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55
0054 광고
나는 라쿤들이 잡을 수 없도록 사료 포대를 살짝 들어올리며 두 녀석에게 경고했다.
“너희들 간식 제한 연장당하고 싶어?”
“?.”
“드르브서 안 묵는다!”
내 말에 라쿤들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바닥을 탁탁! 치며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물론, 뒤로 빠졌다고는 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노리려고 하는 것인지 여전히 사료 포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뒤로 빠진 건 내 방심을 유도하려는 고도의 작전이었다.
그래도 녀석들에게 사료를 포대 채로 뺏길 생각은 없었기에, 두 녀석이 닿을 수 없는 테이블 위에 포대를 올렸다.
“아, 안돼!”
두 녀석은 자신들이 닿을 수 없을 곳으로 포대를 옮기는 것에 절망했다. 그 모습을 가볍게 비웃어준 나는 포대에서 사료를 조금 꺼냈다.
“자, 한 번 먹어봐.”
사료를 몇 알 정도 손바닥에 올리고, 동물들에게 한 번씩 먹을 수 있도록 주었다.
녀석들의 기준에 맛있는 냄새가 풍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녀석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사료임에도 허겁지겁 받아먹었다.
짜몽이를 시작으로 나태와 청호까지 사료를 주니, 손바닥이 녀석들의 침으로 축축해진 느낌이었다.
“맛이 어때?”
내 말에, 사료를 먹은 녀석들이 폴짝폴짝 뛰며 맛있다고 외쳤다. 심지어, 손님에게 안겨 있는 나태 녀석은 손님을 유도해서 사료 포대에 접근하려고 할 정도였다.
“야야, 진정해. 진정하라……, 멈춰!”
녀석들은 진정하라는 내 말에도 사료를 향해 탐욕을 부렸다. 특히, 마루는 테이블에 올라갈 수가 없으니, 테이블을 무너트리겠다는 식으로 몸통박치기를 하려고 했다.
다행히 ‘멈춰’ 한 방에 그 시도가 무산되긴 했지만, 나는 꽤나 놀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설마, 테이블까지 무너트리려고 할 줄이야.
“니들 반응만 봐도 맛있다는 건 알 수 있네.”
“그럼 더 주면 안돼요?”
“맞슴다. 좀만 더 먹음 안댐까?”
“……………………좀 더.”
아주 조금씩 먹은 것은 무척 감질나는 것이었던지, 몸을 굳히고 있는 마루를 제외한 녀석들이 내게 엉겨붙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들을 달랠 수 있을 정도의 사료를 주고서는 라쿤들을 바라보았다.
“먹을래?”
“빨리 도!”
대포동과 소포동은 개들이 빠진 자리를 차지하고 내게 엉겨붙었다. 나는 그런 녀석들을 가볍게 쓰다듬어주고서는, 녀석들에게도 사료를 내어줬다.
“오오오옷!”
“이, 이 맛이야!”
두 녀석은 앞 발로 사료를 하나하나 집어먹으며 감탄했다. 고개를 크게 까딱이며 흥분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사료 알갱이들을 품안에 끌어안았다.
그 모습에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그 녀석들을 뒤로하고 고양이들을 찾았다.
남캣과 쌍둥이, 폭신이, 치킨이가 내 부름에 쪼르륵- 달려왔다. 물론 남캣 녀석은 어슬렁거리듯이 뒤늦게 나타났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내게 다가온 고양이들은 사료를 맛있게 먹고 있는 개들에게로 시선을 슬쩍 주었다.
“불렀으면 말을 해.”
“누가 냥아치 아니랄까봐. 싸가지 없긴.”
나를 주인이라기 보다는 그냥 말이 통하고 밥 주고 재워주는 사람1 정도로 생각하는 남캣이었다.
녀석을 잠시 노려보다가, 노려봐야 얻을 것도 없었기에 고양이용 사료를 꺼내들었다. 포대의 포장을 풀며 냄새가 풍기도록 살짝 흔드니, 곧장 녀석들의 반응이 왔다.
휘익!
네 마리 고양이들의 꼬리가 담합이라도 한 듯, 일제히 휙! 소리가 날 정도로 치솟았다.
“옛다, 먹어라!”
사료에 무척 흥미를 보이는 녀석들을 보며, 나는 그대로 사료를 풀어주었다.
녀석들은 사냥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그대로 사료를 향해 달려들었다. 특히, 다리가 가장 짧은 치킨이가 가장 빨랐다. 침까지 줄줄 흘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니, 사료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와그작 와그작 소리를 내며 사료를 탐하는 녀석들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마시탁에게 반응이 무척 좋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3층에서 열심히 편집을 하고 있을 연희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희 아줌마. 잠깐 내려오실 수 있으세요?”
“지금 바로요?”
“바쁘시면 조금 있다가 오셔도 돼요.”
“음, 그러면 십 분만 있다가 내려갈게요. 지금 편집한 거 렌더링 되면 확인하고 갈게요.”
“급하게 오실 필요는 없어요.”
연희 아줌마는 아줌마가 말한대로, 십 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1층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이예요?”
“영상을 만들어야 해서요.”
“영상……? 아! 혹시 저번에 말했던 그 광고? 오늘 어디 갔다고 하더니, 광고 계약하러 가셨던 거구나! 으음, 그럼 영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좋을까……. 그 광고가 사료 광고라고 했죠? 저기 포동이들이 훔쳐먹고 있는 사료들 맞나요?”
“…….”
질문 같으면서도 대답할 틈을 안 주는 화법에, 나는 멍하니 있다가 아줌마의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으악! 얌마!”
어떻게 올라간 건지,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사료 포대에 얼굴을 처박고 사료를 퍼먹고 있는 대포동과 소포동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다급히 두 녀석을 포대에서 빼내고서, 두 녀석이 건드릴 수 없도록 사료 포대를 밀봉했다.
“안된다아아아악!”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닿을 수 없는 사료에, 라쿤 두 마리가 절망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두 녀석을 무시하며 아줌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저 사료를 광고해야 해요. 가능하죠?”
“못 할 건 없죠. 사료가 불법적인 것도 아니고. 근데, 따로 생각해둔 콘티 같은 건 있나요? 아니면, 광고주가 따로 요구하는 형태는요? 어떤 걸 부각시켜달라, 뭐 이런 거 있었을 거 아니에요.”
“그냥 제 마음대로 만들면 돼요. 계약조항에 제 마음대로 영상을 만들어도 된다는 내용을 삽입했거든요.”
“정말요?”
내 말에 아줌마가 무척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와, 부럽다……. 제가 방송국에 있을 때는 광고주 눈치를 얼마나 많이 봤는 줄 모르죠? 편집하는 것도 신경써, 이거 해줘, 저거 해줘. 얼마나 귀찮다구요. 어떤 정신나간 인간은 치킨상자에 뽀샵을 해달라고 했다니까요?”
쌓인 것들이 조금 있던 건지, 아줌마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나는 맞장구 치기 보다는,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젠 그럴 일 없을 걸요? 그 영상을 만들 사람이 아줌마니까요. 아줌마가 원하는대로 한 번 만들어보실래요?”
“그 말. 정말이죠?”
“그럼요. 한 번 마음대로 해봐요.”
내 말에 아줌마는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반짝였다. 왠지 아줌마가 만들어낼 영상에 대한 걱정이 살짝 생기는 듯했지만, 일단은 맡겨보기로 결정했다.
○ ◑ ● ◐ ○ ◑ ● ◐ ○
“촬영 시작할게요!”
나는 아줌마의 말에, 누나와 신호를 주고 받으며 동물들을 이끌었다.
이미 아줌마가 작성해서 내게 보여준 기획서대로만 한다면 아주 좋은 영상이 나오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사장님. 시작은 나태로 할게요.”
“네. 나태야. 시작하자. 아까 전에 내가 말해준 거 기억하고 있지?”
“……………………네.”
나는 누나와 아줌마가 들고 있는 액션캠을 바라보며, 나태를 카메라 프레임에 잘 잡히도록 내려놓았다.
그리고, 카메라에 나오지 않도록 빙- 둘러서, 나태의 근처에 소포장된 사료 봉투를 툭- 떨어트렸다.
미리 살짝 뜯어둔 사료는 그대로 내용물을 일부 쏟았고, 나태가 반응을 보였다. 비록, 꼬리가 살랑인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단 반응은 반응이었다.
“나태야!”
내 외침에, 꼬리만 살랑이던 나태가 잠시 망설이더니,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태는 곧바로 떨어진 사료의 앞으로 다가가, 떨어져 있는 사료들을 먹기 시작했다.
“꺄아악! 나태가 진짜 움직였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바라보던 아줌마가 무척 좋아했다.
이 장면을 생각해낸 것이 아줌마였기 때문이다. 나태 녀석은 하루종일 꼼짝도 하지 않는 녀석으로 유명하니, 사료를 보고 움직이는 영상을 찍는다면 사료에 대한 홍보가 충분할 것이라고 여긴 것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아줌마가 생각해낸 장면들은 많았기에, 곧바로 다른 녀석들의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동물들이 광고 영상을 촬영했을 정도였다.
나태 다음으로는 마루였다. 미친듯이 뛰던 마루가 근처에 놓인 사료 봉지를 보고 급히 멈추며 사료를 향해 방향을 돌리는 형태의 영상이었다. 거의 직진만 하는 녀석이 사료를 보고 방향을 틀 정도라는 의미였다.
그 다음은 짜몽이와 치킨이가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짧은 다리를 퍼덕이며 애쓰는 영상 역시 촬영했다. 누나나 아줌마가 어떡해- 어떡해- 하면서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니 홍보 효과는 확실할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여덟 거위들이 새 사료가 든 봉지를 작살내는 모습과, 카운터 곁에서 누나를 지키던 청호가 슬쩍 사료에 시선을 주는 장면도 찍었다.
“청호가 사료를 먹었으면 더 대박일텐데…….”
“어쩔 수 없어요. 그러면 군견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요. 군견이 어마어마한 집중력 훈련을 하는데, 먹이에 정신이 팔리는 걸 찍을 순 없잖아요.”
“끄응……. 그럼 이 정도로만 만족해야겠네요. 아, 대신 일을 끝마친 다음에 먹는 사료에는 엄청 좋아하는 모습을 따로 붙이는 걸로 할게요.”
아쉬워하는 아줌마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인 나는, 곧바로 동물들을 이끌고 다음 촬영 장소인 집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동물은 딱 한 종이었다. 바로, 라쿤이었다. 다른 동물들은 유부나 한무처럼 줄만한 사료가 없다거나,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동물들이었다.
“일단 커튼을 다 치고, 불도 다 끈 상태에서 조명을 아주 약하게 켜서 촬영할게요.”
아줌마의 말대로 집 안을 무척 어두스름하게 만들었다.
커튼까지 치고 조명마저 어둡게 하니, 두 라쿤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듯이 빛을 반사했다.
“너희도 아까 설명해준 거 기억하지? 그대로만 하면 간식 제한 바로 풀어준다. 어때?”
“우리만 믿으라!”
대포동과 소포동은 무척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촬영을 시작했다.
그러자 두 마리의 라쿤이 슬금슬금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도둑들이 침입해서 주변을 훑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녀석들은 발소리마저도 죽인 채 아주 조심조심, 사료가 들어 있는 서랍을 향해 다가갔다.
끼이익- 소리가 아주 자그마하게 들릴 정도로 천천히 서랍을 연 두 녀석은 그대로 사료를 꺼내, 포대를 뜯어버렸다.
사료 씹는 소리가 와그작 와그작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조명을 밝게하며 녀석들의 곁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잡았다 요놈들!”
내 말에 라쿤들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더니, 다급히 입 안에 사료를 밀어넣었다.
나는 두 녀석에게 각자 하나씩 장난감 수갑을 내밀었다. 당연히 사람의 손목에 맞는 장난감 수갑이 맞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미리 계획한대로, 두 녀석은 내가 내민 수갑을 꼬옥 붙잡으며 내가 이끄는대로 따라왔다. 여전히 입안에 밀어넣은 사료들을 씹으면서 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광고 영상의 촬영이 끝났고, 곧장 편집되어 광고주의 환호와 함께 내 채널에 업로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