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389)
EP.389 389화 – 한여름 밤의 꿈 (5)
389화 – 한여름 밤의 꿈 (5)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24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정문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탈출 후, 제일 먼저 겪은 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풍이었다.
사람이 하늘에서 뛰어내렸는데, 밑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연거푸 위로 튕겨갈 정도의 강풍!
예전에 후원자에게 호텔 내부의 커튼 따위를 엮어 만든 간이 낙하산으로 탈출할 수 있냐고 질문했었지.
올빼미는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한번 해보라’는 식으로 답했는데, 의미를 이제야 알았다.
어지간히 운이 좋지 않으면 낙하산이 찢어져서 죽는다.
“으아아악!”
— 삐이이익!
“으아, 페, 피로?”
페로가 자신만 살겠다는 듯, 아예 내 손가락을 뜯어낼 기세로 물어버렸다!
창공을 향해 날아가며 자유를 찾은 페로.
잘 보이지도 않는 육지를 향해 자유낙하 중인 나 자신.
이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떨어져서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저주의 방 밖에서 육신이 파괴되는 상황인데 돌이킬 수 있나?
동료들이 날 위해 티켓이라도 써야 해?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의 겹침 속에서, 마침내 하나의 길을 찾아냈다.
한 손에는 모래시계가 들렸다.
다른 손에는 마도서가 들렸다.
모래시계가 회전했다.
마도서가 펼쳐졌다.
무엇이 더 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는 확실했다.
나는 페로의 몸에 깃든 채 하늘에서 멈춰버린 내 몸을 보았으니까!
흡사 내 몸 주변의 시간만 멈춰버린 것 같다.
그때, 불길한 생각이 작은 앵무새의 머리를 스쳐 갔다.
혹시 모래시계를 쓴 반동으로 호텔의 동료들까지 다 멈췄을까?
…
아닌 것 같다.
205호에서 미로는 환마를 깨우고 모래시계를 돌렸는데, 수도에 있던 동료들에겐 아무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모래시계에도 ‘작동 범위’가 있다.
20M 정도 벗어났던 페로의 몸이 멀쩡한 것을 보아 더 멀리 있을 호텔 동료들은 괜찮겠지.
— 휘이잉!
상념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폭풍우는 상대가 앵무새라 해서 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와중에 알림까지 떴다.
「태풍을 뚫고 비상하는 새의 날개깃을 획득하셨습니다!」
“야! 하필 이 타이밍에?”
전혀 기쁘지 않았다.
진철 형의 머리카락과 은솔 누나의 안구를 가져갔을 때처럼, 페로의 날개깃 일부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덕분에 폭풍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유지해왔던 균형이 단박에 무너졌다.
비행한다기보다 자유낙하에 가까운 시간이 한참을 흘렀을 때.
마침내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
현실로 돌아온 후, 빌딩 위에 앉은 채 생각하자 두 가지를 자각할 수 있었다.
첫째, 호텔에 이상한 이벤트가 발생한 것 같다.
만취한 채로 기절한 전날의 일.
모든 사람이 정신이 헤까닥 돌아버린 채 행동하던 상황.
명경지수, 불변 등 정신을 보호하는 힘이 죄다 먹통이 된 것.
이런 부조리한 일의 원인은 무조건 호텔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책 없이 호텔 밖으로 뛰어내려?”
내가 진짜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구나!
둘째, 상태창이 사라졌다.
당연한 일이다.
원래 축복은 빙의체가 아니라 육신에 구속되니까.
그동안에도 빙의할 때는 상태창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당연’한 일이 내게는 끔찍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삐이이….”
한숨조차도 삐이이 소리가 나온다.
…
비록 새의 몸이긴 하나, 마침내 돌아온 현실을 관찰하자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전신으로 느껴지는 대기의 촉감.
빌딩 아래를 바삐 거니는 사람들.
나를 조준하기 시작한 레이저 포탑.
이 모든 것이 뭉클한 감동을 –
레이저 포탑?
— 지이잉!
아니 이건 또 뭔데!
대놓고 태워죽일 기세의 포탑을 피해 뛰어내리는 순간, 또 하나의 위험이 닥쳤다.
“끼에엑!”
귀여운 앵무새의 머리 정도는 단숨에 으깰 듯한 강인한 부리 공격!
황급히 하늘에서 몸을 반 바퀴 비틀며 포식자의 공세에서 벗어났다.
상대는 곧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포효했다.
“피요오오오!”
“니가 무슨 독수리냐!”
위기는 끝이 아니었다.
흉험한 도시 생태계의 하늘을 지배하는 비둘기의 눈에 비친 나는 그냥 맛 좋은 순살 앵무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킨과 나의 차이는 기름 가마솥에 이미 들어갔느냐, 아니냐의 차이뿐이었다.
다시금 비둘기가 나선으로 회전하며 강맹한 부리를 뻗었다.
그 기세는 흡사 절정 고수가 뻗는 창의 일격과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앵무새!
즉시 날개를 몸에 찰싹 붙이자 몸 전체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비둘기의 일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이윽고 분노한 비둘기가 다시금 나를 노려보며 달려드는 순간 –
내 몸은 어느새 근처의 작은 빌딩 쪽에 달라붙었다.
— 지이잉!
“죽어라!”
붉게 빛나는 레이저 포탑이 상대를 조준하는 순간, 적의 눈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에게 더 이상 기회는 없었다.
“봐! 이게 바로 지능의 차이다! 비둘기가 사람을 이길 것 같아?”
그렇다고는 해도, 저주의 방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괴물 못지않은 강적이었다.
…
…
…
“이게 대체 뭔 지랄이지….”
급격한 현자 타임이 몰려왔다.
나, 방금 비둘기랑 영혼의 일기토 한 것 맞음?
심지어 1-1로 이길 자신이 없어서 레이저 포탑 도움까지 받았네….
— 지이잉!
이 와중에 비둘기를 태워죽인 레이저 포탑은 다시 내 쪽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창문 쪽으로 바짝 붙어서 포탑의 사격 궤도에서 벗어나야 했다.
“진짜 여긴 어디냐…. 여기가 한국 맞음? 무슨 건물마다 포탑이 있어?”
— 띠리링!
전화벨?
“저기요! 지금 창밖에 이상한 앵무새가 있어요! 사람 말을 하는 것 같은데 -”
“야! 전화 당장 끊어!”
“지, 지금 저한테 협박까지 하고 있 -”
나약한 앵무새에게 도시는 더 이상 안전한 장소가 아니다.
*
이후로도 반나절 동안 서울 도심을 날아다니며 생각했다.
괴이한 세상이다.
너무나, 너무나 괴이해서….
이것이 내가 살아온 현실임을 믿을 수 없었다.
세상으로부터 억지로 눈을 돌린 채 생각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지?
…
집부터 확인하자.
부모님은 잘 계실까? 동생은?
…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이 근처에서 평생을 살아왔을 텐데도….
부모님은 물론이고 내가 살아온 집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정말이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 호텔 시네마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탈출 후에 도착할 세상에 가인 군의 가족이 있을까요?’
‘비극적인 결말은 아니리라 믿어요. 가인 군이 시련을 이겨내기만 한다면, 원하는 결말을 볼 수 있을 겁니다.’
“…”
저 말은 분명 호텔이 내게 해준 약속이다.
시련을 이겨낸다면 해피엔딩이, 내가 원하는 결말이 기다린다는 약속.
지금 난 시련을 이겨낸 후 탈출한 것이 아니라 정신을 놓고 갑자기 탈출했을 뿐.
그러니까 바깥에 내가 원하는 결말이 있지 않은 거야.
그렇게 믿기로 했다.
이렇게 나 자신을 위로하며 잠들었다.
서울의 밤하늘엔 더 이상 달이 없었다.
…
다음 날 아침, 나는 새장 속에서 깨어났다.
사방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관리국이 날 포획한 것이다.
*
반나절이 흘렀다.
나는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야! 이 멍청이들아!”
“메모, ‘대학 나온 앵무새’의 언동이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야! 내가 관리국 요원 동료라니까? 높은 사람 데려오라고!”
“메모, ‘대학 나온 앵무새’는 관리국 고위층과의 면담을 원한다.”
“와…! 내가 너 하나 죽일 힘이 없어서 여기 있는 줄 아냐?”
“메모, ‘대학 나온 앵무새’는 허세가 심하다.”
“김아리! 김묵성! 미로! 몰라? 알잖아! 한국 지부 요원이잖아!”
“메모, ‘대학 나온 앵무새’는 실종된 요원 김아리, 김묵성의 이름을 알고 있다. 관리국 내부 정보를 알고 있으므로 위험 등급 상향 필요.”
“아니…. 선생님, 알겠으니까 말 통하는 높은 분 한 명만 모셔 오라니까요?”
“메모 -”
— 쿵! 지지직!
“으아악!”
“메모, ‘대학 나온 앵무새’는 생각보다 지능이 부족하다. 새장에 전기가 흐르고 있음을 자주 잊는 것 같다.”
“…”
관리국 연구원들은 사람을 복장 터지게 하는 재주가 매우 뛰어났다.
*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생각했다.
내 원래 몸은 아직 큰 문제 없을 것 같다.
모래시계가 돌아가며 몸 자체가 호텔 근처의 하늘에 고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조정이 없다면, 모래시계는 7일 동안 우리 몸의 시간을 멈춘다.
아직 7일이 흐르지 않았으니 그 전에 어떻게든 내 몸이 있는 하늘로 돌아가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 빌어먹을 장소에서 탈출하면 된다.
그 후엔 날아서 –
…
탈출 후에도 문제네.
내 몸의 위치가 높아도 너무 높은 곳이다.
그 위치까지 앵무새가 날아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탈출부터 고민한다 치면, 이번엔 다른 문제가 있었다.
저주의 방에선 겪어보지 못한 고민이 날 덮쳤기 때문이다.
이곳은 현실이다.
내가 살아온 현실은 아니지만, 아리와 할아버지가 살아온 현실이다.
눈앞의 사람들은 아리와 할아버지의 동료다.
그러니까….
섣불리 죽일 수 없었다.
“야, 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죽어.”
“…”
“내가 죽이는 게 아니라 관리국이 널 죽인다고!”
“메모, ‘대학 나온 앵무새’는 -”
“아 씨발, 좀 닥치지 못해?”
“- 터무니없는 협박을 자주 가한다.”
이 엿 같은 연구원 놈의 몸을 강탈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아무 일 없다는 듯 탈출 성공?
…
아닐 것 같다.
여기는 무슨 마피아의 감옥이 아니라 관리국이 괴물을 봉인하는 장소.
신체 강탈은 어떻게든 알아낼 방법이 있으리라.
내가 이놈의 몸을 빼앗고, 관리국이 이 사실을 알면 무슨 일이 생길까?
답은 너무 쉽다.
201호에서 이미 봤잖아?
관리국은 이런 상황에서 ‘고민’따위를 하는 조직이 아니다.
어디선가 드론 따위가 와서 주저함이 없이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연구원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지.
탈출은 실패고 애꿎은 관리국 연구원 하나만 죽일 뿐.
그로테스크로 변신?
이것도 별 차이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
그렇다고 해도, 저주의 방이었다면 다양한 시도라도 했을 텐데.
이곳은 현실이다.
이들은 아리와 할아버지의 동료다.
이 사실이 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밤이 되었다.
*
— 띠딕, 띠딕!
…
— 삐빅!
이 시간에 뭐지?
이젠 잠도 자지 못하게 고문할 셈인가.
— 끼이익!
문이 열렸다.
내가 있는 장소가 아니라 옆 칸이다.
‘다른 존재’가 갇혀있는 장소다.
“주님….”
주님?
“아아…. 왔구나. 김현무의 아들아, 소운아. 네가 왔구나.”
“주님, 이 좁은 장소에서 얼마나 오랜 밤을 지새우셨나이까? 제가 당신을 처음 영접했을 때, 관리국의 타락을 알았으며 -”
“소운아, 내 충성스러운 아이야. 자세한 이야기는 나가서 하자꾸나. 내, 너에게 무한한 영광을 내리겠노라. 너 혼자 온 것은 아니겠지?”
“주님, 이미 다섯의 동료가 당신을 모시기로 맹세했나이다.”
이건 또 뭔 개지랄임?
설마 옆방에 있다는 다섯 번째 재림예수인지 뭐시기가 관리국 직원을 홀려서 탈출 중인 상황?
관리국 병신 새끼들이 –
…
아니지, 아니지. 이건 아주 좋은 기회다.
내 손으로 관리국 사람을 해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나랑 상관없이 일어난 ‘약간의 소요’ 속에서 탈출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 쿵!
“아버지!”
“…”
“주님! 예수님!”
“소운아, 이 소리는 무엇이냐?”
“말하는 앵무새랍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이만 -”
“나 고함 지른다?”
“…”
“존나 크게 지른다? 못할 줄 알아?”
“…”
“주님, 그러지 마시고 한 마리 어린 양에게도 자비를 베푸소서.”
“…”
“일찍이 당신의 설교를 듣고 이 땅에 참된 목자가 났음을 알았으며 -”
“난 설교한 적 없네.”
“아니, 재림 예수라는 새끼가 아직 설교 한번을 안 했어? 너 씨발 세상은 언제 구할래?”
“…”
오피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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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호텔 탈출기-38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