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70
0369 재회
소은이가 알파카들에게 침 뱉는 걸 가르치는 사고가 있긴 했지만, 알파카들은 무사히 동물원에 적응했다.
어찌나 잘 적응했는지, 지나다니는 관람객을 붙잡고 자기 털에 묻은 것들을 떼 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기다란 목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등에 붙은 나뭇잎 같은 것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관람객이 그런 나뭇잎 같은 것들을 떼면 고맙다면서 털이 복슬복슬한 머리통을 부벼대고 있었다. 그런 행동을 하면 인간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금세 파악했기에 보이는 행동이었다.
물론, 그런 것보다는 알파카들이 좋아하는 건초를 들고 있는 것이 애교를 보기 더 쉬웠지만 말이다. 건초를 살랑살랑 흔들면 다가오고, 그걸 먹이는 사이에 마구 쓰다듬는 것이었다.
“알파카 털 진짜 부드럽다.”
“그러게. 조금 뭉친 거나 건초 조각 같은 게 있어서 옷감처럼 부드러운 건 아닌데, 그래도 생각보다 부드러워.”
“아조시, 나두 알파카 만지구 시퍼요!”
사람들은 새롭게 합류한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기 위해 줄까지 서고 있었다. 알파카의 풍성한 털을 쓰다듬던 남자들이 칭얼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멋쩍게 웃으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새로운 동물이 합류했을 때만 보이는 모습이었으니, 며칠에서 몇 주 정도만 있으면 줄을 서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하루나 이틀 만에 사라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알파카라는 동물은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처럼 줄이 서 있는 것은 알파카를 볼 수 있는 다른 곳과 달리, 조금 더 진한 교감을 나눌 수 있기에 보이는 풍경이었다. 아무리 먹이를 내밀어도 사람의 손을 피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동물원의 알파카는 오히려 더 쓰다듬어 달라고 들이밀 정도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다른 건초보다 조금 더 비싼 값에 파는 특제 알팔파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먼저 다가가서 애교를 부릴 정도였다.
“맛있는 거 가지고 있네에?”
알팔파의 냄새를 맡은 한 알파카가 제게 다가온 관람객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관람객은 그런 녀석의 모습에 팔을 들어 올려, 알팔파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보통의 알파카들이라면 여기서 포기했겠지만, 특제 알팔파의 맛을 아는 녀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공격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나 주라아. 응? 나 줘어.”
알파카 녀석은 순둥순둥한 얼굴로, 알팔파를 갖고 있는 관람객의 옷을 살며시 물어 당겼다. 물론, 옷이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알파카에겐 앞니가 아래에만 존재하고 있어, 무언가를 상하게 하기 쉽지가 않았다. 앞니는 풀을 어금니 쪽으로 옮기기 위해 사용하는 용도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렇게 무해하기 짝이 없는 애원에, 알팔파를 갖고 있는 관람객에 패배를 선언했다. 손에서 조금씩 알팔파를 덜어내어, 알파카에게 먹여 주는 것이었다.
“흐, 부드럽다.”
당연히 그렇게 알파카가 알팔파에 정신이 팔린 사이, 관람객은 부드러운 알파카 털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웬만해서는 만지지 못하게 퍼덕거리는 귀까지 조심스럽게 만질 수 있었다. 알팔파에 정신이 제대로 팔린 상태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 모습에, 다른 먹이보다 비싼 값에 팔리는 특제 알팔파를 구매하러 가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약간이긴 해도 수익성이 상승했다는 것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흐흐, 건강하게만 지내라.”
나는 그런 알파카들의 모습에, 녀석들이 부디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싶었다. 털도 좀 부드럽게 자라나서, 만질 맛도 좀 났으면 하고 말이다. 알파카를 그냥 보는 것도 좋긴 하지만, 부드러운 그 털을 만지는 것만큼 좋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어젯밤에 휴대폰으로 잠깐 게임을 하면서 무음모드로 바꿔놨는데, 푸는 걸 깜빡했다.
아무튼, 진동이 울리는 것에,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다.
[무하마드]“오, 무하마드네?”
휴대폰을 확인하니, 오랜만에 보는 이름이 보였다. 병원에서 건강을 조금 회복하고 우리 동물원 근처에 있는 직원용 숙소에서 지내기로 했었는데,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미뤄진 상황이었다.
소은이를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뽀니 녀석이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뛰다가 무하마드의 갈비뼈를 금 가게 했다던가…….
압둘이라는 애니멀커뮤니케이터를 소개시켜준 이후, 직원용 숙소로 들어올 예정이었는데 뼈에 금이 가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무하마드가 우리 직원용 숙소에 들어오는 것이 무척 늦어진 상황이었다. 이제 슬슬 뼈가 잘 붙지 않을 나이였으니 회복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무하마드! 갈비뼈는 어때요?”
“무척 괜찮아졌어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다행이네요. 뽀니는요?”
“뽀니는 많이 얌전해졌어요. 그래도, 또 들이받히긴 싫어서, 퇴원하는 건 비밀로 할 예정이에요.”
들이받혔던 게 꽤나 큰 충격이었던 건지, 작게 한숨까지 내쉬고 있었다.
“퇴원은 언제쯤 할 거예요?”
“모레 할 것 같아요. 혹시, 아직 숙소에 자리 있어요?”
“당연히 있죠. 무하마드를 위해서 따로 리모델링도 해놨으니, 오기만 하면 돼요.”
“정말 고마워요!”
여전히 드세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인 상황에서, 드세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 할 수 있는 직원용 숙소를 준다고 하니 무척 고마워했다. 아무래도 병원에서 오래 있다 보니, 건강에 특히 신경을 쓰는 듯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런 무하마드의 사정을 이용해서 이득을 볼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무하마드에게 받은 게 워낙 많아서, 이렇게라도 해야 조금 부담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조금 더 신경을 써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이참에 모레 제가 직접 그쪽으로 갈게요. 병문안도 못 갔는데, 퇴원하는 거라도 도와야죠.”
“그러지 않아도 돼요. 드루이드의 호의는 이미 충분히 받았어요.”
“거절하지 않는 게 좋을 걸요? 뽀니 그 녀석, 꽤 똑똑해져서 짐 싸는 것만 봐도 퇴원한다는 걸 눈치챌 텐데……. 퇴원하면 이미 우리 동물원에 온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건데…….”
“드루이드, 모레 언제 올 건가요?”
또 기쁨에 폴짝폴짝 뛰는 뽀니에게 받히거나, 발을 밟힐 것임을 예측한 무하마드가 급히 말을 바꿨다.
그 모습에 푸흐흐- 웃음을 흘리며, 아침에 도착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내가 뽀니를 진정시키는 사이, 무하마드가 짐을 싸고 함께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무하마드를 데리러 가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순식간에 시간이 지난 것이었다.
“뽀니야, 오랜만이야.”
“공주님은……?”
“오랜만에 보는 건데 소은이부터 찾는 거냐고.”
인사는 하지 않고, 내 뒤를 자꾸 힐끔거리는 뽀니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 아무리 소은이가 좋아도 그렇지.
나는 괜히 심통이 나, 녀석의 갈기를 마구 쓰다듬으며 헝클었다. 그리고, 그제야 녀석이 내게 머리를 비벼대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최애가 무하마드와 소은이라면, 나는 그다음 정도는 되었기 때문이다.
“뽀니야. 소은이 보고 싶지?”
“당연하죠!”
말해 뭐 하겠냐는 듯이 푸르릉- 소리를 내며 대답하는 뽀니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소은이와 있을 때는 무하마드를 보고 싶어 하더니, 무하마드와 있을 때는 소은이를 보고 싶어 하는 중이었다.
“그럼 소은이 보러 가자.”
“와!”
내 말에 뽀니 녀석이 순간 기뻐하며 폴짝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내 제 뒤편에 있던 무하마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소은이를 보러 가는 건 좋은데, 무하마드는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무하마드도 같이 갈 거야. 앞으로 같이 살 거야. 아, 같은 집에서 사는 건 아니고, 동물원 직원들이 사는 집 있잖아? 거기서 지낼 거야. 뽀니 너는 원하면 동물원에서 자도 되고, 무하마드랑 같은 집에서 지내도 돼.”
“히이이이이이잉!”
무하마드는 물론이고 소은이와도 함께 지낼 수 있다는 소리에, 뽀니가 미친 듯이 폴짝폴짝 뛰었다. 머리까지 휙휙 흔들어대며 뛰는 모습을 보니, 갈비뼈에 금을 가게 할 정도의 위력은 되어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날뛰는 뽀니에게 받혀서 갈비뼈에 금이 갔던 건지, 무하마드가 슬쩍 거리를 벌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날뛰는 뽀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멈춰!”
따다닥. 마법의 단어가 외쳐지는 것과 동시에, 날뛰던 뽀니 녀석이 몸을 굳히며 바닥에 착지했다. 발굽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녀석이 날뛰지 않았다. 그저 눈만 꿈뻑이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 그렇게 날뛰다가 무하마드 갈비뼈에 금 가게 했다며? 이제 자중해야지. 무하마드가 또 다치면 소은이랑 만나는 게 더 오래 걸릴 건데?”
자신 때문에 다쳤던 무하마드가 떠올랐는지, 뽀니는 금세 진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신난 것은 숨기지 못했다. 마구 날뛰는 건 아니지만, 몸을 까딱거리면서 온몸으로 기분을 표현하고 있었다.
“후후, 우리 착한 뽀니.”
무하마드는 얌전하게 신났음을 표현하는 뽀니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뽀니가 얌전해진 틈을 타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뭔가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인지, 짐가방 하나에 대충 이것저것 쑤셔 넣고 나니 짐 정리가 끝이 났다.
“짐이 별로 없네요?”
“병원에만 있었으니까요. 업무에 필요한 노트북이랑, 산책 갈 때 입을 외투 정도면 충분했죠.”
나머지는 다 병문안 선물 받은 거라 어쩔 수 없이 챙겨가는 거라며, 짐가방 하나를 휘휘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뽀니가 무하마드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다.
“흐……?”
무하마드는 불쑥 들어오는 뽀니의 머리에 순간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저번에도 짐을 싸다가 뽀니에게 들이받혀서 갈비뼈에 금이 갔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뽀니는 무하마드의 갈비뼈를 다시금 노리려고 머리를 들이민 것이 아니었다.
“므흐어? 으스그즈!”
녀석은 무하마드가 들고 있던 짐가방을 베어 물더니, 어서 가자는 듯이 병실의 문을 토도독 두드렸다. 고개까지 문을 향해 까딱거리는 것을 보면 정말 빨리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무하마드, 뽀니가 어서 가자는데요?”
“우리 뽀니가 공주님을 많이 보고 싶은가 보네요.”
“무하마드 갈비뼈에 금을 낼 정도로 보고 싶은 거죠.”
무하마드가 그것도 그렇다며 푸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어서 가죠. 빨리 안 간다고 이번엔 정말 갈비뼈를 부러트릴지도 모르니까요.”
가슴팍을 슥슥 문지른 무하마드는 곧바로 병원을 나서, 부산으로 향했다. 원래는 비행기를 타려 했지만, 강풍으로 결항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에 그냥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물론, 동물과 함께 탑승할 목적으로 기차 한 량 전체를 빌려서 말이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우리는 곧바로 동물원으로 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동물원으로 가는 길에 은수를 유치원에서 데려가기도 했다.
“무하마드 아저씨 기억하지?”
“웅. 안녕하세요.”
은수는 유치원에서 배운 인사법을 고스란히 따라 했다. 배꼽 위에 손을 가지런히 올리고, 무하마드에게 꾸벅- 인사한 것이었다.
무하마드는 그런 은수가 귀엽다는 듯이 흐뭇하게 웃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은수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은수 선물이예요.”
“와! 고마씀미다!”
은수는 제게 내밀어지는 것을 보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뻐했다. 무하마드가 준 것이, 남녀노소 누구나 착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목걸이에, 금으로 만든 당근이 대롱대롱 매달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은수의 마음에 쏙 들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애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금으로 된 장식들을 주니, 집에 금 토끼나 금 당근이 제법 있었기 때문이다. 은수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무하마드를 금 당근 아저씨로 기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은수를 픽업한 우리는 곧바로 동물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동물원에서 알파카들과 놀고 있던 소은이가 우리를 발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사이에 있는 뽀니를 발견했다.
“뽀니?! 뽀니야? 뽀니이이이이!”
소은이는 뽀니를 발견하고 순간 자기가 잘못 본 건가 싶은지, 눈을 비볐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뽀니의 모습에, 냅다 뽀니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공주니이이이임-!”
당연하게도 그것은 뽀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향해 있는 힘껏 질주한 둘은, 그대로 서로에게 안겨들었다. 물론, 뽀니에게 받혀 갈비뼈에 금이 간 무하마드 같은 결과가 있지는 않았다. 소은이가 요령 좋게 몸을 비틀며, 뽀니의 목덜미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뽀니야!”
“공주님!”
다치지 않고 멀쩡하게 서로에게 달라붙은 둘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것을 풀겠다는 듯,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은이는 뽀니의 갈기를 비롯해서 등허리까지 마구 쓰다듬었고, 뽀니는 연신 푸르릉 거리며 소은이에게 머리를 비벼댔다.
아무리 봐도 십여 분 이상은 붙어 있을 것 같았기에, 나는 곧바로 무하마드를 데리고 무하마드가 한동안 기거할 집을 소개해 주었다. 그가 살던 곳에 비하면 초라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무하마드는 최고의 드세권이야 말로 흉내 낼 수 없는 프리미엄이라고 좋아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