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1
0040 진상 등장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울먹이려는 영지의 모습을 보며 급히 물었다.
“이상한 아줌마가! 화 내고 있어요오!”
“뭐?”
영지의 말을 순간 이해하지 못한 나였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영지의 말이 ‘진상’의 출현을 암시한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영지가 달려왔던 방향으로 빠르게 튀어갔다.
“지금 나보고 나가라고 한 거예욧!”
“손님. 저희 카페 규정입니다. 이용수칙을 지키지 않은 분들은 저희 카페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지금 바로 퇴장해주십시오.”
빠르게 달려가니, 한 덩치 좋은 직원이 태평한 얼굴로 조곤조곤하게 말하고 있었다.
음. 교육 잘 됐네. 하긴, 누가 교육 했는데.
내가 한 교육의 성과가 보이는 것에, 나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상의 진상력은 내 예상보다도 더 대단했다.
“그딴 이용수칙 나는 몰라! 사장 나오라 그래!”
“손님이 방금 앉아 계셨던 테이블에도 붙어 있고, 주문할 때 보이는 메뉴판 옆에도 붙어 있고, 지금 바로 뒤에도 붙어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 하시는 거겠죠.”
“야! 너 말 다 했어?”
직원이 아주 조곤조곤하게 팩트로 후려패니, 진상은 부들부들 떨어댔다.
진동모드의 휴대폰마냥 부들부들 떨어대는 진상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직원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 안 했습니다. 손님은 저희 카페 이용수칙을 위반하셨으니 바로 퇴장해주십시오. 지속적으로 퇴장 요청을 거부하실 경우 영업방해로 신고하겠습니다.”
직원은 태평한 얼굴로 퇴장을 요구했다.
다른 카페나 식당 같은 곳이라면 불가능한 언행이었겠지만, 우리 카페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교육했으니까.
진상 손님이 내뱉는 거짓된 소문이나 리뷰등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그런 것에서 꽤나 자유로웠다.
별점테러? 내게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대체제가 없는 우리 카페 특성상, 평점이 조금 낮아진다고 찾아 올 사람들이 안 오는 것은 아니었다.
“사장 나와!”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진상짓이 패시브라서 떨쳐내지 못하는 건지……. 진상 손님은 자꾸 나를 찾았다.
“사장님께서 지시한 사항이니, 사장님을 찾으실 것 없이 나가시면 됩니다.”
“야!”
“소리치지 마세요. 여기는 카페입니다.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으신 분들도 있는 장소니, 괜한 소음공해를 일으키지 마시길 바랍니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모릅니다. 그래도 진상이라는 건 알겠네요. 바로 퇴장해주시기 바랍니다.”
직원은 아주 단호한 모습으로 출구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열이 받는 건지, 진상은 뒷덜미를 감싸며 부들부들 떨었다.
‘119 불러야 하나? 저 진상, 혈압 올라서 쓰러지려는 거 같은데.’
내가 진상의 건강 걱정까지 할 정도로, 진상의 상태는 좋지 않아 보였다.
“이게 꼬박꼬박 말대꾸 하면서 기어올라? 너 내가 가만 안 둬!”
하지만 역시, 진상의 걱정은 하등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진상은 화를 참지 못한다는 건지, 직원의 따귀를 때리기 위해 손을 휘둘렀다.
“어이쿠, 이거 폭행미수입니다.”
당연하지만 그 따귀가 직원에게 맞는 일은 없었다.
지금 진상을 상대하고 있는 직원은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현재 학비를 벌기 위해서 잠깐 휴학하고 있는 체대생으로, 이종격투기를 전공으로 삼고 있었다.
진상이 기습적으로 날린 따귀라 하더라도, 이미 단련 된 직원의 반응보다 빠를 수는 없던 것이었다.
“자, 바로 퇴장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업방해, 동물보호법위반, 폭행미수 등등 이런저런 죄로 신고할 겁니다.”
“야아아아악!”
따귀를 때리려고 했음에도 때리지 못하고, 오히려 더 열이 받은 진상은 악을 쓰며 어떻게든 직원을 때리려고 했다.
나는 그 모습에,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며 진상 아줌마에게로 다가갔다.
“완덕아.”
“앗, 사장님.”
직원, 완덕이에게 다가가니 완덕이가 구세주를 본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단련해서 맞지 않을 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반격하거나 진상을 퇴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난감해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사장이야? 직원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직원이 이 따위야!”
그리고, 직원의 말을 들은 진상이 나를 바라보며 따다다다 쏘아댔다.
어우, 침 튀는 거 봐라. 세계적인 전염병이라도 있는 세상이었다면 바로 뮤튜브 박제 될 수준이었다.
“완덕아.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은 무슨 일! 당신이 직원 교육을 똑바로 못 시켜서 이렇게 된 거 아냐!”
“사장님. 그게요. 저 분이 치킨이를 괴롭혀서, 퇴장 요청을 했더니 이러시네요.”
“뭐? 괴롭혀?”
나는 직원의 말에 눈썹을 꿈틀거리며 진상을 바라보았다.
“그게 뭘 괴롭힌 거야! 그냥 좀 만진 거 가지고! 별 꼴이야 증말!”
“사장님. 치킨이가 방해금지 팻말을 걸고 있었어요.”
“하……. 당장 나가세요.”
명백하게 이용수칙을 위반한 진상임을 확인한 나는, 직원이 그러했듯이 퇴장을 요구했다.
“못 나가! 너 내가 누군지 아냐고!”
그렇지만 진상은 퇴장하긴 커녕, 오히려 나를 향해 악을 써댔다.
음, 그렇지. 나가면 진상이 아니지.
허나, 진상은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진상도 어르고 달래는 다른 가게 사장들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너는 내가 누군지 알아!”
진상의 가장 손쉬운 퇴치 방법은……. 미러전이다. 진상을 퇴치하는데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진상이었다.
“뭐, 뭣……?”
“내가 누군지 아냐고! 왜 여기서 행패야!”
“그, 그게 무, 무으…….”
역시 미러전의 효과는 대단했다. 방금까지 악을 써가며 소리치던 진상이 혀에 문제라도 생긴건지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진상으로서의 자존심이 있는지, 진상은 이내 마음을 가다듬더니 반격을 시작했다.
“너 가만 안 둬! 우리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알아?!”
“너는 우리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인 줄 알아?!”
“이, 이이익!”
진상은 분하다는 듯이 벌벌 떨고 있었다.
‘역시, 은퇴하고 등짝 맞으면서도 낚시하러 다니는 양반은 못 이기지.’
조만간 아빠에게 낚싯대 하나를 사주기로 마음먹으며, 어디 한 번 반격해보라는 듯이 진상을 바라보았다.
“내, 내 남편이 너 가만 안 둘 거야!”
“그럼 내 마누라가 너 가만 안 둘 거야!”
“아아아악! 너, 장난해?!”
거듭된 미러전에 결국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진상은 직원에게 그러했듯이 손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쪼로로로록
“치킨이의 복수다!”
“꺄아아아악!”
손을 들어올린 진상은, 자신의 발에 느껴지는 뜨끈한 느낌에 비명을 내지르며 몇 걸음 후퇴했다.
같은 짜리몽땅이라고 유대감을 느끼는 짜몽이가, 치킨이의 복수라며 진상의 발에다가 오줌을 갈긴 것이었다.
“똥개가!”
당연히 그런 짜몽이의 행동에 또 다시 열이 받은 진상은 짜몽이를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일 필요가 없었다.
“이 유부의 친우를 건들이도록 놔두지 않겠소이다!”
“꺄으악!”
갑자기 나타난 유부가,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진상의 눈 앞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눈 앞이 순식간에 부엉이로 가득 찼다가 사라지는 것에 화들짝 놀란 진상은 그대로 넘어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것도, 짜몽이가 만들어낸 웅덩이 위에.
“풉.”
“가, 가만 안 둘 거야!”
진상은 한껏 화가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진상의 수난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써레기다! 써레기!”
“와따, 써레기 함 크네! 빨리 간식 도! 써레기다!”
진상은 우리 카페에 있는 두 마리 죄수들에게 쓰레기 취급을 받았다. 두 녀석은 바닥에 넘어진 진상의, 짜몽이의 흔적이 없는 쪽의 바짓자락을 쿡쿡 잡아당기며 간식을 요구했다. 자기들이 가져왔으니 간식을 내놓아라- 라는 뜻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라쿤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시킨대로 잘 하네. 옛다, 많이 먹어라.”
마치 진상에게 보라는 듯이, 라쿤 녀석들에게 간식 한 주먹을 주었다.
두 라쿤은 희희낙락하며 간식을 끌어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
“도적들이 진상을 쓰레기라고 인정했나봐!”
“어우, 얼마나 잘못했길래 화장실 쓰는 짜몽이가 오줌을 갈겼겠어?”
“하여간 진상들이 문제라니까. 동물들이 싫다고 하면 그냥 안 건들면 되지.”
“그냥 보기만 해도 귀엽고 좋은데, 꼭 괴롭혀야 속이 풀리는 건가?”
“아빠나 남편이 뭐 있나? 무슨 자신감이래.”
그리고, 그렇게 라쿤들이 쓰레기로 인정한 진상의 모습에,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커져갔다.
하나같이 바닥에 널부러진 진상을 욕하는 소리였다.
내가 들을 수 있는 소리를 진상 역시 들을 수 있었기에, 진상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두고 봐!”
벌떡 일어난 진상은 나를 살벌하게 노려보더니 얼굴을 슬며시 가리며 호다닥 도망쳤다. 삼류 악당만도 못한, 추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다.
“수환아. 괜찮을까?”
그렇게 도망치는 진상의 모습을 확인한 누나가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
진상을 쫓아낸 것 자체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진상이 남긴 말이 걱정되는 듯했다. 찾아와서 해코지를 하는 게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진상 치고, 빽 있는 것들은 없어. 자기의 열등감을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표출하려는 마인드가 진상을 만드는 거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그건 그렇고, 너 진상이랑 말싸움 하면서 나는 왜 언급해?”
“뭐 어때. 누나가 꼬집는 게 얼마나 아픈데. 진상 부부가 찾아오면 나는 남편 쪽에 라이트 훅을 갈길테니까, 누나는 그 아줌마를 꼬집어버려.”
내 말에 누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푸흐- 소리를 내며 웃음을 지었다.
‘아니 진심인데.’
나는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누나는 장난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누나가 진심으로 꼬집으면 얼마나 아픈데?
그래도 그걸 정정해줘봐야 내가 꼬집힐 것이 뻔했으니, 잘 됐다 여기며 마주 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웃음을 터트린 우리는 어느새 치킨이를 안고서 해맑게 웃고 있는 영지에게로 다가갔다.
영지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달려온 것은, 치킨이가 괴롭혀지는 것 때문이었다. 그 원인인 진상을 퇴치했으니, 영지가 울먹이는 표정을 짓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영지는 자기가 더 놀랐으면서도 치킨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달래주고 있었다.
“괜찮아?”
“네엥! 치킨이도 괜찮은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영지는 해맑게 웃으며, 쓰다듬어주고 있던 치킨이를 들어올렸다. 콧잔등을 슬쩍 핥고 있는 모습을 보니 딱히 문제가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치킨이의 목에는 건들지마시오- 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다.
물론, 그 팻말이 있긴 하지만 치킨이는 영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거의 매일, 아무리 못 해도 30분씩은 우리 집에 들러 동물들과 놀다가 퇴근하는 영지였으니 동물들에겐 영지도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치킨이가 지금 거부하는 것은 생판 모르는 남의 손길이지, 가족의 손길인 것은 아니었다.
“근데 치킨아. 갑자기 이건 왜 걸고 있었던 거야?”
“배가 불러서요!”
“아, 그러셔…….”
사람들이 가볍게 만지면서 간식을 먹이는 경우가 많다보니 배가 부르다고 접근마저 차단한 듯했다.
약간 황당한 이유였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황당함에 피식 웃음을 짓고서, 영지와 치킨이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둘 다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진상도 퇴치 했으니 문제될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