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78
0077 여행지 찾기
소은이의 돌잔치도 잘 끝이 났으니 마냥 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나와 누나의 결혼식이 두 달이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도치 않게 소은이가 생기고 5월에 결혼을 하고자 하는 누나의 의지로 1년 미루었던 것을 진행해야하니,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마음같아서는 내년에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드레스를 고르며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행복한 모습으로 고민하는 누나에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고, 용기가 넘치지 않았다.
게다가, 시간이 촉박하다고는 하지만 모든 결혼식 준비를 1달 안에 끝마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카페와 뮤튜브에서 쏟아지는 자본의 힘은 1달이란 촉박한 시간에도 결혼식 준비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일종의 프리미엄 예식장이라고 대관료를 비싸게 받는 예식장은 예약이 쉬웠다. 거기에 드레스도 대여가 아니라 주문제작을 하면서 웃돈을 약속하면 한 달은 무슨, 일주일만에 완성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 외에도 웨딩사진이라던가 하는 것들도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꼭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 많고 실력 좋은 프리랜서 사진기사를 불러 찍으면 되는 일이었다. 각종 영상 같은 경우에는 뮤튜브 채널의 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으니 더더욱 문제는 없었다.
물론, 그렇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내가 바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바로, 신혼여행 때문이었다. 물론, 어느 드레스가 좋냐고 30분 마다 물어보는 누나의 물음도 나를 바쁘게 만들긴 했다.
아무튼, 내게 주어진 신혼여행에 대한 계획 짜기라는 임무 때문에 나는 무척이나 바빴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각종 여행지에 대한 정보들을 끌어모아야 했으니 바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평범한 부부의 신혼여행이라고 할 수가 없었으니 더더욱 바빴다. 이제 돌 지난 아기와 함께 갈 수 있느냐, 동물들과 함께 갈 수 있느냐, 치안은 괜찮은가, 전염병 같은 위험성이 있느냐. 그런 것들을 고려해가며 찾아야 했으니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나는 오랜만에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혼자서 머리 굴리기 힘들 때는 역시 집단지성이지.
“안녕하세요, 여러분! 신수입니다.”
[본인 입으로 신수라고 하는 거 안 쪽팔리나요?]“……쪽팔리니까 그 부분에 관한 채팅은 무시하겠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들어온 구독자의 펀치에 순간 말문이 막힌 나는,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방송을 시작했음에도 벌써부터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든 상태였다.
글로벌하게 구독자를 빨아먹고 있는 내 채널의 특성상, 채팅창에는 온갖 종류의 언어들이 도배되고 있었다.
“아, 죄송하지만 제가 0개 국어 사용자라, 해외 팬 분들과 원활한 소통이 힘든 점 감안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번역기를 돌리고, 그 내용을 보여주었다.
[Nooooooo!] [하고싶다, 대화! 좋다, 이용! 번역가!] [쟤들 도대체 무슨 번역기 쓰는 거야? 왜 번역이 저따구야.] [헤이, 가이즈. 아임 레커멘드 빠빠고!] [그래서 오늘은 왜 방송킴? 평소에 방송해달라고 해도 안 하더니] [영어를 한글로 쓰지 말라고 미친놈들아.]저들끼리 채팅치며 떠드는 사람, 나와 소통하고 싶다는 사람, 의미 없는 채팅을 치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채팅을 쳐댔다. 덕분에 채팅창은 스크롤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검고 흰 빛이 반짝이는 느낌이 들게 만들고 있었다.
단순히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내 말을 자기들이 알아서 해외 팬들에게 번역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는 덕분이었다.
“어우, 채팅창 보기 힘드네요. 아무튼, 오늘은 왜 방송을 켰냐! 바로, 여행지 추천을 좀 받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내 말에 채팅창은 더더욱 빠르게 깜빡였다. 어디가 좋다- 어느 곳이 쩔더라- 하는 등의 채팅이 가득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여행지는 국내가 아니라 해외로 갈 거예요. 단순히 나들이 정도라면 모르겠는데, 이번에 결혼식을 하면서 여행을 갈 계획이거든요.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국내보다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좀 가고 싶어서요.”
해외로 간다는 말에 미친놈들에게서 매국노라는 말까지 튀어나왔지만, 신혼여행이라는 말에 그런 반응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히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온갖 나라를 추천하는 채팅들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이라크? 미치셨습니까, 휴먼.”
당연히 어그로를 끌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여행지를 추천하는 인간들이 튀어나왔다. 나는 상대해줄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그런 이들을 바로 차단해버렸다.
“차단은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마누라랑, 돌 지난 딸내미 데리고 거기 가라는 건 너무하지 않고?”
차단된 인간들을 옹호하는 인간들까지 차단하고나니, 채팅창이 클린- 해졌다.
“이번에 신혼여행으로 갈 곳을 정하고 있는데, 조건이 있어요. 안전할 것. 전염병 등의 위험이 없을 것. 동물들을 데리고 갈 수 있을 것. 소은이가 함께 갈 수 있을 것. 이 정도?”
신혼 여행지의 선택에 필수가 되는 조건들을 늘어놓으니 사람들의 채팅이 마구 올라왔다.
[미국ㄱ] [그런 필터링 설정할 거면 패키지 여행이나 가셈;;] [이거 완전 답정너 아냐?] [신수님 유럽이나 가세요!] [전 세계 여행지의 90%를 제외해놓고 이 정도? 라고?]“아니, 나도 알아요. 내가 말한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별로 없는 거. 그래도, 좀 신박한 곳이 있을 거 아녜요. 평생에 한 번일 결혼에 이어지는 여행인데, 기억에 빡! 남아야죠.”
내 말에, 시청자들이 드디어 납득하기라도 한 건지, 여러 아이디어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 어떰? 거기서 남캣이나 청호가 사자랑 싸우는 거임.] [추천한다. 나는, 카타르.] [나미비아2222222] [아프리카 쪽은 치안 문제 있지 않나? 그럼 조건에서 탈락이잖아.] [ㄲㅂ! 남캣이 사자 때려눕히는 거 보고 싶었는데.] [그러면 달로 가자. 요번에 위성도 쐈잖아. 겸사겸사 달 구경도 하자.] [마다가스카르 어떰? 그 왜 펭귄 애니메이션도 있잖아요.]물론, 아이디어들을 내놓는다고 해서, 그 아이디어가 정상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전 세계에 국가가 엄청 많네요. 리히텐슈타인?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나 이런 나라는 처음 들어봤어.”
도중에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국가 이름도 막 튀어나왔다.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채팅친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국가라는 것을 검색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마다가스카르라……. 거기도 괜찮긴 하겠네. 치안이 조금 안 좋다고는 하는데, 경호원들을 좀 고용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여우원숭이 보고 싶긴 한데.”
[여우원숭이한테 털고르기 받는 신수님 상상함]“……그건 좀.”
여우원숭이를 보는 건 좋은데, 그 녀석들한테 털고르기를 받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도대체 무슨 번역기를 쓰길래, 번역이 그 모양이죠? 아니, 것보다……. 갈라파고스? 갈라파고스 제도 말하는 거죠?”
그리고 여우원숭이의 털고르기에 대한 상상에 몸서리치던 나는 뒤 이어 올라온 채팅에 집중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라고 하면 온갖 희귀한 동물들이 가득한 그 섬들을 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진화론의 찰스 다윈이 온갖 동물들을 관찰했다고도 유명한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갈라파고스 제도도 좋긴 한데……. 솔직히, 거긴 힘들 거 같아요. 반려동물이랑 같이 들어가기가 거의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외래종의 침입이라던가 하는 것으로 인하여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것 때문에 동물들과 함께 출입하는 것이 힘든 곳이 갈라파고스 제도였다.
[꼭 동물들이랑 같이 가야함?]“네. 소은이 때문에라도 꼭 같이 가야 해요. 소은이가 청호나 유부, 토끼즈 없이는 하루 밖에 못 버텨서요. 특히, 토끼즈.”
언제나 동물들과 함께 있는 것이 태어난 이후로 쭉 이어진 소은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은이는 동물들이 없으면 하루 이상 버티지 못했다.
소은이를 보고 싶다고 난리치는 아빠와 아버님 때문에, 2일의 시간을 써야 한 일이 있었다. 동물들을 데리고 다니긴 힘들다보니 직원들에게 동물들을 맡겨놓고 소은이만 데리고 갔는데, 그 때 알게 된 것이었다. 소은이가 하루 이상 동물들과 떨어지면 보고싶다고 울고불며 보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갈라파고스에 대한 이야기가 슬슬 잦아들기 시작할 때, 후원 메시지가 터졌다. 빠르게 사라지는 채팅 사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겠다고 터지는 자잘한 금액의 후원 메시지가 아니라, 높은 금액대의 후원 메시지가 터진 것이었다.
차르릉!
[대사관직원입니다 님이 100만 원 후원!] [“안녕하십니까. 주에콰도르 한국대사관 직원입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신데, 연락이 가능하실까요?”]“……대사관?”
[대사관직원입니다 님이 100만 원 후원!] [“실제로 주에콰도르 한국대사관에서 통역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입니다.”]돈을 꽤 많이 써가면서 말하는 것에, 나는 흥미가 생겼다. 곧바로 자칭 대사관직원이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글로벌하게 쓰이는 메신저를 켰다.
차르릉!
[대사관직원입니다 님이 1만 원 후원!] [“저 진짜 대사관 직원 맞고요, 조금 전에는 따로 요청하신 분이 있어서 대신 후원한 겁니다. 제 돈 아녜요. 대사관직원이라도 먹고살기 힘들어요. 뇌물이나 비리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이건 제 돈이예요…….”]사람들의 오해가 가득한 채팅에 반박하는 후원 메시지가 다시금 울려퍼졌지만,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 메신저에 로그인한 나는, 금세 대사관 직원이라는 사람과 연결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주에콰도르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이박입니다.”
“……김이박이요?”
“네. 좀 신기한 이름이죠? 그래서, 외국 친구들한테 설명할 때는 존슨 스미스 데이비드라고도 설명해요. 흐흐.”
자기 이름을 스스로 신기하다고 말한 김이박은 웃기다는 듯이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곁에서 누군가가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김이박이 정신을 차리고 연락을 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제가 신수님의 방송에 후원 메시지를 보낸 건 저희 대사관의 의지는 아니라는 걸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대사관이 한 게 아니라고요?”
“예. 제가 후원을 한 건 전적으로 갈라파고스주의 주지사께서 요청하셨기 때문입니다.”
김이박은 갈라파고스주의 주지사라는 사람을 소개해주며, 그 주지사라는 사람이 내게 후원을 하도록 유도한 이유를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