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ogenous Zone RAW novel - Chapter 34
34.
식사도 대충 건너뛰고 목욕물에 푹 잠겨 있었다.
최시백이 다시 제 삶에 나타난 이후 한동안 멎었던 두통이 또 잦아졌다.
사실, 알고 있었다. 온종일 머릿속에 끼어드는 그 남자 때문에 털어 내고, 걷어 내느라 근심도 길어졌다. 별것도 아닌데 최시백과 결혼하고부터 내내 이어진 이 고뇌는 그리도 자신을 못살게 굴었다.
너 때문이라고 화도 못 낸다. 종일 신경 쓰여 당신 생각이 난다고 자백하는 것도 아니고. 엄마의 기분을 이젠 아이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주수. 좋은 생각만 많이 하라는데 도통 제 인생에서 좋게 봐줄 만한 게 뭔지 모르겠다.
그가 깊이 음미하며 빨았던 아래도 살살 씻어 내고, 젖이 돌아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젖통도 씻고, 그러고도 또 욕조에 들어와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더 몸이 곤하기 전에 일어서려 중심을 잡는데, 그새 좀 몸이 녹았다고 머리가 핑글 돈다.
가운을 걸치고 스킨을 집는데, 최시백의 스킨 통이 시야에 걸린다. 언제부턴가 늘 저 자리에 있던 것이었다.
무심결에 그쪽으로 시선이 갔다가, 이내 거울 속으로 드리워진 얼굴에 집중했다. 콧대를 미끄러져 내려와 그새 조금 갈라진 입술 언저리를 문지르는데, 문득 다시 시야를 거슬리게 만드는 스킨 통으로 시선이 갔다.
이 집에 그 남자 물건이 없지는 않았다. 예전 집에서 거의 챙겨 나온 물건이 없는지라, 얼결에 딸려 온 최시백 물건이 있을 리가 없었다. 며칠 전에 그가 다녀가 시계를 남겨 두고 간 것 빼고는. 그 이전에도 한번 다녀간 적이 있었고.
아니 … 있었나? 이 집에?
별안간 생각지도 못한 의구심에 휩싸였다. 불씨가 붙자 의문은 금방 마른 곳으로 옮겨붙어 집채처럼 덩치를 키웠다.
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최시백이 처음 온 건 며칠 전, 그때가 처음인데. 그녀의 화장품들 속에 섞여 이게 여기 있었던 건 꽤 오래전부터다. 별게 아니라서 별것도 아닌 것 취급하며 넘어갔었다.
재연은 최시백의 스킨을 가져와 뚜껑을 열고 액체를 손바닥에 끼얹어 조심히 뺨에 문질러 보았다. 최시백 스킨 냄새. 확실했다. 그 남자의 앙금 같은 잔재. 이건 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임신을 하고 그야말로 이 집에서 지내는 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던 세월이 대부분이라 뭐 하나가 뚜렷한 기억이랄 게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의 스킨을 가져온 게 아니란 것만은 분명했다. 애초에 자신의 기초 화장품 역시도 신혼집에서 나올 때 하나도 가지고 나온 게 없으니까.
지난번 보았을 때에 비해 확연히 양이 줄어들어 있는 투명한 액체.
시나브로 줄어들어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전혀 쓸 일이 없는 물건인데, 이 집에서 처음 이것을 봤을 때에 비해 양이 확연히 줄어 있었다.
“아주머니.”
재연은 쥐고 있던 걸 들고 가사도우미를 찾으러 주방으로 걸었다.
흘러내리는 가운을 제대로 여미지도 못하고 걸었다.
“네, 아가씨.”
청소 중이었는지 도우미가 서재에서 나왔다.
“이 스킨이요.”
“예.”
“혹시 아주머니가 쓰셨어요?”
“예에?”
놀라 나자빠지겠다는 반응이었다. 서재연 집에서 일한 세월이 얼마고 얼굴 본 날이 얼만데, 도우미가 집주인 물건에 손대지 않는다는 거 너무 잘 아는데, 그녀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놀란 마음에 무례했다. 곧장 왜 물었는지 밝히자 신경 쓸 거 없다며 손사래다.
그런 의미에서 물은 게 아니었다. 다만, 어느 누구도 쓴 사람이 없으면 주기적으로 누가 들락거렸다는 소리가 되니까.
지난날 도둑 걸음 하며 제 보지를 맛있게도 따먹고 가던 그 남자만 떠오르는 건 제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걸까. 최시백이 아니라면 누가 이 집엘 그렇게 들락거렸겠는가.
전력이 있으니 이러한 추측도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짐작해 봐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 스킨이 저 혼자 없어질 리도 없고,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 쏟았나.
다시 두통이 돈다. 더 이상 생각하는 건 별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재연은 잡념을 거두고 눈앞에 있는 도우미를 보았다.
흔들리는 눈이 사방팔방 춤을 춘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축 없이 날뛴다.
죄를 지었다기보다, 지은 죄를 은폐하는 데 일조한 것에서 오는 불안일 것이다. 만약, 정말 그 남자가 맞는다면.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아가씨.”
“그 사람 왔었던 거죠.”
자신의 몸 상태와 무엇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지 따위를 연락을 통해 보고 받았을 거라는 짐작만 했지.
이렇게 많은 것들을 묵인하고 있었을 거라고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이젠 정말 모르겠다.
재연은 거실에 앉아 째깍째깍 초침 넘어가는 소리만 듣고 있었다.
아가씨께서 고열 올라서 밤새 앓았을 때도, 입덧 때문에 제대로 드시질 못해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셨을 때도, 이사님 오셨었어요. 링거 다 맞을 때까지 곁에 있으셨다가 아가씨 깨어나시기 전에 가시고.
밤새 곁에서 얼러도 주시고, 쓰다듬어도 주시고, 가까운 길 아닌데도 날 바뀌면 오시고. 비 오면 오시고, 해 떴다고 오시고, 잠든 아가씨 확인하고는 비행기 오르시고. 그러셨어요.
거의 침대에 누워 지냈던 임신 초기엔 눈을 감고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아이가 안녕하도록 돌보기엔 무기력은 갈수록 전신을 삼키고, 설상가상으로 초기엔 입덧 약 부작용으로 하루 종일 쓰러지듯 잠만 잤다.
눈을 뜨고 있었을 때라고 나았나. 심적인 불안감이 맨정신을 앗아 갔다. 속수무책으로 우울에 잡아먹혔다. 오히려 그때엔 생각이란 걸 하지 않았던 거 같다. 멍하게 천장을 보고 있거나, 가구에 시선을 두고 있거나.
누가 이 집에 다녀갔는지 그런 것에 관심을 둘 계제가 아니었다.
도우미가 집을 드나드는 것도 몰랐던 정신이었다.
살아 내기에 바빴다. 아이와 둘이, 한 몸으로 부둥켜안고, 건져 줄 누군가는 없으니 어떻게든 스스로 수면 위로 올라오려고, 발버둥 치던 나날이었다. 그렇게 살아 냈다.
정신이 드니 허기가 급속도로 밀려왔다. 그렇게 못살게 굴던 입덧이 사그라지자 먹고 싶은 것들이 생겼다. 잠이 줄고 정상적인 루틴을 유지하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그 이후로는 가끔씩만 찾아왔다고 한다. 최시백 꼴도 보기 싫다고 또 어디 뛰어들기라도 할까 봐.
깡패새끼답지 않게 서재연이 죽을까 봐 발걸음에도 경중을 두었다.
허탈이 쏜살같이 밀려와 가슴을 적신다.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려 했던 무수한 날들을 지나쳐 이제는 아이도 자신도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는데, 파도치지 않는 방파제로 자신을 끌어 올려놓은 게 그 남자였다.
“…….”
죽음의 문턱에 있었던 건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아팠다면서.
많이 아팠다면서.
짐작만 할 뿐이지만 자상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데, 아픈 몸을 채 수습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찾아오기 시작했던 남자.
그러다가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세 달이 되고.
점차 나아가며 털고 일어선 그와 달리 그 시간이 흐르도록 회복하지 못했던 자신.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서재연.
음울한 제게로 와 밤새 머물고 가던 남자. 결국 자신을 일으켜 준 게 최시백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지자 허탈한 웃음이 밀려 나왔다.
떠드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그답게 입 닫고 걸음으로 사랑을 증명하려 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걸음에 더 진심을 두었다.
무엇이 목적인지만이 분명하게, 일 외의 시답지 않은 노선에 시간을 쏟아붓는 짓을 하며.
그래서 더는 피할 수 없는 남자의 진심이 이리도 선연하다.
사람 바보로 만들고 있어. 몰래 왔다 가면 뭐 모를 줄 알았어?
누가 몰래 와서 나 만지고 가래. 나쁜 놈이.
허락도 없이 안고 가래. 개자식이.
그래놓고 말도 없이 사람 찾아와서 합치자는 소리나 하고.
넋 빠진 년처럼 웃고 있자, 벌이라도 서듯 눈치만 보는 도우미가 고개를 푹 숙인다.
손바닥에 눈을 묻고 꾸역꾸역 밀려 나오는 울음기를 눌렀다.
나 왜 이러는 거지. 이것도 호르몬 때문인가.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고, 때 없이 눈물도 나고, 원인 모를 씁쓸함에 잠기기도 하지만 이번엔 정말 모르겠다.
“아가씨. 저녁 정말 안 드실 거예요?”
“…….”
“배고프실 텐데.”
해가 다 지도록 요지부동인 재연의 곁을 지키던 도우미가 결국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나겠다 싶어 가까이 다가섰다. 무엇보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드시면 또 최 이사로부터 칼날 같은 시선이 떨어질 거라서. 애가 못 먹으면 어떻게든 먹이라고, 어르고 달래서라도 입에 밥숟가락 들어가게 하라고 다그칠 게 뻔해서. 아가씨 탈진해서 누워 있을 때 직접 입 맞대 물을 넣어 삼키게 하던 남자니, 말 다 했지.
“아가씨.”
“나 아프다고 해요.”
“예?”
“그 사람한테 전화해서 서재연 다 죽어 간다 그래요. 아프다고.”
“어디 어디 편찮으세요?”
놀란 토끼 얼굴이 된 도우미에게 두 번 일갈하지 않았다.
“그렇게 전화해 주세요.”
한참 만에 붙이고 있던 엉덩이를 일으킨 그녀가 침실로 들어갔다.
치켜들린 똥구멍에 뽕 가루가 입혀진 작대를 하나씩 끼워 넣던 김종섭은 약발에 눈알이 뒤집힌 새끼들이 본능적으로 딸치려는 걸 구둣발로 막았다.
“후뽕 맛이 존나게 달단다. 좆물 질질 싸는 거 봐라 저 새끼. 씨발, 세숫대야 봐라. 드러워 죽겠네. 야, 너는 무슨 시궁창으로 세수하냐? 씹새 저거.”
“형님, 보지들 부를까요? 저 새끼 곧 쌀 거 같습니다.”
“냅둬. 뽕 빨고 보지 안 주면 어떻게 되나 구경이나 좀 해보자.”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김종섭이 느닷없는 방법으로 고문질이다. 발정제로 좆 세워놓고 자지엔 손도 못 대게 하니, 기어이 불알 달린 새끼들이 휑한 잇몸으로 침 질질 흘리고 기어 다니는 꼴을 구경하고 있다. 대가리 하나도 절대 곱게 안 따는 저 성미.
자지에 손을 못 대게 하니 바닥에 좆을 비비고 쌩 염병들이 났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곡소리를 수습할 생각도 없는 김종섭은 또 제 와이프한테 전화를 걸고 있다. 골이 빠개지는 두통을 느끼며 최시백은 담배를 물었다.
큰형님이 직접 오신다 하니, 일단 오시기 전까지 뒤처리를 끝내야 일이 진행이 될 텐데, 뒤처리를 하기 전에 절차가 길기도 길었다. 뽕도 하나씩 얹어 줘야 하고, 물 두세 번은 빼 줘야 하고.
“어, 공주야. 뭐 해, 서방님 생각하면서 보지 만지고 있었어? 얼마나 만졌어. 왜는 생각나서 전화했지. 당연한 거 아니냐? 보고 싶으니까 전화했지. 섭섭하게 그딴 거 물을래?”
곡소리 염불로 좌우 사방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최시백만은 나긋하게 담배를 물었다.
속에 들어앉은 누구 때문에 심중이 말이 아니었지만 잠시 자리를 떴다간 저 정신 나간 김종섭이 빠릿빠릿하게 오사마리⑵ 하지도 않을 거고, 묻어 고르는 것까지 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지만 큰형님이 오시기로 했으니 일단은 현장에서 대기하는 게 나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그는 철제 의자에 앉아 좆물을 흘리며 기느라 덜렁거리는 불알들을 보며 무감하게 홧담배질했다.
왜 또 먹는 걸 관두고 드러누웠는지. 여자 심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애 하나 낳겠다고 애 잡는 꼴을 보고 있자니 회중이 답답했다.
김종섭은 이 난장판을 벌여 놓고 윤송아랑 통화만 한다. 죄 없는 최시백만 못 볼 꼴을 관전해야 했다. 한숨조차 새지 않았다. 한심한 짓도 하루 이틀이지. 이만하면 천성이다 싶었다.
감흥 없는 눈으로 연기를 삼키던 시백은 아사리판인 창고를 나와 요요한 어둠 속으로 연기를 흩뿌렸다. 빤 것을 재차 빨아 금세 연초 하나를 동내는데, 뒤따라 나온 윤겸이 전화를 건넸다. 누구냐는 듯이 턱짓을 하니 도우미란다.
“네.”
아가씨께서 많이 아프다고, 우물쭈물 읊어 대는 목소리가 시무룩하다.
애 맡겨 놨더니 그거 하나 케어 못 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전부 미룬 최시백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알았다는 대답 하나가 전부였다.
시니컬한 대꾸에 덩달아 곁에 있던 윤겸이 긴장했다.
“큰형님 곧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큰형님 오시기 전에 떡판부터 정리해. 곧 올 거야.”
“예, 형님.”
윤겸은 직접 운전대를 쥐고 창고를 떠나가는 제 형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누가 부른다고 저리 가실 분인가, 어디. 임신한 여자라고 살뜰히 돌보실 분도 아니고, 애 떨어지게 잡아 팼으면 팼지, 애초에 여자 한마디에 저리 자리를 뜨실 분이 아니었다. 그것도 큰형님께서 곧 오신다는데.
형님 심중에 여자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형님 부처 자지라면 유명하지 않나. 저 떡판을 봐도 형님 좆 한번 서는 걸 못 봤다. 김종섭 악취미로 늘 떡집이 차려지면 우리 애들 전부 뒷짐 지고 서서 싸지른 좆물로 바지가 다 축축하게 젖는데, 형님 텐트만이 고요했다.
그래서 처음엔 고자라는 좆같은 소문도 돌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우리 형님 같은 남자한테 그런 괴소문이 붙을 수 있나. 그런데 정말 그랬다. 여기저기서 텐트 친다고 바빠도 형님 좆은 부처 자지라는 별명답게 늘 잠잠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좆도 신경을 안 쓰는 우리 형님, 보란 듯이 임신시켜 놓았다. 그것도 회장님 하나 있는 조카딸을 강간해서. 스케일 한번 남다르다. 형님 자지에 보지 하나 꽂아 두는 걸 보질 못했는데 억지로 따먹어 임신시키다니, 최시백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하의 최시백 발걸음을 저리 움직이게 만든다. 보고도 안 믿길 광경이었다.
여자 때문에 영 꼴이 말이 아닌 우리 형님 신세를 떠올리며 한탄하고 있는데, 검은 세단이 헤드라이트를 반짝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윤겸은 곧장 뻐끔대며 피우고 있던 개꼬리를 지져 끄고 발끝에 날리는 불티를 털었다.
큰형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