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28
0327 외전 – 사육사의 하루(1)
신수의 둥지에서 호랑이 담당 사육사로 근무하는 사육사 ‘이범’은 아주 익숙하게 대중교통을 탑승했다. 직장인 신수의 둥지가 집에서 걸어가기엔 멀고, 자가용을 몰기엔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전거나 타고 다닐까.’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출퇴근길이 편해지면 무척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범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매일같이 하는 고민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움직일 생각을 하니 귀찮아서 실천을 하진 않았다.
“이번 정류장은 어린이 대공원, 신수의 둥지입니다.”
“어, 어어!”
물론, 그렇게 매일매일 멍하니 있다 보면 정류장을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다음 정류장에 내려, 걸어서 돌아가는 불상사가 생기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내리는 것을 황급히 따라 내린 이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 호담.”
이범은 자신의 별명 아닌 별명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조금 전, 그가 따라 내린 직장 동료였다.
“응? 뭐야 토담이잖아. 너도 이 버스 타?”
“몰랐어? 전에, 퇴근하고 너 취했을 때도 봤는데.”
“……술 취한 상태로 기억하는 게 이상하지 않겠냐.”
토담이라는 별명인지 호칭인지 애매한 그것을 가진 동료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동물들처럼 귀소본능이라도 있는 건지, 술에 취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아도 집에는 꼬박꼬박 잘 찾아갔다.
아무튼, 직장의 입구에서 동료를 만난 이범은 동료와 함께 오르막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는 이런 오르막 올라갈 일이 없겠지 했는데. 여전히 올라가고 있네.”
“난 대학교가 이런 오르막이었는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던 둘은 저 위쪽 오르막에서 무언가가 뛰어 내려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 루돌프잖아?”
“루담 왔나 본데.”
“진짜 부럽다. 나도 애들이 데리러 와서 태워주면 안 되나?”
“호랑이들이 너 데리러 나오면 일단 사장님한테 혼나지 않을까? 아님 119가 출동하던가.”
“……그건 그래.”
루돌프가 뛰어 내려가는 모습에 잠시 부러움을 느낀 이범이었으나, 그 부러움은 잠시였다.
“으아아아아악!”
내려갔던 루돌프가 웬 남자 한 명을 태운 채로 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의 허리가 반쯤 꺾여 있는 듯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부러움이 싹 사라졌다.
“역시 출근은 두 발로 하는 게 최고지.”
“그것도 본인 두 발로.”
“그치그치. 걷는 게 건강에도 좋다잖아.”
끌려가듯 올라가느니, 오르막을 힘들게 오르고 말지. 그렇게 생각한 이범이 열심히 다리를 움직였다.
열심히 다리를 움직여 기나긴 오르막을 오르니, 드디어 직장의 입구가 보였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입장을 하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도 없었다.
남들은 쉽게 보지 못하는 광경을 보며 입구로 다가간 이범은 제 동료와 함께 입구를 지나 직원들의 대기실로 향했다. 개인용 캐비닛과 유니폼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탈의실이 딸린 곳이었다.
그곳에서 빠르게 유니폼으로 환복한 뒤, 직원들이 모인 곳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고참 사육사이자, 임원급이라 할 수 있는 고길휘 사육사가 조회를 시작했다. 사육사들의 특이사항을 체크하는 것부터 시작해, 오늘의 특별 일정 같은 것들을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괴물의 둥지 특근할 사람?”
지금처럼 특별근무할 이들을 선별하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저요!”
“제가 좀 특근 체질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모두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평범한 직장인들이었다면 특근이라는 소리에 질색하겠지만, 신수의 둥지 직원들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럼 오늘도 추첨제로 하자. 오늘의 당첨자는…… 이범!”
“와아악!”
이범은 제 이름이 불리는 것에 환호했다.
다름이 아니라, 괴물의 둥지 특근을 할 경우에는 몸이 조금 고단하긴 하지만 그만한 보상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뭐 하지? 특근비로 가까운 곳에 여행이나 다녀올까?’
약 5일 치 임금에 가까운 특근비에, 이틀이나 되는 휴가가 따라붙으니 너도나도 지원하는 것이었다. 약 7시간 정도 더 고생하는 것으로 이틀이란 휴가가 생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반짝 고생하고 달콤한 보상을 누릴 수 있으니 다들 특근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특근에 당첨된 것에 기뻐하며, 고길휘가 진행하는 조회 시간을 무척 즐겁게 보낸 이범은 본격적인 근무를 위해 움직였다.
대기실 가득 모여 있던 사육사들이 저마다 담당하고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호담이라는 별명이자 호칭을 가진 이범의 경우에는 호랑이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호랑이 우리를 향해 다가갔다. 호담이라는 것이 호랑이 담당을 줄인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호담이라는 별명은 이범 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호랑이가 여러 마리 있었기에, 호담이란 별명을 가진 이들도 여럿이었다.
이범은 자신과 동일한 별명을 가진 사육사들과 함께 호랑이 우리로 들어갔다. 물론, 호랑이들이 관람객들을 공격하지 않고, 관람객들도 더 이상 놀라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누구에게나 우리가 개방된 상태였다.
그 어떤 장애물도 없이 호랑이 우리로 입성한 사육사들은 호랑이들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아아, 여기는 호담 셋. 호랑이 한 마리가 울타리에 끼여 있다고 알림.”
“……아니, 도대체 왜 끼여 있는 거야.”
도중에 무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옴에 황당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차분히 호랑이들을 체크했다.
신수의 둥지의 사장이자 드루이드인 신수환이 매일같이 동물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었기에, 사육사들이 하는 체크는 조금 달랐다. 말 그대로 확인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밤 사이 자기들 영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숨어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어느 위치에 있는 건지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런 업무를 진행하던 이범은 이상함을 느꼈다. 다름이 아니라, 호랑이들의 우두머리인 호돌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여기는 호담 하나. 호돌이가 사라졌다고 알림.”
호돌이가 어딘가에 숨어 있음이 확실한 상황이었기에, 이범은 무전기를 전체 채널로 돌려 공지했다. 그러자 곧이어 출근할 때 들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토담. 호돌이가 소동물 구역에서 자는 중이라고 알림.”
“요즘 토끼즈랑 어울리더니, 거기서 잠까지 잤어? 참나…….”
호랑이가 이렇게 순해도 되나 싶을 정도인 호돌이를 떠올린 이범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야생이었으면 사냥감으로 삼았어도 이상하지 않을 토끼들을 등과 머리에 태우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저게 진짜 호랑이가 맞나 싶은 이범이었다.
“선배. 제가 갈까요?”
“아냐, 내가 가서 데려올게. 애들이랑 호랑이들 빗질 정도만 해줘.”
“넵!”
믿고 맡겨달라는 것처럼 대답하는 후배를 뒤로한 채, 이범은 토끼즈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동물 구역으로 향했다. 자그마한 동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구역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아주 인기인 곳이었다.
“왔어? 호돌이 좀 빨리 데려가. 쟤가 지금 천산갑 굴 입구를 막고 있거든.”
“미안미안. 얘는 또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거야.”
이범은 토담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곧바로 호돌이를 끌어당겼다.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녀석답게 쉽게 당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잠결에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이 꼬리를 붕붕 휘둘러 쫓아내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신수의 둥지 사육사는 이런 것으로 포기해서는 안 됐다. 아니,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흐읍!”
드루이드의 초능력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는 사육사답게, 이범 역시 신체능력이 결코 약하지 않았다. 우월하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러한 신체능력을 바탕으로 호돌이의 몸을 쭈우욱 끌어당겼다. 잠에 푹 빠져 있는 호돌이 녀석이 반항도 하지 않았기에, 호돌이는 이범이 당기는 대로 죽죽 당겨졌다.
덕분에 호돌이가 온몸으로 막고 있던 천산갑의 굴 입구가 드러났고, 난데없이 감금당했던 천산갑이 제 굴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굴에서 탈출한 천산갑은 겁도 없이, 제 굴을 막고 있던 호돌이의 머리통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녀석의 꼬리가 호돌이의 이마에 선명하게 그려진 왕(王)자를 찹찹 두드리고 떠났다.
물론, 호돌이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는지 여전히 그르릉 소리를 내며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호돌아, 좀 가자 이제.”
그 모습에 잠시 웃던 이범은, 잠결에 날리는 발차기에 맞지 않도록 등 쪽으로 다가가 호돌이의 엉덩이 부근을 팡팡 두드렸다. 나름대로 고양이과의 동물이라고, 호돌이도 궁디팡팡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었다.
팡팡 두드릴 때마다 끄릉끄릉 소리를 낸 호돌이 녀석이 정신을 차리며 몸을 일으켰다.
“크헝?”
마치 내가 왜 여기 있지? 하는 듯한 호돌이의 모습에, 이범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녀석을 툭툭 건드렸다.
호돌이는 매일매일 마주하는 이범을 단박에 알아봤다. 녀석은 그대로 몸을 일으키더니, 이범의 어깨에 앞발을 턱- 올리며 얼굴을 핥아댔다.
“아악! 아파 짜샤!”
다른 피부 대비해서 연약한 얼굴이 호랑이의 날카로운 돌기가 돋아 있는 혓바닥에 문질러졌다. 당연히 따끔따끔한 그 감촉에 이범이 호돌이의 뺨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콱 움켜쥐었다.
하지만 호돌이는 그것도 그저 좋다는 듯, 혀를 날름거리며 이범의 손가락을 핥으려했다.
호돌이의 애정표현임을 아는 이범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녀석의 주둥이를 손으로 막았다. 꺼끌꺼끌한 혀가 나와 손바닥을 핥으며 사악사악, 사포로 문지르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이범은 거칠게 긁히는 듯한 느낌이면서도 간지러운 그 감각은 애써 참으며, 호돌이가 앞발을 바닥에 내리도록 만들었다.
“토담, 수고해.”
호돌이의 위치를 알려준 토끼 담당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이범이 곧바로 호돌이를 데리고 호랑이 우리로 이동했다.
그렇게 호랑이 우리로 돌아온 이범은 다른 호랑이 담당과 함께 호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오늘 호랑이들의 아침 식사는 새벽에 들어온, 싱싱한 닭고기였다. 매번 비슷한 메뉴였지만, 호랑이들은 매번 좋다고 받아먹는 메뉴였다.
“없어! 없다고!”
중간에 호랑이 담당 중에서 막내가 닭고기를 더 내놓으라는 호랑이들에게 쫓기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무난하게 호랑이들의 밥을 챙겨줄 수 있었다.
물론, 밥을 주는 것으로 업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배가 부른 호랑이들과 놀아줄 시간이었다.
“으악!”
이범은 자신 다음으로 경력이 오래된 사육사가 호랑이에게 덮쳐지는 것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그는 호돌이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습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란다 호돌아.”
물론, 한때 유도를 열심히 단련했던 이범에겐 소용없는 습격이었다. 앞발을 들이밀며 날아오는 호돌이 녀석을 그대로 잡아서, 업어치기 한 판을 날렸다.
커다란 덩치의 호돌이가 아주 가볍게 허공을 한 바퀴 돌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고양이과의 동물이라고, 녀석은 아주 가뿐하게 네 발로 착지했다. 호돌이도, 이범도 모두 진심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단순한 ‘장난’일뿐이었다. 호돌이는 오히려 한 번 더 해달라고 달려들었다. 녀석에겐 장난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악! 선배! 살려줘요!”
물론, 그런 장난은 나름대로 단련한 이범이나 가능한 것이었다. 호랑이에게 깔린 이범의 후배들은 호랑이들의 애정이 듬뿍 담긴 그루밍을 받아야 했다.
사악, 사악. 사포로 긁어대는 듯한 그루밍에 사육사들은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자비 없는 때밀이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