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EDOS RAW novel - Chapter 87
87====================
공격대
회의가 끝난 후, 부대장들이 나서서 공격대 전체의 풀어진 분위기를 추슬렀다. 사기가 높은 것은 좋지만 그것이 방심과 오만으로 이어지면 곤란하다.
다행히도 이번 토벌 과정에서 제대로 신망을 쌓은 부대장들의 말을 흘려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풀어졌던 공격대원들은 다시금 무장을 점검하고 마음가짐을 새로했다.
그렇게 공격대가 새로이 정신무장을 마쳤을 때였다. 슬슬 이동을 준비하려던 차에 P97K가 미친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 여기는 델타, 델타! 남쪽 능선에서부터 대규모 케르시타 무리의 이동을 감지, 수 추측 불가! 좌표 전송 완료, 곧 조우한다! –
– 당소 알파! 현재 규모를 알 수 없는 케르시타 무리가 남서쪽에서 본대로 접근 중, 좌표 전송하겠다. 거리 5키로미터, 10분 이내로 조우할 것 같다! –
치지지지직-
– 여기는 브라보! 시내 남쪽 중앙에서 케르시타 출현! 땅을 파고 나오는 모습 확인했다. 거리 1키로미터 이내, 수는 적지만 계속해서 나오는 중! –
치지지직-
주변에 풀어놨던 네 개 정찰조에서 동시에 보고가 올라온다.
“전투 준비!”
이승원 소령의 명령에 다른 하급 지휘관들이 곧장 전파에 나섰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공격대 전체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마침 이동을 준비하던 차였기에 대열을 이루고 모든 준비를 마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만 계속해서 들어오는 정찰대들의 보고가 심상치 않았다.
– 여기는 찰리! 3키로미터 떨어진 남동쪽 능선 뒤에서부터 케르시타 무리의 이동 관측! 좌표…… 특이개체가 있다! 아주 큰 놈이다! 폭 추측 30미터, 높이 20미터, 거미와 비슷한 형태! 하지만 몸통과 머리가 위쪽으로 매우 크고, 그 가운데…… 눈이, 눈…! –
“찰리?”
갑자기 끊어진 통신에 이승원 소령이 무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응답이 없었다.
잠시 후, 희미한 폭음 같은 것이 멀리서 들렸다.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그게 폭음이라는 건 명확했다. 방향은 찰리 정찰대가 위치하던 쪽이었다.
“찰리! 아무도 없나?”
몇 번을 다시 불러봐도 응답이 없다. 인상을 구긴 이승원 소령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델타 즉각 철수해라! 시내로 진입하지 말고 외곽을 돌아 알파와 합류해 철수하도록! 브라보는 교전이 일어나지 않게 뒤로 빠지면서 동쪽을 경계, 특이개체가 보이면 섣불리 접근하지 말고, 혹시 모르니 눈을 주의해라. 찰리는, 만약 이걸 듣는 이가 있다면 당장 철수해서 뭘 봤는지 보고해!”
현재 보고에 따르면 케르시타 놈들이 나타난 곳은 대부분 남쪽이다. 그곳에서부터 엄청나게 몰려드는 중이다.
“남동쪽 좌표로 드론 날려! 전부!”
대기하던 16대의 드론들이 곧바로 비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쏜살같이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모두 수직이착륙이 가능하고 최대 시속 135km 까지 낼 수 있는 놈들이다. 배터리 문제로 평소에는 운용하지 않고 지금 같은 중요한 때만 운용한다.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드론 16기의 영상이 지휘차량 안쪽의 컴퓨터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정찰대가 전송한 좌표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한 드론들이 보내오는 영상에서 야트막한 능선을 넘어 몰려오는 대규모 케르시타 무리가 보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만큼 놈들의 규모를 좀 더 확실하게 체크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다. 얼핏 봐서는 도대체 몇 마리인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 능선 전체를 뒤덮으며 몰려오는 모습이 마치 아마존 또는 아프리카의 군대개미를 보는 듯했다.
최소 만 단위다.
그 중에는 찰리가 보고했던 특이개체의 모습도 있었다.
보고 대로 거미를 닮은 다리를 가진 놈이었다. 허나 몸통 부분이 위쪽으로 마름모처럼 솟아 있고, 그 가운데 거대한 푸른색 눈동자가 박혔다. 몸통의 앞쪽 아래 사마귀 같은 주둥이 위로는 8쌍의 푸른 겹눈이 추가로 달렸다.
“파란색…!”
이승원 소령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그로서는 처음 보는 등급의 괴물이다.
영상 속에서 몸통 한가운데에 자리한 커다란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자신을 관찰하는 드론들을 발견했다.
곧바로 섬광이 번쩍였다. 동시에 네 대의 드론에서 영상이 사라졌다.
다른 드론들이 있었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이 가능했다. 눈에서 뿜어진 한 줄기 푸른색 광선이 네 대의 드론을 격추했다. 폭발한 그것들의 잔해가 눈처럼 흩뿌려지는 중이었다.
“됐다. 드론 철수시켜!”
어차피 놈들의 모습은 확인했다. 특이개체의 모습과 공격수단 역시 파악한 이상, 이대로 계속 드론을 과녁으로 내줄 필요가 없었다.
“아무래도 찰리는 전부 당했다고 봐야겠습니다.”
김창식 대위의 말이었다. 정찰조 전부가 그들 캠프의 인원이었기에 꽤 많이 침중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틈은 없었다. 지휘관으로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후퇴하거나, 버티고 싸우거나. 당장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다. 이런 중대한 상황에서는 공격대장인 세현의 명령이 우선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그가 간단히 명령했다.
“싸운다.”
그의 생각에 이번 전투는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들 공격대는 여기까지 오며 단 한 번도 한계까지 몰리는 싸움을 한 적 없다. 상대의 수와 관계없이 항상 무난하게 이겨왔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파란색 눈의 거대한 특이개체 뿐이다.
즉, 그놈만 없다면 괜찮다는 뜻이다.
“파란색은 내가 맡지. 나머지 놈들만 정리해.”
“알겠습니다.”
“예.”
다른 이들이 한결 안심하는 표정으로 전투를 준비했다.
이승원 소령과 김창식 대위는 여전히 약간 불안한 눈치였지만, 세현에 대해 워낙 들어온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이의를 제기하거나 하진 않았다.
@
케르시타의 이동속도는 꽤 빠르다.
정찰대가 안전하게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케르시타들의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땅이 진동하는 것도 느껴졌다. 수가 워낙 많은 탓이다.
마침내 놈들이 육안으로도 보이기 시작했다. 장갑차와 험비 차량들의 총구가 전방을 향한다. 네 대의 전차 역시 포구를 돌려 놈들을 조준했다.
사정거리에 들어오기 무섭게, 명령이 떨어졌다.
“공격!”
푸콰아앙!
푸쾅!
투타타타타타타타타!!
중기관총과 고속유탄발사기, 전차의 포구에서 화염이 뿜어졌다. 투사체가 공기를 찢는 무서운 소리 후, 달려들던 놈들의 선두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기 시작했다.
중기관총과 전차들의 화력도 무섭지만, 이런 개활지에서는 고속유탄발사기가 제몫을 톡톡히 했다. 말 그대로 폭발하는 유탄을 고속으로 쏘아내는 무기다. 수류탄을 기관총처럼 쏘아낸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계속해서 땅이 울리고 귀청을 멀게 하는 폭발이 이어진다. 전차들이 쏘아내는 포탄이 작렬할 때마다 달려오던 케르시타들이 무너기로 쓸려나가며 폭사하기도 했다.
거기에 적당한 거리가 되자 캐스터들과 사격수들까지 공격에 가세했다. 어지간한 규모의 적들은 접근하지도 못할 막강한 화력이 비처럼 쏟아졌다.
케르시타들은 그 수많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돌진했다.
그렇게 해일처럼 몰려드는 놈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존재, 특이개체의 커다란 외눈이 이리저리 돌아갔다. 굉음과 함께 불꽃을 토하는 전차를 포착한 놈의 눈동자에서 한순간 빛이 뿜어졌다.
가공할 속도로 날아드는 푸른색 섬광, 하지만 그것은 어느새 마주 날아온 자색빛 비검강과 부딪혀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수많은 폭음들에 섞여 허무하게 스러지는 그 의미 없는 폭발을 지켜보던 세현이 대충 섬광의 위력을 가늠했다.
“검강 쯤인가.”
어느새 세현은 공격대를 벗어나 홀로 앞에 나선 채였다.
끼이이이이이익!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에 분노한 듯, 특이개체의 거대한 울음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동시에 푸른색 눈동자에서 더 강한 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세현이 땅을 박찼다.
탄환처럼 쏘아진 그를 중심으로 자색빛이 폭발한다. 무더기로 쏟아지기 시작한 검기다발들이 주변의 케르시타들을 무차별 도륙냈다. 전장 어느 곳에서나 한눈에 보일 정도로 요란하고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그런 세현을 노리고 푸른색 섬광이 날아들었다. 그것을 막아낸 세현이 연속해서 검을 휘두른다. 줄지어 쏘아진 자색빛 반월형 비검강들이 특이개체의 눈을 노리고 섬전처럼 날아들었다.
놈은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그저 커다란 눈을 꾹 감았을 뿐이다. 연속으로 날아든 검강들은 검갈색 외골격과 충돌하며 연신 폭발을 일으켰다.
커다란 동체가 계속해서 움찔움찔 떨린다. 하지만 놈은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공격이 끝나기 무섭게 번쩍 뜨인 눈동자가 지척까지 접근한 세현을 감지하고 재차 섬광을 쏘아낸다. 동시에 놈의 거대한 덩치가 움직이며 두꺼운 기둥 같은 다리가 날아들었다.
마주 휘둘러진 청월과 그 두꺼운 다리가 충돌한다. 폭음이 터지며 세현의 몸이 뒤로 훌훌 튕겨졌다.
체급 차이가 너무 크다. 억지로 버티는 것은 바보 짓이었다.
애초에 검을 마주 부딪칠 이유도 없다. 이번은 그저 놈의 방어력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예상대로, 그 특이개체의 다리는 약간의 그슬림과 서리가 꼈을 뿐 아주 멀쩡했다.
여태까지 만난 파란색 등급의 괴물은 제각각 스타일이 있었다. 병원에서의 왕자는 마법을, 국방과학연구소에서 만났던 악마는 날렵한 움직임과 높은 공격력을.
그리고 이놈은 무지막지한 덩치와 방어력을 가진 모양이다.
단순히 덩치만 크고 단단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고속으로 허공을 밟으며 입체적으로 이동하는 세현의 움직임을 정확히 따라왔다.
특히, 커다란 눈동자는 그가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동선까지 예측하는 정밀한 섬광을 쏘아댔다. 세현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쉽게 피하거나 막아낼 수 없는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날아드는 날카로운 공격을 피해내며 특이개체를 면밀하게 살폈다.
새로 배운 스킬을 사용하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아니, 스킬을 쓰지 않아도 시간이 걸릴 뿐 충분히 요리할 수 있다. 아무리 방어력이 좋아도 계속해서 두들기면 결국 부서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는 이놈을 당장 처리할 생각이 없었다.
– 세이라크! –
– 무적의 세이라크가 적들을 쓸어버릴 것이다!! –
주변의 케르시타 놈들이 떠들어대는 소리가 시끄럽다. 그가 상대하는 이 특이개체의 이름이 세이라크인 모양이다.
끼이이이아아악!
좀처럼 잡히지 않는 세현에게 열받은 듯, 놈이 괴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공격을 시도했다.
푸화아아악!
놈의 주변으로 황색빛 안개가 뿜어졌다.
주변의 케르시타들이 기겁해서 몸을 피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놈은 안개에 닿기 무섭게 온몸에서 포자가 돋아나며 순식간에 회색으로 말라 비틀어졌다. 상당히 많은 수였다.
세현이 끌어올린 호신강기에서 연신 불꽃 타는 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안개를 빠져나온 그에게 기다렸다는 듯, 푸른 섬광이 날아들었다.
마주 쏘아낸 검강과 섬광이 충돌하며 폭음이 터진다. 그 반탄력을 이용해 몸을 피한 그가 중얼거렸다.
“전차 같은 건가.”
세이라크, 놈은 케르시타 종족의 전차와 비슷한 역할인 듯하다.
커다란 덩치와 무지막지한 방어력, 그리고 눈에서 쏘아내는 빠르고 강력한 광선과 대규모 학살에 적합한 정체 모를 황색빛 안개까지.
확실히 전차를 닮았다. 공격을 피하는 게 아니라 모조리 맞아가며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들을 쓸어버리는 점이 그렇다.
– 죽어라!! –
그때, 세이라크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그에게 몇 마리 케르시타가 달려들었다.
꽤나 빠른 속도였다. 머리와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송곳 같은 공격을 피하며 상대를 살피자, 선명하게 빛나는 초록색 겹눈이 가장 먼저 보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세현이 연속해서 허공을 밟으며 몸을 피했다. 세 마리의 초록색 등급 케르시타들은 모두 허탕을 쳤다.
– 인간 치고는 제법이군! –
– 나 켈젝이 상대해주마!! –
벌레 주제에 제법 훌륭하게 생긴 단검을 든 놈도 보인다. 스스로를 켈젝이라 말한 놈이었다. 등에 달린 두 쌍의 날개가 고속으로 움직이며 벌떼 우는 소리를 낸다.
눈이 마주치자, 놈이 가볍게 단검을 던지며 고쳐 잡았다. 그리고 번개처럼 움직여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날아드는 궤적이 아주 기묘하다. 찔러오는 단검의 기세 역시 가볍지 않았다.
솔직히 제법이다. 하지만 결국 그뿐, 애초에 초록색 눈동자에 불과한 놈이었다.
몇 차례 자색빛이 번쩍이자 달려들던 켈젝이 다섯 토막나며 아래로 추락했다.
– 말도 안 돼!! –
비명을 내지르던 다른 케르시타들도 자색빛 번쩍임과 함께 대나무처럼 쪼개졌다.
뒤늦게 세이라크의 푸른색 섬광이 쏘아졌다. 동시에 기둥 같은 거대한 다리가 무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들었다. 당연하지만 그것들 중 무엇도 세현을 건들지 못했다.
끼아아아악!
세이라크의 신경이 모조리 세현에게 쏠렸다. 놈은 간간이 공격대를 살피던 것을 그만두고 완전히 세현에게 집중하며 공격을 쏟기 시작했다.
푸른색 섬광에 휘말리고 육중한 발에 걷어차인 애꿎은 케르시타들이 무차별적으로 박살났다. 세현은 그렇게 동족상잔을 유도하면서 적극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시간만 끄는 이유는 간단했다. 파란색 등급의 괴물이 매우 희귀하기 때문이다.
다른 잡졸들을 모두 정리한 후, 이놈을 공격대와 싸우게 만들면 모두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정면으로 싸우는 건 다소 위험하겠지만 세현의 적극적인 보조가 더해진다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 작품 후기 ============================
부디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추천 꾹!! 부탁드립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