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35
마염의 황제 035화
이터의 주먹과 소류의 창이 허공에서 수십 번을 부딪친다.
카캉! 카캉! 카카캉!
“대, 대단하다.”
“오빠…….”
한치도 양보 없이 부딪혔다가 떨어지고 다시 부딪히는 치열한 공방. 지켜보던 호아족 사람들은 어느새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레이센이 눈살을 찌푸렸다.
“꼬마가 고전하는 것 같은데? 위험한 거 아냐?”
로자리아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저게 고전하는 녀석의 표정이라고 생각해?”
소류의 마창과 부딪혀 나가는 이터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마치 재미있는 시합이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로자리아는 미소 지었다.
“이터의 힘은 저 정도가 아니야.”
소류는 조금씩 밀리는 것을 느꼈다. 창이 회전하면서 들어가는 횟수보다 튕겨나오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대로는 공방의 우위를 이터에게 빼앗기고 말 것이다.
놀라울 뿐이다. 자신과 마창, 펜릴을 이렇게 몰아붙인 적이 지금까지 몇이나 되었던가. 상대의 기량과 실력은 자신의 위에 있었다.
“까불지 마라!”
이터를 튀겨낸 소류가 바닥을 박찼다. 그의 창이 하늘을 베었다.
이터 역시 정면에서 받아쳤다.
스쳐 지나가는 두 사람. 바닥에 내려선 이터의 뺨이 베이며 피가 터져나왔다.
“이터!”
“흥.”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소류. 그러나 다음 순간, 고통과 함께 왼쪽 어깨뼈가 탈골되었다.
“아, 아니?”
어깨를 내줬다?
‘보지도 못했는데 대체 어느 틈에!’
이터가 그런 소류를 보며 웃었다.
“이제 네 창은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
거대한 마창을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두 손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한 손으로는 무리다.
‘노렸던 건가. 일부러 뺨을 내주고?’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이터가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소류를 향했다.
“내가 이겼다.”
이터의 주먹이 소류에게 닿으려는 찰나 3단계로 나뉜 펜릴의 블레이드가 열렸다. 그리고 동시에 뻗어나오는 황금빛 투기. 그것은 이터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터져나오는 빛의 투기가 그대로 이터의 몸에 작렬했다.
콰앙!
“이터!”
황금빛 투기에 얻어맞고 나가떨어진 이터의 몸이 모래사장에 뒹굴었다. 호아족 사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끝난 것인가?
“아니야.”
소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통으로 작렬한 것처럼 보였지만 급소를 노린 일격을 정확하게 피해 냈다. 저 정도로 쓰러질 리가 없다.
그의 생각대로 이터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지투성이가 된 이터가 씨익 웃었다.
“제법인데.”
“네놈은 괴물이군.”
소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이터는 웃는 얼굴로 충고했다.
“좋은 공격이었다. 하지만 같은 수법은 두 번 통하지 않는다.”
“그런 건 나도 알고 있다.”
소류는 한 손으로 펜릴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양손을 쓸 수 없는 지금, 싸움이 길면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이었다.
단 한 번에 결판을 지어야 한다. 이번이 마지막 일격이 될 것이다.
결심을 굳힌 소류가 움직였다.
“하아앗!”
한 팔을 잃은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두 다리와 펜릴의 힘뿐이었다.
속도로 상대를 제압해 일격에 꿰뚫어 버리는 찌르기. 질풍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그는 이터에게 달려들었다.
이터도 마주 달렸다. 그러나 이터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보다 소류의 창이 움직이는 것이 더 빨랐다. 날카로운 블레이드가 이터의 인중을 향했다.
“끝이다!”
“이터 씨!”
바로 앞에 날아드는 창을 바라보면서도 이터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입을 열어 불렀다.
“소환, 앱솔루트 프로텍터(Absolute Protector)!”
구오오오.
빛의 마법진과 함께 이터의 앞으로 괴이한 짐승의 얼굴이 새겨진 방패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콰앙!
방패는 마창을 튕겨내고 동시에 균열을 일으키며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어떤 공격이라도 단 한 번은 무조건 막아주는 절대 방패.
그것이 앱솔루트 프로텍터였다.
뒤로 튕겨나며 소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격을 무효화시켰어?”
소류의 균형이 무너진 틈을 이터는 놓치지 않았다. 들어간 자세 그대로 진각을 내딛는 이터. 뒤이은 이터의 발경이 소류의 가슴에 작렬한다.
터엉!
“크억!”
가슴이 터지는 것 같은 엄청난 충격과 함께 소류의 몸이 뒤로 튕겨나갔다. 티나는 경악했다.
“오, 오빠!”
“크으.”
소류는 의식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창은 바로 그의 곁에 박혀 있었다. 소류는 있는 힘을 다해 마창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이 닿기 전에 누군가가 마창을 뽑았다. 이터였다. 소류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끝인가.’
패하고 말았다.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에서. 이제 모든 것은 끝장이다.
그때였다. 이터가 쓰러진 소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재미있었다. 좋은 시합이었어.”
“시합?”
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이름은 이터다.”
***
“실패했군.”
이터와 소류의 싸움을 수정구슬을 통해 몰래 지켜보던 하네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어느 정도는 팽팽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쉽게 끝나리라고는…….”
루시펠이 곁에서 까르르 웃었다.
“이터를 얕보면 안 돼. 이 꼬마도 지금까지 우리가 자신 있게 내세운 애들을 몽땅 KO시켜 보냈다는 걸 잊지 마.”
소류라는 녀석도 강하지만 이터는 그 이상으로 강하다. 단순한 골칫덩어리 꼬마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하네스는 굳은 얼굴로 책상을 내리쳤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야. 두 녀석 중에 누가 이기건 진 쪽은 재기 불능의 타격을 받았어야 했어. 두 녀석의 힘을 약화시키겠다는 게 이 작전의 목적이었잖아.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로는 놈들이 손을 잡는 것도 이상하지 않단 말이야.”
“불쌍한 하네스.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있었구나, 바보같이. 세상일이 그렇게 마음대로만 될 리가 없잖아?”
루시펠은 하네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싱긋 미소 지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보험을 하나 들어두었으니까.”
Chapter 2-3. 바르카드의 계산
그레트 섬의 안쪽에 위치한 호아족의 마을. 마을로 돌아온 이터 일행은 마을의 장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주변에 자신들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시선들이 가득해 불편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사정 파악이 우선이었다.
“그랬었군. 애초에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한 것 자체가 함정이었어.”
전후 사정을 알게 된 로자리아가 이를 갈았다. 골치 아픈 존재들을 서로 싸움 붙여서 제거하려고 하다니. 매번 느끼는 거지만 수법이 정말 더러운 녀석들이다.
“역시 자네들은 정말 알 제라드가 아닌 건가?”
“당연하죠. 우리가 어딜 봐서 그런 이상한 녀석들의 패거리처럼 보여요?”
장로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랬군. 자네들이 아니라면 잘된 일이지. 소류마저 이길 수 있는 자네들이 마을을 노렸다면 우리로서는 막아낼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그럼 자네들은 무엇 때문에 우리 마을을 찾아왔나?”
“아, 그건…….”
로자리아는 우물쭈물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면 분위기가 다시 험악해지겠지. 로자리아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여행 중에 사고를 당해서 이 마을에 오게 된 것일 뿐 결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렇군.”
조용히 듣고 있던 그레이센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마을의 전사는 소류라는 녀석 하나뿐이지? 외부의 적에게서 마을을 지키는 게 목적이라면 좀 더 많은 실력자가 있는 것이 도움이 될 텐데.”
“거기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네.”
장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뜨거운 투사의 피를 가진 호아족의 전사는 강해. 이데아로크의 힘을 찢어 봉인한 용사 중 한 사람이 호아족의 오랜 선조 ‘다오스’라는 것이 그 증거지. 하지만 악신과 오랜 사투를 거듭한 다오스는 호아족이 가진 무서운 잠재능력이 다시 세계에 부조화를 가지고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동족들의 힘에 제한을 걸었지. 50년에 한 번, 종족 중 단 한 명에게만 전사의 권능을 내리게 한 거야. 그리고 선택받은 전사에게는 전사의 힘과 이데아로크의 힘을 가둔 마창, 펜릴이 전해지게 되었지. 그 외에는 그저 힘없는 평범한 농사꾼일 뿐이야.”
“50년에 한 번.”
그럼 한번 전사가 된 이는 50년을 싸움만 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가? 열다섯 살에 전사가 된다고 해도 은퇴할 때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나이다.
장로는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알 제라드의 대부대에 맞서 소류 혼자 싸우는 것은 그래서지. 우리도 돕겠다고 나서보려 했지만 아만다티움 골렘을 비롯한 대규모 마물들과의 싸움에 우리가 나서는 것은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는 것밖에 되지 않아. 그래서 우리는 소류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렸을 때의 소류는 전사를 꿈꾸는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를 잃고 난 뒤에 혼자 남은 여동생을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전사의 길을 가게 되었지.”
어딘지 모르게 딱하다는 생각이 드는 로자리아였다. 아무리 종족과 동생을 위해서라지만 평생 싸우기만 해야 하다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터가 벌떡 일어났다.
“이터? 왜 그래?”
“소류는 어디에 있지?”
“소류라면, 아까 엘프 아가씨가 치료해 준 뒤로 아직 해변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 같은데…….”
이터는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갔다. 영문을 모르는 로자리아와 일행은 그의 뒤를 쫓아 달려나와야 했다.
“이터! 어딜 가는 거야?”
이터가 향하는 곳은 해변이었다.
모래사장에는 소류가 앉아 있었다. 몸의 상처는 엘리스 덕분에 이미 회복된 상태였다. 실제로 이터 역시 그의 몸에 치명적이 될 공격은 하지 않았으니까.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본 소류는 이터를 보곤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냐. 패배한 몰골이라도 보러 왔나?”
이터는 대꾸 없이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말했다.
“마창을 내놔라.”
“뭐?”
듣고 있던 소류도 뒤따라온 일행도 그 말에 놀랐다. 로자리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터, 이 바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저렇게 대놓고 말하면 어떻게 해.’
“그 창은 너한테는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이다. 역시 내가 가져야겠어.”
“네놈,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흥.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셨군.”
소류는 물러나며 창을 겨누었다.
“네 녀석이 알 제라드가 아니라는 말은 처음부터 믿지 않았어. 탐색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아까처럼 쉽지는 않을걸.”
“아니. 다를 것 없어. 넌 날 못 이겨. 시험해 봐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