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 though he's a genius idol, his passive is a sunfish RAW novel - Chapter 426
외전 14화
편지를 읽고 난 뒤, 지한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해하기 힘든 내용 때문이었다.
“한백야. 이게 뭐야?”
그의 기분을 대변하듯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백야를 불렀다.
그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까딱이던 뒤통수가 뒤를 돌아봤다.
“왱?”
당연히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에 지한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백야는 친구의 굳은 얼굴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왜 그래?”
질문에도 말없이 노려보기만 하던 지한은 구겨진 편지를 들고 백야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콰앙!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모두가 백야의 풀 네임을 부르며 등장했다.
“한백야.”
“한백야!”
다들 잔뜩 화가 난 상태였다.
“뭐, 뭐야…? 왜?”
겁먹은 햄스터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방어 태세를 갖췄다.
점점 거리를 좁혀 오는 멤버들을 피해 엉덩이로 뒷걸음질 치다 보니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겨 버린 꼴이 됐다.
“한백야, 나와.”
매번 당백이 또는 애기라고 부르던 율무마저 백야의 풀 네임을 부르며 얼굴을 굳혔다.
찔끔-
눈물이 고일 뻔한 백야는 입술을 짓씹으며 더욱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싫어…. 왜 그러는데? 말해 주면 나갈게.”
백야가 거부하자 이번엔 민성이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너 이거 뭐야.”
그러고 보니 멤버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편지가 한 장씩 들려 있었다.
조금 전, 지한도 저를 향해 웬 편지 봉투를 보여 주며 제 것이냐 묻더니 기분이 안 좋아졌….
‘망했다.’
혹시 그건가?
백야의 세상이 동기화되기 전, 멤버들에게 적어 놓은 작별 편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지 않게 내용을 기억해 낸 개복치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율무의 손에 잡혀 책상 아래에서 나온 백야는 멤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백야의 주변에는 그가 적은 작별 편지가 결계처럼 둘러져 있었다.
“거짓말할 생각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이게 뭐야?”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민성, 아니지. 막내즈와 율무 때문에 가끔 빡친 적은 있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화낸 적 없던 민성이 싸늘한 시선으로 백야를 바라봤다.
“아니이…. 이거는 내가 잘못 적은,”
“한백야!”
흠칫-
리더의 호통에 백야의 몸이 떨렸다.
“진짠데….”
개복치는 조금 억울했다.
가뜩이나 동기화되면서 병역 의무가 다시 생긴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이번에는 편지가 저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이런 아이템은 동기화되면서 자동으로 사라졌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필승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이제는 찾아가 따질 사람도 없었다.
콩콩!
그냥 답답한 가슴을 앞발로 두드리기만 할 뿐이었다.
“너 방금 자해한 거니? 지금 우리 협박하는 거야?”
이게 어딜 봐서 자해예요….
차갑게 식은 백야의 눈이 민성을 향했다. 그러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다시 눈을 깔아야만 했다.
‘무서워….’
계속되는 백야의 침묵시위에 민성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이번엔 편지를 집어 든 율무가 큰 목소리로 편지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율무에게. 율무야 안녕? 나 백야야.”
“아아악! 아니야! 읽지 마!”
“막상 편지를 적으려고 하니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어색하다. 그래도 네 덕분에 지난 3년 동안 많이 웃을 수 있었어. 돌이켜 보니 너한테 제일 고맙고 미안한 일이 많은 것 같아.”
“제바알….”
백야는 듣기 힘든지 눈과 귀를 막으며 어떻게든 듣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청과 유연이 똑똑히 들으라며 백야의 앞발을 잡고 떼어 냈고, 이를 다행이라 해야 할지 그들과 몸싸움을 벌이느라 중간 내용은 듣지 못했다.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지만,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나랑 다시 친구 해 줄래? 너무 보고 싶을 거야.”
“아아악!”
“고맙고, 사랑해. 백야가.”
백야는 수치심에 그냥 콱 죽어 버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그라들지 않는 부분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한 마디는… 듣는 순간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다.
새벽 감수성에 제대로 당했다.
“햄스터. 무슨 생각으로 이런 편지를 적은 거야? 한 장도 아니도 다섯 장씩이나.”
백야는 입술을 앙다문 채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 모습이 답답했던 유연은 참지 못하고 감정적인 말을 뱉어 버렸다.
“뭐, 우리 두고 죽기라도 하려고?”
“내가 왜 죽어?”
멤버들은 제가 무슨 짓만 하면 쉽게 죽음과 연결 짓고는 했다. 아마도 구 숙소에서 있었던 발코니 사건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왜 죽어? 나처럼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이돌도 죽기 싫어서 된 건데 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람.
이럴 때는 기억을 잃은 멤버들이 야속했다.
“에휴.”
“너 지금 한숨 쉬었어?”
유연은 빈정이 상한 듯 눈을 부릅뜨며 백야를 노려봤다.
“아니, 하아……. 편지는 어쩌다 보니까 그냥 잘못 적은 거야.”
“넌 이게 어쩌다 적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냐?”
유연이 백야의 앞으로 편지를 팔랑이며 다그치자 개복치의 턱엔 어느새 호두가 나타났다.
제가 생각해도 변명에 성의가 없는 것 같긴 했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러는 너희야말로 왜 기억을 잊어버렸냐고 역으로 따질 수도 없고….’
괜히 따졌다가 시스템이 화가 나서 동기화를 취소해 버리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백야는 어렵게 얻은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순순히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택했다. 억울하긴 하지만 제가 적은 게 맞긴 하니까.
“미안해. 잘못했어.”
“하. 너 진짜….”
궁지에 몰리고 나서야 자백하는 모습에 유연이 허탈한 듯 깊은 한숨을 뱉었다.
멤버들은 잔뜩 충격받은 얼굴로 침묵했다.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가라앉았다.
“그때는 내가 좀 힘들었나 봐. 그런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고, 소중하고, 에… 또….”
행복함을 어필하던 백야는 금방 할 말이 없어졌다. 행복한데 딱히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백야가 입술을 할짝대며 눈알을 굴리자 멤버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져만 갔다.
음…….
그냥 망한 것 같다.
* * *
그날 이후, 백야는 일거수일투족을 멤버들의 감시 속에서 살게 됐다.
화장실에서 조금만 늦게 나와도 멤버들이 문을 따고 들어와 상태를 확인했고.
벌컥-
“햄스터야!”
“아악! 나가! 이 미친놈아!”
안쪽에서 날아온 샤워볼이 청의 얼굴을 명중시키며 거품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을 잠가 봐도 소용없었다.
백야가 발악할수록 멤버들의 문 따는 기술과 그의 물건 던지기 명중률만 높아질 뿐이었다.
또 다른 날은 백야가 과일을 깎아 먹기 위해 과도를 집어 든 때였다.
“너 미쳤어?!”
어디선가 나타난 율무가 칼을 빼앗아 직접 과일도 깎아 주고 먹여 주려 들었다.
“아~ 해.”
“안 먹어!”
한 번은 시위라도 할 생각으로 방에 틀어박힌 때였다.
공기가 갑갑해 환기라도 시킬 생각으로 창문을 열려고 했더니.
“한백야…! 진정해.”
지한이 달려와 백야를 끌어안았다.
“너 뭐 하냐.”
“뛰어내릴 거잖아.”
움켜쥔 앞발이 분노로 바르르 떨렸다. 이 모든 건 멤버들의 심리 상담 제안을 백야가 거절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결국 백기를 든 백야가 당장 민성에게 찾아가 말했다.
“형. 상담하러 가자. 대신 아무 이상 없다고 하면 지금 하는 짓 다 그만두는 거야. 약속해.”
“좋아.”
그리하여 데이즈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사를 찾았다.
ID 엔터테인먼트에는 아티스트의 멘탈 케어를 위해 전문 심리 상담사가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선생님께선 상담자는 한 명인데 보호자가 다섯 명이나 되는 상황에 많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접수는 한백야 님만 해 주셨는데, 혹시 멤버분들도 같이 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백야만 할 거예요.”
민성이 젠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팔불출 티를 내면서 아무리 멀쩡한 척해 봤자 정상처럼 보일 리 없는데도 말이다.
“에휴.”
백야가 한숨을 쉬자 유연이 눈을 크게 뜨며 선생님께 호소했다.
“이것 좀 보세요! 유서를 들킨 뒤로 자꾸 한숨을 쉬어요. 이러다 돌발 행동이라도 하면 어떡하죠?”
백야의 한심한 눈빛이 유연을 향했다. 솔직히 상담은 제가 아니라 멤버들이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유연을 진정시킨 선생님은 백야에게 하얀 A4 용지와 연필을 내밀었다.
“지금부터 그림을 그려 볼 거예요.”
“그림이요?”
무슨 말만 하면 멤버들이 툭툭 끼어드니, 진지한 대화는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림 상담으로 노선을 튼 선생님께선 제일 먼저 집을 그려 보라 시켰다.
연필을 쥔 앞발이 꼬물꼬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지금 칼 그리는 거 아니에요?”
지레 겁먹은 민성이 백야의 그림을 보며 소리쳤다.
“아니거든?! 형 자꾸 그럴 거면 나가!”
그림을 디스 당한 백야가 빼액! 소리를 지르자 지한이 염병 토끼의 입을 단속했다.
“두 번째로는 나무를 그려 볼까요?”
이번에는 종이를 세로로 돌린 백야가 열심히 나무를 그렸다.
꽃잎이 흐드러지게 핀 커다란 벚꽃 나무였다.
“마지막으론 본인의 모습을 그려 볼 거예요.”
선생님의 말에 백야가 인간 형체를 그리자, 이번엔 청이 펄쩍 뛰며 훈수를 두었다.
“Hold on. 이거는 사람이잖아. 햄스터가 아닌데?”
“에라이.”
앞발이 연필을 놓으며 매섭게 뒤를 돌아봤다. 눈빛이 얼마나 앙칼진지 찔려서 피가 날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그런 말 하면 나 이거 안 해. 알겠어?”
회귀 개복치의 협박은 수준급이었다.
입을 앙다문 채 고개를 끄덕인 멤버들은 백 화백이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