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395
0394 라떼(1)
동물원에 사람이든 동물이든 사랑이 가득 넘쳐흐르니, 많은 것들이 새롭게 생겨났다.
새로운 관람객, 새로운 관람 아이템, 새로운 굿즈, 새로운 테마관. 정말 여러 가지가 생겨났지만, 그렇게 생겨난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우리 동물원에 ‘새끼 동물’들이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짝이 생긴 동물들 대부분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번식 활동 역시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번식 활동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보니, 소은이가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고도 여름이 될 즈음이 되니 새끼 동물들이 꽤나 많이 태어나게 되었다. 오죽하면 새끼 동물들을 한 번에 케어할 수 있는 테마관도 만들 정도였다.
그 테마관은 유아 테마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새끼들과 그 새끼들을 케어해 주는 몇몇 부모 동물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아 테마관에는 관람객들이 대부분 비슷한 리액션을 보이는 편이었다.
“헤헤……. 귀여워…….”
아주 흐뭇하게 웃으면서 헤벌쭉하게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현생에 지치고 피곤한 이들이라 하더라도 새끼 동물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간혹 제 새끼들을 자랑하는 어미 동물들이 새끼를 품에 안겨주기라도 한다면 곧 성불할 것 같은 얼굴로 웃기도 했다.
덕분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심장자동충격기를 주변에 세 대나 비치해둬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보유한 이를 유아 테마관의 담당자로 채용마저 한 상태였다.
아무튼, 그렇게 새끼 동물들이 가득한 유아 테마관은 무척이나 인기가 좋았다. 소은이가 다른 곳은 찾지 않더라도 매일매일 반드시 찾아가는 곳일 정도로.
“히히히히. 압빠! 얘들 엄청 귀여워!”
“아빠는 우리 소은이가 더 귀여운데.”
“아잇, 차암! 나는 당연히 귀엽지!”
자기가 귀여운 걸 잘 아는 소은이는 내 말에 장난스레 윙크를 했다. 눈 옆에서 검지와 중지를 펼쳐서 V자를 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눈도 못 뜨고 뺙뺙 거리기만 하는 새끼 레서판다를 품에 안은 채로 웃는 소은이의 모습은 무척이나 귀여웠다. 자기가 귀여운 걸 아는 것이 꼴불견이 아니라,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꺄아악!”
그런데 귀여운 소은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으니 근처에서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뭔가 싶어 비명이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물론, 그 곰은 우리 동물원에서 사는 곰돌이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곰돌이가 우리를 탈출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풀어놓은 녀석이었으니까. 장난으로라도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녀석이라 풀어둔 상태였다.
조금 전에 들려온 그 비명소리의 주인도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고 있었다. 다른 곳을 보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녀석의 모습에 놀란 관람객이 짧게 내지른 비명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곰돌이 녀석의 털을 만져보며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여긴 웬일이래?”
평소에는 제 마누라라고 할 수 있는 북극곰, 백설기가 지내는 얼음궁전에서 나오질 않는 편인데 이렇게 밖을 나돌고 있으니 조금 의아함이 들었다.
“압빠. 곰돌이 여기로 오는데?”
곰돌이 녀석이 밖을 나도는 것에 의아해하던 도중, 마찬가지로 곰돌이를 발견한 소은이가 곰돌이를 가리켰다. 자기 때문에 놀란 관람객에게 잠깐 털을 만지게 해주던 녀석은 소은이가 말한 대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큼직한 코 끝으로 자동문 버튼을 쿡 누른 곰돌이는 부드럽게 열린 문을 지나쳐 우리에게 다가왔다.
“얼음궁전 밖엔 오랜만이다?”
근처에 다가와서 퍼질러 앉는 곰돌이를 슥슥 쓰다듬어 주면서 물었다. 말 그대로 얼음궁전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녀석이 나왔으니 말이다.
물론, 녀석에게도 나름대로 이유는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녀석의 짝인 백설기가 현재 임신 상태였기 때문이다. 제 새끼를 배고 있는 백설기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중이었다.
세 마리 곰이 한 집에 산다는 동요가 있긴 하지만 실제 곰들은 한 집에 살지 않는다. 수컷은 번식기에만 암컷을 찾지, 실제로는 관심도 갖지 않는 동물이었다. 다만, 곰돌이는 그러한 곰과 다르게 백설기를 아주 애지중지 아끼고 있었다.
곰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곰돌이를 보면서 별종 중의 별종이라고 말할 정도로 특이한 녀석인 것이었다.
아무튼, 그러한 곰돌이는 얼음궁전에서 백설기와 함께 있는다고 바깥을 잘 나돌지 않았다. 그런 녀석이 바깥을 나돌아다니고 있으니 의아한 상태였다.
“부탁이 있시유.”
그리고, 그런 곰돌이는 아무 이유 없이 얼음궁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부탁? 무슨 부탁인데?”
“꿀을 좀 주면 안 되나유?”
“꿀? 아…….”
곰돌이의 말에 녀석이 왜 나와 소은이가 있는 곳을 찾아온 건지 알 수 있었다. 녀석이 툭하면 우리 집 벌꿀을 훔쳐다가 백설기에게 먹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벌크업이라도 한 듯 덩치가 더 커진 곰돌이의 무게를 담벼락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녀석에게 절대로 담벼락을 넘지 말라고 해둔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벌꿀을 얻기 위해 우리를 찾은 것이었다.
“설기 씨가 꼬옥 꿀을 먹고 싶다고 하지 뭐예유. 새끼도 있는디, 잘 먹여야쥬.”
백설기가 원한다는 말에, 곁에 있던 소은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물원에 새끼를 가진 동물들이 많아지다 보니, 소은이도 새끼를 밴 어미 동물들이 먹이를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백설기 줄 거야? 그럼 내가 챙겨줄게!”
새끼를 밴 백설기를 위한 것이라는 소리에, 소은이는 당장 집으로 가서 꿀을 챙겨주려는 모습을 보였다. 안 그래도 백설기가 곧 출산을 앞두고 있었기에, 소은이는 종종 백설기에게 맛있는 간식을 챙겨다 주곤 했었다.
“그럼 소은이가 곰돌이한테 꿀 챙겨줄래?”
“웅!”
우리 가족을 제외하면 멀쩡하게 꿀을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이나 동물은 없었다. 그러니 꿀을 챙겨주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 중 한 명이 직접 나서야 하는 상태였다.
“아빠는 새끼 동물들 조금 보고 백설기한테 갈 테니까, 소은이는 곰돌이랑 같이 꿀 갖고 백설기한테 갈래?”
“웅! 곰돌아 가자!”
소은이는 곧바로 곰돌이를 타고 집으로 움직였다. 소은이가 3학년이 되며 조금 더 커졌지만, 여전히 커다란 곰돌이는 소은이를 가볍게 태웠다.
훌쩍 떠나가는 소은이와 곰돌이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새끼 동물들을 살폈다. 매일매일 성장하는 녀석들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특이 사항 같은 게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일반 직원들이 하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것이 더 수월하고 편했기 때문에 직접 하고 있었다. 새끼들도 스트레스를 덜 받기도 하고 말이다.
“오, 어제보다 무게가 늘었는데? 잘 먹였나 봐? 이대로면 엄청 크게 자라겠네.”
조금 전까지 소은이가 안고 있던 새끼 레서판다를 저울에 올리니, 어제에 비해서 몇십 그램이나 무게가 늘었다.
어미 레서판다의 품에 새끼를 안겨주며 그것을 말하니, 레서판다가 기분 좋다는 듯이 그르릉 소리를 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 새끼를 칭찬해 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레서판다 특유의 그 ‘주겨벌랑’하는 위협도 없이, 그저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동물들의 새끼를 확인한 다음, 곧바로 얼음궁전으로 향했다. 새끼를 배고 있는 백설기도 주기적으로 확인을 하는 대상이었다.
“압빠아아아!”
그리고 얼음궁전을 향해 천천히 걷고 있으니, 멀리서 소은이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어……?”
소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린 나는 순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소은이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는 곰돌이의 모습 때문이었다.
지금 곰돌이 녀석은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딱히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곰돌이는 종종 이족보행을 하면서 춤도 추는 녀석이었으니 말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녀석의 앞발에 들려 있는 것이었다.
우리 집 꿀벌들이 우리 가족에게 먹으라고 따로 꿀을 담아주는 벌집이 녀석의 앞발에 들려 있는 것이었다.
“……소은아. 저걸 그냥 벌집째로 뗀 거야?”
“웅! 우리 백설기 많이 먹어야 하니까!”
소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이가 직접 뗀 것이 아니라면 곰돌이가 멀쩡하게 있을 리가 없긴 하지.
동물을 챙기는 마음이 기특한 소은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다가 문득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황한 소은이가 눈을 땡그랗게 뜨고 시선을 여기저기 옮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소은아 그럼 아빠랑 엄마랑 은수는 뭐 먹어?”
“괜찮아! 내가 새 집 지어달라고 했어!”
“아, 그래?”
소은이가 순간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소은이는 미리 준비했다는 것처럼 부드럽게 대답했다.
하긴, 우리 집에서 꿀벌들의 꿀을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이 소은인데, 이런 것도 준비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소은이와 함께 얼음궁전으로 향했다. 꽤나 뜨끈뜨끈한 햇살을 피해 그늘로 다니면서 얼음궁전에 도착하니, 입구에서부터 냉기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새하얀 연기가 흘러나오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자, 방한복 잘 챙겨 입고.”
냉기가 흐르는 곳 앞에서 소은이와 함께 방한복을 챙겨 입고, 백설기가 있는 얼음궁전으로 들어갔다.
찜통 같은 열기가 느껴지는 바깥과는 다르게 내부에는 피부를 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온통 얼음이 가득한 내부에는 북극권이나 툰드라 기후 지역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이 있었다.
새하얀 털을 자랑하는 북극여우 같은 녀석들이나, 지금 찾아온 주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북극곰인 백설기가 있는 장소였다.
“흰둥이 안녕! 하양이 안녕!”
소은이는 얼음궁전 내부에서 쉬고 있던 흰머리오목눈이 흰둥이와 새하얀 털을 가진 북극여우 하양이를 향해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렇게 내부에 있는 몇몇 동물들과 함께 잠시 걷다 보니, 백설기가 쉬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왔어? 아! 우리 귀염둥이 왔구나! 언니 보고 싶어서 온 거지?”
가장 앞에서 나와 함께 꿀이 가득한 벌집을 들고 걷던 곰돌이를 보고 반색하던 백설기는 뒤에서 얼굴을 뿅 내미는 소은이를 보고 무척 즐겁다는 모습을 보였다.
소은이는 그런 백설기에게 도도도도- 달려가서 덥석 안겨들었다. 백설기는 그런 소은이를 슬쩍 끌어안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지만 소은이는 그런 백설기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우리 귀염둥이 왜 그래? 언니가 안아주는 거 싫어?”
“설기는 애기 있잖아. 배에 올라가면 안 되는 거야!”
“아항. 우리 귀염둥이가 언니 걱정해 준거구나!”
백설기는 자기를 생각해 주는 소은이가 무척 좋다는 듯이 소은이에게 머리를 비벼댔다.
그렇게 한참을 소은이와 놀던 백설기는 슬쩍 다가와 꿀단지……가 아니라, 벌집을 내미는 곰돌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와! 곰돌아 고마워! 이리 와, 같이 먹자.”
백설기는 곰돌이도 좋다며 가볍게 스킨십을 하더니, 곰돌이와 함께 벌집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빨이 벌집을 으적으적 씹으며 달콤한 꿀을 탐했다.
“악! 벌집 이빨에 끼면 닦기 힘든데!”
근처에서 곰돌이와 백설기의 사육사들이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에이, 착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