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321
요람의 붕괴 (5)
“몇 명 더 필요하긴 하겠네.”
플라워의 일부를 틀어막으면서 국목과 상대하며, 동시에 군중들을 안전한 산지까지 이동시키는 건 다섯 명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
마로니에가 되묻는다.
요지는 누구를 데려오느냐다.
어중간한 헌터들은 이미 전부 협회의 인력으로 반쯤 끌려가다시피 했다.
가뜩이나 행동력 좋은 무궁의 아래서 일하는 별. 내가 여기서 그녀를 보채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빈약한 근거로 내놓는 생각은 아니다.
-벼리 : 시허나. 지금 어어어엄청 큰 일이 생겼거든?
안다.
천도도, 황도도, 참피도. 대부분이 거의 그렇다.
심지어는 기업인인 진달래마저도 이번 플라워의 사태에 일이 늘어났는지, 나에게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입지 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보금자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선 상태.
도움이 되어주지는 못할망정 얼굴에 철판 깔고 도움을 바라지는 않는다.
특히 별이는 더더욱.
‘그 사람이라면 어떤 수단을 만들어줄지도 모르지만.’
글쎄.
조금이나마 도원을 운영해보고, 그 습격을 지켜본 내 입장에서는 도저히 무리다.
지금 이 상황에서 플라워에게 전혀 들키지 않고 우리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는 헌터들을 파견하는 것이.
국목과 맞먹는 지원은 불가능하다.
‘괜한 부담을 늘려봤자.’
별이 살릴 사람도 많다.
부협회장.
그녀의 손아귀에 놓인 목숨만 수만 명에 달할 수 있다.
아무리 그녀가 유능해도 공적인 일에 개인 감정을 불어넣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후우.”
침묵이 길어진다.
이쯤 되면 슬슬 말이 나올 법도 한데.
다른 세계에서 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얘들 진짜 친구 없구나.
“아니. 있거든?”
마로니에가 도끼눈을 뜨며 발광했다.
“하, 아 진짜. 형님.”
태양 역시 조금 어이없다는 어투로 내게 어깨를 톡 쳤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니.
“저희가 친구가 없지 가오가 없습니까. 이 다섯으로도 충분합니다. 예? 저랑 아오리를 비유하면 그야말로 관우와 장비. 조조의 백만 대군도 두렵지 않습니다.”
“큭, 시발.”
“두렵다 진짜.”
바오가 참지 못해 비웃고 내가 몸을 떨었다.
이 미친놈은 시도 때도 가리질 않는다.
“왕님. 어느정도는 맞는 말이에요.”
“뭐가.”
“이 다섯이면 길드 몇 개 정돈 털어먹을 수 있을 거에요.”
무표정한 얼굴로 살벌한 말을 해오는 아오리.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이놈들을 과소평가한 감은 있다.
그도 그럴게 제대로 된 실력을 눈으로 본 적이 없다.
당장 목인의 잠재력을 극단적으로 늘려주는 목질화를 한 번도 눈에 담지 않았으니.
그러나 현실을 알려주는 것도 좋다.
“상대도 국목이야.”
아무리 마로니에가 천재라 한들 난전에선 빛을 보기 힘들 수 있고.
산수유는 병자다.
“하, 그럼 내가 다 쓸어버리면 되는 거네?”
“니는 그게 문제고.”
너는 돌대가리야.
“뭐?”
“감정이 너무 앞서.”
바오밥나무의 권능. 그 자체가 감정에 연관되어 있다.
전투의 흥분과 데미지가 누적될수록 강해진다.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투지를 불태워야만 그 재능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몇 명 더 모으면 딱 좋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지. 그래서 누구 없어?”
일동 침묵. 귀신같이 조용해진다.
“아는 국목이라면 있긴 한데.”
마로니에가 뒤늦게 이야기를 꺼내 보지만, 믿을만한 놈들인지는 아직 고민이 있어 보인다.
산수유는.
“…….”
최대한 딴청을 피우고 있고.
저 볼따구를 꼬집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고 말을 이었다.
“바오 넌, 아니 됐다.”
“뭐?”
이 녀석도 친구 하나 없어 보이고.
태양과 아오리도 인맥이 없지는 않겠지만, 선발전에 올 수 있는가가 문제다.
“지금 있는 국목들 중에서 찾아내는 게 빠르겠네.”
“응.”
믿을만한 사람을 직접 색출하는 게 낫다.
우선 머릿수를 조금 더 늘려 볼까.
테이블을 두드리자 그 면에서 마법진이 펼쳐졌다.
얼마 가지않아 깃털을 흩뿌리며 날개를 활짝 펼친 두 새가 짹짹 울어댔다.
[주인님! 왔어요! 엘레오노르가 왔다구요!] [짧은 휴식은 편안하셨습니까? 주인님.]“오냐. 니들도 알겠지만, 지금 머릿수가 굉장히 곤란한 상태야.”
처음보는 새들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산수유나 마로니에는 알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신기한지 눈을 꿈뻑거렸다.
“이 참새들은 뭐냐?”
“정령.”
“오호. 잔재주가 꽤 있는 모양이네. 그것도 말을 하는 정령이라.”
바오 역시도 이 부분만큼은 놀라움을 표했다.
정령사가 그만큼 드물었기 때문이다.
“시언, 만져 봐도 돼?”
산수유는 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손을 뻗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손이 나무발바리를 향했다.
[끄응]탐탁지는 않지만 내 말이 있으니 일단 참는다는 반응.
마로니에도 참지 못해 손을 뻗었다. 저렇게 작고 푹신푹신한 새는 드물어서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을 법하다.
이야기를 본론으로 되돌아가서 나는 그녀들에게 물었다.
국목들에게 플라워가 온다는 사실을 솔직히 알리고 도움을 청한다.
그 기준이 가장 중요했다.
“배신자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기준. 아마도, 마로니에.”
“어, 응.”
아직 서먹한 감정이 남아있는 마로니에가 말을 더듬었다.
“네 능력이 가장 클 거야.”
심상 세계.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배신자들에게는 가장 주의해야 할 힘.
몇몇 이들은 이를 알고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대놓고 사용하면 당연히 대응을 할 것이고, 효용을 보려면 그녀의 능력을 눈치채지 못하게 사용해야 한다.
“내 권능을 쓰라고?”
“어. 쉽진 않겠지만.”
물론, 어디든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이다.
나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오늘 여기서 밑천 다 드러낼 때까지 못 나간다.”
* * * * * * * *
미팅의 자리는 플라워로 떠들썩한 지금조차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움을 내비쳐야 하는 숲지기 선발전.
일개 생도와 국목 사이의 간단한 교류도 빠짐없이 찍어담는다.
‘그렇다고 음성까지 나가지는 않겠지만.’
대화 내용까지 나가는 경우는 특이하다.
1vs1 비무를 겨룬다거나 훈련 중인 국목의 인터뷰를 따낸다거나 등등.
우리가 카페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눠도 시청자들 입장에선 알 도리가 없다.
‘관리실에서 음성이 노출될 수도 있긴 한데.’
카메라 아티펙트를 통솔하는 관리실.
그러나 오래전에 한 번 논란이 있어서 그런지 호텔 내부의 아티펙트들은 음성 인식이 되지 않는 구형을 사용한다.
혹시나 직접 마력 회로에 간섭해 확인까지 했다.
지금 이 자리의 대화 내용을 아는 건 나와, 팀원들뿐.
요컨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본래라면 금지될 아티펙트를 국목의 권한으로 반입하고,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출한다.
볼펜 형태의 카메라. 게다가 저 뒤쪽에 있는 정령.
상대의 감정이나 악의를 관찰하는 게 가능한 나무발바리가 투명하게 변한 채 저 공중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덜컥.
마침 상대가 들어왔다.
직접 당사자에게 미팅 신청을 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스템.
마음에 들면 받아들이고, 바쁘다면 취소도 가능하다.
‘첫 번째 시련에 활약을 보인 게 컸어.’
의외로 내 이름이 생각보다 많이 퍼져있다는 거.
국목들 중에선 나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고.
“아 안녕하세요.”
훤칠한 붉은 머리의 미녀가 싱긋 웃으며 인사해온다.
“메이플씨?”
“후후. 맞아요. 오늘 자리에 불러주셔서 영광이네요.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소문이라뇨?”
슈가 L 메이플.
설탕단풍.
드물게도 회복 계열의 마법사이자, 캐나다의 국목이다.
이름답게 목소리가 녹은 설탕처럼 달콤한 그녀는 귓등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실실 웃었다.
“매화님이랑 싸우신 거. 봤거든요.”
“아하… 그거였구나.”
“그것뿐만이 아니라, 국목이랑 꽤 많이 부딪힘이 있으셨잖아요?”
일반인이 국목과 부딪혀 이겨냈다.
전력이 아니었기에 이겼다기엔 어폐가 있지만 어쨌든 공식적인 경기에서 승기를 잡은 것은 사실이다.
슈가는 자리에 앉으며 주위에는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사실, 저희 국목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많이 돌았답니다?”
마로니에와는 다른 느낌으로 목소리가 좋다.
국목들이 괜히 국목이 아니다.
가만 보고 있다가는 외모 때문에 홀딱 넘어가기 십상이다.
“아 진짜요?”
나는 유부남이다.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며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저랑 미팅을?”
“아 그게. 관심도 있고 지금 좀 워낙 바깥이 떠들썩하잖아요?”
태연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펜은 작동하지 않았다. 마법사라면 아티펙트의 움직임을 알아챌 수 있으니까.
회로의 작동에 누구보다 민감한 자들이 마법사다.
괜히 작동했다가 들키면 설득하는데 고생할 거다.
‘정령사는 아니라 다행이야.’
투명화 마법을 적용한 등 뒤의 나무발바리는 눈치채지 못한 상태.
나는 슬그머니 검지로 책상을 두드려 신호를 보냈다.
나무 발바리의 눈이 푸르게 공명하며 자신의 시야를 다른 곳에 있을 마로니에와 공유한다.
“플라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괜한 잡담보다는 본론을 꺼내는 게 맞겠다는 생각.
테러리스트의 이름을 이 자리에서 입에 담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모자랐고, 송구하게도 예의범절을 전부 지킬 수는 없다.
“플라워…? 그건 갑자기 왜요?”
슈가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귓가에 울리는 마로니에의 목소리.
-평범한 속마음이야.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꺼낼까? 그런 거. 당황이라기 보단, 의문형.
‘아직 모른다는 거네.’
-그리고…. 널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도 같은데.
‘어?’
-몰라. 됐어. 얼굴 반반하니까 그런가 보지.
어쩌다 보니 핀잔을 듣게 됐지만, 넘어갔다.
마로니에가 지금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이유.
당연하게도 무수한 마법이 연달아 우리를 연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사용이 되네.’
속으로 감탄했다.
마로니에의 심상.
당연히 모니터 화면으로 전달되는 대상에게 심상은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령이 사용하는 감각 공유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초보 스파이 나무발바리 엘레오노르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별 건 아니고. 그냥 빨리 좀 해결 되면 좋겠다~ 해서요.”
“아하. 하긴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요즘 얼마나 일이 많아지려는지 몰라요.”
“국목이 그렇게 일이 많나요?”
“시헌씨만 아세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진짜 많아요.”
뭐,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지만요.
그리 말을 끊은 슈가는 여전히 웃으면서 플라워를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평했다.
-의심되는 생각은 안 하는데. 믿어도 될 것 같아.
심상의 능력은 누군가 생각할 때의 문장을 어조를 포함해 사용자에게 들려준다.
권능이 강화되었을 땐 그 상상을 직접 구현해 그 세계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고.
억지로 기억을 삭제시키고 이곳에 들여보내지 않는 이상, 우리를 속일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아마도 마로니에의 말을 전부 전달받았을 다른 녀석들도 대답이 없다.
동의하는 모양.
그렇다면 숨길 이유가 없다.
“음, 메이플씨?”
“네?”
“제가 지금 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데. 자리를 옮길 수 있을까요?”
“음, 여기서는 불가능하나요? 얼마나 중요하면.”
“이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정보입니다. 지금이라면 싸게 드려요.”
때 아닌 농담에 피식 웃은 슈가는 안될 거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소란을 불러모으는 시헌씨니까. 재밌는 이야기일 거라 생각해요.”
세 번째 시련이 끝나고 자유 시간이 넘치는 그녀다.
나름대로 재미를 느낄 구석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얼굴이 반반해서 다행이다.’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 * * * * * *
설명은 길지 않았다.
국목쯤 되면 사태의 위험성을 파악하는 것도 빠르고. 무엇보다 이해관계를 잘 안다.
어느덧 다섯에서 여섯이 된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아…. 국목 중에 배신자가 있다고요?”
내가 가장 먼저 캐나다의 국목을 찾은 이유.
머리를 맞대어 플라워를 적대할만한 국목을 추렸다.
캐나다는 플라워와의 부딪힘이 잦다.
그 국목 역시 플라워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으리라.
김수연과 사쿠. 그 둘도 염두하고 있지만 김수연은 무궁과 연이 있으니 약간 꺼려진달까.
수연과 사쿠는 괜찮을지 몰라도 같이 붙어 다니는 인도의 국목이 문제다.
그 여자는 솔직히 내 감이 의심스럽다고 외치고 있다.
“제가 이걸 믿으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현자 그 사람이 농담을 칠 사람도 아니니까요. 애초에 이 세 명을 모아 놓고 농담을 칠 정도라면, 오히려 당해주는 게 예의가 아닐까 생각도 들고. 아무튼 알았어요.”
마로니에와 바오, 나를 차례로 둘러본 슈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
이해를 넘어 도움을 주겠다는 언질까지 받아냈다.
“국목은 사람들을 지키는 게 일이니까요. 생도들 중에는 캐나다 사람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나서야죠.”
지금도 마로니에는 슬그머니 권능을 사용하고 있다.
의심 많은 마법사의 성격 때문이다.
“…하하. 제가 그래도 의심 받을 행동은 안 한 것 같은데.”
“앗. 죄송해요….”
“마로니에님은, 저번에 한 번 뵈었던 적이 있죠? 어떻게 하면 의심을 거두어주시려나.”
눈앞에서 상대의 생각을 읽는 건 당연히 당사자에겐 불쾌한 일이다.
슈가는 성격 좋게 웃어 넘기며 하나의 이야기를 담아 자신의 위치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저희 가문만의 이야기인데. 플라워의 인원 중에 단풍나무 가문의 일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정이 돌고 있어요.”
“그걸 여기서 말해도 돼요?”
“뭐 사실상, 기정사실화되었거든요. 터지기 직전인데 몇 마디 정도 떠벌린다고 문제 될 건 없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왜?”
슈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불명예. 하나 때문에 저희 가문원이 몇이나 사생결단을 했을까요. 문헌을 뒤져보면 알 거에요. 단풍나무가 얼마나 많은 플라워와 피를 뿌렸는지.”
“일원이 플라워라는 건, 뭐죠?”
“…어디 까지나 추정이에요.”
슈가가 해준 말은 이러했다.
5살이었던 한 단풍나무의 소녀가 유학 중, 사고를 당해 실종되었다.
한국과 중국 사이 도시 하나에서 사라진 그녀를 찾기 위해 많은 인력을 소모했지만 찾아낼 수 없었고.
테러를 일으킨 플라워의 손에 죽었겠거니 했는데.
최근 단풍나무 특유의 붉은 머리와 눈을 가진 여성이 플라워의 일원으로서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돈 것이다.
“그러니까 그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고요?”
“그렇게 되겠죠. 마력이 일으키는 잎이 단풍이라면. 분가든 본가든.”
단풍의 종류는 많다.
이세영의 오크 가문처럼 각국에 단풍나무의 분가가 굉장히 많이 세워져 있다.
내가 아는 도원향의 든든한 힐러인 고로시. 그러니까 고로쇠나무도 분가의 일종이다.
그러나 그 플라워에 들어간 여성이 내보이는 마력은, 틀림없는 본가의 것이라고.
전투에 참여했던 일부 가문원이 그리 주장했다고 한다.
정황과 능력, 마력 등을 조사해볼 때. 단풍나무 가문원일 가능성이 컸단다.
“어때요, 이제 좀 의심이 풀렸어요?”
그녀가 이야기 보따리를 전부 풀었을 때. 우리 중 대부분의 의심은 거의 가신 뒤였다.
“아 근데.”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그때 사라졌던 그 어린 여자아이는, 플라워가 탐을 낼 정도의 재능이 있던 여성이었다고.
“저희 가문의 오점이니, 씻을 수 없지만 어떻게든 지우려곤 해봐야죠. 그 아이에게는… 할 말이 없지만요.”
슈가는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오래 전, 그녀의 가문이 놓친 그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테러였다고는 해도 그 아이의 입장으로 생각한다면 가문에게 버려지고 살기 위해 플라워로 들어간 거니까.
‘단풍이라.’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머리 깊숙한 곳에 아직 남아 있는 다섯 갈래의 단풍잎.
분명히, 내가 알던 그녀도 단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