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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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별다른 문도 없이 입구가 뻥 뚫린 그곳 안에는 선객이 있었다. 꾀죄죄한 몰골을 한 여자 한 명과 남자 둘이었다. 남자들 중 하나는 안경을 쓰고 약간 샌님 같은 분위기였고, 다른 하나는 팔이 다쳤는지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거기서 은은하게 베어나온 핏물이 보였다.
오가는 인사 같은 건 없었다. 세현은 셋을 천천히 살폈다.
아무런 상처 없는 남자와 여자는 비교적 평온한 모습이었지만, 팔이 다친 남자는 뭐가 그리 불안한지 계속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가 조악한 대기실의 한쪽에 걸터앉고 잠시 후, 옆쪽에 있던 안경 남자가 나직이 말을 걸었다. 호기심이라도 동한 모양이다.
“어디서 오셨어요?”
“경기도.”
“아…… 그러니까, 경기도 어디요?”
“용인.”
“멀리서 왔네요. 저는 성남에서 왔는데.”
그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힘들었다는 것을 표현하는 듯한 제스쳐다. 이후로는 별다른 대화 없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잠시 후, 팔이 다친 남자가 세현을 보며 조심이 입을 열었다.
“저기 형씨, 아까 여기 들어오기 전에 군인하고 이야길 했던 것 같은데……”
말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 질문했다.
“혹시 서울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들은 것 있소? 듣기론 내일 사람이 와서 뭘 검사한다고 하는 것 같던데?”
“별 거 못 들었어요. 질병이 있나 없나, 좀비에게 감염된 건 아닌가 그 정도만 들었죠.”
가볍게 해준 대답에 어쩐 일인지 사내가 더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호흡마저 약간 불안정해진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그러면, 그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죠. 아마 그냥 쫓겨나지 않을까 싶은데.”
“다른 건 뭐 들은 거 없소?”
“없어요.”
대답을 해주며 사정을 짐작한 세현이 속으로 혀를 찼다. 아마 스스로의 부상 때문에 그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모양이다.
약간이지만 불쌍한 마음이 든다.
불안감이란 건 사람을 좀먹는 질병이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혹은 알고 있어도 100%가 아니라면 안심하지 못하기에 끊임없이 초조해하게 된다.
흔히 걱정을 사서 한다고 하는 그거다. 걱정을 하든 말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데 말이다. 어리석은 일이란 건 다들 알지만, 그럼에도 쉽게 생각을 접지 못한다. 가시방석에 앉은 상태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괴로움에 시달린다.
세현이라고 모르지 않는 감정이다. 그도 심할 때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한 달 동안 똥도 안 나온 적 있었다. 무림에서는 그것을 심마(心魔)라고 불렀다. 사람의 생각이란 때론 너무할 정도로 스스로를 괴롭힌다.
불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도와줄 생각까진 없었다.
애초에 누가 도와준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옆에서 무슨 말을 해주든, 그에게 일이 잘 풀릴 거라는 100% 확신을 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다. 직접 경험해본 적 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새벽이 될 때까지도, 병사들이 교대로 근처를 어슬렁거릴 뿐 별다른 일은 없었다. 생존자들 끼리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팔이 다친 남자는 물론이고, 내색은 안 하지만 여자와 안경 쓴 남자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은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세현은 밤새도록 무공에 대한 사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아침이 되고, 다시 점심이 됐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생존자들의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당연하지만 식사 제공 같은 건 없었다. 식사제공은 커녕, 밖에 나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간간이 용변이라도 보러갈 때는 반드시 병사들의 시선이 닿는 간이 화장실로 가야만 했다. 그렇게 점심시간까지 되어서야 마침내 버스 한 대가 초소 근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내린 건 다크서클이 깊게 내려온 한 의사였다. 의사는 군인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눈 후 곧바로 생존자들에게 다가왔다.
세현을 비롯한 여자와 남자는 대충 슥 훑어보기만 했다. 그러다 팔이 다친 남자를 보고 이유 모를 한숨을 푹 내쉰다.
“어디 봅시다.”
“긁힌 겁니다.”
“그러니까, 보자고.”
컨테이너 안에 함께 들어온 군인 한 명이 눈을 부라린다. 결국, 떨리는 손으로 남자가 붕대를 풀었다.
거기엔 누가 봐도 긁힌 게 아닌 무언가에 물어뜯긴 듯한 상처가 있었다.
“쯧.”
의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당신은 탈락.”
“예? 대, 대체 왜요?!”
“물렸잖아.”
“조, 좀비한테 물린 게 아닙니다!”
“입증할 수 있어?”
당연히 할 수 있을 리 없다. 망연자실한 남자는 다른 군인에 의해 컨테이너 밖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빨리 움직여.”
총부리를 겨누고 당장이라도 쏴버릴 것처럼 구는 통에 그는 아무런 항변이나 애원도 못했다. 쫓기듯 멀찍이 사라지는 그를 보던 세현은, 이어지는 의사의 말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셋은 옷 벗어봐요.”
“예?”
“옷 벗으라고. 안 보이는 데에 상처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저기, 물린 것만으로도 감염되는 겁니까? 제가 알기론 아닌데……”
안경 쓴 남자의 질문에 의사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긴 무슨, 충분히 위험성이 있지. 그러니까 옷 벗어봐요. 싫으면 방금 그 남자처럼 쫓겨나든가. 당신부터 시작합시다.”
의사가 질문을 던졌던 안경 남자를 가리켰다.
“저, 여기서요?”
“그럼 어디서 해요? 빨리 벗어요.”
슬그머니 짜증을 드러내는 의사의 태도에 결국 남자가 머뭇거리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겉옷을 벗고 바지와 상의까지 벗어 팬티바람이 되었는데도 의사는 더 벗으라고 손짓만 했다.
여자는 일찌감치 뒤돌아 눈을 감고 있었다. 마침내 안경 남자가 속옷까지 다 벗고 검사를 끝냈다. 그리고 남자가 채 옷도 다 입지 않았는데, 의사가 여자를 힐끗 보더니 세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당……”
“난 안 벗을 겁니다.”
“으응? 그럼 쫓겨나는데?”
“그러죠.”
대충 어떤 형식으로 이뤄지는지 확인만 하면 된다. 여기서 옷을 벗는 수모까지 감수할 이유가 없다.
세현이 쿨하게 대답하며 뒤돌아 컨테이너를 나서자, 황급히 뒤따라 나온 병사 한 명이 약간 어이없다는 눈으로 그를 살폈다. 공교롭게도 어제 세현의 검을 빼앗은 그 군인이었다.
“당신, 서울 안 갈 거야?”
“뭐, 굳이.”
스스로 안 가겠다는데, 딱히 어떻게 강제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문득 생각이 나 검을 돌려달라는 말을 꺼내자, 병사가 당황하며 말을 어물거렸다. 이미 어디로 가버려서 자신이 다시 가져올 수 없다고 하는데, 스스로 찔려하는 모습이 너무 티가 났다.
아마 여기서 더 돌려달라고 보채면 화를 낼 것이다. 굳이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생각은 없어 세현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병사는 세현이 완전히 초소 멀리까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뒤돌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리 꼭 필요한 검사라지만, 일단 서울에 들어가는 과정에서부터 인권침해의 흔적이 보이고 있다. 하다못해 간이 탈의실 같은 걸 설치하거나 옆의 컨테이너에서 따로 검사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생존자들을 자신과 같은 신분으로 생각지 않는 듯하다.
“쯧.”
혀를 찬 세현의 존재감이 별안간 흐릿해졌다. 그리고 방금 나왔던 초소를 순식간에 크게 돌아 야트막한 언덕 위 나무에 올라섰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생존자들을 태우는 버스를 따라갈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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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근처의 여러 초소를 돌며 그곳에서도 생존자들을 검사하고 태웠다. 그렇게 어느 정도 수를 채운 후에서야 마침내 서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로 진입했을 때는 저녁시간이 한참이나 지나 날이 어두워질 때였다.
미리 무한의 주머니에 끼니거리를 챙겨왔던 세현은 그것을 먹으면서 계속해서 버스를 추격했다. 그 정도 되는 고수에게 남들 눈에 들키지 않으면서 버스 한 대 쫓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몇 개의 임시 검문소를 거쳐 마침내 서울에 들어서자, 불이 환하게 밝혀진 한 임시 건물에 생존자들을 통제해서 들어가게 했다. 정보대로, 전기가 통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곳 뿐만이 아닌 거리의 가로등까지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세현은 건물로 들어서는 생존자들 뒤에 은밀히 섞여들었다. 한순간에 유령처럼 나타나 자연스레 따라붙는 그를 눈치 챈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들어선 건물 내부에서, 거진 두 시간에 걸리는 일종의 교육을 받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신분증이 없는 자는 도장이 찍힌 임시 신분증을 발급받았고, 다른 이들은 별다른 통제 없이 자유롭게 거리로 풀려났다.
“흐음.”
임시 교육의 내용을 되새기며 세현은 거리로 나섰다. 별거 없는 교육이다. 세상이 멀쩡했을 시절이라면 당연히 상식적으로 지켜야 할 법이나 질서에 대한 내용이었으니까.
외부에서 온갖 고난을 겪고 간신히 서울에 도착했을 생존자들을 위한 케어 시스템이라기엔 굉장히 미흡하다. 이미 그들에겐 비일상이 일상이 되었을 텐데.
거리는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했던 것만큼 완전히 난장판인 모습은 아니었다.
여기저기 금가고 무너진 건물들도 더러 보였지만, 그래도 멀쩡한 건물들이 더 많고 아직도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중이라 막연히 상상했던 슬럼가 느낌까지 들진 않았다.
하지만 잠시 더 거리를 걸으며 안쪽으로 들어서자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 중 몇 명의 눈길이 심상치 않다.
세현이 걸친 옷은 다른 생존자들의 것에 비하면 새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했다. 아마 그래서 눈길을 끄는 듯하다. 뭔가 털어먹을 게 있어 보일 테니까.
그때, 도로 저편에서부터 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은밀하게 세현을 보던 자들이나, 어딘가로 바삐 움직이던 자들이나 다들 한결같이 고개를 돌리며 차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잠시 후, 커브를 돌아 헤드라이트를 켜고 드러난 십여 대의 군용차량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별로 빠르지 않은 속도였다.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차량 근처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제발 먹을 것 좀 주시오!”
“아무거나 하나만 주십시오! 제발!”
“거기 군인 오빠! 먹을 거 하나만 줘요!”
그리고 달리는 차량의 옆으로 계속해서 위험하게 따라붙으며 먹을 걸 달라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한 장면이다.
세현이 약간 어안이 벙벙해져 그것을 보는 사이, 차량에 타고 있던 군인들 중 몇명이 품에서 초코바 같은 것을 꺼내 밖으로 던졌다. 당연한 수순으로 사람들의 손이 우르르 그쪽으로 향한다.
초코바를 잡게 된 행운의 남자는 다른 이들이 붙잡을 세라 황급히 자리를 떴다. 몇 사람들이 그 남자를 아쉽다는 듯 쳐다보다가 다시 차량에 달라붙으며 아우성친다.
“어이!”
그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세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군인 한 명이 초코바를 던졌다.
꽤 정확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온 초코바를 낚아챈 세현이 당황해서 그 군인을 쳐다봤다. 이런 식으로 적선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탓이다.
군인은 당황하는 세현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아니면 어두워서 그의 황당해하는 표정을 보지 못한 건지, 낄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차량들은 천천히 서울의 중심부를 향해 사라져갔다. 벌떼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을 이끌고 말이다.
“허, 참.”
80년대, 아니 그보다 십 년도 더 전 쯤에는 미군 차량이 지나가면 아이들이 달라붙으며 초콜릿을 달라고 외쳤다고 한다.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심하다. 아이들이 아닌, 성인들이 먹을 걸 달라고 달라붙는 와중이니까. 다들 그렇게 못 먹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그래도 음식이 매우 귀한 건 확실한 듯하다.
반대로 군인들의 경우는 꽤 여유가 있어 보였다.
세현은 자신의 손에 들린 초코바를 살폈다. 원하지도 않는 이에게 장난삼아 던질 정도면, 그들에게 이런 초코바 정도는 아무런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군인들의 기강은 의외로 잘 잡혀있다라……”
김재훈 대령에게서 캐낸 정보가 떠오른다. 일반 국민들은 아무렇게나 방치해도 군인들에 대한 보급은 철저한 모양이다. 하긴, 그래야지만 현재의 권력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초코바를 손에 들고 우두커니 서 있는 세현에게 문득, 누군가가 천천히 다가왔다. 주변에서 그를 살피는 시선 다섯 정도를 감지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름대로 깨끗한 몰골의 여자가 세현의 손에 들린 초코바를 힐끗 쳐다보며 그에게 말했다.
“그거, 꼭 필요해요?”
“글쎄.”
“저랑 한 번 할래요? 대신 그거 주세요.”
“……”
“고민하지 말고요. 어지간한 건 다 해줄게요. 대신에, 일 끝나고 제가 그거 먹을 때까지는 옆에 있어줘요. 요즘따라 사람들 민심이 흉흉해서……”
초코바 하나에 몸을 파는 여자도 있다.
아주 짧은 시간 있었을 뿐인데, 서울의 생존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전부 봐버린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일정 구역에서 보호만 받는다 뿐이지 거의 거지처럼 지내고 있다.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줄게.”
“정말이죠? 그럼, 어, 어디서 할까요?”
“대신 네 몸이 아니라 정보를 줘라. 여기서 얼마나 있었지?”
“한 달 약간 넘었어요.”
그 정도면 짧은 기간은 아니다. 세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옮기지.”
여기서 대화를 나누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사람 없는 데를 원하면 저기로 가요.”
그러면서 여자가 앞장섰다.
세현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지켜보던 이들에게 강하게 살기를 쏘아냈다. 그들이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것을 확인한 후, 여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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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약속했던 연참입니다. 최대한 빨리 썼습니다.ㅋㅋ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