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36
마염의 황제 036화
작은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차가운 이터의 말에 소류는 분노했다.
“이 자식이!”
“이터 녀석, 저렇게 도발해서 어쩔 생각인 거지? 정말 힘으로 마창을 뺏을 건가?”
로자리아는 입맛을 다셨다. 로자리아에게 있어 손해 볼 일은 없는, 아니, 오히려 이익이었지만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곁에 있던 엘리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 이터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아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생각해 봐요. 이터 씨는 호아족의 전사가 혼자서 마을을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알 제라드는 소류 씨의 마창을 노리고 마을에 쳐들어오고 있다고요.”
“그런데?”
“그래도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그렇게 눈치가 없냐는 눈으로 바라보며 답했다.
“이터 씨는 소류 씨가 짊어진 짐을 덜어줄 생각인 거예요. 마창이 이 마을에 있는 한 알 제라드는 계속해서 이곳을 노리고 올 테고 소류 씨도 계속 싸우게 되겠죠. 그래서 마창을 뺏으려는 거예요. 그러면 알 제라드의 표적은 이터 씨로 바뀌게 되고 소류 씨 역시 이 마을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을 덜 수 있을 테니까요.”
엘리스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터 녀석,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엘리스는 황홀한 눈으로 이터를 바라보았다.
“역시 이터 씨는 정말 멋지다니까요.”
그리고 일행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한 번 이터와 소류의 승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소류가 마창을 옆으로 누이며 소리쳤다.
“간다!”
“잠깐.”
꼬르르륵.
이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나 배고픈데 뭐 좀 먹고 난 다음에 하면 안 될까?”
“…….”
소류는 뭐 저런 놈이 다 있냐는 황당한 눈으로 이터를 바라보았다. 로자리아와 엘리스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런 면이 흠이긴 하지.”
“동감이네요.”
하지만 황당한 표정을 짓는 소류도, 이터의 다른 일행도 몰래 그들을 관찰하는 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 마음껏 싸워라. 네놈들이 맞붙어 어느 한 쪽이 쓰러지는 순간이야말로…….”
마법으로 일그러진 공간. 그 안에 누군가가 모습을 감추고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 리치, 바르카드. 그가 푸른 안광을 빛냈다.
“네놈들 둘이 지옥에 떨어지는 순간이다.”
엘리스는 이터를 위해 급하게 식사를 준비했다. 나무열매와 풀로 구성된 소박한 식단이었지만 엘리스의 손을 거치니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변했다. 과연 자연에 몸을 담고 있는 엘프의 실력(?)이었다.
배를 채운 이터가 다시 소류 앞으로 나섰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이제 다 끝났어.”
“아무래도 상관없다만.”
불만 가득한 얼굴로 선 소류가 펜릴을 꺼내 들었다. 펜릴의 블레이드가 벌어지며 황금빛의 투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의 눈매가 날카롭게 섰다.
“바보 취급하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
아만다티움 골렘의 육체도 갈라버리는 황금빛의 투기. 이터는 왼손을 내밀었다.
“널 얕보지 않는다. 나도 이번엔 최선을 다해서 싸울 거니까.”
휘이잉.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커다란 손잡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2m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대검.
“소환, 기간틱 블레이드(Gigantic Blade).”
‘또 뭔가를 소환해 냈어.’
소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까의 그 방패도 저런 식으로 소환해 냈던 것이었지. 게다가 두 번 다 전혀 다른 무기의 소환.
‘설마 저런 식으로 여러 가지 타입의 무기를 소환할 수 있다는 것인가?’
생각하는 사이, 이터가 바닥을 박차고 달려왔다. 기간틱 블레이드가 허공에 날카로운 궤적을 그렸다. 펜릴은 그것을 받아쳤다. 두 개의 무기가 허공에서 부딪힌다.
카아앙!
“크윽.”
소류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아까도 맞붙어보았기에 보통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펜릴의 황금 투기와 맞부딪히고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블레이드라니.
튕겨난 두 개의 무기가 번개처럼 맞부딪혀 들어간다.
카캉!
‘정말 대단하군.’
적이지만 소류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황금 투기를 완전히 개방한 자신과 펜릴을 마주하고도 힘에서 전혀 눌리지 않는다. 속도도 마찬가지. 펜릴보다 더 큰 블레이드의 무기를 들고도 이 정도의 기동력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검과 창이 얽혀갈수록 소류가 밀리는 것이 눈에 드러났다.
‘하지만 이 정도일 거라는 건 아까의 승부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기동력만은 이터를 넘어설 카드가 있었다. 소류는 강하게 창을 휘둘러 이터를 튕겨냈다.
“디파!”
그르르!
소류의 외침을 들은 와이번이 지상으로 날아들었다. 소류가 그의 등에 올라타자 와이번은 날개를 크게 펼치며 포효했다.
“하늘로 날아올랐어?”
호아족 소류의 진정한 실력. 그것은 이 와이번 디파와 하나가 되었을 때 나타난다. 수많은 강적들을 만나왔지만 디파의 기동력을 뛰어넘는 적은 한 명도 없었다.
펜릴을 크게 휘두른 소류는 디파를 몰아 이터를 향해 날아들었다.
“각오해라, 이터!”
“……!”
촤아악!
번개처럼 이터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디파. 그와 함께 소류의 창도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이터는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가슴의 옷자락이 예리하게 베였다. 조금만 더 들어갔다면 가슴이 통째로 베였을 위치였다.
“아직이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제아무리 움직임이 빠르다고 한들 지상에 붙어 있다. 하늘에서 모든 움직임을 파악하고 날아오는 공격을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아까는 어이없이 당했지만 이번만큼은 어림없다.
날카로운 황금의 투기가 모래사장 여기저기에 커다란 상흔을 남기며 처박혔다. 이터는 그 사이로 이리저리 날렵하게 몸을 날리며 피했다.
“…….”
소류의 공세가 약간 뜸해지자 이터는 바로 반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디파가 입에서 푸른 화염을 뿜어냈다. 이터는 또다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물러나서 균형을 잡는 순간에는 어느새 다시 거리를 좁힌 소류가 마창을 휘둘렀다.
이터의 움직임이 급해진다.
반격을 하려고 하면 디파의 화염이 접근할 틈을 주지 않고 화염을 피해 물러나면 소류의 창이 날아든다. 하늘과 땅을 오가며 펼치는 소류의 공세가 이터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조금씩이긴 하지만 이터가 밀리고 있었다. 반격은커녕 소류가 날리는 공격을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소류가 날린 일격에 기간틱 블레이드가 튕겨 날아가 모래사장에 박혔다.
“위험해!”
소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디파를 끌고 이터의 정면을 향해 고속으로 날아들었다.
“이걸로 끝이다!”
마지막 순간에도 방심은 하지 않는다. 아까처럼 방패를 소환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소류는 디파의 화염과 자신의 마창을 동시에 사용해 이터를 벨 생각을 했다. 그러면 둘 중 하나가 막힌다고 해도 하나는 먹일 수 있다.
자신의 승리다.
이터는 다가오는 디파를 향해 왼손을 내밀었다.
“부러져라, 천풍.”
휘이잉!
이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센 돌풍이 이터를 중심으로 모래사장을 휩쓸었다. 그것은 고속으로 날아들던 디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람에 끌려가지 않게 디파의 몸을 꽉 붙든 소류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크윽! 마법이라고?”
‘저 꼬마는 권과 검과 마법을 동시에 쓸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지?’
생각할 틈은 없었다. 디파가 바람에 휘말려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소류는 이를 악물고 디파를 컨트롤했다.
“디파를 얕보지 마!”
그, 그르륵!
빨려 들어가던 디파가 다시 날개를 펼쳤다.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움직인 디파는 바람의 범위를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돌풍은 걷혔고, 소류는 즉시 이터를 찾았다. 하지만 이터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날 찾고 있나?”
“……!”
목소리는 아래에서 들렸다. 깜짝 놀란 소류는 즉시 아래를 바라보았다. 디파의 다리에 이터가 매달려 있었다. 방금의 바람은 설마 디파에 접근하기 위해서?
이터의 왼손이 빛났다.
“내리쳐라, 번개.”
콰르릉!
메마른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거대한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디파의 몸에 정통으로 작렬했다.
“크아악!”
디파를 관통하는 번개의 충격은 고스란히 소류에게도 전해졌다. 디파의 등에 쓰러진 소류는 치를 떨었다. 이터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는 예측할 수 있었다. 디파에게 데미지를 입혀서 자신의 기동력을 꺾겠다는 것이다.
확실히 디파는 충격을 받고 추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공격하면 이터 자신도 충격을 받을 텐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공격을 시작하다니, 정말 지독한 녀석이다.
“나는 방어막.”
“…….”
흰빛의 방어막으로 번개를 막아낸 이터는 상처 하나 없었다.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드는 소류였다.
그에게 다가간 이터가 말했다.
“승부는 끝났다. 이번에도 내 승리다. 그러니까 그만 마창을 포기해.”
“웃기지 마!”
소류는 남은 힘을 다해 펜릴을 찔러넣었다. 맞기만 하면 된다. 맞기만 하면!
파앗.
이터가 날아드는 소류의 창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소류는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맨손으로 황금 투기를 발산하는 블레이드를 잡아내다니!
놀라운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터가 완력을 이용해 벌어진 블레이드를 강제로 닫고 있었다. 처음엔 반발하던 마창의 블레이드는 어느새 이터의 힘에 압도되어 강제로 닫히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이터는 짧게 웃으며 양손에 힘을 꽉 주었다.
“돼.”
“……!”
콰아아아!
마창의 블레이드가 강제로 닫혔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폭사한 황금 투기가 소류의 몸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으아아악!”
쿠우웅.
거대한 와이번 디파가 추락하자 요란한 진동과 함께 모래사장 전체가 들썩거렸다. 이터는 추락하기 전에 일찌감치 멀리 떨어져 내려섰다.
자욱하게 가라앉는 모래먼지 속에서 소류가 힘겹게 걸어나왔다. 그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폭사하는 투기에 당한 몸은 여기저기 그을리고 상처투성이였고, 다리는 힘이 풀려 마창에 기대어 간신히 서 있었다.
지친 숨을 내뱉는 소류에게 이터는 말했다.
“그만 포기해라. 이길 수 없는 건 네가 잘 알고 있을 거다.”
“시끄러워! 나는 우리 마을 최후의 전사다. 이 정도로 쓰러지진 않아.”
소류는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내 마창을 움켜쥐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쓰러지면 모두가 끝장이다. 난, 난 아직 쓰러질 수 없어.”
“아니, 바로 네가 쓰러지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위험한 거다.”
“뭐야?”
이터의 말에 소류가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이터는 그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알 제라드든, 나에게든 그 창만 넘기면 모든 것은 끝난다. 네가 그 창을 붙잡고 쓰러지지 않기 때문에 계속되는 거다. 끝까지 창을 놓지 않는 이상, 결국 네 자신이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거다. 동족들도, 네 동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