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54
0053 광고 계약
광고주라고 할 수 있는, 업체와의 미팅이 잡혔다.
본래라면 우리 카페나 카페 3층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미팅을 진행할 생각이었으나, 갑작스레 카페에 사람들이 몰려오며 그것이 힘들어졌다.
스튜디오에서 하기에도 힘든 것이, 내가 쌓아둔 영상들이 워낙 많다보니 두 편집자가 아주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미팅을 하자니 두 사람의 능률을 떨어트릴 것이 뻔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열심히 공장마냥 영상을 찍어내는데, 방해하면 내 손해였다.
그렇기에, 나는 집 근처에 위치한 다른 카페를 약속 장소로 잡아야만 했다.
약속 장소로 잡은 카페에 앉아, 어느 카페에서도 웬만해서는 실패할 수가 없는 레몬에이드를 마시고 있으니 정장을 쫙 빼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마이쩡 펫푸드의 마시탁입니다. 옆은 제 후배인 조마태입니다.”
“반갑습니다. 조마태입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나는 그들이 오늘 광고 계약을 맺을 회사의 직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 드시겠어요?”
“아, 저희 건 저희가 주문하겠습니다.”
선임쪽인 마시탁이 조마태를 톡톡 건드리니, 조마태가 빠르게 달려가서 음료를 주문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한 때 겪었던 부하직원의 애환에 심심한 위로를 보내던 나는, 어느새 테이블에 올라온 동물 사료를 볼 수 있었다.
포대에 담긴 대용량의 사료가 아니라, 따로 챙겨온 듯한 소포장 된 사료였다.
강아지, 고양이, 토끼 등등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들의 사료가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자리했다.
“이게 저희가 이번에 신수님께 광고를 의뢰하는 제품입니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라온 사료들을 바라보았다.
사료들의 포장 디자인은 하나같이 통일되어 있었다. 강아지의 것은 강아지가 그려져 있었고, 고양이의 것은 고양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그런 디자인을 따라가듯이 사료의 제품명 역시 통일되어 있었다.
[강아지가 맛있다고 소리칠 사료] [고양이가 맛있다고 소리칠 사료] [토끼가 맛있다고 소리칠 사료] [새가 맛있다고 소리칠 사료] [물고기가 맛있다고 소리칠 사료]딱 봐도 어떤 제품이 어떤 동물들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제품명이었다. 심지어, 그 제품명을 따라가겠다는 듯이 포장지에 그려진 동물들이 ‘마이쩡!’ 하고 소리치는 듯한 말풍선이 그려져 있었다.
“실례지만……. 제품기획팀 월급 안 줬나요?”
“……저희도 반대했습니다. 사장님이 밀어붙인 거죠. 직관적이어야 한다고요.”
직장인의 애환이 그득그득, 꾹꾹 눌러담긴 한숨을 내쉰 마시탁의 모습에 나는 마시탁이고 조마태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제품명이나 디자인이 좀 그럴지는 몰라도 제품의 완성도는 무척 뛰어나다고 자신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
마시탁은 내게 몇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연구자료인듯, 각종 수치나 그래프가 가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내용들을 간단하게 훑어보니, 아주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었다. 해당 사료는 동물들의 성장에 무척 도움이 되며, 필수적인 영양소를 모두 함유하고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정말 이 사료는 동물들에게 안전하고, 좋은 사료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요.”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건지, 마시탁은 사료를 하나 뜯더니 그대로 내용물을 조금 꺼내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다.
“하나 드셔보시겠습니까? 나름 맛있습니다. 살짝 단 맛이 빠진 콩콩볼? 그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시리얼 같은데, 달달하기 보다는 담백한 맛이 더 강합니다.”
“괘, 괜찮아요.”
내게 내미는 사료를 거절했다. 아무리 사람이 먹어도 안전한 사료라고 해도,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솔직히, 맛이 궁금하긴 했지만 마시탁의 묘사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 굳이 먹어볼 필요는 없다.
“아쉽군요. 생각보다 맛있는데 말입니다.”
와그작와그작 사료를 먹는 마시탁의 모습에 잠깐 혹할 뻔 했다. 먹는 모습만 보면 웬 과자를 먹는 듯 했다.
나는 고개를 살며시 내저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계약서 초안 가져오셨죠?”
“아, 예! 지금 바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시탁은 내 말에 먹던 사료를 내려놓고 다급히 가방을 뒤져 종이봉투를 꺼냈다.
“여기, 저희가 작성한 계약서의 초안입니다. 신수님께서 보시고, 수정을 원하는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계약서를 얼마든지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원하는 것이 있다면 부담갖지 말고 말하라는 마시탁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팅자리에 오기 전에 받았던 병진이 아저씨의 조언을 떠올렸다.
‘이해하기 힘들거나, 어려운 단어가 있으면 그냥 지워버려요. 쓸데없는 단어 없이 아주 간결하고 간략하게 하면 돼요.’
원래라면 병진이 아저씨와 함께 와서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어질리티 대회에서 유명해진 뭉치와 함께 국제 어질리티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외국으로 가버린 상황이라 직접적인 도움은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병진이 아저씨의 도움이 없다고해서 이런 기회를 걷어찰 수도 없었거니와, 이정도도 하지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마이쩡 펫푸드 측에서 내놓은 계약서를 찬찬히 훑었다.
계약서에는 내게 해가 될만한 내용은 없었다.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될 경우 귀찮아지는 정도의 조항이 몇 개 있었고, 해석을 하다보면 다른 의미로 해석될만한 여지가 있는 단어가 사용 된 곳들이 제법 있는 정도였다.
“이 부분은 지워주시고요……. 이 부분도. 아, 이 부분도요. 여기는……. 여기까지 싹 다 지우면 되겠네요.”
“……저, 정말 이렇게 계약서를 작성하실 겁니까?”
“네, 안 되나요?”
당당하게 묻는 내 말에 마시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헤- 벌린 채로, 내가 줄을 죽죽 그어놓은 계약서를 바라보았다.
내가 줄을 죽죽, 죽죽죽죽죽 그어놓은 계약서에서 읽을 수 있는 줄은 몇 줄 되지 않았다. 회사측에서 내민 계약서 원본에 비하자면 10%도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마이쩡 펫푸드(이하 갑)과 신수환(이하 을)은 영상 광고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다.] [을은 갑이 원하는 홍보 영상을 제작하여 뮤튜브 채널(신수와 영물들)에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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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은 을이 영상을 제작/게재 하는데 필요한 자사 제품을 지원한다.] [갑은 을에게 광고비용 일억 원(100,000,000원)을 영상 게재 전까지 지급한다.] [갑 – 마이쩡 펫푸드 (인)] [을 – 신수환 (인)]그 어떤 수작질도 불가능한 계약서로 바꾸니, 보기가 한결 편해졌다.
괜히 쉬운 단어가 있음에도 어려운 단어가 써져 있는 것도 고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조건도 다 지워버리니 내 마음에 쏙 드는 계약서가 완성 됐다.
내가 을이라 적혀 있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슈퍼을이라는 말도 있으니 기분 좋게 넘어가기로 했다. 영상의 제작 방향도 내가 모조리 결정할 수 있었으니, 이 정도는 용납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넘어간다고는 하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계약이라는 것은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수정해낸 계약서를 받아든 마시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이대로 계약서를 새로 작성하면 되겠습니까?”
“네.”
내 말에, 마시탁은 내가 죽죽 줄을 그어놓은 계약서를 조마태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줄을 긋는 사이 음료를 가져온 조마태는 음료를 즐길시간도 없이 계약서를 들고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조마태가 새로운 계약서를 가져왔다.
“와…….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저희 차에 노트북과 휴대용 프린터가 있습니다. 조금 느리고 컬러가 안 된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래도 간단한 문서 몇 장 출력하는 건 일도 아니죠.”
나는 조마태가 가져온 계약서를 다시금 확인했다. 내가 수정을 요구한 부분이 모두 수정되어 있었고, 오타도 하나 없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내가 원하던 그대로의 계약서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제품의 품질이 내 이름에 흠이 갈 정도가 아니었고, 제시하는 조건이 괜찮았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부의 계약서를 나와 나눠가진 마시탁은 한껏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성공적으로 계약을 받아낸다면 성과급이라도 받는 거겠지,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신수님. 혹시 한 가지 부탁을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예.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희가 가져온 사료로 영물들에게 반응을 봐주실 수 있으십니까? 동물들에게 좋고, 동물들이 좋아하는 펫푸드를 추구하는 저희 회사로서는 무척 궁금한 사안이라서 말입니다.”
“……뭐, 그 정도는 서비스로 해드릴게요.”
내 말에 마시탁은 물론, 조마태까지 허리를 꾸벅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두 사람은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자신들의 차에 실려 있는 사료 포대들을 내 차에 옮겨 싣기까지 했다.
정장을 챙겨 입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까지 하는 모습이 짠했지만, 덕분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편하게 짐을 옮길 수 있었다.
“그럼 조만간 다시 연락드릴게요.”
“예! 언제든지 연락주십쇼!”
자다가도 깨서 받겠습니다- 하고 외치는 마시탁의 말을 뒤로 한 채, 나는 곧장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카페에 도착한 나는 직원들의 도움으로 옮긴 사료포대를 파드득 뜯어냈다. 강아지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 개 사료가 들어 있는 포대를 뜯은 것이었다.
“맛있는 냄새!”
“쥔님. 근무중에 죄송하지만 조금만 주심 안 됨까?”
“…………………………………나도.”
“뭐고, 뭐고! 이 냄새 뭐고! 냄시 한 번 윽~수로 좋네!”
동물에게 좋고 동물이 좋아하는 펫푸드를 추구한다는 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던 건지, 사료 포대를 뜯자 마자 개과 동물들이 몰려왔다.
사람들과 부벼대던 짜몽이부터, 누나가 있는 카운터 근처에서 다가온 청호. 거기에 웬 손님의 품에 안겨 다가온 나태가 몰려온 것이었다. 심지어, 대포동과 소포동 역시 바닥을 구르듯 다가왔다.
아니, 라쿤 너희는 개과 아니잖아.
개과도 아니면서 개 사료를 노리는 이 절도범 녀석들은 사료 포대를 훔칠 생각인지, 슬금슬금 사료 포대의 잡을만한 곳을 탐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