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327
요람의 붕괴 (11)
검은색의 화살이 경기장 전체를 휩쓴다.
주변의 공기를 모두 빨아들일 것처럼 회오리치더니, 근처의 덩굴들을 잘라버리고 두 목인에게 꽂혔다.
-콰지지직!
잘 나아가나 싶던 마법이 결계에 막혀 사그라든다.
‘고유 능력인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상황을 뒤집는 아주 알맞은 힘.
국목들은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할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원탁’의 벨.
“이 새끼들이.”
걸걸한 욕을 뱉으며 경기장 안에 발을 들인다.
두 친구에게 배신당했을 마로니에의 기분이 어떠할지.
충격받은 얼굴만 해도 알아볼 수 있다.
“…이시헌? 왜 여기에.”
쉰 목소리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해온다.
나는 겨우살이를 건틀릿의 형태로 만들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다른 놈도 아니고 벨 너는 최소한 아니었으면 했는데.”
“우리 본 적이 있나?”
벨이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갸웃인다.
“본 적은 없지.”
그러나 알고 있다.
오크나무의 본가.
“벨 아서 필립 웨즐리. 네 이름을 내가 모를 리가 있냐.”
이세영의 가문을 잘 짚어가다 보면 그 뿌리는 영국에 가 있다.
벨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영광이네. 목령왕이 날 알다니.”
벨은 나를 비웃으며 자세를 잡는다.
나는 결계 안으로 몸을 들였다.
【 일시적으로 세계수와의 연결이 취하됩니다. 】
“국목인 니들이 왜 플라워로 갈아탄 건지는 모르겠는데.”
듣자하니 정체도 들킨 모양이고.
마로니에가 나를 보는 눈도 꽤 달라졌다.
어쩔 수 없다.
목 맬 필요도 없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뿐이다.
벨이 앞서 다가온다.
묵묵하게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이제 됐어. 나와. 태양이 알지? 걔한테 쭉 날아가. 직선으로.’
국목의 고유 능력은 변수를 불러오기에 딱 좋다.
여기서 전투 불능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혹시 몰라 소식을 전달할 루시를 호텔 쪽으로 보냈다.
[짹!]“정령사였군.”
마로니에의 품속에서 빠져나온 루시가 공중 위로 날아올랐다.
“그쪽 보다간 골로 갈텐데.”
“…….”
경고하자 루시를 쫓으려는 벨이 움찔거렸다.
마력이 봉인된 상태라고 해도 무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벨이 꼬나쥔 황금색의 신검에 흉흉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실 눈 남자의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기울어진다.
“이시헌. 너에게도 참 할 말이 많은데.”
“이빨 까지 마라. 너한테 들을 말 없다.”
“듣는 편이 네 신상이 좋을 텐데. 굳이 세계수 편에 서는 이유가 뭐야?”
“내가 세계수 편에 들었다고?”
상대를 비웃으며 자세를 잡는다.
“도통 뭐라는지 모르겠네.”
“플라워에 가담하는 편이 훨씬 좋을 거야. 우리들이 굳이 싸울 이유는 없어.”
“그런 새끼가 일도 참 많이 벌여놨다. 그치?”
마로니에의 면면에 띤 버림받은 듯한 표정.
배신당했다. 한 줌의 단어로는 도저히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나를 보는 얼굴도 그리 곱지는 않다. 경황이 없으니 이해한다.
나는 피가 묻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니들이 대의가 있었다면. 적어도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날 설득시켰어야지. 좆같은 일 전부 당한 놈이 이제와서 미쳤다고 플라워에 들어가겠냐.”
“감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야.”
뻔뻔해서 미소가 지어진다.
내 얼굴을 본 에이비가 웃는 것도 거의 동시였다.
서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평행선이다.
그걸 깨닫자마자 벨이 먼저 움직였다.
“흐읍!”
그가 쥐고 있던 기다란 롱소드가 빠르게 다가와 횡으로 베어넘긴다.
속도는 알만하다.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을 흘리며 천천히 빈틈을 노린다.
벨의 눈이 어느 한 일점을 향해 빛났다.
-서걱!
몇 번의 공방 직후 상대의 검이 내 어깨를 꿰뚫었다.
핏방울이 튀어오름과 동시에, 그의 눈동자에 희열이 깃들었다.
처음 보는 상대라면. 어느 누구를 상대해도 통한다.
아무리 국목이라도 그것은 변치 않는다.
-으드드득!
오른쪽 어깨의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뒤틀린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자 뒤늦게 벨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퍼억!
미간에 한 방. 마력이 담겨있지 않아 살상력은 이전만 못하다.
손아귀에 느껴지는 뼈가 으스러지는 감각.
멈추지 않고 달려나가 목을 잡고 그대로 내다 꽂기 직전. 에이비가 날린 기다란 장창이 내 왼쪽 가슴을 노려왔다.
“그읍, 크으으윽!”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벨.
-콰확!
-콰당!
벨의 몸이 바닥에 처박히는 것과 내 폐에 창이 꽂히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쿨럭.”
창에서 가시가 돋아나 온갖 장기를 괴롭힌다.
등에서 가시가 솟구치고, 가슴 바깥으로도 피묻은 쇠창이 튀어나왔다.
벨의 의식이 잠시 나간 것을 확인하곤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폐에 꽂힌 창대를 쥐고. 망설임 없이-
-콰드드득!
살점 째로 뜯겨나가는 걸 예상하고 뽑아낸다.
선홍빛 덩어리와 핏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마력이 존재하지 않다는 건 상처 또한 그다지 깊지 않다는 소리다.
“후우.”
심호흡 한 번에 달라붙는 뼈의 마디와 살점들.
튀어나온 핏줄이 들어가고 장기들도 제 자리를 찾아간다.
우위를 가져가기는 쉽다.
그것이 몇 번이나 통할지는 모르지만, 그 어떤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이 전투 방법만은 큰 효과를 주었다.
지금같이 한 시가 중요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크흡, 터프하네. 새끼.”
의식을 빠르게 되찾은 벨이 미간의 피를 닦아내며 무너진 땅에서 일어났다.
에이비는 벽에 걸어둔 푸른 창을 다시 감싸 쥐었다.
“에이비. 어쩔 거야?”
치료를 하는 탓에 잠시 시간이 지체됐다.
벨이 일어나고, 다시 자세를 잡은 뒤 그에게 묻는다.
에이비는 턱짓을 하며 마로니에를 가리켰다.
“그건 별로인 것 같은데. 정말?”
주춤하는 벨.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움직이기 전에 직접 손을 쓰기로 한다.
“아니면 한 번 붙어보던가.”
내가 움직이자 뒤이은 에이비의 말. 벨이 호쾌하게 웃으며 양팔에 힘을 주었다.
푸른색 핏줄이 팽창하며 그의 눈매에 나무 뿌리가 뒤덮었다.
“해방.”
-쿵.
-쿠구구구구.
외마디 소리와 함께, 진동하는 결계.
황금색의 나무가 바닥에서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목 아래로 뻗어나온 황금의 훈장.
“스폴리아 올피마(Spolia opima)”
[로마 브리튼의 가장 명예로운 훈장]길어진 머리카락이 나뭇가지처럼 딱딱하게 굳어진다.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날카롭게 등 뒤로 뻗어 나온 머리카락.
벨 아서의 본 모습이 주변을 강하게 짓누른다.
황금색의 마력이 어깨 위로 솟구친다.
‘…이건.’
원탁 안, 유일히 자유롭게 마력이 사용 가능한 존재.
고유 능력과 목질화가 연관되는 수가 있던가.
다행히 결계의 위력 자체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라면 나 역시도 어느정도 힘을 쓸 수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싸우지 않을 이유는 없다.
-콰앙!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먼저 앞으로 쏘아붙이는 벨.
잠시 시야에서 사라진 그가 거대한 공기 바람을 몰고 왔다.
쿵!
마력을 감은 팔이 검격을 막아낸다.
나를 지지하고 있던 땅바닥이 깨져 발이 흙 속으로 빠졌다.
-화악!
어두운 경기장 안으로 갑자기 빛무리가 새어들었다.
벨의 온 근육이 솟구치며 그가 호기롭게 내 몸통을 후려쳤다.
몸이 결계 바깥쪽 직전까지 밀려난다.
결계 전체에 마치 커다란 태양이 내려온 듯 번뜩인다.
“스읍.”
숨을 들이쉼과 동시에, 주변 공기가 터져나오며 뒤늦게 소리가 들려온다.
-파앙!
공중을 박차고 날아오는 벨의 신체가 다시 한번 몸통을 가격하려 들었고.
나는 몸을 비틀어 벨의 움직임을 가까스로 읽어냈다.
-콰득!
몸에 난 기다란 나뭇가지가 전신을 꿰뚫는다.
결계는 어느새 출입이 불가능하게 되었는지 벨의 공격에 밀쳐져 결계의 끝자락에 등이 걸쳤다.
“너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가까이 다가온 벨이 기괴한 목소리로 중얼 거린다.
“…할 일이 있다. 짊어진 게 많다고. 그러니-”
무시하고 후려친다.
“큽!?”
검은색 마력이 솟구치며 벨의 턱이 위로 올라갔다.
갑피가 떨어져 나가며 공중 위 5cm 정도 들린 몸.
나는 주먹을 말아쥐어 팔꿈치를 뒤로 빼었다.
“일(一) 백도(白桃).”
짧은 공명 사이에 이어진 일격에 새하얀 마력이 직선으로 빗발친다.
-쿵, 쿠구구구.
결계에 금이 간다. 태양이 쏟아지고, 빛이 번뜩였다.
“이(二) 만첩백도(萬疊白桃).”
-드드득!
파앙!
뼛조각들이 살을 뚫고 튀어나온다. 샛노란 결계에 진동이 울렸다.
공격 중간. 벨이 쥐고 있던 검이 내 볼을 꿰뚫는다.
입안에 느껴지는 딱딱한 이물감. 턱이 재생됨에 따라 이를 악물고 검을 고정시켰다.
검과 팔이 나무의 뿌리로 함께 묶여있던 벨의 몸체가 날아가지 않고 계속해 내 사정거리에 놓인다.
주먹이 붉게 물든다.
“삼(三).”
만첩홍도.
벨의 눈동자에 동공이 사라진다.
-콰앙!
전신을 두 번이나 때려 박혀, 근육이 녹아드는 고통에 의식을 다시 잃었다.
보통의 국목이었다면 이미 이 순간부터 온 몸이 터져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양 손을 모았다.
“사(四).”
바래복사.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내려던 그때.
나와 벨을 고정시켜주고 있던 검이 깨지면서. 벨이 등 뒤로 밀려났다.
그 사이에 에이비가 침투했다.
무시하고 네 번째 오의를 적중시키려고 하니.
-으득?!
“!?”
가슴이 찢어졌다.
울컥 솟아나는 피.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때 아닌 부상에 몸에 힘이 풀린다.
검은색 마력이 잦아들었다.
“뭔….”
공격이 그대로 반대로 되돌아갔다.
기절한 벨을 끌고 뒤로 물러선 에이비. 마력의 움직임을 차차 읽어보니 얼추 감이 잡혔다.
‘반사.’
쏘아낸 바래복사가 내 신체를 꿰뚫었다.
본신의 마력이 적고, 신체 능력도 어중간했던 녀석인데.
마지막까지 여유로운 태도에 이유가 있었나.
“시발….”
욕지꺼리가 튀어나오며 비척거리며 앞으로 움직였다.
내상이 심각하다.
치료하려면 권능을 상당히 사용해야 할 것 같고. 시간이 꽤 걸린다.
도망치려는 저 둘을 쫓기가 힘들다.
“이시헌.”
결계 중간에 선 에이비가 나를 바라본다.
뜨고 있던 눈은 어느새 감겨 있었고. 그는 땀을 삐질 흘리며 숨을 토해냈다.
“…아니. 목령왕.”
“도망가냐?”
“하하.”
웃는 얼굴, 그러나 이전의 여유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반사하는데도 한계와 위력은 존재하리라.
어느정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된 나는 다시 발을 움직였다.
마력을 봉인하는 결계는 벨의 해방이 풀리면서 다시 강해졌다.
“나중에 보자. 그때에는 되도록 같은 편이면 좋겠네.”
권능이 예상보다 강하다.
몸을 회복한 나는 다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지금이라면’
쫓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려던 순간.
“그럼. 수고.”
-콰앙!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경기장 전체가 박살이 난다.
천장이 없어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외벽이 쪼개지면서 근방에 추락했다.
-쿠구구구구!
바닥에 먼지가 인다. 거대한 돌덩이가 내려와 발등을 내리찍었다.
내 시야의 끝에 붕괴에 노출된 마로니에가 보였다.
‘이지선다인가.’
간만 보고 빼려는 생각인지.
나는 감정적으로 결계 안에서 있는 힘껏 마력을 끌어냈다.
벨의 결계를 무시하고 뽑아낸 마력의 양은 매우 적었으나. 화살 한 방을 만들어내기는 충분했다.
-콰아아악!
에이비에게 쏘아지는 화살 한 방.
맞는 장면은 보지도 못했다.
그저 맞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쏜 일격. 할 일은 남아있었다.
* * * * * *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무력하게 앞을 바라볼 뿐.
그조차도 눈물이 앞을 가려서 한 마디도 입에 담지 못했다.
아니, 그럴 자격이 있나 싶다.
발목만 붙잡는 자신이 괴로웠고. 허탈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콰직!
거대한 창날이 남자의 몸을 꿰뚫는다.
국목. 아무리 그 남자라도 이겨내는 건 불가능하다.
……설령 목령왕이라 할지라도.
마로니에는 눈을 질끈 감았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지르지 못했다.
민폐 덩어리.
가문에서도, 이곳에서도. 자신을 필요로 해주는 사람은 많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저 자기 안위에만 급급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금 더 야망 있게 행동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에이비. 벨.’
왜.
왜 배신한 거야.
심장이 꽉 조일 듯 아파온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모두 착하고, 사람들을 위하고, 언제나 바른 길만 고를 것 같았던 사람들이다.
동경도 한다.
반쪽짜리인 자신과는 달라서 그걸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태어날 때부터 국목.
반면 자신은 평범하게 살다가 뒤늦게 국목이 되었으니까.
그 둘을 보면서 배울 점이 많았고, 그 의무를 그들에게서 배웠다.
그런 두 사람이 자신의 대척점에 섰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갈수록 감정은 격화되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눈앞의 싸움을 막아야 하는데 되려 절망감만 피어 오른다.
[이 겁쟁이.]머릿속에 들려오는 목소리.
마로니에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제발. 난, 난 그냥.”
-마로니에, 다음 현자를 맡아보는 건 어때요?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마로니에. 마지막으로 물을게. 우리를 좀 도와줘.
“……으, 급, 윽.”
-마로니에님. 저희 나라를 부디, 잘 이끌어나가 주십쇼. 마로니에님의 자리가 얼마나 중한 곳인지 잘 아실 겁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이 아프다.
마로니에의 시야가 위로 올라간다.
-쾅!
떨어진 바위가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이마 아래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린다.
뒤늦게 지금 이 상황을 깨닫는다.
건물이 무너지고 있다.
마력도 쓰지 못하는 지금, 이 아래 깔렸다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
그녀의 머리가 차가워지면서 눈이 크게 뜨였다.
“…….”
달려온다.
무너진 바위를 밟고. 있는 힘껏. 두 팔을 벌려서.
돌 덩어리와 철골들이 남자의 위에 무더기로 떨어진다.
마로니에는 놀라 중얼 거렸다.
“시헌-”
-꽝!
건물 잔해가 두 사람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