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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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둥지
결말이 없는, 끝나지 않는 시간은 저주나 다름없다.
어째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처음엔 후회했고, 다음으론 절망했으며, 그 다음으론 분노했고, 그 다음으로는 체념했다.
마지막은 그저 공허.
이것은 업보이자 운명이다. 어차피 이렇게 존재할 운명이라면 혼자서 울고 웃어봤자 손해만 볼 뿐이다. 부질없는 희망을 품는 짓도 이제는 그만뒀다.
이 업보를 짊어진지도 어언 삼백여 년.
뭔가 색다른 일이, 좋든 나쁘든 이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던 기대는 일찌감치 사라졌다.
그는 이제 조용히 숨만 쉬는 상태로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자신이 지키려던 세계와 존재들을 망가트리는 것도 예전에 그만두고서.
이럴 줄 알았다면 에레도스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니, 이제는 아무 상관도 없다. 남은 것이라곤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한때 더 없이 사랑했던 세계의 잔재 뿐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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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권태수의 표정은 놀라움에서 경악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세현이 허공에 손을 움직이는 동작을 보면 분명 상태창에서 글자가 언급한 ‘잔여 능력치 점수’를 투자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수십 번이 넘게 계속 반복되고 있었던 탓이다.
저도 모르게 그 횟수를 세던 그는 대략 60번이 넘어가고서야 멈추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설마 여태까지 레벨 업으로 얻은 능력치를 하나도 투자하지 않으신 겁니까?”
“그런 셈이지.”
“대, 대체 왜……?”
“딱히 필요가 없었으니까.”
어차피 남들은 상상도 못할 막강한 힘을 갖고 있던 그다.
처음에는 몇 점 되지도 않는 것 투자해봤자 얼마나 달라지랴 생각하며 가만 놔두었고, 나중에는 각 능력치 항목에 대한 자세하고 정확한 효과를 파악한 후 투자하려고 뒤로 미뤘다.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능력치를 묵혀두고 있었지만,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능력치 배분을 권장하는 메시지를 보고 이렇게 망설임 없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모든 배분을 마친 그는 상태창을 점검하며 자신의 상태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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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현 / 검귀 / 인간
레벨: 68
*칭호
개척자: 경험치 획득량 5% 증가
무리 학살자: 수준 낮은 적대적 대상에게 일정 확률로 공포 유발
최초의 성주: 길드 포인트 획득량 10% 증가
왕족 살해자: 수장급 존재와 전투시 모든 능력치 5% 증가
신성 파괴자: 신성을 가진 존재와 조우시 에레도스의 가호
* 에레도스의 눈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영주: 길드 포인트 획득량 10% 증가
폭풍 감시자: 마법 저항력 10% 증가
괴수 사냥꾼: 덩치 큰 적을 상대로 모든 능력치 5% 증가
종말자: 모든 능력치 5% 증가
최초의 대영주: 길드 포인트 획득량 10% 증가
*능력치
강인함: 34
민첩성: 33
정신력: 20
마법력: 20
친화력: 10
– 잔여 능력치 점수: 0
*보유 스킬
칼날 곡예(passive), 마력감지(active), 마력체술(active)
각성(active), 귀신걸음(active), 마법파훼(passive)
전신의 참격(active)
검귀강림(a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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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분석에 따르면 검귀 직업에게 투자할 필요가 없는 능력치는 단 하나, 바로 친화력이다.
사실 이것도 있으면 나쁘지 않다. 다른 능력치 항목들에 비해 효율이 꽤나 상대적으로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단 1도 투자하지 않은 채 초기 수치인 10으로 놔둔다고 찜찜해할 필요는 없다. 능력치 점수와는 별개로 레벨 업을 할 때마다 모든 능력치를 올린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친화력 수치가 10이라고 레벨 1짜리의 친화력 10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마력에 투자한 것은 60레벨이 넘어 새로 배운 ‘검귀강림’ 스킬 때문이었다. 최소 20정도는 되어야 끊김없이 써먹을 수 있을 듯하다는 계산이 끝났기에, 아마 이번 기회가 아니었더라도 그는 조만간 잔여 능력치를 투자했을지 모른다.
[검귀강림(active): 활성화 시 지속적으로 마력을 소모하여 신체능력과 방어력 및 재생력을 크게 향상시킨다. 강림한 영령은 시전자의 움직임을 돕거나 상대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려주는 등 조언을 할 수 있다.]사실 이 스킬을 배울 당시에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지 다른 두 스킬보다 그나마 유용해보였기에 선택했을 뿐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강림한 영령이 움직임을 돕는다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스스로 움직임에 그 어떤 군더더기도 없다고 여기는 세현이다. 누군가 자신의 움직임에 관여한다는 것을 달갑게 여길 리 없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직접 사용해본 결과, 강림한 영령은 언어가 아닌 특정한 ‘의미’를 직접 머릿속에 전달하는 식으로 의사를 표현했고 그게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그의 어떤 움직임에도 일절 관여치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효과가 아주 뛰어났다. 공방 어느 측면에서도 기울어지지 않게 그의 전투력을 크게 상승시켜주는 훌륭한 스킬이었다.
상태창 점검을 마친 그는 몇 번 손을 쥐었다 펴보고 몸을 움직이며 상태를 점검했다. 역시나 어색함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힘이 깃들었는데도 부자연스럽지 않으니 꽤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돌아가서 간부들에게 알려라.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른다고.”
“알겠습니다.”
권태수에게 당부한 그가 그때까지 떠있던 던전 생성기에 다가가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임무를 수락하겠습니까?] “그래.”대답과 무섭게 빛이 번쩍인다. 푸른빛 기운이 휘몰아치더니 한 줄기 선으로 화해 적당한 크기의 타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무섭게 가속하던 그것의 안쪽으로 빛이 퍼지며 점점 밝기를 더하던 그것이 어느 순간 폭발하듯 번쩍이며 사방을 밝힌다. 기묘한 소리와 함께 물결처럼 퍼지던 파장이 사라지자 일렁이는 푸른빛 게이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몇 번이나 봤던 게이트의 생성 과정이다.
세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이곳 너머에 어떤 상대가 있을지 상상하며 천천히 게이트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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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을 넘은 그를 반긴 것은 넓디 넓은 황무지였다.
쩍쩍 갈라진 암석과 모래만 흩날리는 대지 위로 불길한 붉은빛 태양이 작열하고 있다. 하늘 위로는 이따금씩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검은색 균열이 생겼다가 아물기를 반복했다.
그야말로 멸망 직전의 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살아있거나 쓸 만한 것이라곤 주위를 둘러봐도 전혀 찾을 수 없다.
세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나 하늘 높이 치솟아 주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적당한 높이까지, 남들이 보기엔 경악할 정도로 높이 뛰어오른 그의 시야에 사방 지평선까지 끝도 없이 뻗어진 황무지가 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넓은 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확실한 건 그를 중심으로 상당한 거리까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쯧.”
아무래도 ‘특별 임무’를 해결하려면 좀 걸릴 듯하다. 결국 일단 한 방향으로 쭉 나아가기로 결심한 그가 다시 땅으로 내려섰다.
크로나드 숲은 부서진 세계였다. 이곳 역시 하나의 완전한 세계가 아닌, 중립형 던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필시 끝이 있을 것이다.
그 한쪽 가장자리를 찾고 그곳을 기점으로 크게 원을 돌며 탐사해보는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어설프게 돌아다니면 자칫 포탈의 위치를 까먹을 수 있음은 물론 이곳을 꼼꼼하게 탐사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한쪽 방향으로 나아가려던 때였다. 몇 걸음 움직이던 그가 문득 멈춰 서며 오른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뭔가가 느껴졌다. 그것도 꽤나 선명하게.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결코 먼 거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무엇인가가 그를 부르고 있다.
세현은 곧바로 미지의 기운이 느껴진 곳을 향해 움직였다. 한 걸음 가볍게 내딛을 때마다 십여 미터를 쭉쭉 미끄러지는 그의 이동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이동했을까, 마침내 그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멀리서 봤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거대한 돌산이 신기루처럼 일렁이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니, 다시 보니 그것은 단순한 돌산이 아니었다.
“성인가……”
너무나 많이 풍화되고 부서져 한 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허나 여기저기 희미하게 남은 흔적을 보건대 그것은 분명 성이었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서 멈춰 서 그것이 원래 어떤 형태였을지를 가늠했다. 완벽하게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추측의 반 정도만 맞는다 해도 엄청나게 웅장했을 것이 분명하다. 외양은 둘째 치고서라도 일단 그 크기부터가 압도적이었다.
세현이 산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니 말 다했다.
크그그그그긍-
그때, 어서 들어오라는 듯 암벽의 일부처럼 보이던 성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성문 두 쪽이 모두 커다란 소리를 내며 제 자리를 이탈했다.
쿠구궁-!
상당한 무게를 가진 거대한 문짝들이 아무렇게나 쓰러지며 굉음과 진동을 만들어냈다.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가라앉길 기다리던 세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외성벽을 지나 내성벽으로, 다시 부서지는 성문을 지나 역시 거대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내성으로 들어섰다.
들어서기 무섭게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장에 태양처럼 빛을 밝히는 광구 하나를 중심으로 별처럼 빛을 품는 그 조명들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장엄했다. 하지만 세현은 그에 정신 팔 틈이 없었다.
– 이방인이군. –
남성의 것처럼 느껴지는 소리가 울렸다.
– 이방인이야. –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들려오는 목소리의 근원지에서, 이 성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존재가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용(龍).
아니, 그보다는 드래곤(dragon).
어둠을 직접 머금은 듯한 검은빛 비늘을 뒤덮은 동체가 보인다. 이 광활한 공간을 전부 매워버릴 듯 펼쳐진 커다란 날개가 보이고, 날렵하지만 강인하게 뻗은 네 다리의 끝으로 금속과 같은 느낌의 발톱이 보인다. 기다란 목의 끝에 머리 위쪽으로는 칠흑 같은 어둠을 머금은 비늘과 상반되는, 더 없이 신성한 느낌의 새하얀 네 쌍의 뿔이 돋아났다.
마지막으로 그를 얼떨떨한 느낌으로 주시하는 눈동자는 더 없이 화려한 광채를 품은 무지갯빛이었다. 길게 찢어진 검은 동공이 아니었다면 엄청난 크기의 보석이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여타 미디어 매체에서 접했던 드래곤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세현은 처음으로 마주하는 신화적인 존재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용이 다시 말했다.
– 작은 존재야,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
“에레도스 시스템이 나를 보내더군.”
– 에레도스. –
덩치에 걸맞는 커다란 크기의 꼬리가 소리도 없이 허공을 가르며 꿈틀했다. 급격하게 펼쳐진 날개에서 조용히 불어온 바람이 세현을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를 마주하는 커다란 눈동자 속으로 짧은 순간에 수십 수백 가지 감정이 스쳤다. 세현으로서는 반도 읽어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정이었다.
– 어째서 지금에서야…… –
분노, 회한, 그리고 체념. 수도 없이 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현이 읽어낸 것은 그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인간과 용이라는 전혀 다른 종족임에도 그것이 가능했다.
눈은 마음의 창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종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격렬한 감정을 겪고 있다는 뜻인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런가. 드디어 때가 되었나. –
문득,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용이 누워있던 자세에서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퍼지는 강렬한 마력의 기파에 세현은 다시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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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샜습니다. -_-ㅋㅋㅋㅋㅋ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꾸욱!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