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180
별이와 데이트.
시바가 다니는 유치원 근처에 테러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당연히 근절하려 노력해보고, 안된다면 유치원을 그만두는 수밖에 없겠지.
작은 위험성이라도 가만 두고볼 수는 없었다.
“시헌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팔짱을 낀 채 가슴을 가깝게 붙여온 별이 날 보며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내가 이 날만 보고 얼마나 일했는지 알아? 딴 생각하지 말고 나만 보란 말야 나만!”
그건 그런데.
내 머리가 자꾸 그쪽으로 가는 걸 어쩌냐.
나는 별의 얼굴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고 별은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귀엽게 발을 동동 굴렸다.
공간 마법으로 찾아온 서울 백화점.
정말 흔하디 흔한 연인들의 데이트, 옷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지금 당장! 이라며 ‘고고 앞으로 돌진!’을 외친 별이 나를 끌고 이곳으로 향했다.
물론 여기 오는데는 내 공간마법이 한 몫했다.
텔레포테이션이 없었으면 아카데미에서 데이트하면서 생도들이 쑥덕거릴 게 뻔했으니까.
그래도 별은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나름대로 부협회장이라는 높은 직책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왜 그렇게 안달이 나 있어요?”
“그치만. 지금까진 세영이가 너 독점했잖아. 아니면 뭐, 겜순이는 싫다는 거야 뭐야~!”
어깨를 툭툭 장난스레 치는 별이.
아픈 척을 하며 멀어지자, 때리는 걸 멈추고 도로 팔짱을 끼며 볼을 팔에 비벼댔다.
그 작고 발랄한 귀여움에 진달래에게 느꼈던 가학심이 드는 건 왜인지.
나는 슬쩍 놀림투로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과연 세영이만 독점했을까.”
“……!”
충격받은 별의 얼굴.
“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멍을 때리다가, 꽉 쥔 주먹으로 내 어깨를 팡 때렸다.
“요, 요 망할 것!”
“억!”
“여친 앞에서 다른 여친 이야기라니……. 진짜 너무해! 니가 지금 뭘 했는지 알아?”
“뭔데요.”
“여친 데리고 스타 가르쳐 주겠다면서 피시방왔는데, 하는 법도 안알려주고 허둥대는 여친한테 4드론 쓰는 격이야!”
대체 무슨 비유람.
어느정도는 이해가 가서 더 신기하다.
인구수에 대한 개념도 몰라서 일꾼만 주구장창 뽑다가 ‘오빠 이거 어떻게 해?’ 하는데 본진으로 저글링이 쫓아오는 거지.
최악의 남친이 아닐 수 없다.
그걸 비유하려는 거면 별이의 비유가 정확하기도 했다.
“미안해요.”
내 순순한 사과에 눈을 고양이처럼 좁힌 별이.
그녀는 시큰둥하게 나를 보곤, 이윽고 씨익 웃더니. 양 팔을 쓱 뻗어왔다.
그녀의 큰 동작에 따라 가볍게 입은 원피스가 살랑인다.
“…그럼 꼭 안아 보던가.”
“예이.”
“헤헤…. 나도 이제 부모님한테 자랑할 수 있겠당~”
“남친생겼다고요? 뭐라 안 하시려나.”
“에이~ 시헌이 정도면 일등 신랑감이지~! 나중에 팔짱 끼고 산소나 한 번 가자. 엄마 아빠도 쌍수 들고 환영할 걸? 우리 어여쁘고 겜만 할 줄아는 뇬이 남자 데리고 왔다~ 이렇게. 히히.”
“산소… 아.”
별의 부모님은 아무래도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신 듯하다.
내가 말을 잃고 아무런 대꾸도 안하고 있으니 별은 그런 나를 보며 별거 아니란 듯 톡 내 엉덩이를 두들겼다.
“왜? 요즘엔 흔한 일이잖아.”
“그런가요. 이런 이야기는 잘 안들어 봐서.”
“시헌이가? 그건 좀 의외네…. 뭐, 정말 별 거 아니야. 어디 보자아~ 언제 적 일이었더라?”
별은 내 팔짱을 끼고 백화점 안을 빙빙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냥. 내가 옛날에는 되게 찐따였거든. 히키코모리? 방에 박혀서 게임만 하고. 뭐 그건 지금도 그렇지만.”
“네.”
“그래서… 플라워. 오늘 들었지? 고뇬들 테러에 휩쓸려서 부모님이 그만 돌아가셨어.”
“그렇구나.”
“딱 그때 느꼈어. 아… 집에 박혀있던 내가 진짜 병신같더라고. 우습지?”
“아뇨. 되게 대단하네요.”
“흐흐흐 우습다고 해. 그냥.”
별은 쓰게 웃으며 여성복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픈 과거야 누구나 가지고 있다지만, 보통 그것을 이겨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까지는 참 어렵다.
별은 참 자기 성격대로 밝게 그것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다정한 가정을 깨부순 플라워도 어지간하다.
……이 플라워란 새끼들은 맨날 튀어나오네.
별은 허심탄회하게 킥킥대며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애교를 섞은 행동 모든 것과, 나를 향해 보이는 미소라던지. 전혀 상처를 입은 여자의 행동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별의 당찬 모습이 더 슬프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깨달았지. 아~ 이래선 안되는구나. 그런데 어머? 내가 소설마냥 존나 카리스마있고 재능있던 년이었던거지.”
“오오…그거 완전.”
“만화같지?”
팔짱을 낀 손을 그대로 하고 한쪽 팔을 불끈. 근육을 드러내는 포즈를 취하며 별이 웃었다.
“그래서 이 겜순이 별이는~ 아카데미에 갔지!”
“아하.”
“근데 찐따라 말은 잘 못하고 공부랑 훈련만 했어. 어쩌다가 세영이랑 친해졌지만 친구는 세영이 뿐이었고.”
“두 분 인연이 거기서 시작됐구나.”
“응응. 애가 참 착해. 성격 드러운 것만 빼면…. 뭐. 아무튼 별이모노 가타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
별이모노… 아 별의 이야기.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별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아카데미에서 연전연승. 결국 취직해서 부협회장까지 올랐다 이 말씀! 전세계적으로 최연소거든?”
“최고네요.”
“응응. 이제 좀 내가 남달라 보여?”
솔직히. 지금까지는… 성격 때문에 그런지 대단한사람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손쉽게 사랑에 빠지고, 자기 자신을 까내리고.
그런 사람이 협회의 부협회장에 사실 대단한 업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신기하네.
나는 팔짱을 조금 잡아당기며 별에게 말했다.
“고생 많이 하셨네요.”
“…응. 근데 뭐~ 사실 난 취직보단 취집을 하고 싶었지만!”
“큭큭큭. 잘했어요.”
나는 별의 모자 쓴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별은 그 순간 걸음을 딱 멈추더니,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 보니까 되게 잘 컸네요. 다른 사람이었으면 무너질 법도 한데.”
“……그치?”
“저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거든요 근데 저는 거진 10년 넘게 병신처럼 살아서.”
그 점 만은 동경한다.
아버지와 일이 잘못되어 인생에 환멸감과 공허함을 느끼던 나.
방금 별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성장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정말?”
“네. 그런데 저보다 더한 경험에, 밝게 성장한 별을 보니… 되게. 뭐랄까.”
별은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걸 깨닫곤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봤다.
자기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는데. 내 이야기를 들을 땐 또 이렇다.
별에게 해줄 말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던 나는 떠오르는 말 딱 한 마디를 입에 담았다.
“예상보다 된 사람이구나 싶어서. 누나 오늘 좀 다시 보네요. 큭큭.”
“…아.”
내 말을 들은 별의 눈동자가 한 순간 크게 요동쳤다.
별 모양의 동공이 좌우로 한 번. 상하로 한 번.
그리고 조금씩 별의 발랄한 표정이 서서히 깨지더니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그래? 하. 하하. 예상보다는 뭐야 인마! 나 원래 된 사람이거든?”
뒤늦게 표정을 고친 별이 씩씩 화내는 얼굴을 하며 내 허리를 쿡 찔러왔지만. 방금 변했던 그 얼굴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잊혀지지 않았다.
“됐어! 옷이나 사러 나가자.”
“네이, 네이.”
잘 빠진 옷 한 벌. 노란 커플 티. 그리고 귀걸이같은 악세사리.
별이의 주도로 데이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는, 이후 어떤 일적인 대화 없이 서로 미소와 함께 해어지기로 했다.
“원래는 오랜만에 하자고 보채려고 했는데… 예뻐서 봐주는 거야.”
“저는 괜찮은데. 모텔이라도 가요?”
“……됐어. 지금은 그냥 이 마음 그대로 가고 싶거든.”
저녁 9시.
잔뜩 산 옷을 품에 품으며 해맑게 웃은 별이 한 발자국 내게서 떨어졌다.
수줍게 붉힌 볼에 꿀이 떨어지는 눈. 갑자기 나를 보는 눈이 이전보다 한층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야.”
나를 대하는 대도 약간 어색하게 애교를 부리는 감이 있던 별이, 이제는 훨씬 편해진 말투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네?”
“…첩이긴 해도 여친 이대로 보낼 거야?”
번들 거리는 입술을 씰룩이며 나에게 요망한 신호를 보내는 별이.
내가 한 발자국 다가가자, 별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뭐해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계속 와 계속.”
-폴짝.
한 발자국 걷자 다시 멀어지는 별이.
약간 오기가 들어 세 발자국을 뛰어가듯 걸어갔다.
그 순간 별이 모자를 벗으며 입술을 내밀어왔다.
-쪽.
부드럽게 얽혀오는 혀와 푹신한 입술. 코끝을 스치는 상대의 향기.
스타후르츠의 단맛을 그대로 빼어담은 듯한, 별이의 입에서 한 줄기 침이 바닥 보도블록에 뚝 떨어졌다.
-지지직.
우리의 위에 있던 전봇대의 불이 한 차례 껌뻑인다.
전봇대의 불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별이 자신의 입을 떼어낸 상태였고, 별은 여전히 청순하고 귀여운 얼굴로 헤헤 웃었다.
“…첩실. 처로 승격 각?”
“말만 잘했으면 오죽 좋아.”
“…크흐흐흐. 그런 별인 걸 어떻게 해요~”
꺄륵 웃으며 나를 두고 뛰어간 별이, 저 먼 곳에서 다시 나를 돌아보며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찐따 아니었지~?”
이번엔 인정.
손을 흔들어주자 만족한 별이 떠나간다.
폴짝폴짝. 초등학생이 뛰어가듯 신난 발걸음에 무심코 웃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다시 보니 아싸같은데.’
아웃사이더. 혼자 다니는 사람의 준말.
저 똥꼬발랄한 동작을 보니, 오늘따라 청순하게 느껴졌던 별의 이미지가 다시 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굳이 그걸 내 입에 담을 필요는 없을까.
지금이 딱 헤어지기 좋은 분위기다.
나는 시야의 지평선에서 사라져가는 별의 모습을 끝까지 눈 속에 간직했다.
-우웅!
그때 울려오는 핸드폰 진동음.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달받은 메시지를 단어 하나씩 알음알음 읽어내렸다.
벼 리 는 춤 추 고 : 오늘 좋았어!
벼 리 는 춤 추 고 : 근데 끝까지 모텔 가자고 붙잡지는 않더라? 내 몸에는 질린 거야 뭐야!
벼 리 는 춤 추 고 : (화난 이모티콘)
‘…뒤끝 있네.’
여전히 별이는 별이였다.
*****
으슥한 뒷골목. 기척을 감추는 로브를 쓴 남성들이, 고철 더미에 앉아 말아놓은 꽃잎을 태우고 있었다.
“후우…. 그래서? 언제 시작할 건데.”
“몰라. 간부들 생각이야 우리가 알겠냐. 그냥 까라는대로 까는 거지.”
“이 약을 대체 어디다 쓴다는 거지?”
한 남자는 마력 가공 처리된 유리병을 꺼내더니 그 안의 보랏빛 액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마약은 아니고. 각성제. 그런 느낌이긴 한데.”
투여하면 수명이 영원불멸로 늘어난다더라.
플라워의 조직원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들지만, 물론 그 소문이 사실이었다면 민간인을 실험체로 쓰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임상 실험. 아마 그런 것이겠지.
“수명을 늘리고, 마력 단지를 강제로 확장시키면서…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라. 얼씨구. 목질화를 했을 때 기준의 힘이 곱절로 강해진다?”
거의 뭐 완벽한 약이나 다름 없네.
이 시약이 완성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정말 궁금하긴 하다.
“뭐 완성되도 우리가 맞을 일은 없겠지.”
“……그치?”
남자는 하품을 하며 유리병을 도로 마공간 주머니에 보관한 후, 뒷골목을 나와 바깥 바람을 맞았다.
저 편에 서로 껴안고 있는 커플이 참 거슬리게도 보였다.
-얼마 안 남았다.
간부의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되뇌이던 말.
편집증적인 성격인 듯, 수시로 입술을 뜯던 그 중년 남성의 얼굴을 떠올린 남자는 올라온 가래침을 모아 바닥에 뱉었다.
“퉤.”
던진 담배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겨쳤고, 남자는 그대로 다시 뒷골목으로 껄렁하게 들어갔다.
그가 뱉었던 진득한 가래침이 보도블록에 섞여 스며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