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ng the World Tree RAW novel - Chapter 460
시바의 첫 친구 (2)
꽤 날이 빨리 저문 이른 밤날이었다.
“위든씨?”
“네?”
“정원 일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혹시 시간을 내실 수 있을까요?”
항상 그 아이와 붙어 다니던 메이드, 카멜리아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시간이요? 뭐어….”
나는 말을 늘이며, 눈에 마력을 담아 카멜리아의 몸을 살폈다.
몸에 찬 무장은 없었다.
“제 조수는 안될 것 같은데요. 조금 급한 일이 있어서요.”
“위든님만 오시면 됩니다.”
한 발자국 다가온 카멜리아가 강압적으로 묻자, 나는 입장상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동백이 대우를 잘해준다고 한들 계급은 계급이다. 업무 외 상황이라도 시간을 맞춰줘야했다.
“그러죠.”
무슨 속셈일까?
모르는 척 그녀를 따라갔다.
카멜리아는 메이드복을 그대로 입은 채 저택의 외부로 향했다.
“이곳에 타시죠.”
“대체 무슨 일이죠?”
“고용 조건의 검토와, 급여의 조정입니다. 다른 정원사분들과 메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업무 외쪽으로도 많은 일을 해주셨더군요.”
“월급이 까이는 겁니까?”
“아뇨, 엄밀히 말하면 더 좋은 대우로 다닐 수 있게 계약을 수정하려는 겁니다.”
검고 긴 자동차에 탑승하여, 20분 정도 시외에 향했다.
‘좋은 대우라.’
함정일까.
좋은 소리만 들려오면 의심을 안할 수가 없다. 특히나 상대가 카멜리아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내 변화를 알아챘으니까.
내가 사용하는 신분은 플라워의 공작원의 것이다.
미리 그가 면접을 합격한 후, 내가 변장하여 저택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침투했는데. 카멜리아는 첫 만남에 변장 전과 변장 후의 모습을 빠르게 파악해냈었다.
‘아직 의심 단계일지, 아니면 확신일지 모르겠지만.’
-우우웅.
차가 꽤 으슥한 곳으로 접어드는 걸 보니 의심보단 확신일 공산이 크다.
“내리시죠.”
-덜컥.
“여긴 어디죠?”
“가주님이 계신 곳입니다. 가주님이 몸이 불편하시다 보니, 별 수 없이 위든님을 이곳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뻔한 거짓말이다.
나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희미한 마력을 퍼뜨려 눈앞의 건물 공간을 순식간에 파악했다.
구석구석 살펴도 동백이 있는 위치는.
‘없네.’
거기서 확신했다.
구태여 심리전을 하며 이게 진실인지, 거짓인지조차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
이 녀석은 나를 의심한다.
-위이잉.
문이 열리며 건물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오른쪽 구석, 회의실의 문 앞에 선 카멜리아가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메이드장이 일개 정원사한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있나요?”
“가주님도 배려를 실천하시는데, 저라도 못할까요.”
“꽤 괜찮은 말이네요.”
“어서 들어가시죠.”
문 손잡이를 잡을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나를 방으로 밀어넣는 카멜리아.
-터벅.
내 발걸음이 바닥에 닿는 순간, 등 뒤에서 소리 없는 살기가 느껴졌다.
차갑게 가라앉았으나 확실히 판단할 수는 없는 애매한 적의. 내가 느끼기에 이 정도라면 그녀는 숙련된 암살자다.
-후욱!
잘 다듬어진 마력의 칼날이 내 심장을 꿰뚫기 위해 다가왔다.
신체 능력이 약했다면 여기서 공격을 맞은 뒤 그녀의 의심을 푸는 도박이라도 해보겠지만. 이 몸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손을 올려 반격했다.
-쨍그랑!
몸을 돌려, 손등으로 칼날을 쳤다.
깨진 마력 칼날의 파편이 공중에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큿!”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카멜리아의 왼쪽 갈비를 후려쳤다.
-파아앙!
손날을 타고 바람이 일어났다. 공기의 흐름이 흰 줄기가 된다.
무섭게 몰아친 일격이 그녀의 몸통을 파고들었다.
-꽈당!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른쪽 벽으로 날아간 카멜리아.
“역시- 맞았-”
말 한마디를 채 내뱉지 못하고,
그녀의 신체가 바닥에 힘없이 고꾸라졌다.
뼛조각이 폐를 찔렀는지, 그녀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건 진짜로 놀랍네. 변장을 간파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어떻게 했어?”
“……목령왕!!”
“대답.”
-꾸득!
손을 들어 카멜리아의 멱을 잡아 들어올렸다.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은 표독한 표정과는 달리 공포에 질린 강아지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읍… 끄읍, 으훅.”
카멜리아의 손이 내 손목을 쥐어감싼다. 가볍고 약한 힘이다.
-툭.
팔을 때려도 아무렇지 않았다.
마력을 쓰지 못하도록 미리 손을 써두었으니까.
“…뭐 확실히, 이상할 수는 있겠네.”
이세영도 카멜리아만큼의 안목은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경우가 달랐다.
내 정체를 숨기는 변장과, 특정 인물과 똑같이 보이게 하도록 하는 변장에는 차이가 있을 테니까.
“그건 됐고.”
나는 카멜리아의 왼쪽 흉부에 손을 얹었다.
-웅웅!
녹색의 권능이 차올랐다.
카멜리아의 뼈가 다시 붙고, 짓물러진 살점이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었다.
“…하아. 하아.”
치유의 권능을 쓴 지 머지않아 카멜리아의 경련이 멎었다. 안정된 숨결이 입김처럼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
-툭.
떨어뜨리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는 카멜리아.
메이드복이 많이 구겨져 있었다.
“무슨 배짱으로 아무도 없는 건물에, 지원군도 없이 들어올 생각을 했는지.”
날 죽이려면 최소한 무궁은 데려와야 한다.
“…….”
“더 할 거냐?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나?”
“아가씨한테, 무얼 할 생각이냐.”
“존대는 해야지. 네 목숨을 쥐고 있는 게 나인데.”
얼굴을 와락 찌푸리는 카멜리아,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의 뜻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무얼, 할 생각입니까.”
이해가 참 빨라서 좋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아작난 문을 엄지로 가리켰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 * * * * * * * * *
“카멜리아.”
뜯긴 목걸이를 빤히 바라본 녀석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예.”
“미리 하나만 가르쳐두지.”
-툭.
건성으로 탁자를 두드리자 경쾌하면서도 지독한 소리가 방 안을 울린다.
“자살을 택하거나, 만에 하나 내가 너와 만났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알리면. 나는 귀목을 빼앗기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을 거야.”
동백과 카멜리아의 사이는 이름만큼이나 각별해보였다.
홀로 목숨을 버리고 나에게 덤벼들 정도로 충성심이 강하다면 말 다했다.
“이해했습…니다.”
게다가 똑똑하기까지하고.
그런 똑똑한 양반이 왜 이런 가능성 없는 암살을 시도해 왔을까.
“말해. 왜 이길 확신도 없이 덤벼들었는지.”
“…….”
왕관의 힘을 사용한다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겠지만, 힘의 남발은 언젠가 좋지 않은 방향으로 내 운명을 끌고 갈 거다.
목령왕이 그러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선까지는 스스로 해볼 생각이었다.
“아직, 의심 단계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을 죽이려 했다?”
“……예.”
기개는 마음에 든다. 나는 몸체를 숙여 카멜리아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했다.
고통이 없어서인지 녀석의 동공은 떨림이 없었다. 훌륭한 인재다.
“언제부터?”
“예언이 떨어진 이후 근무를 시작한 모든 사용인을 처음부터 의심했습니다.”
“그 와중에 내 변장을 알아본 거고.”
카멜리아의 고개가 형편없이 흔들렸다.
의심이라곤 했지만 아마 확신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경계를 해왔다면, 인상부터 키, 몸무게… 모든 걸 외우고 다녔을 테니까.
철두철미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실패해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 나머지는-”
“그 무능한 세계수가 뭘 할 줄 알까.”
증명을 몸으로 하겠다.
“그리고 왕의 힘이 뭔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
“지금 내가 여기서 널 덮쳐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아가씨는 변한 저를 알아차리지 못할 분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애정이네. 무슨 사이야?”
“평생을 바쳐도 못 갚을 은인입니다.”
딱히 내용까지는 묻지 않았다. 저 둘의 사이가 무엇 때문에 끈끈해진 건지는 알 필요가 없었으니까.
“목령왕…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비굴하게 목소리를 낮추는 카멜리아.
분홍 머리카락 사이로 아직 의지가 남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
“…아가씨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힘의 차이는 알린지 오래. 카멜리아는 우수하다.
내가 저력을 쓴다면 동백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누가 저택을 지키든 겁탈당하는 건 당연한 수순.
그렇다면 여기서 다른 의문이 생기게 된다.
왜 나는, 목령왕은 무력을 쓰지 않고 한낱 사용인으로 위장해서 몇달씩이나 일을 하며 지냈을까.
카멜리아가 내게 덤벼든 이유도, 아마 내가 왕이라기 보다는 왕과 관련된 인물이라고 여겼던 것이 더 타당했다.
목령왕이 가지치기나 하며 숨어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할 테니까.
“글쎄.”
그녀가 물어온 걸 내가 대답해줄 의무는 없다.
세계수와 플라워의 귀목에 대한 처우를 알기 위해서에요.
순진하게 유리한 정보를 발설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더 나은 방법이 있나, 확인해보기 위함이지.”
반대로 꿀을 흘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은 방법이요…?”
“예언의 내용이 애매해. 내가 넷이나 되는 년들을 따먹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쪽으로 이용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겁탈하다. 취하다.
그렇게 적혀는 있지만 목령왕의 능력이 그런 쪽이기에 자칫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예언은 언제나 추상적인 법이다.
그것이 다른 걸 의미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기에 신중하게 여겼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이유지.”
그건, 카멜리아에겐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겁니까.”
“하지만 들킨 이상 하나밖에 없지, 예속을 거는 수밖에-”
“잠시만…! 그것만은.”
“뭐?”
카멜리아의 비굴한 목소리가 금세 기어나왔다.
“저희…. 아가씨, 평생… 불행한 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아무런 죄도 저지른 적이 없고…. 그러니까, 그것만은 그만둬주십시오.”
고개를 들이밀어 눈을 마주한다.
“내가 왜.”
딱 한 마디.
카멜리아의 몸이 굳었다.
“예언이 맞다면, 나는 하나라도 잃는 순간 토벌당할 가능성이 큰데.”
확실히 옛날이었다면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뭘 믿고 하지 말라는 걸까.”
나는 조금씩 몸을 떠는 카멜리아를 보며 낮게 읊조렸다.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뒤로 젖혀 귀를 보이게 했다.
“카멜리아.”
“…네, 네. 네에.”
-스르륵.
손을 타고 물결처럼 흐르는 메이드의 머리카락. 나는 녀석의 귀에 속삭였다.
“네가 생각하는 일이 일어나기 싫으면. 이 일은 누구에게도 밝히지 마.”
“…….”
“내 업무 시간의 동선에, 최대한 많이 녀석과 접촉하도록 손을 써 둬.”
“…그건, 어째서.”
“그렇게만 하면. 네가 모시는 사람의 수명이 최대한 늘어날 수 있겠지.”
최선의 방안이 있다면, 최선의 방안을 따르는 게 답이다.
너희 둘을 살리는 게 최선이라면 흔쾌히 그 길로 가겠다.
“그 길을 만드는 건 누구인지 잘 생각해.”
최선은 결코 평탄한 과정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적을 포섭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겪어왔고,
겪어올 일이며,
세상이 그랬다.
난 어차피 선을 넘어버린 한낱 괴인일 뿐이니. 가릴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내 말을 들어.”
어깨를 두드리자, 그녀의 무릎이 꿇렸다.
그렇게 절망하고 있으면 된다.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건 너 자신이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그럴 생각은 하나도 없었다.
기간만 3년이다.
지금 나는 세계수와 플라워에게서 한순간이나마 무력을 앞섰다.
‘어떻게 잡은, 그리고 언제 뺏길지 모르는 주도권인데.’
이걸 가만히 둘 리가 있나.
결과는 내가 만들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