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48
0047 불청객
“피……?”
바닥에 널부러진 남자의 근처에는 약간의 혈흔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다급히 휴대폰을 꺼내들고 119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쓰러진 사람이 있어요.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는데, 피도 흘리고……. 예, 예. 아무튼 빨리 와주세요.”
119에 전화를 건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신음하는 남자의 곁에 있던 유부를 바라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유부는 당장이라도 쪼아버리겠다는 듯이 부리를 날카롭게 내밀며, 날개를 들어올려 몸을 부풀리고 있었다.
“이 자는 도둑이오! 그대들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들어왔다가, 우리들에게 퇴치 당한 거요!”
“……도둑이라고?”
“히익!”
도둑이라는 말에, 내 뒷편에 있던 누나가 화들짝 놀라며 내 등 뒤로 숨었다.
바닥에 널부러져서 신음하는 꼬라지를 보면 딱히 겁 먹을 필요는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누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누나를 진정시킨 나는 유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물었다.
“얼마 되지 않았소. 이 자가 갑자기 담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 말이오. 그 이후로, 이 자가 문을 부수려는 행동을 했소이다. 도둑이라고 확신이 들었기에 우리가 힘을 합쳐 도둑을 퇴치한 것이오!”
“……도대체 어떻게 퇴치를 했길래 이 모양이야?”
“시작은 그 괴물 고양이요. 얼굴을 그대로 할퀴었지. 나는 괴물 고양이를 걷어차려는 것을 방해했고, 곧바로 마루가 몸통 박치기를 하며 자빠트렸소. 그 이후에는 그냥 집단으로 밟아버렸소.”
“…….”
아주 자랑스럽게 집단으로 린치를 가했다 말하는 모습에 나는 입을 벌리고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서, 재빨리 112에 전화를 걸었다.
도둑이 들었고, 환자 상태로 있다고 알려주니 곧바로 출동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수, 수환아……. 저 사람 도망치면 어떡해?”
그런데 내 뒷편에 있던 누나가 꽤나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아무리 동물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했다고는 하나, 인간인 만큼 그 고통을 억지로 이겨내며 도망칠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나도 그런 누나의 의견에 동감할 수 있었기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 잠시 고민했다.
“한무야! 잠깐만 이리 와봐!”
나는 대문 근처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던 한무를 불러들였다. 느릿- 느릿- 아주 느린 걸음으로 내게 다가온 한무는 왜 불렀냐는 듯이 고개를 쭉 빼내어 나를 바라보았다.
“이 인간 좀 깔고 앉을래? 다치지는 않지만, 도망치지는 못 할 정도로.”
한무는 내 말에 답하는 대신, 두 눈을 꿈뻑 거리며 도둑의 몸 위에 올라탔다.
“끄으에엑!”
거의 100kg에 육박하는 한무에게 깔리게 된 도둑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또 다시 신음했다. 하지만 우리 집을 털기 위해 찾아왔다는 인간의 사정을 고려해줄 생각은 없었다.
한무에게 깔려 버둥거리긴 하지만 결코 도망치지 못하는 도둑을 보며 안심한 누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이 조금 어지럽혀진 모습이 보였다. 잔디가 조금 짓밟히고 무언가가 바닥을 뒹군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특히, 바닥에는 무언가를 질질 끌고 이동한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자국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대포동, 소포동 두 녀석이 웬 보스턴백 하나를 낑낑거리며 마당 구석으로 끌고가고 있었다.
“……니들은 뭐 하냐.”
“들키따! 튀라!”
내 시선을 받은 두 녀석은 잠깐 눈치를 보더니 가방을 버리고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두 녀석을 따라가기 보다는, 녀석들이 끌고 가다가 버리고 튄 가방을 바라보았다.
내 것도, 누나 것도 아닌 처음 보는 가방이었다.
“완전히 계획 범죄네.”
가방을 활짝 열어보니, 그 안에는 각종 공구들이 가득했다. 드라이버나 망치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한 손으로도 쓸 수 있는 톱 같은 공구들이 가득한 것이었다.
나는 대문 밖에서 한무에게 깔려 있을 도둑을 절대 가만 두지 않겠다 다짐했다.
공구 중에 칼이 있는 건 아니지만, 톱도 칼에 버금가는 흉기로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딴 물건을 소지한 채, 나와 누나 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살고 있는 집에 무단으로 침입한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꽤 먼 거리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오다가 점점 커지더니, 집 앞에 강한 불빛이 비춰졌다.
“경찰입니다! 신고자분 계십니까!”
밖에서 경찰이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전히 걱정 때문에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는 누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붉은 빛과 파란 빛의 광원이 번쩍이며 집 앞을 밝게 만들고 있었다.
대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니, 두 명의 경찰이 한무에게 깔린 도둑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 거북이를 치워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제가 신고……어?”
그런 경찰을 보고 있으니, 뭔가 낯이 익었다. 잠시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진상 아줌마가 주차 테러를 했을 때 보았던 경찰이었다.
“또 보네요?”
내 말에 경찰은 기억하시는 군요-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 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 했다는 것이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기, 거북이에게 깔려 있는 사람이 도둑인가요?”
“네. 외출 했다가 집에 오니까, 저희 집 동물들에게 공격당해서 널부러져 있더라고요.”
“……동물들에게 공격 당했다고요?”
“담을 넘어서 들어온데다, 집 문을 부수려고 했다네요. 놀래서 그랬나봐요.”
“그럼……. 저기 거북이는……?”
거북이는 왜 도둑을 깔고 앉아 있냐는 듯한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에 들었나 보죠, 뭐.”
나는 내가 지시했다는 얘기는 쏙 뺐다. 병진이 아저씨에게 몇 번이나 들은 조언 덕분이었다.
들키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불리하게 작용 될 것 같으면 그냥 숨겨라- 라는 조언이었다.
“흠……. 일단, 용의자는 저희가 119 측과 연계해서 인도하겠습니다. 부상이 조금 있어 보이네요.”
안 그러면 범죄자 새끼들이 지랄해요- 하고 투덜거린 경찰관 두 분은 한무를 어떻게든 밀어내기 위해 힘을 주기 시작했다.
“끄으으아아아압!”
“헉, 헉! 존나 무겁네!”
두 사람의 경찰관은 한무를 어떻게든 밀어내고 도둑을 잡아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이 들러 붙었음에도 한무는 꼼짝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워낙 잘 먹으면서 크다보니, 동물원에서 데려올 때 보다도 더 무거워진 탓이었다. 아무리 채용 기준에 체력이 포함 된 경찰이라 하더라도 쉽사리 밀어내지 못 할 정도였다.
“선생님. 거북이 좀…….”
결국 경찰들은 한무의 이동을 내게 요구했다.
“한무야. 이제 비켜줄래?”
내 말에, 한무는 또 다시 눈만 꿈뻑이다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제서야 경찰들은 자유롭게 풀려난 도둑의 신체를 다시금 포박했다. 물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내가 저 말을 하는 걸 직관할 줄은 몰랐는데.’
묵비권이니 변호사 선임이니 하는 이야기를 내가 직접 눈 앞에서 봤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끼던 나는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아, 잠시만요!”
대문을 통과해 마당으로 돌아간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가방을 가져왔다.
수 많은 공구들이 들어 있어서 묵직했지만, 안겨드는 동물들의 무게를 매번 견뎌야 했던 내게는 들지 못 할 정도의 무게는 아니었다.
“저 도둑이 가져온 것 같아요. 안에 공구가 가득하더라고요.”
“와, 이 놈 상습범 같은데요?”
가방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경찰은 혀를 차며 도둑의 손목을 옥죄고 있는 수갑을 더더욱 강하게 채웠다.
그리고, 그렇게 도둑이 수갑을 차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구급차였다.
119에 먼저 신고하긴 했지만, 집 근처에 위치한 파출소보다 소방서가 더 먼 곳에 위치해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구급차에서 내린 구급대원들은 경찰이 다친 사람에게 수갑을 채우는 모습을 보며 잠깐 당황했으나, 이내 경찰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선생님. 저 사람은 일단 응급실로 이송 돼서 소독과 지혈을 한 이후 자세히 조사할 예정입니다. 다만 선생님께서 따로 진술을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 내일 하시겠어요?”
“내일 제가 따로 찾아갈게요.”
경찰은 알겠다며, 어디로 오면 되는 지 알려주며 차를 타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경찰차의 뒤를 따라 도둑을 태운 구급차 역시 순식간에 사라졌다.
번쩍이는 조명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던 나는, 조명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다시금 집으로 들어갔다.
“수환아 어떻게 됐어?”
집 안에서 동물들에게 보호 받듯이 둘러싸인 누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집에 도둑이 침입했다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직접 보았으니 더더욱 걱정하는 것이었다.
“도둑은 구급차 타고 갔어. 애들이 만신창이로 만들어 놨더라고. 특히, 얼굴을.”
도둑의 얼굴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다. 외모가 못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남캣이 할퀴고 다른 고양이들도 한 번씩 할퀸 탓이었다. 무슨 만화에 나오듯이 얼굴에 할퀴어진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리 괜찮은 거겠지?”
“걱정 마. 얘들이 있잖아. 이미 한 놈 떡으로 만들었는데? 또 온다 해도 얘들이 지켜줄 거야.”
내 말에 누나는 동물들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담벼락 위에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감시하는 듯한 유부를 불렀다.
“까마귀랑 까치들 다 불러서 집 좀 지켜달라고 할 수 있을까?”
“으음. 먹을 것을 준다면 못 할 건 없소이다. 부하들이 밤에는 잔다고 하지만, 일부가 교대로 집을 지킨다면 문제 없을 거요.”
유부의 말에 저번에 먹었던 것 이상의 먹이를 약속하며 까치와 까마귀들을 데려올 것을 부탁했다.
녀석은 곧바로 날개를 펄럭이며 뒷 산으로 향했다. 잘 자고 있을 까치와 까마귀들을 불러오는 것이라 미안하다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잠시 기다리니 안 그래도 까맣던 하늘이 더더욱 까맣게 변했다. 백 마리가 훌쩍 넘는 새들이 다시금 집 주변으로 몰려오는 탓이었다.
“부하들을 모두 불러왔소. 이곳은 그대의 집이기도 하지만, 내 둥지라고도 할 수 있소. 나와 부하들이 확실히 지킬 터이니 걱정 마시오!”
까치와 까마귀들은 담벼락에 올라타,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부는 그 자리에서 자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일부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경계를 했다.
그 모습까지 확인한 누나는 확실히 안심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빈 틈 없이 집 주변을 통으로 감시하고 있는 새들이 있으니 안심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누나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도둑이 문을 파손하려던 흔적이 있긴 했지만, 곧바로 동물들에게 떡이 된 탓에 문을 여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는 잘 준비를 하는 누나를 뒤로 하고,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설 경비업체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설 보안 업체를 찾던 내 시선을 사로잡는 사진이 한 장 있었다.
“저먼 셰퍼드라…….”
바로, 사설 경비업체의 경비원 곁에서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저먼 셰퍼드의 모습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