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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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둥지
커다란 홀에 도착하자 용도를 알 수 없는 갖가지 가구와 기구들이 보인다. 그리고 중앙의 좌대에 자리한 한 존재가 꿈틀 몸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 낯선 방문자여, 나를 괴롭힐 생각이 아니라면 그 빛을 거두어줬으면 좋겠군. –
적의라고는 찾을 수 없는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세현은 전방에 드러난 모습을 살핀 후 순순히 빛을 껐다. 이 어둠 속에서 지내던 존재에게 LED라이트의 빛은 너무 강렬할 것이다.
잠시 후, 아주 희미한 등불 하나가 밝혀졌다. LED라이트를 통해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장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때는 고풍스러웠을 낡은 의복을 걸친 유사인종 하나가 밝게 빛나는 황갈색 눈으로 세현을 살폈다. 키는 150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작다. 눈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크고 귀는 세모꼴이며, 피막으로 이뤄진 날개와 기다란 꼬리가 달렸다. 드러난 몸에는 맨 피부 대신 탁한 느낌의 비늘이 보였다.
잠시 이어지던 침묵을 깬 것은 상대방이었다.
– 레야 님은……? –
세현이 죽인 용의 이름이다.
“죽었다.”
– 아. –
그리고 비통한 흐느낌이 이어진다.
– 아아…… 레야 님께서…… –
어찌나 서글프게 우는지, 곧장 정체를 물으려던 세현이 입을 다물고 잠시 기다려줬을 정도였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지났다.
“너는 누구지?”
– 베이마라 샤크스, 이곳의 지킴이다. –
“생존자인가.”
– 생존자…… 그리 표현해도 틀리지 않겠군. –
비록 세계의 작은 일부라 하나, 처음 이곳에 있던 생명체의 수는 수만을 가뿐히 넘겼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천수를 다하기 전에 그들을 구해냈던 수호룡 레야에 의해 살해당했다.
“다른 생존자가 더 있나?”
– 당연히 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
“이곳에 전부 있는 건가? 용이 죽기 전에 이곳을 내게 언급하던데.”
– 레야 님께서? –
상대의 놀람이 그대로 전해졌다. 등에 달린 날개가 움찔거리는 것이 보인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 따라오시오. 당신께 무엇을 남기려 하셨는지 알 것 같으니. –
잠시지간 비틀거린 그가 앞장서서 어느 한곳을 향해 이동했다. 세현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그 뒤를 따랐다.
홀에서 이어지는 문들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 복도를 지난다. 그리고 두어 개의 문을 더 지나자 처음 자리했던 홀과 비슷한 크기의 방이 나타났다.
그 방의 중앙에 있는 것은 오색찬란한 빛을 머금은 커다랗고 동그란 물체였다.
“알?”
–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레야 님이 스스로 떼어내신 영혼과 힘의 집합체다. 레야 님께서는…… 신성을 버리기 위해 영혼의 가장 약하고 순수한 부분을 갉아내셨지. 우리는 그분이 스스로를 죽이는 것을 가만 지켜볼 수 없었다. –
“막는 건 실패했다고 들었는데.”
– 그랬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온 파편을 모아두는 것뿐이었으니. –
“이렇게 두는 게 의미가 있나?”
– 의미가 있을 것이라, 그리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 –
그는 더 없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빛을 품은 오색빛 용의 알 표면에 손을 올렸다. 신비하게도 그것은 손길에 반응하듯 약간이지만 더 밝은 빛을 뿜어냈다.
– 레야 님이 정말로 스스로를 죽이는 것에 성공했을 때, 이번엔 우리가 그분을 살리기 위해 이것을 준비했는데…… 육체의 생성과 진화를 도울 만한 핵심 재료가 없었다. –
“그러면?”
– 육체와 정신은 별개의 것이 아닌 바, 이것은 완성될 때까지 생명이라 부를 수 없는 힘의 응집체에 불과한 것이지. –
그 후 베이라마 샤크스는 기침을 했다. 늙수그레했던 목소리에 걸맞는 힘없는 기침이었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기를 보니 오래 살지 못할 느낌이다.
“어째서 용이 이곳을 내게 말했을까?”
– 이것을 취하라 하신 게 아닌가, 나는 그리 생각한다. –
본래 수호룡의 것이었을 힘의 응집체.
세현은 알에서 물러서는 베이라마를 지나치며 그 알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한차례 일렁이는 빛의 파문과 함께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품고 있는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것을 취할 수 있을까. 생명체가 아니라고 했으니 무한의 주머니에 수납할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동시에, 에레도스를 거부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의 영혼과 힘을 모아둔 이것이 에레도스 시스템에 속한 무한의 주머니 안에 들어가질까 의문이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 세현은 용을 죽이고 얻었던 보상 주머니를 꺼내들어 내부를 살폈다. 그의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 두 가지 대단한 아이템과 보라색 룬을 포함한 각종 다른 색의 룬들이 보였으나, 예상과 달리 아쉽게도 이 알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는 일단 알에 대해서 관심을 돌리며 베이마라에게 말했다.
“다른 생존자들이 있다고 했지.”
– 그래. –
“수호룡은 죽었다. 이제 에레도스를 받아들일 수 있나?”
– 안 그래도 지금 에레도스의 메시지가 보이는 중이다. 주민이 될 것인지 묻는 메시지로군. –
“사용자는 아니고?”
– 그런 내용은 없다. –
“흠.”
세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른 생존자들을 모아줬으면 하는데. 가능한 전부.”
– 이주를 권할 생각이로군. –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물론 간단한 면접을 통과해야겠지만.”
어쩌면 용이 그를 이곳으로 보낸 이유는 오로지 이 생존자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용의 알을 만드는 것을 비밀리에 진행했다면 그는 이것의 존재조차 몰랐을지도 모르니까.
베이마라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홀로 남은 세현은 다시금 알을 닮은 그 힘의 결정체를 바라보며 감상에 빠졌다.
영혼을 갉아내어 힘과 권능을 버렸다. 비늘 하나하나에 저주를 새겨 육체를 약화시켰다. 만약 그러기 전의 멀쩡했던 수호룡을 만났다면 그는 얼마나 강했을까. 지금처럼 이길 수 있었을까?
아니, 애초에 멀쩡했더라면 광기에 빠질 일도 없었을 테니, 세현이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 이상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설령 모종의 이유로 싸움이 일어났더라도 도주하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손심은 상하겠지만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신성을 가졌다면 반쯤은 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 그가 상대했던 크로나드가 신의 아주 작은 파편에 불과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멀쩡한 수호룡 레야는 감히 맞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강했을 확률이 높다.
인간인 그도 신성을 얻을 수 있을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든다.
무림에서의 우화등선이 바로 신성을 얻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각종 신공과 문파를 창시했다 전해지는 선인(仙人)들은 신성을 얻은 존재들임이 분명하다. 무림 어딘가에는 아직도 속세를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선인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무림이 에레도스에 침식당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세현은 그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좀비들은 채 활개치기도 전에 정리되어버릴 것이다. 필드형 던전을 이룰 만한 강력한 괴물들은 재수가 없으면 자리를 잡기도 전에 고수를 만나 도륙당할 것이다. 설령 무사히 자리를 잡아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제 명예를 드높이는 것에 혈안이 된 고수들 전부를 막아낼 수는 없으리라.
적지 않은 혼란이 일어나겠지만 무림은 어렵지 않게 혼란을 틀어막고 멀쩡히 돌아갈 것이다.
그것은 보라색 등급의 괴물이 나타나도 마찬가지다. 몇 마리가 동시에 연속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남은 삼신(三神) 중 둘과 그 밑의 오존(五尊)들이 나선다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무림은 대체 어디에 있는 세계일까. 그곳은 아직 에레도스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까.
만약 닿았다면 무사히 시련을 견뎌내고 더 수준 높은 세계로 발돋음 했을까? 아니면 나름의 의지를 가진 에레도스가 작정하고 그 세계를 부수기 위해 더 많고 강력한 전력을 투입해서 기어코 멸망시켜버렸을까?
궁금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소식 정도는 듣고 싶었다.
끔찍했던 기억들이 대다수지만 행복했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볍지 않은 인연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은 지금의 세현을 만든 세상이었다.
그곳에서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세현이 있다. 그는 덕분에 지금도 살아남아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레벨과 능력치, 칭호와 스킬, 그리고 각종 아이템을 통해서. 게다가 이번에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여태까지 획득한 아이템들을 상기하던 그는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는 곧장 무한의 주머니를 열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케르시타 여왕을 죽이고 얻었던 물건이다.
[진화의 정수(전설적): 복용자를 한 차원 높은 종족으로 진화시키는 정수. 단독으로 사용해도 좋으나, 진화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다른 물건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또는 생명체가 아닌 것에 사용하여 진화와 관련된 성능을 부여할 수도 있다.]우우웅-
투명한 수정구 같은 진화의 정수가 갑작스레 공명하듯 부르르 떨렸다. 세현의 앞에 자리한 용의 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투명하던 진화의 정수가 서로 주파수를 맞추듯 공명하며 오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이렇게 반응을 보이니 놀라우면서 약간 당황스럽다. 순간 진화의 정수를 다시 주머니에 넣어 이 과정을 멈춰볼까 했으나,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계속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몇 초가 더 지나자 진화의 정수는 세현의 손바닥에서 떠올라 천천히 알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표면에 닿기 무섭게 형체를 잃으며 스며들었다.
알의 진동이 한층 더 거세진다. 표면을 휘돌던 오색빛 기운들이 빠르게 요동치더니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뭔가 잘못되어가는 느낌이 아닌, 힘이 안쪽으로 집중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쩌적-
그리고 선명한 파열음과 함께 표면에 금이 갔다. 정말로 알이 부화하는 듯한 장면이다. 몇 차례 거세게 흔들리던 알은 마침내 몇 조각으로 완전히 부서졌다.
안쪽에서 등장한 것은 명백한 생명체였다. 그리고 세현이 상상하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
– 이건…… –
얼마 후, 다른 생존자를 데려온 베이마라는 빛을 잃고 부서진 알의 파편을 보며 속을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냈다. 아마 세현이 그에 담긴 힘을 취해버렸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와 함께 온 생존자의 수는 고작 하나로, 여인의 상체에 거미의 하체를 가진 괴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지구의 신화에 나오는 아라크네가 이러할까 싶다. 상체의 여인은 화려한 빛의 금발과 하얗고 깨끗한 피부,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췄다. 뾰족하게 자라난 귀까지 더해지니 흡사 벡스 종족을 보는 듯하다. 차려입은 진주빛 의복은 그 아름다운 외모와 어우러져 고아한 느낌을 풍겼다.
허나 하체의 검은색 거미 몸통과 네 쌍의 다리가 더해지니 아주 기괴한 느낌으로 돌변했다. 세현의 시선을 마주한 그녀는 상체를 우아하게 숙이며 인사했다.
– 안테아 세실 테미도스아입니다. 편하게 안테아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
“……한세현이다. 종족을 뭐라고 부르지?”
– 데뷰미아르라고 합니다. 제 외모가 특이하게 느껴지시는 모양이군요. –
“조금.”
사실 조금이 아니지만, 어쨌든 지구의 아라크네라는 신화 속 존재가 그녀를 받아들이는 것에 꽤 도움이 됐다.
서로 대충 인사가 끝난 듯하자 베이마라가 물었다.
– 알은 어떻게 한 거지? –
“안 그래도 그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세현이 서 있던 자리에서 옆으로 한 걸음 이동했다. 그러자 여태껏 그의 등 뒤에 가려져 있던 존재의 모습이 드러났다.
============================ 작품 후기 ============================
의도치 않았던 절단술을 다시 사용하게 됐습니다. -_-ㅋㅋ;;
어떤 독자분의 코멘처럼 용 딸내미일 것인가? 혹은 아들내미? 아니면 다 큰 여인 혹은 남정네? 그것도 아니면 그냥 새끼용!?
오늘도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