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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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군주
박상영의 보고는 지체없이 세현에게 전해졌다. 왕국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영주의 보고다. 당연하게도 세현과 이어지는 핫라인이 있었다.
“남쪽 바다 건너라……”
– 가져온 머리를 부숴버린 바람에 자세한 확인은 따로 못했습니다만, 일단 광주 쪽으로 조사대를 파견했습니다. –
“그래. 광주 쪽이라면 제주도에 그 남색 등급 괴물이 손을 뻗었을지도 모르겠군.”
더 가까운 일본을 놔두고서 굳이 바다를 건너 제주도를 먼저 공격한 이유는 뭘까?
만약 놈들이 아무 피해 없이 자유롭게 바다를 건널 수 있다면, 가령 해상 괴물들이 이미 죽어있는 언데드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던가 하는 이유로, 놈들은 섬을 근거지로 삼고 한반도에 일방적 공격을 가할 수 있다. 반대로 이쪽에서 제주도로 가려면 꽤나 위험할 것이고.
바다에 대한 자세한 조사는 예전에 한 적 있다.
지상에 여러 괴물들이 나타났듯 바다에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해상이라는 특성상 덩치가 큰 괴수급 존재들이 더 많다. 제주도까지 가는 바닷길이 그리 멀지는 않으니 대단한 놈들이 서식하진 않겠지만 일단 물 위라는 환경부터가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다.
“흐음.”
최근 마력저장기를 통한 개발에 집중하고 있던 차라 어쩐지 남색 등급 괴물의 위협이 귀찮게 느껴진다. 그냥 혼자 가서 전부 쓸어버릴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다. 남색 등급은 원한다고 찾아낼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그런 존재와의 전투경험은 피해야 할 게 아니라 룬을 지불하고서라도 사와야 한다. 세현은 정말로 이번에는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고선 개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오직 지휘만 할 것이다. 그것도 보조적으로만.
“서승태라고 했지?”
– 예. 어떻게 할까요? –
“데려와. 흑마법사라니 조금 궁금하군.”
문득 아직도 그의 아공간 속에 잠자고 있을 아크리치 마젤란이 떠올랐다. 주인을 만나지 못해 반지에 잠들어 있을 그 강대하고 사악한 존재가.
아크리치 정도면 남색 등급은 넘지 않을까? 마침 규슈에 있는 놈도 남색 등급에 언데드를 다룬다고 하는데, 만약 마젤란과 놈이 싸우게 되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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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류한을 찾아왔을까.
서승태는 이미 수차례 떠올렸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뻔한 답이 있는데도 계속해서 떠오른다. 아마 그의 인생에서 이런 식의 도움을 요청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인류 최악의 재앙이라 부를 수 있는 에레도스 사태 때도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 주변 위험을 정리했다. 언제나 그랬듯, 그런 식으로 힘을 보여주자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집단도 이뤘다. 결속이 불안정하긴 하나 그가 건재하는 이상 무너질 일 없는 집단이다.
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그들만으로 극복하기엔 너무 큰 위험이었다.
남쪽에서 처음 그것들을 발견했을 때, 그것들의 정신을 조사해 그 위험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느꼈을 때 그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경험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남들과는 달랐던 그에게 정말로 드문 경험이었다.
선명한 죽음을 느꼈다. 흑마법사로 전직했기에 더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면 어느날 몰려온 그 죽음들에 의해 그대로 휩쓸려 사라졌을 거다.
방법을 강구하다 떠오른 것이 류한이었다. 거제에 살면서도 그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수집하고 있었기에 모르지 않았다.
과연 알려진 것만큼 강할까? 지배세력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사실을 부풀릴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류한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위험을 최대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승산이 있다.
그래서 국왕을 만나기를 원했다. 누군가를 한 번 거쳐서 올라간 정보는 그 선명도가 아무래도 낮기 마련이다. 자칫 적을 과소평가했다간 한반도 전체가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 자연히 그 역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동시에 겸사겸사 개인적인 호기심도 해결하고 싶었다. 소문이 무성한 한세현은 실제로 어떤 사람일까.
그런 잡념과 함께 기다리길 두 시간 정도, 그는 마침내 다시금 박상영을 볼 수 있었다.
전과는 달리 성문을 열고 나온 박상영은 멀리서 그에게 다가오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서승태는 당연히 거부하지 않았다.
“그 꺼림칙한 기운은 좀 거두면 안 되겠나? 설마 그 상태로 왕을 뵈러 갈 생각은 아니겠지?”
“알겠습니다.”
그의 몸을 둘러싸던 은은한 흑마력과 영체가 빨려들듯 사라진다. 위험하고 이질적이던 느낌이 한결 가시자, 박상영은 만족한 눈치로 그를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간단한 절차를 거쳐 곧장 순간이동 게이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당부했던 말들 잊지 말고 예의를 지키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어쩐지 심각하지 않은 태도로 평온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불안하다. 하지만 안 보내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박상영은 그가 게이트를 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홀로 게이트를 넘은 서승태는 곧 드러난 류한 본성의 1층 홀을 둘러보며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거렸다. 과연 이 정도인가, 하는 평가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다른 이들이 그 화려함과 놀라는 것과는 상당히 대비적인 모습.
“서승태 씨?”
“네.”
대기하던 남자 류한 전투원 한 명이 안내역으로 붙었다.
“따라오십시오.”
둘은 홀을 지나쳐 계단으로 향했다. 안내된 곳은 가장 최상층에 있는 세현의 방이었다. 다른 곳에서 만날 수도 있었으나 세현이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덕이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서승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의례적인 감사를 표한 후 노크를 했다. 그리고 안에서 들리는 허락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승태는 세현을 처음 봤다. 막연히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자신과 비교해도 몇 살 차이나지 않을 것 같은 젊은 외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를 보자 했다고?”
“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서승태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잠시 그를 빤히 쳐다보던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은?”
“박상영 길드장에겐 보여주지 않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꺼내도 괜찮겠습니까?”
“혹시 이번에도 머리통인가? 내 방이 지저분해지는 건 원치 않는데.”
“다행히 영혼체인 망령이라 이곳이 더러워질 일은 없을 겁니다. 남쪽의 위협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만, 사념에 정신이 오염될 수도 있습니다. 직접 보는 것을 원치 않으시면 다른 사람을 부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흑마법사라면 특히 좋겠군요.”
“아니, 괜찮다. 내가 망령 하나에 정신이 오염될 수준은 아니거든.”
세현이 얼른 꺼내보라는 것처럼 손을 내밀자, 서승태가 허리춤의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언뜻 거무튀튀한 돌덩이처럼 보이는 그것은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꿈틀거리며 은은한 사기를 뿜었다.
“그런 식으로 망령을 다룰 수도 있나?”
“억압해서 뭉쳐놓으면 됩니다. 개인적으로 망령석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미 죽은 것이라 아공간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지요. 이 망령은 제주도에서 건너온 놈입니다. 그곳의 대략적인 상태를 직접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이라면 좋은 정보로군. 일단 한 번 보자고.”
아무런 마력의 유동도 느끼지 못했는데 망령석이 허공으로 떠올라 세현에게 날아간다. 예상치 못한 초현상에 서승태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망령석을 손에 쥔 세현이 물었다.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마력을 흘려넣으시면 반응할 겁니다.”
“잠깐.”
세현은 순순히 시키는대로 하는 대신그 거무튀튀한 망령석을 자세히 살폈다.
“일종의 마법진 같은데. 네가 조치를 취해놓은 건가? 이것의 기억을 볼 수 있도록.”
“…네. 맞습니다. 그걸 알아보신 겁니까?”
“누구에게 배운 기술이지?”
고개를 든 세현과 서승태의 눈이 마주친다. 세현의 눈 안쪽에서 찰나간 황금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서승태가 비틀거렸다.
펼쳐놨던 정신방벽이 무자비하게 박살났다. 헉, 소리를 낸 그가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만.”
하지만 그 순간 들린 짧은 말에 끌어올리던 마력이 산산이 흩어진다. 자신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은 서승태가 약간 멍한 표정으로 세현을 올려다봤다.
“지금…… 대체 어떻게?”
“마법을 누구에게 배웠지?”
“……제 마법은.”
“아, 놀랍게도 독학이군. 그냥 흑마법사가아니라 특화직업 사령술사인가.”
“지금 제 생각을 읽으시는 겁니까?”
“그래. 직업 특성상 독학은 힘들었을 텐데…… 잠깐.”
서승태가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미 그 짧은 시간 반사적으로 떠올린 여러 정보들이 있었다.
“흐음.”
무릎 꿇은 채 고개 숙인 서승태를 쳐다보던 세현이 짧게 웃었다.
“그래, 딱히 네가 틀리다곤 생각지 않는다. 차라리 실험용으로 쓰이는 게 나은 인간들도 있지. 그게 설령 죽어서 영혼이 착취당하고 시체마저 온전치 않게 되는 일일지라도.”
“……”
“총 몇 명인가?”
“……거짓말은 의미가 없겠지요?”
대답은 없었으나 긍정이나 다름없다. 서승태는 세현을 만나기로 한 것을 후회했다.
설마 그냥 시선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정신방벽을 깨부수고 기억을 뽑아내는 괴물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독심술에 대한 소문을 듣고서 나름대로 준비했는데 전부 허사였다.
“죽이실 겁니까?”
“너를? 내가 왜?”
“류한에 대한 정보는 꾸준하게 모으고 있었습니다. 행보를 보면 악한 자들에 대해 용서가 없더군요.”
“정확히는 질서를 교란하는 자들이지.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은 각자마다 상황마다 다른 것 아닌가? 그러니 일단 대답해라. 몇 명이지?”
“천 명 정도 됩니다.”
“많이도 죽였군. 나를 보도록.”
계속해서 시선을 피하던 고심하던 서승태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세현을 쳐다봤다. 영혼까지 관통해 살피는 듯한 서늘한 느낌이 목덜미를 훑는다.
“아무나 마구잡이로 죽였나?”
“그건 아닙니다. 어차피 죽여야 할 자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했습니다. 마구잡이로 죽이는 건 주변 사람들에게 공포를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제게 이롭지 않으니까요. 요즘 같은 세상은 혼자서 아무리 강해도 살아남기 힘듭니다.”
“철저히 계산적이군. 그런데 사실이야…… 공포를 느껴본 적 있나?”
“있습니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공포스러웠던 적은?”
“그런 적은 없습니다.”
“너는 공포가 뭔지 모르는구나.”
“제가 말입니까?”
세현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만나보길 잘했어. 네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서승태가 대답도 하기 전 그의 다양한 기억들이 세현에게 흘러들어갔다. 짧은 단어와 이미지 같은 추상적인 형태로, 허나 그것들을 조합해내는 건 이제 익숙한 일이었다.
“일종의 사이코패스인가.”
“저는 사이코패스가 아닙니다. 의학적으로 정의된 사이코패스와 제 증상은 상당 부분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사실 나는 사이코패스가 의학적으로 정확히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는 잘 몰라서. 어쨌든 너는 내가 아는 특정 부류와 꽤 많이 비슷해. 아니, 거의 똑같아.”
“어떤 부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무림에서도 그런 부류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죄책감이란 것이 없는 이들, 그러면서 결코 어리석지는 않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힘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기르는데 결코 게으르지 않은 이들.
그들은 천살성이라 불렸다. 비율은 소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천살성으로 의심되면 추살방이 붙어 죽기 일쑤였다. 장차 마두(魔頭)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도 그럴 것이,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귀 중 하나가 바로 천살성이었다. 혈마 독고진천, 혼자서 무림인 만 명을 죽이고 잠적한 대마두의 이름이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도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__)
연재가 꾸준치 못하지만 그래도 끊어지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리저리 개인적인 부산스러운 일이 좀 많네요. 시간이 없는 건 아닌데 집중이 잘 안 되서 저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최대한 추슬러보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