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Witches RAW novel - Chapter (1160)
EP.1166 #277_분열(5)
#1160
1.
샤론은 감수성과 감정의 팔레트, 공감 능력 모두 풍부한 편이다.
그런 까닭에 로맨스 영화를 보면서도 곧잘 울어 시우의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샤론은 그것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살이 혼자 할 것도 아닌데 타인의 슬픔과 기쁨에 공감해주는 게 뭐가 나쁜가?
옛 현인들의 격언에도 기쁨은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라는 말도 있다.
아마 그런 성격이 있기에 다른 연인들과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성격이 꼭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명확한 단점 또한 존재한다.
감정의 팔레트가 넓은 만큼 한가지 감정에도 깊게 몰두하게 된달까?
가령 비가 오면 괜히 센치해지고, 가을이 오면 괜히 가슴이 허허해지는 식으로 주위의 영향도 많이 받고.
또 유독 부끄러운 일(내보맛과 샤로니가 그로케 기여워로 대표되는)에 휘말리게 되면 영원히 잊지 못한다.
아직도 자다가도 괜히 그 당시 기억이 떠올라 이불을 뻥뻥 차대곤 했다.
잠깐만….
생각해보니 어째서 이런 곤란하고 민망한 일은 자신의 몫인가?
샤론은 문득 운명론적인 관점에서 그녀를 수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세계의 의지를 느꼈다.
이번 일도 그렇다.
“…한 번쯤은 부성애를 느끼고 싶다.”
복잡한 샤론의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뜻 보기엔 담담하게, 그러나 실은 조금 부끄러워 뺨을 붉히며 말하는 린네.
샤론은 린네의 과거와 인생을 안다.
참 눈물 쏙 나오고 가슴 짠해지는 안타까운 스토리였다.
그녀가 좁게는 모성애 혹은 부성애, 넓게는 가족애에 목말라 있다는 것 역시 예측하고 있었다.
하지만 ‘응애 린네가 되어서 말리카처럼 파파의 사랑을 듬뿍 받고 싶어요. 도와주세요.’라는 제로백 1초대 급발진을 할 줄이야!
심지어 거기에 생각 없이 ‘도와드릴까요?’라고 고개를 내밀었다가 치여버릴 줄이야!
매정한 사람이었다면 ‘그건 정신병이니 병원부터 가보세요’라고 말했겠지.
하지만 샤론은 고문의 영역에 달한 공감성 수치를 느끼면서도 차마 쓴소리를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과묵한 인형 같은 린네가 얼굴을 발그레하게 붉히며 어렵사리 털어놓은 진심을 매도할 수는 없으니까(사실 아무리 티가 안 나는 포커페이스라도 저거밖에 안 부끄러워한다는 게 신기하긴 하다)!
“그, 그렇네요. 저여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샤론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잔을 집어 바짝바짝 마르는 목구멍을 적셨다.
여전히 무표정에 가까운 린네의 얼굴이 밝은 조명을 쏜 듯 살짝 밝아진다.
“고맙다. 낯뜨거운 고민이라는 건 이해하고 있다.”
“아뇨 아뇨…. 낯뜨거운 고민이라뇨. 사람마다 다 고민거리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아하하하….”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린네라도 성적인 의미로 그런 발언을 한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순전히 ‘말리카처럼’ 이쁨 받고 싶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조차도 버겁다.
대체 이런 딥한 걸 어떻게 도와주라는 말인가?
샤론은 침착하게 린네를 설득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시우가 좋아할까요?”
“…역시 그런가?”
그 말을 들은 즉시 사막에 내놓은 꽃처럼 어마 무시한 속도로 시무룩해지는 린네.
“아니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아니, 좀 부담스럽… 아니, 이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이게 사람마다 지향하는 성향의 차이가 있다 보니까 그렇게 매니악… 아니! 매, 매니악하지 않아요! 그냥 통상 범주에서 조금 벗어나… 아….”
횡설수설하는 통에 자꾸만 말실수를 거듭하는 샤론.
“…네 말이 옳다.”
린네의 귀에는 ‘부담’ ‘매니악’ ‘통상 범주에서 벗어난’ 같은 실수만 들어오는 것인지 항상 날카롭다고 느껴지던 눈꼬리가 처연할 정도로 가라앉는다.
어디 빈상자에 넣어두면 누구든 주워가 따뜻함을 나눠주고 싶어할 만큼 딱하게 말이다.
샤론은 눈을 질끈 감았다.
딱 한 번만 눈감자.
박애 정신으로 공감성 수치를 몰아내고 린네의 이상야릇한 비원 성취를 돕자.
그리 결심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
시무룩하게 말라죽어 가던 린네가 다시 활짝 피었지만 샤론은 마음 편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2.
현대 사회의 국가란 보이지 않은 무수한 끈으로 연결된 공동체와 같다.
길이가 짧고 길고, 굵고 가늘고, 많고 적고의 차이는 있으나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따라 한 국가의 경제 상황은 더는 한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예를 들어 허리에 이런저런 로프를 둘둘 감은 중국이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중국과 함께 다른 국가들도 엮인 소세지처럼 떨어질 것이고 도미노 나락행이 펼쳐질 것이다.
하물며 그 사태가 ‘초월적 존재에 의한 아포칼립스’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만약 헥센나흐트가 ‘인간 사회의 절멸’을 목표로 삼았다면 그리 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덩치 있는 국가를 철저하게 조지고, 모든 무역과 금융활동을 마비시키고, 대량 인간 학살을 벌이면 알아서 다들 무너져 줄 테니까.
하지만 헥센나흐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뇌부를 교체했을 뿐 의외로 정상적인 국가 운영을 이어가려 시도하고 있다.
“즉, 마녀를 위해 인간을 정복하겠다는 표어의 ‘정복’은 불가역적인 완전 파괴가 아니라는 의미에요.”
“숨통은 살려둔 채 지배하고 단물은 빨아 먹겠다는 거군요.”
“그렇죠. 덤으로 여지껏 물밑에서만 활동하던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의미이고요.”
“프로파간다는 프로파간다대로 이용하면서 인간이 제공하는 편의와 재화는 빨아먹겠다. 즉, 현세 전체를 식민지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여요. 물론 예측 불능의 공적집단이라는 점에서 어디로 튕길지는 항상 변수가 존재하지만요.”
“종합하자면 현재로서는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하지만 산발적이고 국지적인 충돌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정도가 되겠네요.”
간만에 두 장모님과의 대담.
계승을 위해 주요 요직 업무에선 슬쩍 발을 빼긴 했으나 쌍둥이 장모님은 게헨나의 백작이다.
따라서 작금 벌어지는 사태 컨트롤에 일조했는데, 이렇게 시우와 나누는 대화 역시 다년간 정치 생활을 거쳐 간 선배로서의 피드백 시간이었다.
“그런데 시우 군, 좀 편하게 앉아도 괜찮아요. 아까부터 너무 불편해 보여서.”
“아닙니다! 전 이게 편합니다!”
시우의 자세가 막 자대배치된 이등병과 같은 게 퍽 이상했는지 작은 장모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잘못한 거 있어요?”
큰 장모님은 초대면보다 경직된 자세로 둘을 대하는 시우에게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예, 제가 정말 큰 죄를 지었습니다.”
“뭐야?! 또야?! 여자친구 또 늘린 건 아니죠?! 제대로 불어!”
“언니, 진정해. 물어나 봐야지.”
이실직고하는 시우의 모습에 트라우마 스위치가 질끈 밟힌 알비레오와 그걸 뜯어말리는 데네브.
사실 요즘 시우는 두 장모님을 대할 때마다 가슴 속 깊이 두 분의 아량에 감탄하곤 했다.
존경심까지 품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말리카 때문이다.
시우는 아버지가 되었다.
솔직히 마녀가 된 이후론 인생 계획에 조금도 반영하지 않았던 아이였기에 많은 걱정을 했다.
아버지의 역할은 얼마나 무거운가.
과연 그 역할을 잘해낼 수 있을 것인가.
쉽게 말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자문으로 정리되는 고민거리다.
새싹이가 말리카가 된 이후 시우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과 책임감을 느꼈다.
작고 소중한 생명.
다른 누구도 아닌 시우가 반쪽을 꽃 피워낸 가족.
아직 말도 못하는 꼬맹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말로 다하기 어렵다.
그렇다.
두 장모님에게는 오딜과 오데트가 말리카였을 것이다.
두 쌍둥이 자매를 동시에 농락한데다가 연인을 주렁주렁 이끌고 다니는 사위의 목을 치지 않고 정강이만 가끔 걷어찬 그 관대함.
그것도 모자라 수백 년간 지켜왔던 두 장모의 순결을 희롱하고 농락했음에도 마법으로 불태우지 않는 아량.
만약 그딴 놈팽이 새끼가 말리카 데려간다고 나타난다?
참을 수 없다.
죽일 것이다.
반드시 죽여 없앨 것이다.
성녀가 따로 있을까?
여기 이 자리 두 분이 성녀이다.
막연하게만 이해했던 두 장모님의 자애로움에 대해 진심으로 탄복하게 된 것이다.
“알긴 아네요.”
“이제야 저희 고충을 좀 알겠어요?”
그래서인지 머리색만 다르고 모든 게 똑같은 두 장모님의 등 뒤에 성스러운 아우라가 흐르는 듯했다.
오오 찬미하여라.
“이제 와서 반성한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시우 군이 해야 할 건 오딜과 오데트를 책임지고 행복하게 하는 거죠.”
“옙! 맡겨만 주십시오! 신명을 바치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슬슬 일정을 잡아볼까 해요.”
“네?”
“결혼식이요.”
“아.”
마녀 사회엔 결혼이라는 문화가 없다.
마녀는 여자밖에 없으며 고리타분한 문화를 좋아하는 마녀답게 결혼은 남자랑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확고한 와중에 마녀와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 ‘수명’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시우는 그런 수명의 벽을 넘어선 존재였으니 알비레오와 데네브는 자연스럽게 결혼과 더불어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를 떠올렸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쌍둥이가 묘하게 로망을 가지고 있는 듯해서요. 저도 딸아이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 한 번쯤은 보고 싶었고.”
“아하.”
“이번 사태가 대략 정리되는 대로 식을 올리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장모님들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기로 마음먹은 시우는 굳은 의지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3.
린네는 샤론의 도움이 정말 고마웠다.
차마 남에게 못할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기꺼이 돕겠다고 나섰으니.
만약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샤론에게 더 잘해줘야겠다고까지 다짐했다.
하지만 샤론의 도움이란 녀석이 좀 이상하다.
“자, 이건 쪽쪽이구요. 이건 딸랑이. 이건 턱받이고 이건 헤어밴드….”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성인 사이즈의 유아용품을 주르륵 늘어놓으며 한차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설명을 이어나가는 샤론.
“……?”
이걸 갑자기 왜 보여주는 걸까?
린네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샤론이 린네의 신체 치수를 묻던 것을 떠올렸고, 또 유아용 내복이 린네의 사이즈와 똑 맞는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게 린네 입으라고, 혹은 린네를 위해 준비된 것들이라는 게 아닌가?
“다, 다시 보니 꽤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어렵사리 ‘도움’을 완수한 샤론이 식은땀을 훔치며 공치사를 건넸다.
“뭐하자는 거지?”
린네는 정색했다.
-덜컥
그때 샤론 다음으로 운명의 억까를 당해 수치스러운 상황을 자주 맞이하는 린네의 인과율이 움직였다.
“저 빼고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세요?”
하필 이때 시우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