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Of Witches RAW novel - Chapter (1161)
EP.1167 #278_난전
#1161
1.
마녀는 인간적인 감수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존재이다.
그건 트리니티 아카데미 관리인이 마녀 학회장이 된 이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무한한 삶을 선택할 수 있으면서도 포기한다.
말년에 벽에 좀 거시기한 걸 칠하며 골골대는 그런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누구라도 매혹할 영원불멸의 미모를 지녔고, 서민 대다수가 선망할 부를 지녔고, 인간의 힘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신비를 손에 넣었음에도 한계를 인정한 순간 겸허히 유산을 후대에 전하며 떠난다.
이 쓸쓸한 이별에 ‘마녀 사회’ 구성원 전부가 암묵적 동의를 깔고 간다는 게 가장 낯설다.
뭐 그밖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많다.
아무리 부자라 한들 한 달 술값으로 수십억 단위 돈을 턱턱 쏟는 장모님이나, 내 목걸이가 예쁘네 아니다 내 브로치가 더 예쁘네로 싸우는 붉은지붕 살롱의 마녀들이나, 내 삶의 빛은 오직 마법을 외치며 인간 마녀 공평하게 갈아 흑성대법을 연마하는 공적들이나….
소파 위에 성인사이즈의 유아용품들을 주르륵 늘어놓고 숙고하던 린네나.
“…….”
“…….”
“…….”
마녀는 대부분 개성이 넘친다.
시우의 연인들만 봐도 하나씩은 유별난 면이 있었다.
그 중 린네의 유별난 면은 ‘파파플레이’ 한 단어로 요약이 되었는데 시우는 이것을 그러려니 하며 포옹했다.
사랑과 친애는 이 그러려니라는 단어와 꽤 밀접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좀….”
시우의 머리가 반사적으로 린네의 응애 코스튬을 그린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첫 만남 모습과 대비되었다.
자성마법 ‘흑백세계’와 함께 이도류를 휘두르며 그녀에게 ‘검귀’라는 이명이 달리 붙었는지 보여주었던 린네.
그리고 침대에서 딸랑이 이도류를 흔들며 쪽쪽이를 쪽쪽하는 옹알이 린네.
이건 그러려니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비정상, 명백한 비정상….
“크윽!”
심연을 엿본 까닭에 파괴되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시우.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다.
애아빠가 된 처지에선 더욱 그렇다.
“오해다.”
린네는 더 하얗다.
두리번거리던 린네가 샤론의 목을 조를 기세로 흔들었다.
“샤론. 빨리. 빨리. 빨리 설명해라. 해명해라.”
“네? 네? 뭐, 아!”
“이, 이건 그러니까 시우야…. 린네 님이 부탁해서 준비한 거야. 말리카처럼 딸이 되고 싶다고 해서….”
“아니다! 그게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다급해 보이는 린네와 여전히 오해가 풀리지 않은 샤론의 콤비가 자아낸 결과는 세 글자로 요약된다.
대환장.
샤론은 영락없이 린네의 요구를 잘못 이해하고, 린네도 이제 막 샤론의 오해를 알아차린 시점에서 제대로 된 해명이 이루어질 리 없다.
샤론이 의도치 않게 린네에게 존엄성말살탄을 쏜 셈.
“정말이다 낭군! 난 이런 걸 바란 게 아니다!”
살상 마법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도 눈 하나 깜빡 않고 적을 주시하는 린네지만, 매일 도로시가 놀려먹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이런 부류의 공격에는 저항력이 없다.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급한 일이!”
“가지 마라! 제대로 설명해라!”
린네 반 천 년 인생 가장 큰 오점을 남긴 샤론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도주를 선택했다.
샤론의 공감성수치 인내지수가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허망하게 샤론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린네는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았다.
경멸받을 게 분명하다.
아주 뜬금없는 상황이었다면 차라리 린네도 떳떳했을 테지만 지난밤 숱한 파파플레이가 있지 않았던가?
이 끔찍한 오해에 그럴 듯한 인과가 붙어버린 것이다.
낭군이 정신이상자 보듯 자신을 바라본다면 변변한 항변도 못하고 쪼그라들 게 분명하다.
“린네 님.”
하지만 뜻밖에 시우는 부처를 닮은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엔 패닉에 빠졌던 시우지만 마음을 정리했다.
그래.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어둠이 있는 법이다.
사실 시우도 공공연하게 말하며 돌아다니진 않지만 오자매의 자매 덮밥이 꼴렸다.
도로시와의 짐승 플레이도, 아멜리아의 부교수님 상황극 플레이도, 실수쟁이 메이드 샤론을 야외에서 벌주기 플레이도, 르뤼에와의 궁중서열 역전 ‘물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수둔을 플레이’도, 스승님과의 오늘은 내가 스승님 플레이도.
모두 남 보여주기엔 살짝 부끄러운 일이다.
시우는 본의 아니게 불쑥 방문하여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
당황하는 연인 앞에서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는 무엇일까?
“아, 하세요.”
“…….”
시우는 린네의 입에 쪽쪽이를 물려주었다.
이미 해명 따윈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눈동자에 빛이 사라진 채 쪽쪽이를 물고 털썩 주저앉는 린네.
“린네 님, 저는 다 이해합니다. 남들과 다르다고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냥 조금 특별할 뿐인 거죠.”
“…….”
“저도 노력해보겠습니다.”
시우는 그런 린네를 번쩍 안아 무릎 위에 앉혔다.
다른 이가 보기엔 우습고 기괴해 보일지 몰라도.
이것이 린네의 말 못할 소원이라면 가능한 성심성의껏 보조해 보리라.
시우는 두드러기처럼 올라오는 거부감과 괴이함에 대한 오한을 한껏 억누른 채 하이텐션으로 린네를 마치 말리카 다루듯 둥가둥가하기 시작했다.
“우쭈쭈쭈! 우리 린네 귀엽다!”
“…….”
“눈도 동그랗고, 코도 오똑하고! 어쩜 이리 귀여울까!”
“…….”
“아빠 없다! 아빠 있다! 아빠 없다! 아빠 있다!”
“…….”
시우의 열연에 린네의 영혼이 실시간으로 빠져나간다.
이게 아니다.
린네가 바랐던 건 적어도 공갈젖꼭지를 물고 잼잼 곤지곤지 짝자쿵을 하는 이게 아니다.
하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시우의 무릎에 몸을 웅크렸던 린네는 뭔가, 뭔가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
수백 살 먹고 아기 취급받는다는 수치심에서 살짝 눈을 돌리면 느낄 수 있는 이 오묘한 안정감.
경험에서 우러난 시우의 필살 마법 ‘우는 말리카 놀아주기’는 린네의 이성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잠자코 순응하며 생소한 안정감에 몸을 맡기자니 뭔가 잠이 쏟아진다.
제 귓가를 스치는 나른한 호흡과 둥둥 들려오는 낭군의 심장 소리가 자장가처럼 린네를 낮잠의 길로 이끌었다.
“…코오….”
워낙 오감이 예민한 까닭에 좀처럼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린네가 곤히 잠들었다.
이불보보다 훨씬 불편한 시우의 무릎 위에서 말이다.
시우는 진땀을 닦아내고 조심조심 린네의 입에서 쪽쪽이를 빼주었다.
무방비하게 잠든 린네의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했다간 크나큰 상처로 남을 게 분명하다.
그래도 세상모르고 느슨한 얼굴로 잠이 든 린네를 보자 열심히 그녀의 소원에 호응해 준 것이 보람차다.
시우는 린네의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슬쩍 쓸어주며 나지막이 웃었다.
“휴, 오늘도 한 건 해결.”
과정은 조금 이상했지만 린네 또한 만족한 엔딩이었다.
2.
게헨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확히는 게헨나 내부 ‘학회 연합군’의 성명이었다.
거창한 수사를 걷어낸 성명문의 메시지를 석 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전쟁할 준비가 되었다.
2) 더 선 넘으면 방조 안 한다.
3) 알아서 사려.
성명문만 발표한 것이 아니라 삼방향으로 확장하는 헥센나흐트 전초기지에 맞서 위치포인트를 재건.
소수 인력을 파견해 상황에 대비토록 했다.
비록 진리진명 학술회는 동의하지 않은 성명이었으나 헥센나흐트는 일단 팽창을 완전히 멈췄다.
명목상으로는 쫄아서가 아니라 다양한 괴뢰국의 내정을 다지기 위함이라지만 시기가 지나치게 공교롭긴 하다.
그렇다면 마녀 세계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내전시기에 돌입했느냐?
아니다.
헥센나흐트는 기본적으로 공적 집단.
가뜩이나 몸이 달아 있는데 위에서 ‘싸우지 마’라고 한다고 안 싸우는 종자들이 아니다.
전리품을 찾아, 사냥감을 찾아, 공훈을 세우기 위해 삼삼오오 팀을 이뤄 돌아다니고 때로는 위치포인트를 습격하면 헥센나흐트는 그것을 방관 및 방조한다.
게헨나도 그 정도 수준의 충돌을 빌미 삼아 전면전의 확대를 꾀하진 않는다.
그건 그것대로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작은 규모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 마냐, 말리샤… 좋았지?”
하지만 알래스카 임시지부에 파견된 수은의 마녀.
호텔 스위트 룸에서 투숙 중인 앨리스 이븐 하이얀은 태평하게 빙하가 녹을 때까지 두 애인 마냐 말리샤와 사랑을 나누었다.
“네, 좋았아요 언니….”
“마냐 내 배 위에 허벅지 안 치워?”
“말리샤 너나 꺼져!”
“싸우지 말고 커피나 마셔 이년들아.”
뜨거운 사랑을 나눈 뒤 도심 풍경과 함께 백야의 정취를 즐기는 커피 타임도, 낯에는 10도까지 올라가는 비교적 온화한 날씨도, 전쟁의 긴장감과는 거리가 멀다.
알래스카는 혹한의 땅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임시지부가 설립된 앵커리지는 나름 알래스카에서 가장 번영한 관광 및 항공도시였기에 크게 불편한 점도 없다.
사막에서 모래 폭풍 맞으며 호문쿨루스를 기다렸던 적도 있는 삼인방이니 말이다.
“여기는 동부 전선. 오늘도 이상 무.”
“이상 무! 별일 없네요 언니.”
“여기서 1,000km는 떨어졌으니까. 걔네도 눈깔이 돌지 않고서야 여기 앵커리지까지 치면 바로 전면전인데 아직 간 좀 보겠지.”
헥센나흐트의 동군이 전초기지를 세운 곳은 베링 해 연안 코트즈부 여기는 앵커리지 그야말로 양극단이다.
몇몇 마녀들과 함께 자원해서 첨병 역할을 하긴 했지만, 서로서로 자극하지 않기 위해 소규모 교전을 이어가는 현시점 사실상 이 앵커리지 위험도는 거의 없는 셈이라는 것.
그러니까 연합군 측에 생색은 생색대로 내고, 꿀은 꿀대로 빠는 꿀보직을 눈치 빠르게 자원한 것이다.
“게헨나 책상물림들은 이런 거 모르지.”
“역시! 언니! 대단해요!”
“언니, 우리도 이제 게헨나 시민이잖아요.”
“누가 아니래? 근본이 다르잖아 근본이.”
돈 한 푼 안들이고 미 정부를 통해 다양한 편의를 보장받으며 알래스카의 명물 랍스타를 먹으러 다니는 이 생활은 순전히 앨리스의 지혜라는 의미다.
덤으로 전쟁이건 냉전이건 끝나면 게헨나 내에서 앨리스의 입지는 상승할 것이고 말이다.
“슬슬 레스토랑이나 갈까?”
“좋아요!”
“저, 그거 또 먹고 싶어요. 할리벗? 뭔 물고기가 3M까지 자란대요?”
“샴페인도?”
“그럼요!”
히죽대며 오늘도 사치와 허영을 즐길 생각으로 드레스를 챙겨 입던 마냐가 창밖을 보더니 외쳤다.
“언니! 언니! 언니!”
“왜?”
“환일이에요! 해가 여러 개 떠 있어요! 아니, 별인가?”
해가 여러 개로 보인다 하여 무리해라고도 불리는 환일은 낮은 고도에서 휘날리는 빙정이 프리즘 역할을 하며 발생하는 매우 보기 드문 자연현상이다.
즉, 이 날씨에 도심 한복판에 발생할 리가 없다.
“환일은 뭔 환일이야. 헛소리 말고 옷이나 입어.”
“아니에요! 정말이라니까요 언니?”
툴툴대면서도 창밖을 확인한 앨리스가 우뚝 굳었다.
하늘에 총총 박혀있는 반짝거리는 빛무리.
그리고 그 뒤를 잇는 하얀 연기.
뭣도 모르고 보면 예뻐 보일지 모르겠지만 동심 따윈 남지 않은 앨리스가 보기에.
저건 미사일이다.
“이런 시발.”
곧 앵커리지 전체를 덮는 규모의 이면결계가 펼쳐졌다.
습격이었다.