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84
0083 펭귄 서식지(1)
“이, 이게…….”
수 많은 바다사자들이 몰려오는 것에 한껏 긴장하던 가이드는 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긴. 아무리 가이드를 하면서 갈라파고스에서 오래 있었다고 해도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거겠지.
나는 여전히 걱정하는 듯한 누나에게 괜찮다는 뜻을 담아 손짓해주었다. 동물에 관해서는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누나는 금세 걱정을 떨쳐냈다.
“빠빠! 우응?”
소은이는 바다사자들을 가리키며 녀석들에 대해서 궁금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동물을 좋아하는 소은이답게, 새롭게 만난 동물을 무서워하기 보다는 신기해하는 것이었다.
“얘들은 바다사자야. 바다사자.”
“짜아?”
바다사자라는 말의 끝부분만을 따라한 소은이는 한 번 만져보고 싶다는 듯이 손을 뻗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바다사자들 중 가장 먼저 물고기를 가져온 녀석에게 다가갔다.
“머리 좀 내밀어 봐.”
“엣헹, 헤에헹!”
내 말에, 바다사자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베베 꼬더니 머리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쨔쨔!”
바다사자를 만질 수 있도록 살짝 내밀어주니, 소은이가 자그마한 손바닥을 펼쳐 바다사자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으헤헤헤헹! 뿅간다!”
그리고, 소은이의 은총…… 아니, 손길을 받은 바다사자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마치 소은이의 손바닥에 맞고서 기절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가이드가 다급히 다가와 바다사자를 확인했다. 바다사자에게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가-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건들지 마!”
“으헉!”
하지만 소은이의 손길이 닿은 머리를 다른 인간이 만지게 놔두지는 않겠다는 듯, 바다사자는 가이드를 위협했다.
꾸엉꾸엉 소리를 내지르며 파닥이는 바다사자의 모습에, 가이드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가볍게 웃음을 터트린 나는 시선을 돌려, 또 다른 바다사자를 바라보았다. 바로, 갈라파고스 펭귄을 물고 찾아온 바다사자를 바라본 것이었다.
“걔 내려놔.”
“느드 믄즈즈므!”
“살리죠오오!”
바다사자가 내 말에 답하는 것에, 펭귄이 살려달라며 소리쳤다.
꾸엉꾸엉, 꾸엑꾸엑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많이 몰리던 시선이 더더욱 몰리고 있었다.
“어휴. 소은아, 얘도 만져달래.”
“꺄!”
소은이는 어려울 것 없다는 것처럼 그대로 바다사자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그런 소은이의 손길을 받은 바다사자는 입에 물고 있던 펭귄을 퉤- 내뱉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허허허헝! 천국이야!”
“…….”
술이라도 거하게 한 듯한 바다사자들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바다사자들의 행동에 신경을 껐다. 바닥에 널부러져서 살았다며 안도하고 있는 펭귄 때문이었다.
“괜찮아?”
나는 바닥에 널부러진 펭귄을 일으켜세우고선 녀석의 몸을 슥-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바다사자에게 물려 있던 펭귄이었지만, 다친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난 갠짜낭!”
녀석도 스스로가 괜찮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뚱뒤뚱 걷듯이 몸을 흔들었다.
“페엥!”
그리고, 그런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소은이는 간간히 보여주던 영상의 캐릭터가 떠오른 듯했다.
그 영상을 보여줄 때마다 집중하던 소은이답게, 소은이는 펭귄을 향해 손을 뻗으며 버둥거렸다. 나는 당장 펭귄을 만져야겠다! 하고 온 몸으로 시위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가볍게 웃으며, 소은이를 내려주었다.
갈라파고스 펭귄의 부리가 조금 날카롭게 보이긴 했지만, 소은이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 키의 펭귄은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너 마음에 드렁!”
“페엥!”
소은이는 펭귄을 끌어안았고, 펭귄 역시 소은이의 품에 파고들었다.
토끼즈……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펭귄이 마음에 드는 듯한 소은이였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토끼즈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우리를 잊으면 안 되는 거샤!”
“그런거샤!”
“토오!”
소은이는 토끼즈가 다가오는 것에, 녀석들도 품에 끌어안았다. 소은이는 토끼즈에게 파묻히듯 녀석들을 끌어안으면서도, 펭귄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지 펭귄의 날개를 붙잡고 있었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욕심쟁일까?”
“너 닮아서?”
“하긴, 내가 좀 욕심이 많긴 하지. 둘째 욕심도 슬슬 생기는데, 어떻게 생각해?”
“헛소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내 말에 누나는 가볍게 웃으며 내 등에 손바닥 자국을 남겼다.
“끄으으…….”
하필이면 손이 닿지도 않는 곳에 생겨난 손바닥 자국에, 나는 몸을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꿈틀거린 나는 소은이가 깊게 잠든 이후, 반드시 누나를 혼내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다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번만 핥아보자!”
“저리 꺼져!”
“딱 한 번만 핥자고!”
“사랑의 손길을 핥게 해주겠냐!”
바로, 바다사자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은이의 쓰다듬을 받은 두 마리의 바다사자들과 그 바다사자들의 머리를 노리는 다른 바다사자들이 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가 여기 제법 오래살았는데, 바다사자의 패싸움을 볼 줄은 몰랐네요.”
가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무척 황당하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싸우는 이유를 듣는다면 더 황당해할 것 같았기에,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 녀석들, 소은이가 만져준 거 핥아보겠다고 저러는 거예요. 바다사자의 패싸움이 아니라, 변태들의 변태짓인 거죠.”
“…….”
가이드가 바다사자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음을 터트리고서는, 소은이를 안아들었다. 소은이가 토끼즈와 펭귄을 놓지 않으려고 해서 잠시 곤란하긴 했지만, 방법이 있었다.
“소은아, 까까 먹을까?”
“까까!”
소은이는 붙잡고 있던 토끼즈와 펭귄을 바로 놓았다.
언제나 붙잡을 수 있는 동물들보다는 과자가 소은이에겐 조금 더 가치 있는 것이었다.
“과, 과자에 밀린 거샤……?”
과자에 밀렸다는 것에 토끼즈가 잠깐 충격을 받긴 했지만, 소은이를 안아든 내가 누나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니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저……. 펭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따라가는데요.”
바로, 바다사자에게 붙잡혀 왔던 펭귄 녀석이 우리를 졸졸 따라오는 것이었다.
뒤뚱뒤뚱 걸음을 쉬지 않고, 열심히 쫓아오는 모습은 얼핏 안쓰러울 정도로 귀여웠지만 문제는 문제였다.
움직일 때마다 졸졸 따라오는 모습을 보아하니,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데려가서 키울 수는 없겠죠?”
“글쎄요. 그 부분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녀석이 멸종위기종이라는 거죠.”
“흠……. 그럼 내일 바로 펭귄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걸로 하죠. 가는 김에, 이 녀석도 떨구고요.”
“일정은 하루씩 미루시겠습니까?”
“그래야죠.”
내 말에 가이드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느새 졸립다는 듯이 고개를 꾸뻑꾸뻑 숙이는 소은이의 모습에, 다시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찌, 가찌가앙!”
뒤에서 펭귄이 아주 열심히 쫓아왔다. 그나마 가장 느린 한무 보다는 조금 빠른 속도로 낙오하지는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롭게 펭귄 한 마리가 추가 된 상태로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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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환아. 쟤, 여길 자기 집으로 착각하는 거 아니야?”
이른 아침부터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며 우리를 깨운 소은이에게 맛있는 이유식을 챙겨준 누나는 바닥에 널부러져서 자고 있는 펭귄을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여타 다른 동물들처럼 엎드리거나 몸을 웅크린 채 자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활짝 펼쳐서 말 그대로 대(大)자로 누워 자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이 옆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일찍 일어난 다른 동물들이 지나다니고 있음에도 깨지 않을 정도로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얘 이러다가 한국까지 따라간다고 하는 거 아냐?”
“……그럼 큰일인데.”
누나의 말에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슬슬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기에, 우리는 그런 펭귄을 무시하고서 준비를 마무리했다.
“따로 뭐 더 챙겨야 할 거 있을까?”
“선크림? 아무래도 거긴 자연 그대로의 바닷가니까 햇빛을 가릴만한 곳이 부족할 거 같아. 대부분 바위라고 들었거든.”
“응응, 그리고?”
“갈아입을 옷 정도만 챙기면 되겠지. 웬만한 건 다 자기들이 준비해줄 거라고 했으니까. 아, 소은이 간식은 조금 더 챙기자.”
내 말에 누나는 캐리어에서 선크림과 아기 간식만 쏙 빼내어 가방에 집어넣었다.
“갈까?”
필요한 것들을 다 챙긴 누나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얌마. 일어나.”
나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펭귄을 툭툭 치며 깨우기 시작했다. 다른 동물들은 대부분 놔두고 갈 생각이지만, 펭귄은 놔두고 갈 동물에 해당하지 않았다.
“뀨레엑.”
“괴상한 소리내지 말고, 일어나 임마.”
깨라는 잠에서 깨지는 않고, 괴상한 소리나 내는 펭귄의 부리를 잡고 파라락 흔들었다.
“구엑! 일났쪄! 일어났쪄!”
“그래. 잘했다.”
나는 부리를 잡고 흔드니 그제서야 일어나는 펭귄을 들어올리며, 누나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가이드와 경호원들을 포함하여 항구로 가니, 벌써부터 수십여 명의 사람들이 각종 도구들을 소지한 채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다가와 손을 슥- 내밀었다. 스페인어로 무어라 말을 하는데, 단어 하나도 알아듣질 못했다.
“갈라파고스에서 펭귄 서식지를 관리하는 로베르토입니다. 뒤에 있는 사람들을 인솔할 책임자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곁에 있던 가이드 덕분에 대화를 하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책임자라는 로베르토와 악수를 나눈 나는, 곧바로 보트에 탑승하여 펭귄들의 서식지로 움직였다.
멀미가 올듯, 말듯한 파도를 넘으며 한동안 보트를 타고 있으니 저 멀리서 펭귄들의 서식지라고 하는 바위로 이루어진 해변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기가 너희 집이야?”
“어떠케 아라쪄?”
바위 해변이 잘 보이도록 펭귄을 들어올리며 물으니 펭귄이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나는 잘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며,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는 몇 마리의 펭귄들을 바라보았다. 내 곁에 있는 펭귄과 똑 닮은 펭귄들이 헤엄도 치고 햇빛을 쬐기도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