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91
마염의 황제 091화
이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루시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너보다 강한데 왜 네 부하가 되냐?”
“…….”
“이터…….”
이터는 멍하게 자신을 보는 루시펠에게 한마디 추가해 주었다.
“그리고 하나 더. 네 녀석, 무진장 기분 나빠.”
이터의 거침없는 말에 루시펠은 아무 말도 없이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하지만 천천히 그의 입가가 찢어지기 시작했다.
“큭. 크크크크. 크하하하하.”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루시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역시 구제불능이군. 이터 녀석. 모처럼 기회를 줬건만 그렇게 날려버리다니. 하긴 그게 네 녀석답지. 하지만 약간 아쉬운데.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너 같은 부하를 두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 뭐, 어쨌거나 협상 결렬. 그럼 너와 느긋하게 나눌 이야기는 이걸로 끝인가?”
콰득.
루시펠은 주먹을 쥐어 손에 쥔 사과를 터트렸다. 완전히 박살난 사과 파편이 바닥을 더럽혔다. 루시펠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이터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럼 이제부터 박살을 내주지.”
이터 역시 자세를 잡았다.
“물러나, 로자리아.”
“알았어. 힘내, 이터.”
자신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로자리아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지켜보는 것뿐이다. 이데아로크의 조각을 둘러싼 최후의 싸움을.
이터의 승리를 기원하며…….
“간다, 루시펠.”
***
“저곳인가.”
희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리는 언덕.
마차를 몰며 길을 서두르고 있던 한 무리가 멈춰 섰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성 마을. 말을 몰고 있던 청년이 입을 열었다.
“이제야 도착했군요. 그런데 이곳이 확실한 겁니까?”
“…….”
청년은 신성연맹의 성기사, 맥스였다. 그의 곁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의 세레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차 밖으로 내려서는 여인. 성스러운 성의를 걸친 검은 머리의 사제, 아네스는 성마을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서에 의하면 악신, 이데아로크는 한 달 밤낮을 계속한 싸움 끝에 다섯 명의 정령왕들의 손에 찢겨 다섯 조각으로 나눠졌다고 하지. 그리고 그 장소는 영원히 비밀로 남겨져 있었어.”
“그곳이 이곳인 거군요.”
세레나가 조용히 말했다. 아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날카롭게 날이 선 그녀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악신, 이데아로크. 그는 여기서 부활하게 될 거야.”
***
콰아아앙!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뾰족이 솟은 첨탑 하나가 무너져 내렸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파편과 먼지를 헤치고 한 인영이 튀어나왔다. 이터였다.
이터는 허공으로 튀어오르기가 무섭게 무너진 첨탑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지워라, 불!”
붉은 섬광과 함께 이터의 왼손이 불을 뿜었다. 이글거리는 폭염구가 성채에 작렬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열기를 내뿜었다. 무서운 기세로 몰아치는 열풍.
하지만 그 사이를 가볍게 찢어발기며 날아드는 푸른 머리의 악마는 비릿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물러 터졌어.”
퍼억!
순식간에 이터의 공격을 뚫고 들어온 루시펠.
그의 일격에 이터는 대각선 아래로 빠르게 추락했다. 또 하나의 첨탑이 이터와 부딪히며 산산조각으로 박살나 버렸다. 날개를 펼친 채로 옆구리에 손을 얹고 지켜보던 루시펠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뭐 하고 있어. 어서 튀어나와서 반격하라고.”
하지만 자욱한 먼지 속에서 나타나야 할 이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루시펠은 고개를 갸웃했다.
“헤에? 설마 이걸로 끝난 건 아니겠지?”
“물론.”
목소리는 등 뒤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루시펠의 뒤로 나타난 이터가 마창, 펜릴로 찔러 들어왔다.
“헷. 이런 것쯤.”
터억!
거칠 것 없이 뻗어나가던 펜릴이 허공에서 멈췄다. 펜릴의 날카로운 블레이드를 맨손으로 잡아낸 루시펠이 이터를 바라보며 히죽 웃음지어 보였다.
“찌르기가 너무 얕은데. 좀더 강한 거 없어?”
루시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타이탄 브레이커를 장착한 이터의 주먹이 그의 인중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루시펠은 가볍게 이터의 팔을 옆으로 쳐내는 것만으로 공격을 무위로 만들어 버렸다. 이터의 품 안으로 들어온 루시펠이 주먹을 뻗었다. 그가 장난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으샤~ 피하라고.”
“큭.”
이터는 재빨리 균형을 잡으며 루시펠의 주먹을 막았다. 그리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 바닥에 내려서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느려.”
“……!”
퍼억!
이터가 제대로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뒤를 점한 루시펠이 일격을 가했다. 바닥에서 몸을 튕기며 물러나는 이터를 쫓으며 루시펠은 악령의 지팡이, ‘소울 이터’를 소환해 휘둘렀다. 그러자 지팡이에서 검은 마탄 수십 개가 일어나 이터의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정신없이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나가는 주변을 보며 루시펠은 웃음을 터트렸다. 무너지는 성과 격렬하게 일어나는 진동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어떻게 된 거야. 저번에는 이것보다 훨씬 더 강했잖아? 그때 그 모습을 다시 보여달라고.”
자욱하게 주변을 흐리는 먼지. 그 안에 희미하게 이터의 실루엣이 보였다.
“워라, 불. 부러져라, 천풍.”
“응?”
쿠아아아.
붉은 불꽃의 돌풍이 먼지를 휘감아 몰아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붉은 기간틱 블레이드를 움켜쥔 이터는 루시펠을 향해 있는 힘껏 내리치며 외쳤다.
“폭마검!”
콰아아!
주변의 바닥과 벽을 쓸어버리면서 날아가는 광염의 돌풍. 그것은 루시펠을 향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뻗어나갔다. 하지만 루시펠은 피할 엄두가 나지 않는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흥.”
루시펠을 집어삼킨 불꽃의 돌풍은 엄청난 열기를 쏟아내며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폭마검의 후폭풍의 영역에서 몸을 빼낸 로자리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됐어, 정통으로 들어갔어.”
“아니.”
로자리아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루시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멀었어.”
우우웅.
걷혀가는 먼지 속에서 흑빛의 방패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왕의 성배, ‘다크 로드 캘릭스’가 만들어내는 어둠의 장벽. 단순히 폭마검을 막아낸 것이 아니었다. 어둠의 장벽 앞에는 폭마검의 투기가 작은 원처럼 응축되어 맺혀 있었다. 루시펠은 어깨의 먼지를 살짝 털어내며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전보다 기본적인 파워는 조금 올라간 거 같긴 한데. 하지만 역시 내 상대는 아니야!”
파아앗.
루시펠이 어둠의 장벽을 펼치자 맺혀 있던 폭마검의 투기가 다시 이터를 향해 튕겨져 나갔다. 처음 루시펠을 향할 때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 이터는 피할 수가 없었다. 폭마검이 이터에게 작렬했다.
“……!”
“이터!”
콰아앙!
어둠의 장벽에 의해 처음보다 위력이 많이 감소되었지만 여파는 장난이 아니었다. 폭발과 함께 이터가 서 있던 자리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나 버렸다. 하지만 이터는 죽지 않았다. 폭발에 완전히 삼켜지기 전에 재빨리 옆으로 피해낸 것이다. 완벽하게 피해낼 순 없었는지 여기저기 그을음으로 엉망이 되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그런 이터를 보며 루시펠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재미있지.”
“…….”
로자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싸움이 시작된 지 이미 수분이 지났다. 예상대로 이터와 루시펠의 싸움을 상상을 초월하는 파워 싸움이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눈으론 쫓을 수도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런 로자리아의 눈으로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이터가 밀리고 있어.’
지금까지 그의 실력을 보아온 로자리아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이터가 루시펠의 실력에 대한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듣는 것과 눈으로 보면서 느끼는 것의 차이는 컸다.
특히나 이터의 저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루시펠의 여유는 대체…….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적이었다.
‘이대로는 위험해.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이터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그런 로자리아의 속내를 읽었는지 근처에 있던 이조르네가 충고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네가 나서봤자 루시펠님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이조르네…….”
이조르네는 짧게 미소를 지으며 루시펠을 바라보았다.
“3조각이야. 이데아로크의 조각 3개가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 저 정도다. 이터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국 승리하는 건 루시펠님이야.”
“그런…….”
로자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터와 루시펠은 다시 서로를 향해 격돌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충격을 받고 물러나는 건 이터였다. 둘 사이의 힘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로자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이터… 힘내.’
“이터널 플레어!”
콰아앙!
소울 이터가 만들어내는 초 폭열주문이 이터의 몸에 작렬했다. 주문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힌 이터가 재빨리 일어났다. 느긋하게 바닥에 내려선 이터는 먼지와 그을음투성이가 된 이터를 보며 싱긋 웃었다.
“꽤나 힘들어 보이는군. 설마 벌써 힘이 다한 건 아니겠지?”
“…….”
이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루시펠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이대로 없애버리기는 아까운 녀석이란 말이야. 어때? 아까 한 이야기는 아직 유효하다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
“내 대답은 같다.”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훔치며 이터가 답했다.
“내가 더 강한데 네 부하가 될 이유는 없어.”
“흥! 허풍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지만 루시펠은 개의치 않았다. 승부는 이미 자신의 예상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천천히 즐기면서 박살을 내주지.
이터 역시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놈은 강하다. 이대로는 지고 말 거야.’
3% 운운하던 녀석의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만약 루시펠이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면 끝냈어도 벌써 끝이 났을 싸움이었다. 아직 진폭마검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걸 사용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지는 의문. 타이탄 브레이커나 월영참을 이용한다고 해도 효율적일 것 같지는 않았다.
이터는 표정을 굳혔다.
‘역시 그 방법뿐인 건가.’
처음부터 루시펠을 간단히 쓰러뜨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승부를 뒤바꿀 변수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내면에 숨겨진 힘.
붉은 눈의 이터를 깨우는 것뿐이었다.
‘할 수 있을까.’
붉은 눈의 이터에게 마음을 지배당하지 않고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건 거꾸로 말하면 조금만 실수해도 붉은 눈의 이터에게 잠식당하고 만다는 의미도 되었다. 이터는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