지라고 이름 지은 게 아니라, 돼지라고 말하는 걸 때지라고 말한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소은이는 그렇게 부르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소은이는 토끼즈와 함께 멧돼지 때지를 타고 섬을 둘러보고 있었다며, 도중에 우리가 오는 것을 파악하고 숨었다고 실토했다.
“토끼즈가 살 곳은 찾았어? 별장에서 지내게 할 거야?”
“여기!”
“응? 여기?”
“웅! 여기 주변에 먹을 거 많다구, 여기가 좋다 했어!”
소은이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산딸기나 각종 식물들이 아주 즐비해 있었다. 내가 예전에 씨를 뿌려 둔 것들이 퍼진 건지, 주변에 오이도 몇 개 보였다.
이 정도라면 토끼즈가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구, 때지가 토끼즈 집 만들어줬어!”
소은이가 나무 아래쪽으로 가리켰기에,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커다란 구멍이 파여 있었다. 구황작물 같은 것들도 아주 잘 파먹는 멧돼지답게, 소은이가 원하는 대로 구멍을 파낸 것이었다.
다섯 마리 토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기엔 부족함 하나 없는 굴이었다. 어차피 이 주변에는 토끼즈를 잡아먹을 녀석들도 없었다. 어지간한 동물들한텐 잡아먹힐 일도 없겠지만.
“너희는 마음에 들어?”
“아주 좋은 거샤!”
“여기라면 푹 쉴 수 있을 것 같샤.”
“집들이라도 하겠샤? 차린 건 없샤.”
토끼즈는 새로운 집이 마음에 든다는 듯한 모습으로, 때지가 파놓은 구멍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소은이는 새로운 집에 이사한 선물이라며 주변에 있는 산딸기 같은 것들을 따주었다. 혹시라도 굶을까 걱정하듯, 토끼집 구석에 수북하게 쌓아둘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토끼즈가 섬에 적응하는 것을 소은이와 은수가 열심히 도와주었고,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토끼즈가 우리를 배웅해 줄 정도가 되었다.
“흐아아아아앙! 잘 있어야대! 아프지 말구우! 다음 주에 올 거니까! 꼭 나랑 놀아!”
“흐우우웅!”
토끼즈와 헤어진다는 것이 아쉬운 소은이는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고, 그런 소은이를 따라 은수가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다섯 마리 토끼들은 그런 아이들에게 다가가 열심히 핥아주고, 몸을 비벼댔다.
“우리는 걱정하지 말라는 거샤!”
“애기들이랑 천년만년 살기로 약속했샤!”
“다음 주에 오면 더 건강해져 있을 거샤!”
“잠깐 쉬는 거샤. 인간들이 휴가 가는 것처럼 말이샤.”
“나중에 다시 동물원에서 뛰놀기로 약속하샤!”
다섯 마리 토끼들은 아이들에게 달라붙어 울음을 달래주었고, 덕분에 아이들이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그럼 다음 주에 올게. 쉬고 있어.”
나는 토끼즈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고선, 아이들을 데리고 배에 올랐다. 곁에 있던 누나 역시 토끼즈와 이별하는 것은 아쉬웠는지, 토끼 한 마리 한 마리와 인사했다.
“다음 주에 꼭 올게!”
“오꾸야!”
배를 천천히 움직이니, 소은이와 은수가 갑판에서 손을 붕붕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