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Demon Flames RAW novel - Chapter 98
마염의 황제 098화
“네가 이데아로크인가?”
아네스는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이름은 아네스. 너를 다시 봉인시키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나를 봉인시키기 위해 왔다고?”
당돌한 아네스의 말에 이데아로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견디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큭. 크하하하. 고작 너 같은 인간 계집이 나를 봉인해? 맛이 간 거 아냐? 제정신이냐?”
이터도 같은 생각이었다.
“무리다.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지만 네 실력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그래도 저 녀석을 여기에서 떠나게 할 수는 없어.”
아네스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곳은 녀석이 봉인된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일하게 물리칠 수 있는 곳이니까.”
“무슨 뜻이지?”
의아해하는 이터에게 아네스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그것은 일전에 이데아로크에 대해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악신 이데아로크는 5천 년 전 이 땅에서 다섯 조각으로 갈갈이 찢어졌다. 그 육신은 모두 다시 여기에 모여야만 하나가 될 수 있어. 하지만 하나가 된다고 해도 완전히 부활한 것은 아니야. 여기 이 마을 전체에 새겨진 봉인의 힘이 전부 소멸해 버리기 전에는 그는 아직 구속되어 있는 거야. 바로 이 마을 안에.”
그 말은 이데아로크가 아직 완전한 자유를 갖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녀석이 이곳의 봉인을 풀고 밖으로 나서게 된다면… 다시 완전한 힘을 찾게 된다. 전 세계는 5천 년 전에 맛보았던 절망을 다시 고스란히 느껴야 될 거야.”
아네스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이데아로크는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쳤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나를 막아보겠다는 건가. 배짱 하나는 있는 인간이로군. 하지만 조금 늦은 것 같은데.”
“캬아아아-!”
검게 물든 하늘 위로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린다. 검은 하늘을 뚫고 나타난 수백 마리의 와이번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이데아로크는 사라지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이미 내 부하들은 눈을 떴거든.”
***
이데아로크의 성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 그곳은 각자의 일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단정한 복장을 차려입은 중년 사내는 자신을 배웅하는 아내에게 인사하며 밖으로 나섰다.
“다녀올게.”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사내는 웃으면서 집을 나섰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집안의 가장. 하지만 그의 정체는 바로 알제라드의 흑마법사였다.
본부가 망하고 남자 구실도 못 하게 되어 갈 곳 없이 떠돌게 되었지만 그의 인생에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방황하는 그를, 남자 구실도 못 하는 그를 잡아주는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작지만 본거지에서 훔쳐 나온 돈으로 가게를 꾸릴 수 있었다.
꿈만 같은 일상, 그 말이 딱 맞는 요즘이었다. 저 멀리 가게가 보인다. 흑마법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걸음을 옮겼다.
‘그래, 이제부터는 훨씬 더 좋은 일들이 벌어질 거야. 앞으로…….’
쿵!
그리고 흑마법사의 눈앞에서 멀쩡하던 가게가 폭삭 가라앉았다.
“흐, 흐악! 내 가게가!”
가게를 무너뜨린 것은 거대한 다리였다. 날카로운 상아에 철투구를 쓰고 코로는 화염을 뿜는 코끼리 형태의 몬스터가 마을 한복판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캬오오.”
“이건 또 뭐야!”
같은 시각, 엘데라드.
다크 엘프 일리아는 다급한 얼굴로 샤필로스에게 달려왔다.
“샤필로스님!”
“허둥대지 마라. 나도 알고 있다.”
샤필로스는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을 빽빽이 메운 검은 그림자가 숲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풍기는 기운이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검을 뽑아 들었다.
‘이것도 그 꼬맹이 녀석과 관련된 일인가?’
흥.
샤필로스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뭐, 나름대로 무료함을 달랠 수 있을 것 같군.”
“…….”
엘프 마을의 장로는 조용히 나무 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늘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던 자리가 지금은 온통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혼잣말했다.
“이것 참… 다시 관절염이 도지려나? 어쩔 수 없지.”
괴현상은 비단 엘데라드와 인근 마을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마물의 군대가 등장하였으며 각지에서 피해가 벌어졌다. 신성연맹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마물 군단… 계속 남하 중. 교전하러 나간 레이핌 1개 사단이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다른 기사들은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건가?”
“그게 아직 정비가 되지 않아서…….”
“당장 내보내. 이대로 룬하우즈 대교까지 밀려버리면 막을래야 방법이 없어!”
“아, 알겠습니다.”
“로마린 왕국과는 연락이 되고 있나? 빨리 확인해 봐.”
“전쟁이다. 마물들의 선전포고라고!”
혼란과 혼란. 이러는 시간에도 마물들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추기경 마드릴은 겁에 질려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
전 세계를 휩쓰는 이데아로크의 마물 군단.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세계를 휘젓고 있었다.
이데아로크는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5천 년 전을 보지 못한 인간들에게는 하나같이 생소하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마물들뿐. 이미 전 세계는 패닉에 빠져있겠지. 나태한 평화에 젖어있던 세계는 이제 끝장나는 것이다. 모두 파멸해 버리는 거다.”
“어째서…….”
아네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어째서 당신은 그렇게까지 세계를 파괴하려는 거지? 비단 5천 년 전의 이야기뿐만이 아니야. 당신은 수많은 세월 동안 끊임없이 인류를 파괴하려고 했다. 몇 번을 실패해도 반복해 왔어. 도대체 왜? 강대한 힘을 과시하고 싶기라도 한 것인가? 그래서 인류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이데아로크는 차갑게 코웃음쳤다.
“과시? 후후, 이거야 원. 인간은 모든 일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단점이 있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니까. 자기들의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무엇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는지. 나태함에 젖어 살아가는 벌레 같은 놈들. 이것은 그런 너희들에게 내리는 벌과도 같은 것이다.”
“벌?”
이 모든 일이 인간들에게 내리는 벌이라니? 뜻 모를 이데아로크의 말에 이터와 아네스 일행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데아로크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이 모든 일의 의미를 아는 것도 너희들에겐 무의미. 너희가 뭘 할 수 있지? 어차피 이 자리에서 모조리 죽을 텐데. 굴릴 머리가 있다면 살아날 방법이나 강구해 보지, 그래. 소용없겠지만.”
“글쎄.”
아네스의 곁에 선 맥스와 세레나의 신형이 바람처럼 흩어졌다.
“길고 짧은 건 대보지 않고는 모르는 법.”
“아니.”
이데아로크는 허공에 가볍게 원을 그렸다. 그러자 그것은 칠흑의 마법진으로 변했다.,
“알 수 있어.”
키이이이!
주변의 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 마법진 안에서 무언가가 소환되어 나왔다. 검은 광채를 뿌리는 그것은 속이 빈 거대한 갑주들이었다. 양옆으로 파고들며 이데아로크를 향해 공격을 날리던 맥스와 세레나의 호흡이 어긋난다. 그들의 공격이 갑주들의 방패에 맞고 튕겨난다.
“크윽?”
“이 녀석들은?”
이데아로크는 팔짱을 끼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너희 같은 녀석들에게 일일이 내가 손을 쓴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너희들 수준에는 그 정도가 어울려.”
“얕보지 마라!”
이데아로크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맥스와 세레나는 노성을 터트리며 갑주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두 사람이 상대해 온 성기사들과는 질적으로 수준이 틀렸다. 내뻗는 둘의 무기가 방패에 부딪히며 깨져 나갔다.
“아니?”
이데아로크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의견을 수정했다.
“아, 미안. 그 수준에도 못 미치는 모양이군.”
“키이이!”
흩어져서 펼치는 공격이 실패하면 남는 것은 각개격파뿐. 나뉘어져서 갑옷들에게 포위된 두 사람은 단번에 궁지에 몰렸다.
“맥스, 세레나.”
아네스는 급히 그랜드 크로스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보다 갑주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꼼짝없이 갑주들에게 당할 위기에 처한 맥스와 세레나.
“키이?”
막 맥스와 세레나를 짓이기려던 갑주들은 갑자기 날아드는 빛무리에 물러났다. 어둠의 속성으로 만들어진 그들에게 이렇게 환한 빛은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물러서기가 무섭게 낭랑한 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바람의 정령, 실프여. 그 손으로 내 친구들을 구해주세요.”
그 말과 함께 부드러운 바람이 맥스와 세레나를 안고 갑주들에게서 빠져나왔다. 그제야 그들은 자신들을 구해준 이가 누군지 깨달았다. 바로 엘리스와 론이었다. 빛의 공격마법을 펼친 론이 지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그렇게 빨리 가면 따라갈 수가 없잖아요.”
“엘리스… 론.”
맥스와 세레나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급히 이터의 곁에 달려왔다. 먼지투성이로 엉망이 된 이터를 보며 엘리스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요, 이터 씨? 다친 곳은 없나요?”
이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론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로자리아 씨는… 로자리아 씨는 어디에 계시죠?”
“…….”
이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어진 그의 얼굴이 무엇을 뜻하는지 엘리스와 론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설마… 로자리아 씨가.”
이터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론이 고개를 돌려 이데아로크를 바라보았다.
“저게 완전히 각성한 이데아로크인 거군요.”
새로이 난입한 론과 엘리스. 하지만 이데아로크에게는 심심풀이용도 되지 못했다. 그가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버러지들이 늘었군. 설마 루시펠 나이츠를 제치고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걸. 내가 너희들을 너무 얕봤나? 하지만 그것뿐이야. 버러지들이 몇 더 늘어났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크…….”
맥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런 소리를 듣고 손도, 발도 내밀지 못하다니, 하지만 자존심이 상한다고 해도 그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당장 저 갑주 하나하나의 위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저것들부터 어떻게 처리하지 않으면…….’
그때, 론이 이데아로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제?”
“이봐, 아저씨. 뭐 하는 거야? 위험하다고.”
하지만 론은 그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앞을 막고 있는 검은 갑주들도 보지 않았다. 그가 보는 것은 오직 하나. 이데아로크였다.
론이 대꾸했다.
“확실히 인간은 약합니다. 당신의 강인한 마력이나 힘 앞에서는 벌레라는 말이 틀린 게 아닐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