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 * *
호란의 불만에 시현이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력석이 지닌 기운을 잘 끌어내어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온의가 말하지 않더냐. 교인은 변고 전부터도 항상 마력석을 써 왔으니 숙련되어 있었겠지.”
“그 사람은 마법 실력이 없어서 마력석을 써서 시험 본 게 아니에요?”
“조금 다르다. 교인은 주문을 짜는 실력은 출중한데 주위의 기운을 모아들이는 데는 서툰 편이었다. 못 하는 부분을 마력석에 의지하는 대신 잘하는 부분에 최대한 집중한 거야. 나는 그것도 성취를 추구하는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시험까지 그렇게 보는 건 치사한 거잖아요.”
호란이 삐죽였다.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시험이야 어쨌건, 그 능력으로 거석을 물리치고 관성을 지킨 것은 좋은 일이 아니냐. 이후의 행적이 문제지.”
“문제 정도가 아니잖아요!”
호란은 시현이 대운관 땅인들과 만날 때마다 호위로 따라갔기 때문에, 그들이 교문, 즉 위교연 인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을 싫어도 들어야 했다.
주로 대운관에 침범해온 거석을 물리쳤다든가, 변고 후 혼란에 빠진 관성을 안정시켰다든가, 벽명관이나 다른 관성이 변고로 난리가 났을 때 얼마나 훌륭하게 대응했는가 하는 내용이 주였다.
특히 변고 후 대운관에 장군석이 두 번이나 나타났는데, 그것을 무너뜨린 것이 교문이시라는 이야기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교인에 대한 호란의 반감은 오히려 커질 뿐이었다. 장군석을 척척 쓰러뜨릴 만큼의 마력석이 이미 있는데, 뭐 하러 벽명관 사람들을 그렇게 괴롭혔단 말인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단이 미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사람이 거석과 직접 싸웠다고 합니까? 대운관 훈작 사족들은 최전선에 나서는 일이 잘 없을 텐데요. 위씨 교인은 그중에서도 유별나서 궁 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이가 그런 데가 있었느냐? 의외구나. 서격원 시절에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어쨌든 변고가 났으니 그리 지낼 수는 없지 않겠느냐.”
시현은 옛날 일이 떠오르는지, 교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항상 복잡한 표정이 되곤 했다.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어쨌든 그이도 대운관을 위한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겠지. 대운관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타지에 무도하게 구는 것을 놓아둘 수는 없지만.”
하지만 며칠이 지나 대운관 속령으로 들어간 뒤 마주한 풍경은 시현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다.
대운관의 속령에는 생각 외로 거석이 많았다. 앞길의 거석을 상대하느라 하루에 두어 번씩 진군이 멈췄다.
마력석 광산이 있는 지역은 군이 주둔하고 나름 관리가 되고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지역은 날뛰는 거석 무리가 그대로 방치된 듯했다. 농지가 망가지고 인가가 반파된 모습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대운관군이 시현의 시선을 감안해서 경로를 잡고 있다면, 보이는 것보다 더한 지역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었다.
시현은 딱히 속을 내비치지 않았다. 몇 번 백성들의 상황을 물었지만 남의가 입에 발린 대답으로 일관하자 더 추궁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마주치는 거석도 대운관군이 알아서 정리하도록 놓아두었다. 자연히 호란도 시현의 곁에 붙어있는 것 외에는 아무 할 일이 없었다.
여정은 몸은 편하고 마음은 불편한 상태로 계속되었다.
그렇게 일행은 초겨울의 한기 속에서 대운관에 도착했다.
26. 태화관
마침내 대운관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시현은 호란과 함께 의전용의 높은 수레에 옮겨 타고 대군의 선두에 나와 있었다.
“보십시오. 천 년 역사의 대운관입니다.”
호란은 대운관의 모든 것을 싫어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는 솔직히 감탄했다.
앞에 보이는 것은 호란이 이제까지 거쳐온 모든 관성 중에 가장 거대하고 웅장한 성이었다.
대운관은 16왕 이전, 세상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 각축을 벌이던 시절부터 번성했던 대도시였다. 수도 지위는 잃었어도 왕조 시절의 부와 영화가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삼면에 요새 같은 탑루를 두고 두 단으로 쌓아올린 높은 성벽이 대도시와 수만 인구를 품었다. 관성 주위는 변고 후 거석들이 쳐들어온 흔적으로 거칠었지만, 이 땅이 세상의 중심임을 웅변하는 듯 사방으로 뻗은 대로는 멀쩡했다.
시현은 성대한 환영을 받으며 입성했다. 성문에서 수도 중심의 대운궁까지 인파가 늘어섰고, 총치총령을 비롯한 여러 고관이 광장에 나와 영접례를 치렀다.
그러나 문제의 위교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시현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백성들 앞에서 자신을 맞아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껄끄러운 낯을 하기 어려웠을 텐데, 이만큼의 환영식을 준비하면서 정작 자신이 주인공이 될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문께서는… 아니, 교문께서는 대운궁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시현을 영접하러 나온 대운관 총치총령이 공손하게 말했다.
다른 관성의 총치나 총치총령들이 관성의 대표자로서 시현 앞에서 보였던 자세에 비하면 다소 비굴해 보일 정도였다.
문 앞에서 총치총령이 어깨를 못 펴는 것은 꼭 문을 자칭하는 교연의 위세 때문만은 아니었다. 왕이 폐해진 이래 줄곧 대운관의 권세는 총치나 총령이 아니라 중시조와 그 후예인 위씨 가문의 손에 있었다.
위씨 가문의 가주에게는 정치 고문에 해당하는 태상사라는 명예직이 대대로 계승되었다.
말이 명예직이지 그 영향력은 막대했다. 총치총령은 새로운 극상격이 나오면 교체될 가능성이 생기지만 태상사는 종신직이다. 자연히 실권은 위씨 가문에 쏠렸다.
왕조가 폐지되면서 세상은 혈통 대신 법술사의 격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왕이 머물던 대운관만은 여전히 가문과 혈통에 복종하는 곳으로 남은 셈이었다.
시현과 호란이 탄 수레가 대궐문을 통과했다.
왕조 시절 지어진 대운궁은 폐왕의 난리를 겪고도 대부분이 무사히 남아 현재는 대운관의 관부로 사용되고 있었다.
호란이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대궐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지 않으려고 꾹 참고 있는데, 안내역으로 수레에 동승한 고관 한 사람이 어려워하며 입을 열었다.
“시문이시여. 외람됩니다만….”
“무엇인가?”
“교문께서 계신 태화관에는 하늘족 호위를 데리고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시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오래 지켜온 불문율입니다. 대운관 사람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태화관에 교문께서 계실 때에는 어떤 하늘족도 태화관 내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규율을 내게도 따르라는 것인가? 비례에도 정도가 있다. 어이가 없으니 두 번 말하지 말라.”
“예에. 참으로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고관도 경우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는지 머리를 숙이며 거듭 사죄했다.
“참람할 따름입니다. 혹여, 양민 근시가 있다면 교체할 수 없을지 하여 여쭈어보았을 뿐입니다.”
“있다 한들 누구를 어디에 데려갈지는 내가 결정할 것이다.”
시현이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단은 다른 관성에서 공식 일정이 있을 때 그랬듯이 수레를 건사해서 궁 안에 준비될 시현의 처소로 간 후였다. 하지만 단이 여기 있다 한들 시현을 따라 공식 석상에 나가는 것은 싫어했을 거라고 호란은 생각했다. 그는 대운관에 와서도 수레를 지키는 것 외에 다른 역할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호란도 누가 뭐라 하든 시현의 곁에서 떨어질 생각은 결코 없었다. 호란은 등을 더 꼿꼿하게 세웠다.
“하늘인을 양민으로 치지 않고 꺼리던 것은 먼 옛날 일인 줄 알았는데, 대운관에는 아직도 그런 습속이 남아 있는가. 대운관도 하늘인을 병사와 호위로 쓸 것이 아닌가?”
시현이 고관에게 물었다. 관인은 민망한 듯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물론 대운관의 하늘족도 충성스러운 병사들입니다. 그래도 전통은 전통이니까요….”
“태화관에는 파수 보는 병사도 없단 말인가.”
“하늘족은 외부를 지킬 뿐입니다. 내부는 법군과 반민병들로 충분합니다.”
호란은 주위를 곁눈질했다. 그러고 보니 여행 중에 줄곧 시현을 호위해온 대운관의 하늘인 정병들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입성 행렬에 함께했던 태청과 연화도 대운궁 앞에서 물러났다.
궁궐 여기저기에 하늘인 병사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를 앞세운 반민 병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관성의 관부에서는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태화관은 대궐의 정문에서 멀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섯 층 짜리 높은 건물에 지붕을 덮은 청자 기와가 겨울 햇살을 받아 맑은 빛깔을 자랑했다.
오색 단청과 화려한 장식이 빼지 않고 건물을 둘렀다. 뒤편에는 전망대 같은 누각 두 채가 양쪽으로 날개를 편 듯 붙어있었다.
두리번거리거나 감탄하지 않으려고 계속 눈에 힘을 주고 있던 호란은 여기서 결국 입을 벌리고 말았다.
호란은 시현의 뒤를 따라 수레를 내렸다.
월대 양쪽에는 사람들이 늘어서 절하고 있었고 넓게 문이 열린 거대한 전각은 안쪽이 바깥쪽보다 더 화려했다.
전각 안으로 몇 발짝 발을 들였을 때, 높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오셨는가, 녹주!”
2층과 연결된 계단에서 흰 장포에 연한 물색 치마를 입은 이십 대 중후반의 여성이 달려내려왔다. 시종관 같은 사람들이 허둥지둥 뒤를 따르고 있었다.
여자는 미인은 아니었으나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이었다.
창백할 정도로 투명한 피부에 연한 금발, 눈처럼 흰 의복은 온통 금은과 오색으로 꾸며진 태화관 안에서 오히려 도드라졌다.
길게 굽이치는 머리칼은 백옥 뒤꽂이만 하나 꽂고 아래로 늘어뜨려 격식 갖춘 옷차림과 대조를 이뤘다.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교연을 보고 시현이 걸음을 멈췄다.
“오랜만이네. 난령.”
시현의 착잡한 목소리를 들으며 호란은 뒤늦게 눈치챘다.
옛날에 시문 님은 이 사람을 친하게 여겼었구나. 친구까지는 아니라도, 호의를 가질 정도로는.
교연은 서격원 동기 시절의 별명으로 첫 대면의 호칭 문제를 가볍게 얼버무린 후, 격의 없는 태도로 여행길의 안부를 물으며 직접 시현을 회담장으로 이끌었다.
하늘인은 태화관에 들어오지도 말아야 한다더니, 호란이 예법을 무시하고 시현의 뒤에 가까이 붙어 따르는 데도 딱히 거리끼는 기색이 없었다.
얼굴에는 진심으로 반가운 듯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시현은 마주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회담장은 총치총령을 비롯해 예닐곱 명 정도의 고관이 동석하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탁자 주위에도 비서관들이 여럿 시립했다.
하지만 시현과 교연을 위한 상석과 다른 자리 사이에 격차가 뚜렷했다. 다른 사람은 그저 들러리로 놓아둔 자리였다.
시현은 자기까지 들러리를 서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인사치레를 짧게 마치고 그가 말했다.
“반갑게 맞아주는 것은 기쁘네만, 옛정을 나누러 만나기에는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가 아닌가.”
교연은 시현의 말에 담긴 가시를 느꼈으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미소를 띠고 말했다.
“당연히, 그대가 얼마나 중차대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지를 내가 모를까. 여기까지 먼 걸음을 하게 한 것은 미안하네. 다만 이쪽에도 나름의 큰일이 있어. 대운관이 단독으로 결정하기에는 앞일에 영향이 크다 생각하여 그대와 상의하고자 방문을 청했네.”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인가.”
“그대의 일과도 크게 관련이 있어….”
교연이 연파랑 눈동자에 빛을 띄웠다. 마치 장난기를 감추는 듯한 투로 그가 말했다.
“녹주, 오해하지 말고 들어야 해. 지금 대운관에 돌 인간들이 와 있네. 대운관과 휴전 협정을 맺기를 청하고 있어.”
“!”
시현의 얼굴이 굳었다. 호란도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두 사람의 염려를 안다는 것처럼 교연이 바로 말을 이었다.
“휴전이라고 해도, 하유관에서처럼 그대를 끌어들이는 문제는 아니야. 오로지 대운관과 그들 사이의 문제지. 대운관 백성들을 생각한다면 협정에 응하는 것이 옳겠지만… 다른 관성들이, 그리고 그대가 어려운 싸움을 하는데 대운관만 빠져나가는 것이 과연 도리일까? 나는 고민하고 있어.”
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교연은 별로 고민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야기를 하며 시현의 반응을 관찰하고 있었다. 자신의 그런 내심을 일부러 드러내는 것 같기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