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816
816화. 작별
장목화는 잠시 용여홍과 백새벽의 얼굴을 돌아보다가 화제를 전환했다.
“만에 하나를 위해 이번에는 조를 나눠서 행동하려고 해. 작은 흰둥이, 작은 빨강이 너희는 회사로 돌아가. 겐은 두 사람과 같이 가다가 검은 늪 황야에서 내려 중간에서 연락을 담당하도록 하고. 나랑 건우는 이두형 선생을 따라 제8 연구원 본부로 갈게.”
백새벽은 바로 거절 의사를 밝히려 했다.
장목화도 그녀의 성격과 의지를 잘 아는지라 먼저 말을 가로챘다.
“그래야 나랑 건우가 제8 연구원 본부에서, 이두형 선생 곁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 돌아오든, 돌아오지 못하든, 달지기가 인류를 사육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남아있을 수 있어.
회사 사람들을 지하 빌딩 밖으로 피신시킬 사람은 있어야지. 작은 흰둥이, 작은 빨강이. 너희는 우리 가족과 건우 친구, 회사 모두를 책임져야 해.
알아, 나도. 너희들한테 너무 무거운 짐이 될 거란 걸. 근데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어.”
용여홍과 백새벽의 마음은 숨이 막힐 듯 묵직해졌다.
몇 초 후, 백새벽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저를 설득하셨네요.”
용여홍이 뒤따랐다.
“팀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가족도 지하 빌딩에 있어요. 그 짐은 제가 원하지 않더라도 져야 하는 몫이에요.”
장목화는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성건우는 박수를 쳤다.
잠깐의 침묵 후, 장목화는 방안을 세분화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눈시울이 붉어진 백새벽이 입술을 오므렸다.
“반드시 돌아오셔야 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높았고, 조금 떨리고 있었다.
성건우는 바로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당연하지! 우리는 다 같이 온 회사와 전 인류를 구해야 한다고.”
장목화는 살짝 눈을 깜빡이며 한숨을 토했다.
“제8 연구원 본부에서 각성 방법을 찾으면 곧장 겐에게 전보를 보낼게. 만약 그때 아직 회사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면 바로 각성을 시도해봐. 이미 지하 빌딩에 들어간 상황이면 조금 적극적으로 움직여 제니 부부장에게 정기적인 야외 훈련을 신청해야겠지.
그렇게 겐과 시간을 맞춰 만나는 거야. 수시로 나랑 건우를 맞고 지원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유면 제니 부부장도 분명 허락해 줄 거야.”
게스트 보루에서 제8 연구원 본부까지는 게스트 보루에서 반고 바이오 지하 빌딩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가까울 것이었다.
하지만 빙원의 날씨와 알 수 없는 제8 연구원 본부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장목화는 두 가지 방안을 다 준비해야 했다.
“네.”
백새벽과 용여홍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용여홍이 물었다.
“팀장님, 회사에는 어떻게 말할 생각이에요?”
네 팀원 중 둘만 복귀하고 둘은 복귀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의심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장목화가 웃었다.
“사실대로 말해야지. 이두형 선생을 만난 우리는 제8 연구원 본부에 들어갈 기회를 얻어 모험을 한 번 해보기로 한 거고, 너희는 각성자가 아니니 너무 위험한 이번 작전에서 빠져 회사로 돌아가기로 한 거야.”
“아주 믿음직스러운 이유네요.”
성건우가 평가했다.
이건 기본적으로는 진실이지만 완전한 진실은 아니었다.
고민하던 백새벽이 말했다.
“회사에서 사람을 보내 우리 기억을 열람하면 어쩌죠?”
백새벽의 걱정은 일리가 있었다. 용여홍도 같은 걸 걱정하고 있었다.
반고 바이오에서 대놓고 그들의 기억을 검사할 순 없겠지만 중요 인물에 대해 이뤄지는 비밀스러운 검사 과정이 없다고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었다.
물론 백새벽과 용여홍은 수시로 에이돌른의 주시와 장생의 꿈을 떠올려 기억 열람을 담당하는 자에게 대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잠을 자지 않을 순 없고, 잠이 들면 그때부터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어졌다.
또한 달지기에 관련된 기억을 계속 떠올려 기억 열람에 대항하는 자세 그 자체도 의뭉스러운 행동이기는 했다.
그들의 기억을 열람하려 한 이가 이로 인해 큰 충격을 받거나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회사에서는 그들에게 주의를 더 기울일 게 분명했다.
“맞아요, 맞아.”
용여홍은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쩌죠?”
성실한 성건우는 조금의 위세도 부리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팀장 장목화는 웃음을 보였다.
“왜 날 보고 그래? 나한테 기억을 조작하는 각성자 능력 같은 건 없어.”
“하지만 표정은 자신 있어 보이는데.”
성실한 성건우가 지적했다.
용여홍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정말 그 문제쯤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내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는 방법이 없어. 근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까지 방법이 없다는 건 아니지. 정체도 미스터리하고, 경험도 풍부하고, 식견도 넓은 이두형 선생이라면 그런 곤경에 대응할 방법을 알지도 몰라.”
“맞다!”
짝!
성건우는 주먹 쥔 오른손으로 소리나게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용여홍과 백새벽도 분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 아래 수종이를 쫓아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거물이 있는데 굳이 여기서 이렇게 고민할 이유가 있는가?
이두형에게도 방법이 없다면 구조팀 역시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대책을 세울 수 없을 것이었다.
* * *
구조팀은 일단 후속 방안을 세운 뒤 방으로 돌아왔다.
이두형은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지 1인용 소파에 앉아 나름 깔끔한 창밖의 하늘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가 웃으며 물었다.
“결정했습니까?”
팀장 장목화가 웃음을 지었다.
“이두형 선생님, 저희는 두 조로 나뉘어 한 조는 선생님과 함께 제8 연구원 본부로 가고 다른 한 조는 다른 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두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를 그렸다.
“좋습니다. 차에 제 자리만 있다면.”
성건우가 공연히 일을 망치기 전, 장목화가 얼른 덧붙였다.
“하지만 다른 조는 말인 영역의 각성자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에게 기억을 들키고 싶지도, 그렇다고 너무 티가 나는 방법을 써가며 직접적으로 대항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두형 선생님, 식견이 넓으신 선생님께서 해주실 수 있는 제안은 없을까요?”
이두형은 몇 초간 고민하다가 소리 내 웃었다.
“그거야 간단하죠.”
간단?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은 순간 눈이 먼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이 각자 표정을 통제하는 와중, 이두형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해당 기억에 상태 하나만 더하면 해결될 일입니다. 그러면 말인 영역 각성자가 그 부분 기억을 열람할 때, 영향받은 잠재의식 때문에 그걸 못 본 듯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죠.”
짝! 짝! 짝!
성건우가 손뼉을 쳤다.
평범한 로봇인 척 연기 중인 게네바는 성건우를 따라 박수 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는 중이었다.
“하지만 저희는 일부 기억에 일종의 상태를 덧붙일 능력이 없는데요.”
장목화는 자신들의 능력 부족을 담담하게 시인했다. 이는 즉, 가능하다면 직접 시범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뜻이었다.
곧 이두형이 빙그레 웃었다.
“제가 도와드리죠. 특수한 상태를 부가하고 싶은 기억이 뭡니까?”
장목화는 이두형의 반응을 관찰하며 용여홍과 백새벽을 가리켰다.
“달지기의 인류 사육에 관련된 기억이요.”
‘달지기의 인류 사육’이란 이야기에, 이두형은 모종의 기억에 빠진 듯 눈꺼풀을 살짝 꿈틀거렸다.
그로부터 10여 초 후, 원상태를 회복한 그가 용여홍, 백새벽을 바라봤다.
“이제 그 관련 기억을 머릿속으로 한 번 떠올려보세요. 빠뜨린 부분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이두형은 상대의 기억을 직접 열람하거나 취할 수는 없어서 상대방 협조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백새벽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와 용여홍은 506호의 일에서부터 스스로를 이두형이라 칭한 진구가 남긴 녹음 펜까지의 기억을 찬찬히 떠올렸다.
솔직히 미쳐서 스스로를 이두형이라 일컫던 진구를 떠올린 순간엔 용여홍은 약간 좀 두려워졌다. 눈앞의 이 남자가 바로 이두형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두형은 그에 대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기억을 판독하진 못하고 그것에 특정 상태만 부가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이게 다입니다.”
백새벽이 회상을 끝내자, 이두형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 됐습니다.”
‘다 됐다고? 난 아무것도 안 느껴졌는데?’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한 용여홍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만약 상대가 성건우였다면 또 짓궂은 장난을 치는 모양이라 생각했겠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줄곧 믿음직했던 그 이두형이었다.
“고맙습니다.”
백새벽은 상대를 믿어보기로 한 듯했다.
이에 용여홍도 그녀를 따라 감사의 뜻을 표했다.
장목화는 창밖의 하늘을 한번 살핀 후, 입을 열었다.
“이두형 선생님, 정오가 다 됐네요. 식사하러 가시죠.”
“체면 불고하고 그 호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두형이 웃으며 일어났다.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성건우가 불쑥 탄식했다.
장목화는 바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래?”
성건우가 합장을 했다.
“일부 기억에 특수한 상대를 부가하는 능력, 어딘가 익숙하다 했어요.”
“그럴 리가 있나.”
용여홍은 그의 말에 일단 의심부터 했다.
성건우는 웃으며 대꾸했다.
“전에 숙명통으로 진 교수의 기억을 건드렸을 때 일부 기억을 무시했던 적이 있어. 커닝미스에 진입한 후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는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게네바에게 알리고 장목화에게 보고했었다. 조금 전만 해도 이두형의 방법과 그 상황을 연계시키지 못했을 뿐이었다.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제8 연구원 내부에도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건가?”
현재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이틀 후, 게스트 보루 밖.
구조팀의 지프와 짙은 색 SUV 한 대가 구릉 옆쪽에 서 있었다.
“이미 회사에 상황을 알렸고 회사에서도 반대가 없었어. 너희도 돌아가서 그냥 사실대로 얘기하면 돼.”
지프 보조석 밖에 선 장목화가 용여홍과 백새벽에게 당부했다.
SUV는 그들이 새로 구입한 것으로,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가 검은 늪으로 돌아갈 때 쓸 차였다.
차를 사는 데 쓴 돈은 커닝미스에서 가지고 나온 가치 있는 물자를 팔아 만든 것이었다. 구조팀은 커닝미스로 가면서 식량을 꽤 소모했고, 그 덕에 생긴 공간엔 그곳에서 찾아낸 물자를 게스트 보루까지 실어 오는 데 썼다.
“네.”
백새벽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용여홍이 짙은 색 SUV 트렁크를 보며 말했다.
“팀장님, 카멜레온 타입 인공지능 갑옷도 가져가실래요? 겐은 검은 늪 황야에 있을 테니까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장목화가 웃었다.
“됐어. 군용 외골격 장치면 충분해. 겐은 앞으로 중간에서 연락을 담당해야 하잖아. 카멜레온의 은신 기능을 이용해서 너희랑 만나야 할지도 몰라.”
“맞아, 맞아.”
성건우가 동조했다.
장비 중 비교적 신형인 두 군용 외골격 장치와 핵탄두, 고성능 배터리 절반은 장목화, 성건우가 나머지는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가 가졌다.
짙은 색 SUV는 배터리가 아닌 연료를 사용했고, 일반적인 무기는 각자 평소 흔히 사용하는 것들을 챙긴 상태였다.
장목화는 지프에 탑승한 이두형을 한번 돌아본 뒤 다시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잔소리 듣기 싫지? 이제 그만 찢어지자.”
백새벽은 입술을 오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여홍도 마음이 무거워져 절로 표정이 굳었다.
이내 용여홍은 SUV에 올라탄 뒤, 장목화와 성건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덧붙여 작별을 고하려는데 목이 미친 듯 따가워졌다.
“꼭 다시 만나자!”
친구 성건우도 오랜만에 찬란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꼭 다시 만나자!”
장목화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백새벽은 북쪽의 빙원으로 떠나는 지프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눈가를 슥, 훔쳐낸 그녀가 겨우 차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