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29
0328 외전 – 사육사의 하루(2)
“으아악! 가죽 벗겨진다!”
“어휴, 저것들이 내 후배라니.”
이범은 호랑이들에게 그루밍당하며 가죽이 벗겨진다고 난리를 치는 후배들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고개를 내젓고 있으니 허리춤에 달아놓은 무전기가 소리를 토해냈다.
“고객총괄에서 5분 후 개장한다고 알림.”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시간이 흐른 덕에, 어느덧 오픈을 5분 앞둔 상황이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5분이 지나면 수많은 관람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올 것이었다.
“호돌아, 조금 있다가 오픈한단다.”
“크릉?”
이범이 호돌이에게 오픈을 알려주었으나, 그는 안타깝게도 호랑이와 대화할 수 있는 종류의 초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주머니에서 카드 뭉치를 꺼냈다. 사육사들에게 지급되는 것으로, 동물들과 기본적인 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카드였다. 카드마다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동물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호랑이들 기준으로는 식사를 의미하는 닭고기가 그려진 카드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카드 중에서 이범이 꺼내든 카드는 사람이 그려진 카드였다. 관람객들을 뜻하는 카드였는데, 곧 관람객들이 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크룽!”
그 카드를 확인한 호돌이는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언제나 고통받는 녀석이라며, 관람객들이 호랑이들에게 무척 잘 해주었기 때문이다. 맛있는 간식 같은 것들을 먹여주기도 하고, 놀아주기도 하니 관람객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돌아, 그러니까 쟤들 좀 어떻게 해줄래?”
호돌이가 이해했음을 파악한 이범은 곧장 다른 사육사들을 가리켰다. 호랑이들에게 깔려 그루밍 당하는 사육사들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호랑이들이 순하다고 해도 맹수는 맹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으니 꼭 필요한 인력이었다.
“크허엉!”
이범의 손짓에, 호돌이는 곧바로 크게 포효를 터트렸다. 매번 다른 동물들에게 치이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호랑이들의 우두머리였다. 녀석의 포효에, 다른 호랑이들이 잽싸게 호돌이에게 몰려들었다.
따가워-하고 투덜거리는 호랑이 담당 사육사들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 맞춰 관람객들이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아이들이 가장 앞다퉈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이 호랑이인 탓이었다. 사자나 호랑이를 동물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답게, 사자 없는 동물원의 왕을 호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와아! 진짜 머리에 한자가 있어! 호랑이가 동물의 왕이야!”
시대가 흐르며 한자를 거의 배우지 않게 되었음에도 기본적인 한자 정도는 교육을 하기 때문인지, 아이들은 호돌이의 머리에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는 왕(王)자 무늬를 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얘가?’
매번 이런저런 동물들에게 치이고 있는 호돌이가 왕이라는 소리에 순간 흠칫한 이범이었으나, 그는 어엿한 프로였다.
“우리 어린이, 동물의 왕이랑 인사해볼래요?”
“인사도 할 수 있어요?!”
“그럼요. 여기는 신수의 둥지니까요. 여기 있는 동물들은 평범한 동물이 아니라, 영물들이랍니다!”
“와아! 할래요! 할래!”
이범은 방방 뛰는 어린이들에게 호돌이의 인사를 보여주었다. 슬쩍 카드 하나를 보여주니, 호돌이가 엉덩이를 깔고 앉아 앞발 하나를 들고 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일본의 ‘마네키네코’라고 부르는, 앞발 하나를 흔드는 고양이 장식품처럼 앞발을 흔들었다.
“안녕! 안녕!”
어린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똑같이 손을 흔들어댔고, 저마다 부모님들에게 간식을 받아 호랑이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범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이 사고 나기 딱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줄 거라고 호랑이들의 입속으로 손을 불쑥 밀어 넣는 아이들이 꼭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무탈하게 첫 관람객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찾아오는 손님들은 커플들이었다. 주로 귀여운 동물들을 먼저 보는 코스로 많이 다녔기에, 호랑이는 조금 후순위에 있었던 탓이었다.
“꺄앙! 오빠, 나 호랑이 무서워!”
“오빠가 있는데 뭐가 무서워?”
‘아, 눈꼴 시려.’
염장 지르듯 애정행각을 과시하는 커플들의 모습에, 순간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는 남자를 꽁무니 빠져라 도망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이범이었다. 물론, 그랬다간 징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했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밤에 와서, 오빠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여줄게! 그때 우리 베이비가 원하는 굿즈 받아 갈 수 있을 거야.”
“정말?”
좋다며 꺅꺅 소리치는 여자의 모습에, 이범이 씩- 웃음을 지었다.
‘딱 대라.’
오늘은 그가 괴수의 둥지까지 특근을 하게 될 담당자였다. 기필코 기념품 상점에서 속옷과 바지의 매출을 하나 더 올리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적당히 관람객들의 응대를 이어갔다.
호돌이 외에도 여러 호랑이들을 관리하느라 이범은 아주 열심히 뛰어다녀야 했다.
땀이 삐질삐질 흐를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니, 허리춤에 있는 무전이 다시금 울렸다.
“포담 하나. 포동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알림. 목격하면 알려주기 바람.”
무전 내용을 들은 이범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렇게 뛰어다니고 있는 자신에게 무척 위안이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포동이들을 찾는답시고 포동이들을 담당하는 사육사가 하루에 뛰는 거리가 무척 길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누군가의 이야기로 누가 제일 힘드냐- 소리가 나왔었는데, 당당하게 1등을 차지한 것이 포동이들을 담당하는 사육사였다. 그 누구보다도 많은 거리를 뛰어다녀야 했으니 당당하게 1위에 오를 자격이 있었다.
“하루에 60km를 움직인다고 했지?”
살짝 눈만 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포동이들을 찾기 위해 하루에 움직이는 거리가 60km였다. 축구 선수들이 하루에 10km 정도를 뛴다는데, 그 6배에 달하는 거리였다.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스마트워치를 이용해서 측정한 거리를 인증하며 제일 힘든 사육사로 인정된 상황이었다.
“그 양반이 꼬장 부려서 오히려 다행이야…….”
그 기억을 떠올린 이범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길휘라는 이름 때문에 코끼리 담당이 되었다는 고길휘 사육사의 입김으로 인해서 이범이 호랑이 담당 사육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름에 호랑이를 뜻하는 범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호랑이 담당이 되었던 것이다. 나만 이름으로 고생할 순 없지- 하면서 꼬장을 부린 것이었다.
물론, 포동이들 담당 사육사들의 처지를 고려해 보면, 그것은 꼬장이 아니라 축복을 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호랑이들은 동물원 전체에서 가장 케어가 쉬운 녀석들이었으니 말이다.
호랑이들은 어떤 동물처럼 벽을 박살 내지도 않고, 어떤 동물처럼 서울을 비롯해서 게임 대회장을 왕복하지도 않고, 어떤 동물처럼 박수 치지 않는다고 물을 뿌리지도 않았다. 그냥 그루밍을 좋아할 뿐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상황에 감사함을 느끼던 이범은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이라고 관람객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었기에, 후배들과 교대로 식사를 해야 했다.
“대포동! ”
식사를 하기 위해 열심히 직원 식당으로 향하던 이범은, 대포동을 쫓아 열심히 뛰어다니는 포동이들 담당 사육사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러니 하루에 60km를 움직이지.
도와줄까 싶어도,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 선뜻 나서기 힘들었다. 게다가 맛있는 점심 식사를 놓칠 수도 없었고.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온갖 종류의 요리들이 직원 식당에 가득히 차려져 있었다. 어마어마한 활동량에 맞게, 사육사들의 식사량도 어마어마했기에 뷔페식이 제격이었다.
고봉밥, 머슴밥 같은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양을 듬뿍 퍼올린 이범은 빠르게 제 몫의 점심을 먹어 치웠다. 상급이나 최상급의 초능력자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요리에 관한 초능력자가 주방장으로 있는 덕에 맛 하나는 끝내주는 편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게 점심 식사를 무척 만족스럽게 해결한 이범은 다시금 업무를 이어갔다.
관람객과 호랑이들이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끔 다른 사육사들도 도와줘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평범한 동물원에서 가장 힘든 업무라고 할 수 있는 배설물 치우기는 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기에 무척 널널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물론, 호랑이 담당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또 꿀 빨고 있네.”
그렇게 다른 사육사들에 비해 여유롭게 근무하고 있던 도중, 토끼즈를 담당하는 사육사가 찾아왔다.
“꿀은 무슨. 꿀은 네가 빠는 거지. 토끼들이 무슨 사고를 친다고.”
“네가 몰라서 그래. 쟤들 요즘 벽돌부수기 하고 다니거든.”
“벽돌부수기?”
“어. 진짜 벽돌을 부수고 다녀.”
“…….”
이범은 토끼즈 담당 사육사의 말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쩐지 토끼즈 담당 사육사의 얼굴이 퀭한 느낌이더라- 생각이 드는 이범이었다. 토끼즈가 벽돌을 부수고 다녔으면 그걸 치우는 사람은 사육사와 시설관리팀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육사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토끼즈가 호돌이와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노는 것은 아니었다.
“……호담. 쟤들 뭐 하고 있는 것 같냐?”
“뭘? 그냥 노는 거 아냐?”
이범은 토끼즈 담당 사육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토끼즈와 호돌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토끼즈가 호돌이와 돌멩이를 가지고 노는 것이 보였다.
“……저거, 벽돌부수기야.”
“그게 무슨 소…….”
무슨 소리냐며 말을 하려던 이범의 입이 이내 닫혔다. 다름이 아니라, 토끼즈가 하는 것을 빤히 바라보던 호돌이가 데굴데굴 구르던 돌멩이를 쾅- 내려찍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돌멩이가 아니라 산산조각 난 돌가루만이 남아 있었다.
그 모습에 이범은 입을 다물고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대신, 머릿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여유로운 사육사 라이프도 이제 끝인가……?’
호돌이의 뒤처리를 하며 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막막한 이범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범의 마음을 모르는 토끼즈 담당 사육사는 느긋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토담 하나. 호돌이가 토끼즈한테 벽돌부수기 배웠다고 알림.”
별일 아닌 것을 말하는 듯이 태평한 어조였다. 하지만 그 무전을 들은 누군가는 태평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시설관리팀 막내입니다. 저희 팀장님 오열하고 계신다고 알립니다.”
“토담 하나. 호담 하나도 오열하고 있다고 알림.”
토끼즈 담당 사육사는, 호돌이를 향해 앞발을 척- 내미는 토끼즈들을 데리고 소동물 구역으로 돌아갔다. 호돌이는 조금 전에 배운 벽돌부수기를 다시 해본다고 정신이 없었다.
자그마한 돌멩이가 호돌이의 앞발에 으스러지며 부스러기가 주변으로 흩날렸다. 그렇게 흩날린 부스러기 일부가 이범의 얼굴에 뿌려질 때까지, 이범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
이범은 산산이 박살 나버린 돌멩이가 자신의 여유로운 사육사 라이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추욱- 늘어졌다.
그래도 호돌이라면 큰 사고는 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나름대로의 꿈을 꾸며, 근무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특별근무인 괴물의 둥지 특근을 시작한 이범은 자신이 꾸었던 꿈이 박살 나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크하아아앙-!”
호돌이가 장식용으로도 쓰고, 벤치로도 쓰는 바위 덩어리를 박살 내며 도전자를 놀래키러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다. 이범은 호돌이의 앞발이 휘둘러지는 것과 동시에 박살 난 바위가 자신의 여유로운 사육사 라이프임을 확신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오, 오빠! 나도 데려가야지!”
그나마 다행이라면 오전에 눈꼴 시린 애정행각을 벌인 커플이 찢어질 위기에 처하는 걸 똑똑히 봤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