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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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략
시동어와 함께 묵직한 마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중국의 북서쪽 구석, 울퉁불퉁하고 황무지에 가까운 척박한 땅에서 간신히 목숨만 유지하던 악마추종자들, 그들이 악착같이 그러모았던 제물들이 제각각 섬뜩한 빛을 뿜어내며 불타오르듯 사라져갔다.
그것들에게서 뻗어나온 마력은 허공에서 휘몰아치다 의식을 진행하는 자의 손에 들린 스태프의 움직임에 동조하여 한곳으로 모였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타원형을 그리며 회전하는 어둠이 안쪽으로 퍼져나가며 허공에 구멍을 뚫는다. 동시에, 끔찍한 존재감이 느껴지고 저를 유혹하는 냄새에 끌린 악마가 맹수의 것 같은 주둥이를 들이밀며 나타났다.
콰드드득-!
아직은 비좁은 게이트가 주변 공간을 푸른빛으로 일그러트리며 간신히 부서지지 않고 버텼다. 그러나 의식을 돕던 다른 악마추종자들은 그 게이트 너머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땀을 비처럼 쏟아내며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오로지 혼자의 역량으로, 소환하는 마수형 악마의 발버둥을 버텨내며 검은 후드 쓴 남자가 스태프를 내밀었다. 동시에 다른 손이 움직여 붉은빛 구슬 같은 기운을 머금고 허공을 찢듯 마법진을 그린다.
점점 넓어지는 게이트 통로 너머에서, 이제는 눈마저 얼핏 드러나는 악마가 심해처럼 두려운 느낌의 남색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이를 드러냈다.
위협하는 것보다는 웃음 쪽에 가까운 느낌, 제정신을 유지하며 그를 파악한 것은 검은 로브의 사내 말고는 아무도 없다.
크크크크크-
그 희미한 유쾌함을 뒤덮는 광기와 살육의 갈망이 장내를 뒤덮는다. 차원문은 한층 가속도가 붙어 덩치를 불려나가는 중이었고, 늑대 악마는 제 포악함을 감출 생각도 없이 당장이라도 게이트를 뛰쳐나가기 위해 더더욱 힘을 주며 몸을 들이미는 중이었다.
악마추종자들이 소환하려던 악마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그들의 목적은 각자 세부적인 차이가 있겠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만큼은 일치하는 바, 이렇게 짐승의 형태를 취하고 협상조차 시도하지 못할 것 같은 흉포한 악마는 절대 소환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의식을 집행하는 검은 로브의 사내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는 이들의 일원이 아니었으니까.
이제 거의 다 빠져나올 준비를 마친 늑대형 악마가 맹수의 그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의사를 전한다. 그 직후, 마침내 적당한 크기가 된 차원문에서 거칠게 튀어나온 놈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로브 사내의 손이 올라갔다.
[옭아매고, 구속하여, 고정하라.]선명한 주문과 함께 붉은빛이 폭발한다. 그물망처럼 퍼진 수없이 많은 마법문자들이 돌진하던 늑대형 악마를 휘감아 멈춰 세웠다.
주변 둘러싼 산맥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어마어마한 포효가 터진다.
허나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찢어발길듯 발버둥치는 놈은 놀랍게도 그 마법적 그물망을 떨쳐내지 못했다.
어둠이 날뛰고 그 사이에서 악마의 남색빛 눈동자가 불타올랐다. 다시 튀어나온 포효가 주변 대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게 만들고 어둠이 땅을 물들이며 세상을 부정으로 태운다. 그러나 그럴 수록 붉은빛 문자들로 이뤄진 그물망은 점점 힘을 더해가며 악마의 신체를 무자비하게 틀어쥐었다.
[그, 그만…!]악마가 처음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외치자, 조여들던 마법이 우뚝 멈췄다. 늑대형 악마는 자신을 이 꼴로 만든 작은 인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인간의 후드 안쪽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란듯이 아주 잠시간, 하나의 보랏빛 눈동자가 나타나 악마를 주시했다.
“이름.”
크르릉-
강철이라도 두부처럼 으깨버릴 이가 드러나며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으나, 이미 독 안에 든 쥐요 그물에 든 고기 신세다.
이 소환의식 전체가 그를 효과적으로 옭아매기 위한 함정이었던 거다.
[카발 라이라.] “카발 라이라, 선택권을 주마.”지금 당장 죽을 테냐, 아니면 내게 복종할 테냐.
위를 향해 움직이는 스태프와 동시에 잿빛 늑대를 구속한 붉은빛 마법진이 금방이라도 폭발할듯 거세게 진동했다. 악마가 고통을 느끼며 다시금 반항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신체 곳곳이 갈라지며 상당한 양의 피를 흘렸을 뿐이었다.
[그만! 복종하마! 복종하겠다] “그래야지.”성공적으로 남색 등급 악마의 의지를 꺾어버린 검은 로브 사내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것 같은 형태의 쇠말뚝.
“그럼 이제, 신뢰를 다질 차례로군.”
그가 움직이자 암흑이 잔상처럼 뒤따르며 악마가 펼쳐놓았던 어둠까지 한차례 파도쳤다. 내심 기회를 노리던 악마는 일순간 느껴진 암담함에 꼬리를 말았다.
“곱게 있어라. 네가 네 번째라는 것을 명심하고.”
늑대형 악마는 그제야, 자신의 뒤편에서 끔찍한 몰골로 산산히 뜯겨나간 정체불명의 고깃덩이들의 존재를 알아챘다. 그것이 한때 무엇이었는지도 분명하게.
응해선 안 될 소환이었으나, 이미 모든 것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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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바노프를 비롯한 일행은 말을 잊은 채로 전방에 펼쳐진 광경을 주시하고 았었다.
그들이 자리한 곳은 바닷가가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암벽지대의 중간, 적당한 지형에 레야의 마법이 어우러지자 거의 완벽하게 몸을 감출 수 있는 훌륭한 은폐지점으로 돌변했다.
그곳에서 사흘을 넘게 기다린 결과, 마침내 원하던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바다 위를 날아온, 어지간한 대형 경기장보다 큰 유려한 형태의 ‘우주선’이 해안가의 평평한 지대에 사뿐히 안착하고,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출입구 안쪽에서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인간은 거의 전부가 흑인이었고 일전에 공장에서 목격했던 로봇 같은 골렘들 역시 상당한 수가 있었다.
하선한 그들은 지휘관들로 보이는 인간 혹은 로봇들에 의해 통제받으며 일사분란하게 도열했다. 덕분에 수를 파악하기 수월해졌는데, 거진 삼천에 근접하는 수였다. 하나의 비행선에서 내린 수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인원 보고!
총원 사백팔십! 현 인원 사백팔십! 이상 무!
인원 보고!
총원 사백구십오! 현 인원 사백구십오! 이상 무!
각 부대별로 나눠져 우렁찬 목소리로 보고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에레도스 시스템 덕분에 무슨 보고를 하고 내용이 어떤지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어떤 언어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아프리카군요.”
그러나 이바노프는 마도공학이 접목된 망원경으로 그들을 살피며 단언했다.
– 아프리카? –
“전통적인 아프리카계 흑인종으로 보이고, 추가적으로는 가슴팍에 지구 모양의 푸른색 마크가 있는데 거기서 아프리카가 중심입니다.”
“그러면 맞겠네요. 그리고 그러면……”
“인도는 놈들의 거점에 불과했다는 거겠지요.”
여태껏 정탐했던 이 정체불명의 세력이, 사실 본진은 아프리카였다는 거다.
인도는 최소 한두 달 전 그들에게 점령당한 것이고, 아마 그 과정은 매우 빠르고 매끄러웠으리라 짐작된다. 어디서도 격전의 흔적이나 적대세력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없었으니까.
이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인도의 세력이 엄청나게 미약했던 것이 아닌 이상, 이곳을 점령한 자들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했다는 뜻이니까.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권태수는 아직도 해안가에 상륙한 채 웅웅거리는 소음을 뿌리고 있는 그 우주적 느낌의 비행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중이었다.
“저런 걸 대체 어떻게……”
– 너무 놀라지 마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초과학 문명의 산물이 아니니까. –
“그러면 뭔가요?”
– 겉모습이 SF적인 건 공기저항을 고려했을 때 당연히 그런 모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상은 덩치가 좀 크고 동력이 좀 강한 비행선일 뿐이지. 저것보다 작은 건 류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
다만 그런 걸 만들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애초에 천공성이 두 개나 있는데다가 각성자들을 비행체에 태워 전투를 치를 이유가 없다.
일반인이나 저레벨 각성자를 태우면 되지 않겠냐는 말이 나올 수 있겠지만, 당장의 전투력은 확보할 수는 있어도 그건 결국 미래의 각성자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며 최소한의 비행선 제작비용조차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단점이 확실하다.
– 그러니까, 저건 그냥 우리가 가진 천공성과 비슷한 목적인 거다. 전투용이라기보단 수송용에 가깝지. 물론 비행체 괴물들을 대비한 최소한의 전투력은 가졌겠지만 천공성보다 못하거나 잘해도 비슷한 수준일 거다. 결정적으로, 저건 기술력을 가졌다고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야. –
“그건 어째서죠?”
– 마법이 상당부분 가미되었으니까. 아무리 효율적인 구조를 짤 수 있다 해도 최소한의 재료라는 게 필요한 법, 저만한 동체를 움직이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상당한 양의 재료나 그만큼 귀한 재료를 쓸 수밖에 없어. –
백 번 양보해서 생각만큼 재료가 많이 들지 않는다 쳐도, 그러면 연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쁠 것이다.
마법이라고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거스를 수 있는 게 아니다. 특정한 현상을 만들어내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
당장 류한이 보유한 천공성만 보더라도, 그것들을 만들어낸 천계와 마계에서조차 천공성은 귀한 전략자원으로 취급되지 않던가.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천공성을 대체할 만한 비행선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바노프의 정리였다. 또한 맞는 말이었다.
“이걸로 더 확실해졌군요. 저들은 우리 제국보다 마도공학 분야에서 앞서고 있습니다.”
“하.”
김유린이 다소 허탈한 느낌으로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흘렸다.
그녀는 세현과 처음부터 함께였다. 그렇기에 류한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얼마나 가공할 속도로 발전하며 세력을 펼쳤는지 잘 안다.
그런데도 더 앞선 마도공학 기술을 가진 세력이 있다고?
“절대로 사람의 힘으로만 이뤄낸 게 아니겠네요.”
그녀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이바노프조차 99% 정도 그에 동의하는 바였다.
“저들의 장비를 살펴볼 수 있다면……”
이바노프는 혼잣말을 흘리며 망원경으로 그들의 행색을 자세히 살폈다. 여태까지는 보지 못했던 장비들이 보였다.
류한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중갑옷, 혹은 경갑옷이 보인다. 검이나 창 둔기 같은 냉병기도 있고 원래 지구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총기들도 보인다. 물론 류한의 총기와도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저들의 장비를 온전히 획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른 것들의 수준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들이 방금 인원보고를 하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병사 하나 납치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 시체 한 구 정도는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만들면 되겠군. –
그때, 레야가 간단하게 말하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절망과 좌절의 서(유일함): 절대 손상되지 않는다. 사용자의 긍정적 감정을 대가로 내장된 2719가지 마법 중 상황에 가장 필요한 하나를 사용할 수 있다. 악마족을 상대로 끔찍한 위력을 발휘한다.– 악마를 죽이기 위해 스스로 악마가 되었던 흑마법사 소의 유품. 자신의 피부를 도려내 형태를 만들고 영혼 일부를 떼어 불어넣었다. 대대로 소의 후계자들에게 전해졌으나 그들 중 누구도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 ]
“그건……”
권태수가 우려를 표했다.
직접 사용해본 적 있는 이바노프는 보는 것만으로도 미약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 한 번은 문제 없다. 두 번도 문제 없고. –
직접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확신한 레야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책을 바로 펼쳤다.
바람도 없는데 책장이 미친듯이 펄럭이며 넘어간다. 불가사의하게도 두께보다 더 많게 천여 장 이상 넘어간 페이지가 어느 한곳에서 우뚝 멈추더니, 이어 늪처럼 진득한 어둠이 레야의 몸을 한차례 감쌌다가 책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바노프는 이제 책에서 뭔가가 튀어나오거나 마법진 같은 게 생성되리라 예상했다. 레야도 그 비슷한 예상을 했다.
갑작스레 그것이 미친듯이 진동하며 스스로 레야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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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파트 시작입니당.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한 번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