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70
0069 동창회
소은이가 초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지만 딱히 바뀌는 것은 없었다.
따로, 소은이가 최연소 초능력자라는 걸 주변에 퍼트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들이 아는 정도에 그쳤으니, 퍼질 이유도 없었다.
장일운 대리가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긴 하지만, 업체에서 근무하는 만큼 보안은 철저히 유지하는 사람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괜히 퍼트려봐야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많을 것이 뻔하니, 직장인인 장일운 대리로서는 비밀을 지킬 수밖에 없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평화롭기 그지 없는 일상을 보내는 동안 소은이는 착실하게 커갔다. 매일매일 쭈압쭈압 소리까지 내며 열심히 밥을 먹고, 끙끙거리며 열심히 힘까지 주는 생활을 하니 금세 성장했다.
“빠빠!”
“으하하항! 소은이가 아빠래!”
“소은아! 엄마라고 해봐!”
“어마!”
“꺄아악!”
그리고, 드디어 소은이가 옹알이를 넘어, 단어를 하나씩 내뱉기 시작했다. 완전한 단어라고 하기엔 애매하긴 했지만, 소은이가 드디어 우리를 부른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최상급의 초능력자가 되어서 앞으로 인생이 활짝 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상으로 더 기뻤다.
나는 누나와 손을 잡고 방방 뛰며, 소은이에게 엄마아빠 소리를 계속해서 들었다.
결국, 엄마아빠 소리를 하다가 지친 소은이가 일기토를 안아들고 고롱고롱 잠에 빠져들 때 까지 그 모습이 이어졌다.
하지만 누나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던 건지, 녹화해둔 영상을 반복 재생하며 소은이의 엄마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었다.
당연히 그런 누나의 행동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똑같이 반복 재생으로 듣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소은이의 빠빠! 하고 외치는 소리를 반복적으로 듣고 있던 도중, 그 소리가 멈추었다.
전화받어어어어- 전화아아아- 받어어어어어-
바로, 휴대폰에 전화가 왔기 때문이었다.
“햐……. 이 중요한 시기를 방해하네.”
“소은이 깨. 나가서 전화 받고 와.”
누나의 말과, 움찔거리는 소은이를 본 나는 다급히 밖으로 나와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액정에는 ‘영원한 반장놈’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 내 친구의 번호가 표시되고 있었다.
“얌마. 갑자기 웬 전화야? 좋은 시간 보내고 있었는데.”
“……좋은 시간? 아직 불타는 신혼인가 봐? 이제 점심인데.”
“야랄하지 마. 소은이랑 놀아주고 있었거든? 소은이가 드디어 엄마 아빠라고 말 한다니까? 근데 그 좋은 시간을 네놈이 방해했다 이거야. 어떻게 변상할 건데.”
“아 그랬냐? 그건 안 미안하네.”
“안 미안하다고? 네놈에겐 새똥의 저주가 내릴 거다. 길가다 새똥이나 처맞아라.”
“……니가 그렇게 말하면 좀 그런데.”
친구 녀석은 내 말에 좀 떨떠름하다는 듯하다는 말투가 되었다.
하긴, 내가 동물들과 대화가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보상을 약속하고 동물들을 부리는 것을 아는 친구 녀석이었으니 떨떠름하긴 하겠지. 길가다 새똥이나 맞으라는데 좋아할 인간은 없었다. 심지어, 가능성까지 있다면 더더욱.
“지금이라도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면 봐준다!”
“한 번만 봐줘. 미안해.”
“오냐.”
“쳇.”
나는 오랜만에 친구와 하는 말장난에 키득키득 웃음 지었다. 딱히 육아에 치인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색다른 자극이 있으니 즐거웠다.
“그래서, 왜 전화한 건데?”
“아. 다음 주에 동창회 할 건데, 올 거야? 너 두 번이나 안 왔잖아. 바쁘다고.”
“다음 주? 다음 주 언제?”
“금요일 저녁에. 다들 퇴근하고 한 잔 걸치려고.”
“으음…….”
나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오케. 갈게. 어디서 몇 시에 볼 건지 톡 줘.”
“엉. 그 때 보자.”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나는 다시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니 보이는 것은 소은이의 아기 침대에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이 상체 대부분을 집어넣고 소은이를 구경하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었다.
“……뭐 해?”
“우리 딸 구경.”
거리낄 것 하나 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 엄마가 딸 구경한다는 걸 어떻게 말려.
나도 슬그머니 곁에 붙어서, 소은이가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모습을 잠시 구경했다.
어정쩡한 자세 덕분에 허리의 통증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우리 둘은 아기 침대에서 몸을 빼냈다.
“아고, 허리야…….”
“아, 맞다. 누나. 나 다음 주 금요일에 약속 생겼어.”
“약속?”
허리가 아픈지 허리를 통통 두드리던 누나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전화 온 게 친구들이었거든. 다음 주 금요일에 동창회 한다고, 올 거냐고 묻더라. 그래서 간다고 했지.”
“동창회? 그럼 다녀와.”
고등학교 시절 부터 만나왔던 누나이니만큼, 내 친구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나는 동창회라는 말에 가타부타 없이 허락해주었다.
역시 남편을 믿는-
“그럼 다음 주 금요일은 소은이 독차지!”
“…….”
남편을 믿는 건 모르겠고, 일단 딸을 무척 좋아한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벌써부터 기대 된다는 듯이 베시시 웃음 짓는 누나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 ● ◐ ○ ◑ ● ◐ ○
“빠빠빠!”
“아빠 다녀올게. 소은이는 엄마랑 재미있게 놀고 있어.”
“우으!”
동창회가 있는 금요일 저녁. 나를 향해 손을 뻗으며 가지 말라는 듯이 투덜거리는 소은이에게 가볍게 뽀뽀를 해주었다. 그제서야 소은이가 나를 향해 손을 뻗는 대신, 누나의 옷자락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다녀와. 소은이는 걱정하지 말고.”
“소은이 돌보는 건 솔직히 나보단 누나가 잘 하니까 믿지. 그럼 다녀올게.”
나는 누나에게도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고서, 곧바로 집을 나섰다. 한 잔 할 생각이니 차를 놔두고 미리 불러둔 콜택시를 기다리니 금세 택시가 왔다.
미리 어플로 예약한 덕에 목적지를 알려줄 필요도 없었기에, 내가 타자마자 택시는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나를 배려한 건지는 몰라도, 내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약속 장소에 금방 도착했다.
“오오! 우리의 유명인 아니신가!”
택시에서 내려 곧장 약속장소로 들어가니 동창들이 미리 대부분 도착해 있었다. 시간을 딱 맞춰 오다보니 내가 거의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친구놈들이 맞긴 한 건지……. 나를 보자마자, 대부분이 휴대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찍어댔다. 그 중에서 인사를 하는 놈은 딱 하나였다. 아니, 그 놈도 인사를 하는 건지 애매했다.
“너희는 연예인을 만난 거냐, 친구를 만난 거냐?”
“뭘 구분해? 네가 유명한 것도 맞고, 우리 친구인 것도 맞잖아.”
“그래. 시끄럽고, 포즈나 좀 잡아줄래?”
“야야, 성휘야. 나 사진 좀 찍어줘.”
나는 졸지에 동창들과 팬미팅을 하게 되었다. 하나씩 곁에 다가와 사진을 찍어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녀석은 악수까지 요청할 정도였다.
“크! 우리나라 최초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내 동창이라니!”
친구들 중 한 녀석이 기쁘다는 듯이 외쳤고, 다른 녀석들이 꽤 동조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동창회에 참석한 동창들과 한 명씩 모조리 셀카를 찍어줘야 했다. 심지어, 데면데면한 사이인 여자애들과도 모두 사진을 찍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동창회라는 이름의 시달림은 이제 막 시작한 것이었다.
“야, 솬쓰.”
“……왜.”
“니 딸은? 소은이는? 난 소은이 보고 싶은데.”
“미친놈아. 내 딸을 니가 왜 동창회에서 찾아.”
“몰랐냐? 점마, 니 딸 팬이야. 팬클럽도 가입했을 걸?”
“마! 내가 니 딸 팬클럽 초창기 회원이다!”
내 딸의 팬이 내 친구라는 것임에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나에게 더 큰 황당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그 뭐냐. 애기들은 이유식 먹는다며? 이유식에 쓸 재료 살 때 써라. 애기들은 좋은 거 먹여야 돼. 소고기나 전복 뭐 이런 거 먹여. 괜히 요상한 거 사서 먹이지 말고.”
소은이의 팬임을 자처하는 내 친구라는 놈은, 내게 오만 원 지폐 두 장을 건네주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은이는 잘 먹고 있으니까 그걸로 니 옷이나 사서 입지 그래? 구멍난 옷으로 돌아다니면 안 쪽팔리냐?”
“하, 솬쓰 임마 안 되겠네. 어떻게 빈티지를 몰라? 니가 그러니까 아직도 칠백만 따리인 거야. 신칠딱. 신수환은 칠백만이 딱이야.”
“미친놈아. 칠백만이 어디 개 이름이냐?”
“우리집 개 이름 칠백만.”
“미친놈.”
있지도 않은 개를 들먹이는 친구 녀석의 말에 나는 어이가 가출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학교를 다니던 그 때의 느낌이 확실하게 살아났다. 이래야 내 친구지.
그런데, 그렇게 학창시절의 느낌을 물씬 받던 순간. 누군가가 내 곁으로 뽀르르- 달려왔다.
“신수환.”
“오? 부반장 아냐.”
“……졸업한 게 거의 십 년이 다 됐는데, 언제까지 부반장이라고 부를 거야? 나도 채수정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원래 졸업할 때의 반장과 부반장은 영원한 반장과 부반장이라고. 그냥 받아들여. 것보다, 이름이 수정이었어? 수진 아니라?”
내 말에 고3 시절의 부반장이 어이 없다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튼, 그래서 왜?”
“아니, 뭐 좀 부탁해도 될까 해서…….”
“부탁? 편하게 말해도 돼.”
부반장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부반장이 할 부탁이라고 해봐야 어려운 부탁은 없을 것이 뻔했다.
기껏해야 동물 관련 된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이겠지. 철면피가 따로 없긴 하겠지만 비용적인 부분을 기대려 할 수도 있긴 하겠고.
그리고, 이어진 부반장의 말은 내가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우리 중에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애들이 좀 있어. 근데 걔들이 너 나온다고, 다들 데려 왔어. 조금만 도와주면 안 될까? 사실 대부분은 호기심이긴 한데, 몇 명은 조금 문제가 없잖아 있거든.”
“안 될 거 없지. 친군데, 그 정도 부탁 쯤이야.”
“고마워!”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니 부반장이 반색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을 돌아보더니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얘들아! 신수환이 동물들 봐준대!”
아주 홍보를 해주는 부반장의 행동에 황당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부반장은 신경도 쓰지 않고서 나를 이끌고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열 마리가 조금 안 되는 수의 동물들이 모여 있었다. 아무리 음식점 전체를 대관했다고 하지만, 동물들을 들이기 위해서는 정해진 구역에만 위치하도록 제한한 것 같았다.
“아주 개판이네.”
“……보편적으로 많이 기르는 동물이 개잖아. 고양이도 있긴 한데, 고양이 기르는 애들은 데려오지 않았고.”
동창들이 데려온 동물들은 하나같이 개였다. 열 마리가 조금 안 되는 수의 동물들이 아니라, 개들이 모여 있는 것이었다.
“귀엽지? 내가 기르는 애가 쟤야. 중앙에 있는 치와와. 이름은 조.”
“조밥.”
“…….”
부반장이 내 장난에 나를 ?려봤다. 아니, 그런 의미로 지은 거 아니었어?
나는 조심스레 시선을 돌려, 부반장이 말한 조를 바라보았다.
“안녕?”
“오옹!”
내 인사를 받은 조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처음이다보니 꽤나 놀란 모습을 보였다.
꼬리를 퍼덕이더니 몸을 굳혔다가, 이내 내게로 우다다다 달려온 것이었다.
“귀엽게 생겼네. 우리집 개들은 나태 빼면 전부다 좀 커다래서, 이렇게 작은 녀석들이 꽤 귀엽단 말이지.”
나는 내게 달려온 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음 지었다.
“조, 조가 화내질 않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쟤 성질이 장난 아니거든. 내가 아니면 남이 절대 못 만질 정도로. 조금 전에도 봐. 다른 애들은 다 테두리에 있는데, 얘만 중앙에 있었잖아. 사실, 얘 성격 좀 어떻게 해보려고 너한테 부탁하려고 했던 거야.”
부반장의 말에,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분명, 작은 방의 중앙에 조가 꼿꼿하게 서 있었고, 그 주변으로 다른 개들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쟤 완전 깡패가 따로 없어요! 주인님 따라서 여기 왔다가, 오자마자 맞을 뻔했다니까요?”
그리고, 같은 방에 있던 한 개의 증언까지 들으니, 부반장의 말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조가 나한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녀석, 실제로는 흔히들 말하는 지랄견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