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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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 기술? –
악마가 다시금 웃었다.
– 내 기술이 그대보다 부족하다 말하고 싶은 건가? –
“그래. 마력을 이용한 기술은 몰라도, 순수한 육체를 사용하는 전투술은 한참이나.”
– 자만이 지나치군. 아, 그럴 만도 하지. 그 나약한 육신으로 악마족인 나를 압도할 정도의 힘을 보여주었으니…… 그래, 인정해야겠군. 그대는 정상에 섰다. 자부심을 갖는 게 당연해. –
별안간 악마의 얼굴에서 표정이 전부 사라졌다
– 하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야! –
쾅!
악마가 땅을 박차고 돌진한다. 한 바퀴 몸을 휘둘리며 뻗어지는 날개와 다리의 균형이 날카롭고 또한 절묘하다.
세현은 그 공격에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청월이 달려들던 악마의 신체에 접붙어 순식간에 균형을 빼앗는다. 동시에 반대로 돌며 회전력을 온전히 담아 휘둘러진 공격이 다급히 들어올린 악마의 팔등에 틀어박혔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이화접목, 이후 가장 빠르고 치명적인 루트를 따라 뻗어낸 연격.
바닥을 구르다 땅을 박차고 튀어오르는 악마에게 어느새 접근한 그가 연속으로 검을 뻗었다. 상대를 몰아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격성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은 전략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숨 한 번 내쉴 사이에 수십 번의 공격이 가해지며 검날이 번뜩였다. 정신없이 물러서는 악마가 때때로 빈틈을 노리고 반격을 시도했으나 그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 크흐…! –
다섯 번째로 검격을 허용한 악마가 신음성과 함께 황급히 물러난다. 손해를 감수하고 휘두른 날개에 또 다시 검상을 입었으나, 가까스로 세현을 떨쳐내고 거리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걸레짝처럼 찢겨졌던 팔뚝의 상처가 하얀 거품을 동반하며 눈에 띄게 아물어가는 것이 보인다.
“이거 참……”
재생력이 예상 이상이다. 인간이었다면 진즉에 승부가 났을 텐데.
세현은 생각보다 싸움이 길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이곳이 악마의 심상세계라서 아이템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그런 생각과 함께 이번에는 세현이 선공을 시도했다.
내공을 사용할 수 없지만 구궁보의 묘리까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악마는 두 눈 멀쩡히 뜨고서도 세현이 어디로 달려드는지 판단하지 못하고 일단 물러섰다. 허나 예상보다 한 박자 빠르게 달려든 검날에 몸을 던져 바닥을 구르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 캬아아악! –
결국은 정신력 싸움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악마는 투지를 꺾지 않고 공격을 가했다. 고통은 느껴지지만 치명적인 상처만 입지 않으면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는 자신의 신체를 믿을 수밖에 없다.
수백 수천의 공방이 오가고, 그만큼 악마가 흘린 피가 대지에 흩뿌려졌다. 싸움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 결국엔! 내가! 승리할 것이다! –
쾅!
이제는 흡사 주문처럼 외치며 바닥을 내리찍은 발길질에 커다란 진동이 울린다. 커다란 동작에서 나오는 빈틈은 두 날개를 위협적으로 휘둘러 커버했다.
허나 바람을 가르며 흉포한 소리를 내는 한 쌍의 날개 끝을 차가운 검날이 절묘하게 긋고 지나가며 기다란 자상을 남긴다.
공격이 깊었다면 날개를 휘두르는 힘에 휩쓸려버렸을지도 모르고, 너무 얕았다면 공격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타격이 적었을 터.
허나 세현의 공격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발악적으로 날아드는 반격에는 기적에 가까운 이화접목과 악마조차 예상 못한 동작으로 모조리 회피했다.
도무지 파고들 구석이 없다.
상대는 분명히 나약한 인간에 불과할진데, 육체의 힘과 속도와 재생력 같은 부분에도 모두 악마 자신이 유리할진데 치고 나갈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여태껏 헛점이라 생각한 부분에 맹공을 가했으나 전부 막히고 되려 피해를 입었다.
– 대체 어떻게! –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드는 세현의 검에 팔다리를 휘두른다. 틀림없이 맞추기만 하면 최소 중상을 입힐 수 있는, 그렇다고 그저 힘과 속도만 강한 무식한 공격이 아닌 나름의 묘리를 살린 최선의 공격.
하지만 이번에도 흘려내지고 막혀버린다.
검이 자석처럼 달라붙어 내지르는 주먹의 방향을 틀고 회전과 함께 날아든 발이 복부를 강타하며 균형을 빼앗는다. 쓰러져 바닥을 구르는 악마의 목과 눈 같은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고 검날이 번뜩인다. 간신히 피해냈으나 전투 시작부터 악마는 계속해서 물러서기만 했다.
몇 시간이 넘는 전투가 이어졌다.
악마는 이제 경악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투지를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진득한 살기를 흩뿌리며 가공할 흉성을 드러냈다.
벌레청소부라 불리는 하찮고 작은 악마였던 그는, 수도 없이 많은 고비를 넘기며 지금의 자리에 섰다. 이보다 더 격하고 오래 이어졌던 싸움도 수도 없이 해봤다.
여기서 마음이 꺾일 정도였다면 이미 살아남지도 못했다.
– 한세현-!! –
부우웅-!
어쩌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적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날개를 휘두른다.
날아드는 검날에 팔뚝을 내어주며 채찍처럼 다리를 휘두르나 이미 그 자리에 세현은 없다. 어느새 측면으로 파고들어 내지른 발길질에 재차 무릎에 타격을 입으며 쓰러질 뻔했다.
꼬리와 반대편 날개까지 활용해 몸을 급속히 회전시켜 간신히 일어섰으나, 귀신처럼 달라붙으며 날아드는 칼날에 양쪽 팔이 걸레짝처럼 찢기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 그래! 내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마!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긴다! –
“말로는 무엇을 못할까.”
스컥!
차가운 절삭음과 동시에 다시 한 번 피가 터졌다. 붉은기가 돌긴 하지만 검은색에 더 가까운 진득한 피가 황량하게 메마른 대지에 흩뿌려져 스며든다.
여태까지 흘린 피만 모아도 연못 하나 정도는 우습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세현은 좀처럼 악마가 쓰러지지 않음에도 전혀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는 순수한 육체능력만으로도 삼일 밤낮을 싸울 수 있는 강철 같은 체력의 소유자다. 제 아무리 악마의 재생력이 뛰어나도 썰고 또 썰다보면 마침내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예상하던 순조로운 상황은 어느 순간 급격하게 돌변했다.
돌연 악마의 몸이 비틀리며 끔찍한 비명이 터졌다. 동시에 세계 전체가 출렁이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세현을 집어삼켜 추가적인 공격을 가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 나는…! 나는 승리할 것이다! 이렇게 패배할 수는 없어!! –
끔찍할 정도의 승리에 대한 열망, 동시에 아무리 싸우고 싸워도 답이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한, 패배해 죽는다는 것에 대한 선명하고 뿌리깊은 두려움.
그것이 위기의 상황에서 악마에게 회광반조(回光返照) 같은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죽고 싶어 안달을 하는군.”
– 크흐흐, 어차피 그대를 죽이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데, 무슨 상관인가? –
악마의 모습이 명백히 변했다.
인간의 피부가죽을 벗긴 듯했던 몸에 어둠으로 이뤄진 듯한 갑각이 뒤덮어지고 머리에 자라난 뿔이 한층 더 크고 예리해진다. 전신의 근육이 팽창하고 골격이 늘어나며 체구 역시 커진다. 날개의 끝부분에 마치 칼날 같은 예기가 흐르며 빛을 번뜩였다.
동시에 황량하기 짝이 없는 세계의 끝부분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하늘에 점점이 검은 구멍이 뚫리며 부스러기처럼 무너지고 대지가 갈라지며 시커먼 어둠이 드러난다.
제 스스로의 영성을 깎아내면서까지 힘을 불린다. 세현은 점점 더 강해지는 악마의 모습에 혀를 찼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정신세계를 벗어나버렸다.
– 뭣…?! –
너무 급했던 나머지 자신을 깎아가며 정면대결을 펼치려던 악마의 경악성과 함께, 그들을 감싸던 세계가 급속도로 붕괴하며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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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급해도 자살은 하지 말았어야지.”
현실로 돌아오기 무섭게 비웃음 섞인 일침을 날린 세현이 붙잡고 있던 악마의 머리통을 확 밀쳐내며 청월을 휘둘렀다.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린 악마가 급히 방어를 시도했으나, 이전과는 달리 주변을 감싸고 휘몰아치던 어둠이 저들끼리 부딪히며 힘을 갉아먹었다.
– 안… 안 돼! –
콰앙!
어둠으로 흩어진 놈의 몸체가 한참이나 뒤편에서 제 모습을 찾는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육체에 타격을 입은 모습이 확연했다.
– 캬아악…! –
쾅! 콰과광!
굉음과 함께 막대한 양의 마력이 사납게 울부짖는다.
어둠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그 틈새로 쉬지 않고 붉은빛이 번뜩였다. 한순간에 수십이 넘는 섬광이 쏘아지며 어느새 밤이 된 어두운 하늘을 가로지르고 대지에 직격하며 가공할 폭발을 일으킨다.
그 재해에 가까운 파괴에는 세현이 휘두르는 자색빛 의형기 역시 한 몫 하고 있었다. 악마가 휘두르는 마력과 충돌해 부서져 튕겨나가는 파편만으로도 일대의 지형을 통째로 갈아엎어졌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신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압도적인 전투.
하지만 그 싸움은 점점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 악마는 그 말 많던 입에서 그저 발악적인 비명만 내지르고 있었다. 휘두르는 마력은 한층 더 흉포해졌으나 빈틈은 그만큼 커졌고 그에 따라 세현의 일격을 얻어맞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자신의 영격을 스스로 해친 순간부터 놈에게 승산은 없었다. 타격을 최소화하던 영변불사의 권능에서부터 놈이 가진 모든 힘들이 급속도로 깎여나갔다.
– 제발 죽어라! 죽어! –
콰앙!
다시 한 번 악마가 가진 필살의 기술이 펼쳐진다. 벨 그로 키벨라, 허나 위력은 이전에 펼쳤던 것과 같은 기술이라 생각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세현은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그것을 받아냈다.
자색빛 휘광을 두른 예리한 칼날이 빛살처럼 쏘아진 붉은빛 섬광을 가르고 그대로 전진한다. 잔상조차 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나아가 어둠까지 가르고, 그 안의 힘껏 뻗은 두 팔을 절단낸 후 가슴팍까지 관통해 뒤로 빠져나왔다.
– 캬아아아아아…!! –
검은색에 가까운 진득한 피가 폭포수처럼 뿜어졌다. 비틀거리는 악마의 육신에 다시 한 번 검광이 번뜩이며 수직으로 가르고, 어둠으로 흩어져 다른 장소에서 재생되는 육신에 어느새 날아든 청월의 검날이 다시금 빛을 뿜었다.
악마는 이제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르지 못했다.
눈 한 번 깜빡일 사이에 수십 번이 넘는 참격을 당하며 육신이 산산히 흩어진다. 타차원에 걸쳐졌던 실체에 유리처럼 금이 가는 소리가 귓가를 천둥처럼 울린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의 통제권이 손아귀에 쥔 고운 모래알처럼 덧없이 흘러나간다.
– 나는…! 이대로 죽을 수 없어! –
캬아아아아아아아악!!
사방으로 휘두르는 손에 어둠이 흩날리며 무수히 많은 폭발을 일으켰다. 어떻게든 달려드는 세현을 떨쳐내기 위한 무모한 공격, 그 탓에 한순간 이목이 가려진 틈을 노린 세현이 눈을 번뜩이며 힘차게 검을 치켜들었다.
스킬, 전신의 참격.
거대한 초승달 형태의 은빛 칼날이 빛의 속도로 대기를 가르고 악마를 직격한다. 실로 경악스러운 위력의 기운이 권능으로 구축된 차원의 장벽마저 무자비하게 베어버리고,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던 악마의 실체를 산산이 파괴시켰다.
비명은 모든 것이 베어지며 절단나는 소름끼치도록 선명한 소리에 묻혀버렸다.
어느새 밝아오는 새벽녘 하늘을 배경으로, 최후의 발악처럼 어둠을 줄줄이 뿜어내던 악마의 신체가 급속도로 무너지며 흩날렸다.
채 가라앉지 않은 파괴의 여파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희미해진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경쾌한 소리가 전방을 예의 주시하던 세현의 귓가를 울렸다.
– 칭호 ‘악마 살해자’를 획득했습니다. –
– 칭호 ‘세계의 수호자’를 획득했습니다. –
– 상점에서 취급하는 품목이 늘어납니다. –
============================ 작품 후기 ============================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잊지 말고 부탁드립니다. (__) 다음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