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7
0006 인터뷰(1)
나는 엄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나 회사 그만 뒀어? 아냐. 단순히 이렇게 말했다간 잔소리 3시간 풀 코스 예약이다.
“아들?”
하지만 내게는 길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저기, 엄마. 하은이 누나 카페로 오면 안 돼?”
“카페? 너 회사 아니니?”
“어……. 일단 오면 알려줄게. 그럼 오는 걸로 알고 있는다?”
알았어- 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동시에 나는 다급히 엄마의 전화를 끊었다.
“수환아, 혹시 어머님께는 말씀 안 드린 거야?”
스피커폰이 아니긴 하지만, 조용한데다 가까이 있기 때문인지 누나는 내 전화의 내용을 들은 것 같았다.
“깜빡했지…….”
“깜빡할 게 따로 있지.”
나는 누나의 말에 마른 세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까먹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애써 삼키며,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엄마가 납득할 변명을 구상해내야 했다.
하지만 애초에 그 고민은 쓸데 없는 고민이나 마찬가지였다.
“뭘 고민해? 그냥 사실대로 말씀드려. 더 좋은 기회가 있어서, 회사를 그만 둔 거잖아? 일 하기 싫다고 그만 둔 것도 아니고, 어머님이 그런 걸로 화내실 분은 아니잖아.”
누나의 조언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땐 정면 돌파가 답이었다. 누나 말대로, 내가 좋지 못한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 것도 아니었으니 혼날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음음.
누나 덕분에 걱정을 덜어낸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어깨를 으쓱이며 커피를 마셨다.
“아들!”
그리고 커피와 케이크를 해치워가며 누나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엄마가 누나의 카페에 도착했다.
“왔어?”
“어머님 오셨어요?”
대충 자리에 앉아서 손을 휘적이는 나와는 다르게, 누나는 베시시 웃으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오시는데 힘들진 않으셨어요? 오늘 햇빛이 뜨겁던데.”
“안그래도 어찌나 덥던지, 걸어올까 하다가 그냥 택시 탔어.”
“다행이예요. 마실 거 드릴까요?”
“응, 부탁할게.”
엄마는 이미 누나를 며느리로 생각하는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영지야,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미지근하게 한 잔만 가져다 줘!”
“네엥! 남캣이 기다려!”
누나의 주문에 엄마는 기특하다는 듯이 누나의 팔뚝을 톡톡 건드렸다.
매번 마시는 음료가 똑같다보니 기억하는 거였지만, 엄마는 그 모습을 무척 좋아했다. 대접받는 시어머니 같다고 좋다나?
아무튼, 누나의 환영을 받으며 다가온 엄마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들. 오늘 무슨 날이니? 회사는?”
“아. 그만뒀, 잠깐! 오해하지마!”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썹이 꿈틀거리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다급히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요번에 내가 초능력을 새로 개화했는데, 그게 진짜 엄청 좋은 능력이라서. 회사에 붙어 있느니, 초능력으로 돈 버는게 더 성공하겠더라고.”
“무슨 능력인데?”
엄마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에는 미리 찍어둔, 내 새로운 초능력자 증명서 사진이 있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엄마 역시 초능력에 대한 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누나가 누나네 어머님께 그러한 것처럼, 다시금 우리 엄마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으음, 그 능력으로 정말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니? 너도 이제 하은이랑 결혼해야 할텐데. 결혼하는 것도 돈이고, 결혼하고 나서 아기 생겨도 돈 많이 든다?”
“걱정 마. 이 능력이면 애가 열 명이라도 감당할 수 있을 거니까.”
“……합의는 된 거니? 니가 낳는 거 아니라고 막 말하면 안 돼.”
나름 비유라고 한 것이, 엄마의 심기를 건들였나 보다.
엄마는 갑자기 내게 잔소리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너 낳을 때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지 아빠 닮아서 머리통만 커가지고, 자연분만이 아니라 수술을 했어야 했는데. 근데 뭐? 열 명? 너 닮아서 머리 크면 하은이만 죽도록 고생할 텐데?”
이미 수십 번은 들은 레파토리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잔소리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지만, 누나는 재미 있다는 듯이 옅은 웃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한동안 엄마의 잔소리 폭격을 얻어 맞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중간에 영지가 커피를 가져왔으나, 멈추긴 커녕 오히려 성대에 수분을 공급하며 잔소리가 더 길게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그 초능력 안 보여 줄 거니?”
잔소리가 드디어 끝났음을 알리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재빨리 엄마를 데리고 뒷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영지와 함께 놀고 있는 남캣이 있었다.
“내가 직접 훈련시킨 길고양이야. 웬만한 강아지들이 하는 건 다 할 수 있으니까, 한 번 시켜봐.”
엄마는 살짝 미심쩍다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강아지들에게 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앉아, 일어서, 엎드려는 기본이고 이리저리 도는 거나, 던져준 무언가를 물어오는 등의 행동을 아주 잘 보여주었다.
“죽은 척!”
게다가 지켜보던 영지의 지시에 따라 스르륵 쓰러져 죽은 척을 하는 모습을 본 엄마는 경악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아들, 그냥 조련사를 해도 되겠는데?”
“그렇지? 진짜 이 초능력으로 먹고 살 수 있어. 조사하니까 요즘엔 네 집 중 한 집은 반려동물을 키울 정도니까.”
엄마는 내 말에 신뢰감을 느꼈는지, 더 이상 회사를 그만둔 것이나 먹고 살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새로운 압박할 뿐이었다.
“그럼 엄마는 노후 걱정 안 해도 되는 거니? 네 아빠랑 놀러다녀도 돼?”
아들 덕 좀 보고 살자는 엄마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구, 이럴 땐 고민해야 하는 거야. 옆에 마누라 될 여자가 있는데 덥석 물면 어떡하니?”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누나네 부모님도 챙기면 되는 거지, 뭘…….”
내 말에 엄마는 나를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누나는 감동 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 그러면 됐다. 엄마는 그럼 갈테니까, 열심히 해봐.”
엄마는 곧바로 핸드백과 휴대폰을 챙기더니, 휙하니 가버렸다.
카페 밖까지 따라나가 배웅하는 누나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래서 왜 왔던 거야?”
나를 찾은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잔소리만 들었던 것이 무척 억울해졌다.
하지만 그 의문은 금세 해결 되었다. 엄마가 보내준 문자 덕분이었다.
[네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서 까먹었네. 엄마가 아는 동생이 기자인데, 네 번호를 좀 알려달라고 하더라. 걔가 왜 널 찾나 너한테 물어보려 했던 건데, 네 초능력 때문인 거 같네. 한 번 연락해봐.]엄마는 장문의 문자와 함께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남겨주었다.
[아, 참. 걔가 헛소리하면 엄마가 찾아가서 머리끄댕이 다 뜯어 놓을 거라고 하렴.]그리고, 나는 엄마가 가끔씩 하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맨날 연예인 좋다고 따라다니던 게 결국은 연예 기자가 돼서 나이 먹고도 연예인 따라다닌다며 친구를 디스하던 엄마의 이야기가 말이다.
물론, 그렇다곤 해도 내게 이렇게 직접 번호를 알려 줄 정도면, 충분히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삼십 년 넘은 우정보다 가족을 중요시 하는 사람이 엄마였다.
나는 곧바로 엄마가 알려준 번호로 연락했다.
“네- 오늘일보 연예부 이장미입니다.”
“아, 저……. 저희 엄마한테 연락 주셨다고 들어서요. 김주연이요.”
“어머, 주연이 언니 아들?”
조금 업무적이던 목소리가 엄마의 이름을 말하는 것과 동시에 화사하게 바뀌었다.
엄마의 아는 동생이라는 장미 아줌마는 무척 반갑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당장이라도 달려 올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오후가 되어가며 해가 지고 있는 시각이었기에, 나는 다음 날 아줌마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당연히, 약속 장소는 누나의 카페였다.
“아주 그냥 이 카페가 네 거다?”
“뭐 어때. 우리 결혼하면 우리 거잖아. 아니, 누나가 내 거니까, 카페도 내 건가?”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며 말해주니, 누나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나를 가볍게 밀쳤다.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카운터로 도망친 누나는 마침 들어온 손님을 맞이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내 시선을 피하는 누나 덕분에, 내가 지껄인 말임에도 오그라든 내 손가락을 열심히 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느긋하게 카페에 도착한 나는, 나보다도 먼저 도착해 있는 장미 아줌마를 만날 수 있었다.
“안녕? 아줌마는 어릴 때 보고 처음보지?”
“아하하……. 안녕하세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아줌마는 어릴 때 몇 번 본 듯한 기억이 났다. 선물이라고 여자 아이돌 브로마이드를 가져다 준 것도 말이다.
“일단, 고마워. 안 그래도 요즘 기삿거리 없다고 사장이 쪼는데, 얼마나 귀찮았다고. 그리고 축하해. 전 세계에서도 몇 없는 초능력을 개화했다며?”
아줌마는 축하한다는 말과 동시에 녹음기를 꺼내들었다.
“녹음기인데, 걱정하지마. 내가 주연이 언니 아들한테 나쁜 기사를 쓰겠니? 그랬다가 대머리 될 때 까지 머리끄댕이 뜯길 걸?”
아줌마의 말에 나는 엄마가 도대체 어떤 행동을 해왔길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덕분에 긴장감도 풀렸기 때문인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줌마. 제가 초능력을 개화한 건 어떻게 알 게 된 거예요? 몇 번 기자들이 전화 왔는데, 대부분 찌라시 언론이라 무시했거든요.”
“아, 그거. 처음에 누가 공무원한테 뒷돈주고 빼냈나본데, 네가 계속 연락이 안 되니까 여기저기 팔았던 것 같더라. 나는 네 이름을 보니까 주연이 언니가 생각나서 언니한테 전화한 거고. 그냥 물어보라고 한 건데, 정말일 줄은 몰랐어.”
아줌마의 말에, 엄마의 메신저 상태메시지가 떠올랐다.
온갖 수식어와 하트, 별 같은 특수문자를 장식해놓은 내 이름이 엄마의 상태메시지였다.
엄마와 메신저가 이어진 사람들 중에, 내 이름을 듣고 엄마를 떠올릴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장미 아줌마는 우연하게 얻어 걸린 것이고 말이다.
어릴 때 이후로 보지 않았던 장미 아줌마가 나를 찾아낸 전말을 알게 된 나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엄마 아는 사람 중에 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긴 하죠.”
“그치? 주연이 언니도 참 대단해. 상태메시지 거의 매주 바꾸는 거 아니? 어느 날은 사랑하는 이었다가, 어느 날은 듬직한이고.”
나는 아줌마의 말에 어색하게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궁금증이 해결 됐니? 그럼 아줌마 궁금증도 해결해줄래?”
“아, 네. 물어보세요.”
내 허락에, 녹음기를 다시금 조작한 아줌마는 미리 준비한 듯한 질문을 꺼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